비례와 안정
독서등은 책에 집어 쓰지만, 클립 아랫면을 받침 삼아 책상에 세워 쓸 수도 있게 하기로 했다. 서윤이 시제품 모형을 책상에 세우고 등머리를 책 쪽으로 쭉 뻗자, 모형은 천천히 앞으로 기울더니 넘어졌다. 보기에는 균형이 잘 잡힌 형태였는데. 물건의 "안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눈으로 보기에 안정된 것과, 실제로 넘어지지 않는 것. 둘은 자주 함께 가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 이 장은 등머리·목·클립의 비례를 재는 데서 시작해, 보이는 무게와 실제 무게중심, 넘어지지 않는 조건을 계산하고, 마지막으로 큰 형태에서 작은 디테일로 이어지는 위계를 본다.
- 제품 부분 사이의 비율을 재고, 비율을 정답이 아니라 비교의 도구로 쓴다(황금비 신화에 기대지 않는다).
- 시각적 무게가 크기·색의 대비·위치로 정해지고, 실제 무게중심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본다.
- 여러 부품의 무게중심을 가중 평균으로 구하고, 무게중심의 수직선이 받침 안에 있어야 서 있다는 조건을 쓴다.
- 넘어짐 각 tan α = d / h를 계산하고, 받침 폭·무게중심 높이·무게 배분이 각각 어떻게 안정을 바꾸는지 안다.
- 큰 형태 → 중간 → 작은 디테일의 위계를 흐리게 보기로 점검한다.
등머리·목·클립의 비례
비례(Proportion)는 한 부분의 크기를 다른 부분이나 전체와 비교한 관계다. 독서등의 비례는 등머리의 길이, 목의 길이, 몸통과 클립의 높이가 서로 어떤 비율을 이루는가로 읽힌다. 같은 부품을 써도 비율이 바뀌면 물건의 성격이 바뀐다. 목이 짧고 등머리가 크면 땅딸막하고 단단해 보이고, 목이 길고 등머리가 작으면 날렵하지만 위태로워 보인다.
비례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황금비(약 1 : 1.618)다. 황금비를 따르면 아름답다거나 명작에 황금비가 숨어 있다는 주장은 널리 퍼져 있지만, 근거는 생각보다 약하다. 사람들이 황금 직사각형을 특별히 더 좋아한다는 실험 결과는 엇갈리고, 명작에서 황금비를 "찾아내는" 작업은 대개 사후에 선을 끼워 맞춘 것이다. 이 이야기는 CompositionBook 「비례: 3분할과 황금비」에서 자세히 다뤘다. 제품에서 비율은 마법의 수가 아니라 비교와 점검의 도구다. 비율을 재 두면 "목이 좀 긴 것 같다"는 느낌을 "목이 등머리의 1.9배다"라는 말로 바꿔 동료와 이야기할 수 있고, 시안끼리 비교할 수 있다.
아래는 독서등을 받침 겸용으로 세운 옆모습이다. 손잡이 세 개를 끌어 등머리의 길이, 목의 길이, 몸통의 높이를 바꾼다. 비율이 간단한 정수비에 가까우면 그 이름을 함께 보여 준다.
등머리·목·몸통의 비율 재기
비율을 재 보면 "좋아 보인다"는 느낌에도 이유가 조금씩 보인다. 가장 큰 덩어리와 다음 덩어리의 크기가 너무 비슷하면 어느 쪽이 주인공인지 흐려지고, 차이가 너무 크면 한쪽이 붙어 있는 혹처럼 보인다. 많은 디자이너가 부분 사이에 분명한 크기 차이를 두되, 극단으로 가지 않는 범위를 찾는다. 그 범위는 공식이 아니라 시안을 여러 개 나란히 놓고 고른다. 숫자는 고른 결과를 기록하고 다시 만들 수 있게 해 준다.
보이는 무게와 실제 무게
그림에서처럼 제품에도 시각적 무게(Visual weight)가 있다. 눈이 그 부분을 얼마나 "무겁게" 느끼는가다. 화면 구성에서 시각적 무게는 크기, 바탕과의 대비, 위치, 고립 같은 여러 요인으로 설명된다(CompositionBook 「균형」). 제품 디자인 현장에는 "어두운 색은 무겁고 단단해 보이고, 밝은 색은 가벼워 보인다"는 경험칙이 있다. 다만 이것은 밝은 바탕 위의 이야기다. 어두운 책상 위에서는 밝은 부분이 더 도드라진다. 그래서 이 장의 모형은 색 자체보다 바탕과의 명도 대비를 무게로 셈한다. 근거의 수준으로 말하면, 색과 무게감의 관계는 경험칙이고 효과의 크기는 조건마다 다르다.
실제 무게는 전혀 다른 규칙을 따른다. 플라스틱 등머리는 크고 눈에 띄어도 가볍고, 몸통 속의 작은 충전지는 보이지도 않지만 무겁다. 아래에서 부분의 색과 책상의 색을 바꾸며, 실제 무게중심(●)과 이 장의 모형으로 계산한 보이는 무게중심(○)을 비교한다.
보이는 무게중심과 실제 무게중심
두 무게중심이 크게 어긋나면 물건은 보기와 다르게 행동한다. 보기에는 묵직한데 툭 쳐도 쓰러지거나, 보기에는 위태로운데 잘 버틴다. 사용자는 형태를 보고 다루는 힘을 정하므로, 이 어긋남은 작지 않은 문제다. 흔한 해법은 두 무게를 같은 쪽으로 맞추는 것이다. 실제로 무거운 아래쪽을 시각적으로도 무겁게(어둡게, 크게) 하고, 가벼운 위쪽을 시각적으로도 가볍게 한다. 그러면 형태가 물건의 행동을 정직하게 알려 준다. 몸통과 등머리의 실제 색은 10장에서 정하지만, 이 원칙은 그때도 그대로 쓴다.
무게중심: 부품의 무게를 평균 내기
물체의 모든 무게가 한 점에 모여 있다고 볼 수 있는 자리가 무게중심(Center of mass)이다. 여러 부품으로 된 물건의 무게중심은 각 부품의 무게중심을 무게로 가중 평균해서 구한다. 시소에서 무거운 아이가 가운데 가까이 앉아야 균형이 맞는 것과 같은 원리다.
물건이 평평한 바닥에 서 있으려면 무게중심에서 내린 수직선이 바닥과 닿는 면, 곧 받침면(Support polygon) 안에 떨어져야 한다. 받침면은 바닥에 닿은 점들을 모두 둘러싼 가장 작은 볼록한 도형이다. 수직선이 받침면 밖으로 나가면, 무게가 받침 끝을 축으로 물건을 돌리는 힘(회전력)이 되어 물건이 넘어간다. 사람이 서 있는 원리도 같다(DrawingBook 「제스처와 크로키」의 무게중심과 지지 기저).
아래는 받침 겸용 모드의 독서등이다. 등머리를 끌어 목을 꺾거나 늘이고, 받침(클립 아랫면)의 길이를 바꿔 본다. 빨간 표시가 전체 무게중심이고, 그 아래로 내린 수직선이 받침 위에 떨어지는지 본다.
등머리를 뻗으면 넘어진다
등머리 하나가 전체 무게의 5분의 1밖에 안 되는데도 물건 전체를 넘어뜨린다. 무게중심은 무게뿐 아니라 거리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받침 가운데에서 100 mm 떨어진 16 g은, 가운데에 놓인 수십 g보다 무게중심을 훨씬 많이 끌어당긴다. 그래서 길게 뻗는 부분은 가볍게, 무거운 부품은 받침 가까이 낮게 두는 것이 안정의 첫 원칙이다.
넘어짐 각: 얼마나 버티는가
무게중심이 받침 안에 있으면 일단 선다. 하지만 "겨우 선다"와 "든든히 선다"는 다르다. 책상은 흔들리고, 사람의 손이 스치고, 충전 케이블이 당긴다. 얼마나 버티는지를 재는 값이 그림 2의 넘어짐 각(Tipping angle)이다. 받침면을 그 각도만큼 기울여도 버틴다는 뜻이다.
아래에서 책상을 기울여 본다. 등머리를 뻗은 쪽이 내리막이 되도록 기울인다. 충전지를 어디에 두는지, 등머리를 세웠는지 뻗었는지에 따라 버티는 각도가 달라진다.
기울어진 책상 위의 독서등
넘어짐 각을 키우는 방법은 세 가지다. 받침을 넓히거나(d를 키움), 무게중심을 낮추거나(h를 줄임), 무게를 받침 가운데 쪽 또는 뻗는 반대쪽으로 옮기는 것이다. 책상 스탠드의 받침이 넓고 납작하고 무거운 것은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한 결과다. 독서등은 무게 목표(80 g 이하)가 있어서 받침에 추를 달 수 없다. 대신 이미 있는 무거운 부품, 곧 충전지의 자리가 중요해진다. 충전지를 등머리에 넣으면 전선은 짧아지지만 무게가 가장 나쁜 자리로 간다.
받침 길이와 목 길이의 거래
안정만 생각하면 받침을 크게, 목을 짧게 하면 된다. 하지만 받침이 커지면 클립이 무거워지고 책에 집을 때 거추장스럽다. 목이 짧으면 등머리를 책 위로 충분히 뻗을 수 없다. 이 둘 사이에서 고르는 것이 설계다. 아래 지도는 가로가 목 길이, 세로가 받침 길이다. 각 점은 하나의 시안이고, 등머리를 수평으로 끝까지 뻗은 가장 나쁜 자세에서 계산했다.
목 길이 × 받침 길이 설계 지도
설계 지도를 보면 "목은 길수록, 받침은 작을수록 좋다"는 두 바람이 정면으로 부딪힌다는 것이 한눈에 보인다. 기준(최소 넘어짐 각)을 높이면 고를 수 있는 땅이 줄고, 무게 목표가 위에서 땅을 깎는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이 지도를 그려 두면 "목을 10 mm 늘리면 받침을 몇 mm 늘려야 하는가"를 바로 답할 수 있고, 그 결정이 무게에 무엇을 요구하는지도 보인다.
디테일의 위계: 큰 형태 → 중간 → 작은 디테일
비례와 안정이 큰 덩어리의 일이라면, 마지막으로 볼 것은 덩어리 위의 디테일이다. 잘 만든 제품은 멀리서 봐도, 손에 들고 봐도, 코앞에서 봐도 각각 읽을 거리가 있다. 이것을 디테일의 위계(Hierarchy of detail)라고 한다. 멀리서는 큰 형태(실루엣과 덩어리의 비례)가, 팔 길이에서는 중간 크기의 디테일(관절, 버튼, 부품의 나뉨선)이, 손에 들고 가까이서는 작은 디테일(통풍 홈, 글자, 표면 질감)이 보인다. 3장에서 모서리 반경을 큰 것과 작은 것으로 나눈 것도 같은 생각이다.
위계를 점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흐리게 보기다. 눈을 가늘게 뜨거나, 모형을 몇 걸음 떨어져서 보거나, 사진을 흐리게 만든다. 흐림이 커질수록 작은 것부터 사라진다. 위계가 있는 형태는 단계별로 질서 있게 사라지고, 마지막까지 큰 형태가 또렷하게 남는다. 위계가 없는 형태는 비슷한 크기의 디테일이 한꺼번에 회색 얼룩이 되어, 큰 형태까지 흐려 보이게 만든다.
흐리게 보면 남는 것
위계가 없는 디자인은 대개 디테일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디테일이 모두 같은 크기, 같은 대비여서 생긴다. 여러 개의 같은 버튼, 몸 전체를 고르게 덮은 홈, 모든 이음매에 같은 굵기의 선. 하나하나는 잘 그렸는데 함께 놓으면 무엇부터 봐야 할지 모른다. 디테일을 줄이는 것만큼, 남긴 디테일 사이에 크기와 대비의 차이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 글자 디자인에서 제목·소제목·본문의 크기 차이로 위계를 만드는 것과 같은 원리다(TypeBook 「위계」).
서윤의 여름 제품 노트
등머리를 뻗으면 넘어지는 독서등
3장에서 다시 깎은 등머리를 끼운 모형은 책 표지에 집었을 때는 괜찮았다. 문제는 받침 겸용 모드였다. 클립 아랫면을 책상에 대고 세운 뒤 등머리를 펼친 책 위로 뻗자 모형이 앞으로 넘어졌다. 받침은 2장 3면도에 60 mm로 적었지만 우드락을 자르면서 약 50 mm로 짧아져 있었고, 목은 넉넉하게 120 mm쯤이었다. 모형 속에 충전지 대신 넣은 같은 무게의 추는 등머리 안에 있었다. 전선을 짧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서윤은 부품마다 무게를 가정해 표를 만들었다. 클립 약 20 g, 몸통 22 g, 충전지 12 g, 목 8 g 안팎, 등머리 16 g, 합 78 g(모두 가상의 추정치). 무게중심을 가중 평균으로 계산해 보니 등머리를 수평으로 뻗었을 때 무게중심이 받침 밖으로 한참 나갔다. 문태오는 계산표를 보더니 충전지 줄부터 가리켰다. "가장 무거운 걸 가장 먼 데 넣었네. 전선이 길어지는 건 도면에 한 줄이면 돼. 넘어지는 건 사용자 책상에서 매일 생겨."
충전지를 몸통 아래로 옮기자 계산이 크게 나아졌지만, 받침 50 mm로는 목 100 mm에서 여전히 넘어졌다. 서윤은 설계 지도를 그려 받침을 3면도대로 60 mm로 되돌리고 목 길이에 상한을 두었다. 받침 60 mm는 클립을 책에 집었을 때도 거추장스럽지 않은 크기였다. 한도경은 비례를 보고 한마디 보탰다. "목이 등머리보다 확실히 길어야 등이라는 게 읽혀. 그런데 두 배 가까이 되면 가늘어 보여." 목 100 mm, 등머리 60 mm(약 5 : 3)는 그 사이였다. 서윤은 2장의 등머리 72 mm를 60 mm로 줄였다. 무게 표의 등머리 16 g도 이 길이로 잡은 값이다.
핵심 정리
- 비례는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의 크기 관계다. 비율은 마법의 수가 아니라 시안을 비교하고 기록하는 도구다. 황금비가 아름다움을 보장한다는 근거는 약하다.
- 시각적 무게는 크기, 바탕과의 대비, 위치로 정해진다. 실제 무게중심과 어긋날 수 있으므로, 실제로 무거운 부분을 시각적으로도 무겁게 두면 형태가 행동을 정직하게 알려 준다.
- 전체 무게중심은 부품 무게중심의 가중 평균(x_G = Σmᵢxᵢ / Σmᵢ)이다. 무게뿐 아니라 거리가 영향을 준다. 멀리 뻗은 가벼운 부품이 무게중심을 크게 끌어당긴다.
- 물체는 무게중심에서 내린 수직선이 받침면 안에 있을 때 선다. 넘어짐 각은 tan α = d / h이고, 넘어지는 방향 가운데 가장 작은 값이 그 물건의 넘어짐 각이다.
- 안정을 키우는 방법은 받침을 넓히기, 무게중심 낮추기, 무게를 뻗는 쪽의 반대로 옮기기다. 무게 목표가 있으면 무거운 부품의 자리가 가장 큰 손잡이다.
- 디테일에는 위계가 있다. 큰 형태 → 중간 → 작은 디테일. 흐리게 보면 작은 것부터 질서 있게 사라지고 큰 형태가 남아야 한다. 디테일이 모두 같은 크기·대비이면 위계가 무너진다.
확인 퀴즈
1. 받침 가운데(x = 0)에 몸통 60 g, x = 80 mm에 등머리 20 g이 있다(다른 부품은 무시). 전체 무게중심의 가로 위치는?
2. 무게중심의 높이가 30 mm이고, 무게중심에서 받침 끝까지의 가로 거리가 10 mm인 물건이 있다. 넘어짐 각에 가장 가까운 것은?
3. 무게를 늘리지 않고 받침 겸용 독서등의 넘어짐 각을 키우는 방법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4. 시제품을 흐리게 찍은 사진에서 몸 전체에 고르게 퍼진 같은 크기의 홈과 버튼이 한꺼번에 얼룩이 되어, 덩어리의 윤곽까지 탁해 보였다. 이 진단에 맞는 수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