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스케치와 도면
머릿속의 독서등은 언제나 완벽하다. 어느 쪽에서 보아도 비례가 맞고, 크기는 알맞고, 부품은 저절로 맞물린다. 그 독서등을 종이에 옮기는 순간 문제가 드러난다. 옆에서 본 모습만 그렸더니 위에서 본 모습이 없고, 멋지게 그린 투시 스케치에서는 길이를 잴 수 없고, 화면에서 확대해 그린 등머리는 실제로는 손바닥보다 컸다. 이 장은 하나의 형태를 여러 방식으로 옮긴다. 생각을 넓히는 썸네일, 형태를 확인하는 투시 스케치와 단면선, 공장이 읽는 3면도와 치수, 그리고 손에 쥐어 보는 실물 크기 모형이다.
- 썸네일 스케치로 방향을 넓게 펼친 뒤 좁히는 이유를 안다.
- 투시 스케치에서 단면선이 입체를 어떻게 읽히게 하는지 보고, 선의 굵기로 위계를 세운다.
- 같은 3D 형태에서 정투상 3면도(정면도·평면도·측면도)를 얻고, 제1각법과 제3각법의 배치 차이를 설명한다.
- 등각 투상과 투시의 차이를 알고, 제작용 그림에 평행 투상을 쓰는 이유를 말한다.
- 치수를 기준면에서 재는 이유를 공차의 누적으로 설명한다.
- 실물 크기 모형으로 화면이 숨기는 크기를 확인한다.
썸네일: 많이 그리고 빨리 버린다
제품 스케치는 그림 실력을 보여 주는 일이 아니라 생각하는 도구다. 처음 단계에서는 손바닥보다 작은 그림을 빠르게 많이 그린다. 이것을 썸네일 스케치(Thumbnail sketch)라고 한다. 한 장에 1~2분, 세부는 그리지 않고 큰 덩어리와 구성만 잡는다. 작게 그리면 세부에 매달릴 수가 없어서 서로 다른 생각을 빨리 늘어놓게 된다. 첫 그림 한 장을 오래 다듬으면 그 그림이 정답처럼 느껴져 다른 길을 보지 못한다. 1장에서 본 "넓히기와 좁히기"의 넓히기가 바로 이 단계다.
썸네일을 수십 장 그린 뒤에는 벽에 붙여 놓고 무리를 짓는다. 비슷한 생각끼리 묶으면 몇 개의 방향이 보인다. 아래는 클립형 독서등의 썸네일에서 나올 법한 세 방향이다.
방향을 고르는 기준은 1장의 요구 조건표다. 어디에 집나, 무게는 얼마까지인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썸네일 단계에서 이 기준을 너무 일찍 들이대면 생각이 좁아지고, 너무 늦게 들이대면 고를 수가 없다. 그리는 동안은 판단을 미루고, 다 그린 뒤에 요구 조건표를 옆에 놓고 고른다.
투시 스케치와 단면선
방향을 좁히면 형태를 입체로 확인할 차례다. 제품 스케치는 대부분 투시(Perspective)로 그린다. 가까운 것은 크게, 먼 것은 작게, 평행한 모서리는 한 점(소실점)으로 모이게 그리는 방법으로, 사람이 실제로 물건을 보는 모습에 가깝다. 투시의 원리는 DrawingBook 4장과 5장에, 상자와 원기둥으로 생각하는 법은 7장에 있다. 여기서는 그 방법을 제품에 쓴다.
제품 스케치에는 그림 그리기에 잘 쓰지 않는 선이 하나 더 있다. 단면선(Cross-section line)은 물체를 가상의 평면으로 잘랐을 때 생기는 단면의 테두리를 표면 위에 그린 선이다. 수박에 고무줄을 감은 것처럼 표면을 따라 돈다. 윤곽선만으로는 평평한 면인지 부푼 면인지, 단면이 네모인지 둥근지 알 수 없다. 단면선을 몇 줄 그으면 표면이 어느 쪽으로 휘는지가 한눈에 보인다.
아래 모형은 독서등을 상자와 원기둥으로 단순하게 만든 것이다. 끌어서 돌리고, 단면선을 켜고 끄며, 보는 거리를 바꾼다.
돌려 보는 투시 스케치
단면선은 아무 데나 긋지 않는다. 형태가 바뀌는 곳, 곧 단면의 모양이 달라지는 곳에 긋는다. 등머리처럼 같은 단면이 이어지는 부분은 몇 줄이면 충분하고, 휘어지거나 굵기가 변하는 곳은 촘촘하게 긋는다. 길이 방향으로 한 줄(중심 단면), 그와 직각으로 몇 줄을 그어 표면을 격자처럼 감싸는 것이 기본이다. 원기둥인 목에 그은 고리 모양의 단면선이 타원으로 보이는 것도 확인해 둔다. 원기둥의 단면은 원이지만 비스듬히 보면 타원이다(DrawingBook 6장).
보는 거리도 고른다.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앞쪽이 과장되어 실제보다 커 보이고, 너무 멀면 깊이감이 사라진다. 시뮬레이터의 등머리 앞끝과 뒤끝의 크기 비가 그 정도를 나타낸다. 손에 쥐는 작은 물건은 가까이서 보는 일이 많지만, 스케치에서 그 거리를 그대로 쓰면 물건이 실제보다 커 보이는 왜곡이 생긴다.
선의 위계: 굵기로 읽히게 한다
같은 스케치도 선의 굵기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읽히는 속도가 다르다. 모든 선을 같은 굵기로 그리면 윤곽, 부품의 경계, 모서리, 단면선이 똑같은 무게로 눈에 들어와서 무엇이 물체의 바깥이고 무엇이 안쪽 정보인지 가려내기 어렵다. 제품 스케치는 보통 다음 순서로 선의 위계(Line hierarchy)를 세운다.
- 바깥 윤곽선이 가장 굵다. 물체 전체를 배경에서 떼어 낸다. 바닥에 닿는 쪽이나 빛을 등진 쪽 윤곽을 더 굵게 해 무게감을 주기도 한다.
- 부품의 경계(겹치는 부품의 윤곽, 맞닿는 선)는 중간 굵기다.
- 면이 꺾이는 모서리는 그보다 가늘다.
- 단면선과 구조선이 가장 가늘다. 형태를 설명하지만 윤곽과 경쟁하지 않는다.
아래에서 같은 모형을 "같은 굵기"와 "위계"로 바꿔 그려 본다. 바깥 윤곽선의 굵기도 바꿀 수 있다.
같은 굵기, 위계 있는 굵기
선의 위계는 도면에도 있다. 기술 도면의 국제 규격 ISO 128은 선 굵기를 0.13, 0.18, 0.25, 0.35, 0.5, 0.7, 1, 1.4, 2 mm처럼 대략 √2배씩 커지는 단계로 정해 두고, 한 도면에서 굵은 선과 가는 선을 대략 2:1로 나누어 쓰게 한다. 보이는 윤곽(외형선)은 굵게, 치수선과 중심선은 가늘게 그린다. 스케치의 위계와 같은 생각이다. 중요한 것을 굵게, 설명하는 것을 가늘게.
정투상: 세 방향에서 똑바로
투시 스케치는 보기에는 좋지만 길이를 잴 수 없다. 같은 72 mm 모서리도 가까우면 길게, 멀면 짧게 그려지고, 비스듬히 놓이면 더 짧아진다. 공장에서 금형을 깎으려면 모든 길이를 그대로 읽을 수 있는 그림이 필요하다. 그래서 도면은 물체를 정면, 위, 옆에서 똑바로 본 모습을 따로 그린다. 시선이 모두 평행하고 그림을 그리는 면(투상면)에 수직인 투상, 곧 정투상(Orthographic projection)이다. 정투상에서는 투상면과 나란한 모서리가 실제 길이 그대로 그려진다.
정면에서 본 그림을 정면도(Front view), 위에서 본 그림을 평면도(Top view), 옆에서 본 그림을 측면도(Side view)라고 한다. 정면도로는 물체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방향을 고른다. 독서등이라면 목과 등머리의 각도가 보이는 옆모습이 정면도가 된다. 물체의 "앞"이 아니라 "가장 많은 것을 말하는 방향"이 정면이다.
세 그림을 종이 위에 어떻게 놓을지에는 두 가지 약속이 있다. 물체를 투명한 유리 상자 안에 넣고, 상자의 벽에 비친 모습을 그린 뒤 상자를 펼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 제3각법(Third-angle projection): 보는 사람과 물체 사이에 투상면이 있다. 유리창 너머로 물체를 보고 유리에 비친 모습을 그리는 셈이다. 상자를 펼치면 위에서 본 평면도는 정면도의 위에, 오른쪽에서 본 우측면도는 정면도의 오른쪽에 온다. 본 쪽에 그 그림이 놓이니 직관적이다.
- 제1각법(First-angle projection): 물체가 보는 사람과 투상면 사이에 있다. 물체 너머의 벽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셈이다. 상자를 펼치면 평면도는 정면도의 아래에, 우측면도는 정면도의 왼쪽에 온다.
아래에서 같은 독서등 모형을 유리 상자에 넣고 두 방법으로 펼쳐 본다. 벽에 그려진 세 그림은 모두 같은 3D 모형에서 계산한 것이다.
유리 상자 펼치기: 제3각법과 제1각법
두 방법의 그림 자체는 같다. 다른 것은 자리뿐이다. 그래서 도면에는 어느 방법으로 그렸는지 반드시 밝힌다. 표제란(도면 오른쪽 아래의 정보 칸)에 투상법을 적거나, ISO 5456-2가 정한 원뿔대 모양의 투상법 기호를 넣는다. 이 표시가 없으면 공장은 오른쪽에 놓인 그림을 오른쪽에서 본 것인지 왼쪽에서 본 것인지 알 수 없다.
어느 쪽을 쓰는지는 나라와 산업마다 다르다. 국제 규격 ISO 128 계열은 두 방법을 모두 인정한다. 흔히 유럽의 많은 나라는 제1각법을, 미국과 일본은 제3각법을 주로 쓴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의 기계 제도 규격(KS B 0001)은 제3각법을 원칙으로 하고 필요하면 제1각법도 쓸 수 있게 하고 있어, 국내 공장의 도면은 대개 제3각법이다. 다만 해외 공장과 일하거나 외국에서 받은 도면을 읽을 때는 투상법 표시부터 확인해야 한다.
그림 3에서 보듯 3면도의 세 그림은 서로 줄이 맞는다. 정면도와 평면도는 같은 길이(가로)를, 정면도와 측면도는 같은 높이(세로)를 공유한다. 평면도와 측면도는 같은 폭(깊이)을 공유하는데, 이 폭이 한쪽에서는 세로로, 다른 쪽에서는 가로로 놓인다. 그래서 3면도를 손으로 그릴 때는 정면도를 먼저 그리고, 가로선과 세로선을 끌어와 나머지 두 그림의 자리를 잡는다.
등각 투상과 투시
3면도는 길이를 읽기에는 좋지만 한 장에 물체 전체의 모양이 보이지 않는다. 세 그림을 머릿속에서 합쳐야 한다. 그 사이에 있는 것이 등각 투상(Isometric projection)이다. 물체를 비스듬히 돌려 세 축(길이, 높이, 폭)이 화면에서 서로 120°를 이루게 놓고, 시선은 평행하게 보낸다. 투시처럼 한 장에 입체가 보이지만, 평행한 모서리는 끝까지 평행하고 세 축 방향의 길이가 모두 같은 비율로 줄어든다.
아래 그림은 같은 방향에서 본 독서등을 등각 투상(왼쪽)과 투시(오른쪽)로 겹쳐 놓은 것이다. 경계선을 끌어 비교하고, 투시의 보는 거리를 바꿔 본다. 독서등을 감싸는 상자의 모서리를 길게 늘인 선을 함께 그렸다.
평행하게 남는 선, 모이는 선
등각 투상은 길이를 잴 수 있으면서 입체가 보이기 때문에 조립 설명서, 부품 분해도, 설비 배치도에 널리 쓰인다. 대신 사람의 눈에는 조금 어색하다. 실제로는 먼 쪽이 작아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상자가 뒤로 갈수록 오히려 커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산업디자이너는 보통 두 가지를 나누어 쓴다. 형태를 판단하고 남에게 보여 줄 때는 투시, 치수를 전하고 만드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정투상과 등각이다.
치수와 기준면
3면도에 길이를 적는 것을 치수 기입(Dimensioning)이라고 한다. 치수는 아무 데서나 재지 않는다. 먼저 기준면(Datum), 곧 모든 치수를 재기 시작하는 면이나 선, 점을 정한다. 조립할 때 다른 부품과 맞닿는 면, 금형에서 기준이 되는 면, 가공할 때 기계에 대는 면이 흔히 기준면이 된다. 기준면은 도면에 문자(A, B, C)로 이름을 붙여 표시한다.
왜 기준면이 중요할까. 공장에서 만든 물건의 치수는 도면과 정확히 같을 수 없다. 플라스틱은 식으면서 줄어들고, 금형도 기계도 조금씩 어긋난다. 그래서 치수마다 얼마까지 어긋나도 되는지, 곧 공차(Tolerance)를 적는다. "13 ± 0.1"은 12.9~13.1 mm 사이면 합격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치수를 이어서 잴 때다. 구멍 다섯 개의 간격을 앞 구멍에서 다음 구멍으로 이어 적으면(연쇄 치수), 간격 하나하나는 공차 안이라도 어긋남이 쌓여 마지막 구멍은 크게 벗어날 수 있다. 모든 구멍을 같은 기준면에서 재면(기준면 치수, 병렬 치수) 각 구멍의 어긋남은 자기 공차를 넘지 않는다.
아래는 등머리 아랫면의 판(72 × 36 mm)에 확산판을 끼울 구멍 다섯 개를 뚫는 예다. 확산판에는 핀 다섯 개가 정확한 자리에 있고, 구멍은 핀보다 0.3 mm 여유가 있다. 치수 기입 방식과 공차를 바꾸고 "하나 더 만들기"를 눌러 본다.
이어서 잴까, 기준면에서 잴까
연쇄 치수에서는 다섯 치수의 어긋남이 더해진다. 최악의 경우 마지막 구멍은 공차의 다섯 배까지 벗어난다. 기준면 치수에서는 각 구멍이 기준면에서 바로 재어지므로 최악이라도 공차 하나만큼이다. 그래서 서로 맞물려야 하는 자리(핀과 구멍, 스냅과 홈, 버튼과 구멍)는 같은 기준면에서 재고, 맞물리는 상대 부품도 같은 기준면을 쓰게 한다. 태오의 원칙 "도면에 없는 것은 공장에서 생기지 않는다"는 여기서도 통한다. 어디서 재는지 도면에 적지 않으면, 공장은 편한 곳에서 잰다.
모든 치수에 공차를 일일이 적지는 않는다. 도면의 표제란에 "따로 적지 않은 치수의 공차"를 한 번 적어 두고(일반 공차), 맞물림처럼 중요한 치수에만 따로 공차를 적는다. 어느 치수가 중요한지 고르는 것이 디자이너의 일이다. 형태의 인상을 정하는 치수(모서리 반경, 등머리의 두께)와 맞물림을 정하는 치수(핀과 구멍)는 중요하고, 아무도 재지 않을 안쪽 벽의 위치는 덜 중요하다.
실물 크기 모형
화면은 크기를 숨긴다. 태블릿에서 등머리를 그릴 때 손가락으로 두 배 확대해 그렸다면, 그 그림의 등머리는 실제보다 두 배 크게 느껴진다. 종이에 그려도 마찬가지다. 그림은 축척을 쉽게 잊게 한다. 그래서 제품 디자이너는 일찍부터 실물 크기 모형(Full-size mock-up)을 만든다. 우드락(발포 폴리스티렌 판), 두꺼운 종이, 점토, 나무토막처럼 빨리 자를 수 있는 재료로 실제 크기의 덩어리를 만들어 손에 쥐어 보고, 책에 대 보고, 침대 머리맡에 놓아 본다.
아래는 화면 위에 독서등을 실제 크기로 그려 보는 도구다. 화면의 픽셀 크기는 기기마다 달라서, 먼저 손에 있는 신용카드나 교통카드를 화면의 카드 그림에 대고 크기가 같아지도록 맞춘다. 이 카드들은 대부분 85.60 × 53.98 mm(ISO/IEC 7810의 ID-1 크기)다.
화면 위의 실물 크기
화면에서 실제 크기를 맞춰 보는 것은 첫걸음일 뿐이다. 실물 크기 모형의 진짜 쓸모는 손과 몸과 주변 물건과 함께 보는 데 있다. 등머리가 책 위로 얼마나 나와야 페이지 전체가 밝은지, 침대 머리판에 집었을 때 목이 얼굴에 너무 가깝지 않은지, 손가락으로 클립을 쥘 자리가 있는지. 이런 질문은 그림이 아니라 모형이 답한다.
모형은 확인하려는 질문에 맞게 고른다. 크기와 비례를 보려면 우드락 덩어리로 충분하다. 무게감을 보려면 속에 동전이나 볼트를 넣어 목표 무게(이 케이스라면 80 g)에 맞춘다. 움직임을 보려면 철사로 목을 만든다. 모형이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 한 시간 안에 만들고, 확인하고, 버린다.
서윤의 여름 제품 노트
썸네일 서른 장, 방향 셋, 우드락 하나
요구 조건표를 만든 다음 주, 서윤은 태오의 스튜디오 큰 책상에서 A4 종이 세 장에 칸을 열두 개씩 그었다. 태오가 건넨 것은 가는 펜 하나였다. "지우개는 오늘 없어요." 한 칸에 1~2분씩, 서른 장이 넘는 썸네일이 쌓였다. 처음 열 장은 모두 지난주의 예쁜 옆모습을 조금씩 바꾼 것이었다. 열한 번째쯤부터 다른 생각이 나왔다. 책등에 거는 고리, 집게와 받침을 겸한 납작한 몸통, 목이 없이 등머리가 클립에 바로 붙은 것.
둘은 썸네일을 벽에 붙이고 무리를 지었다. 세 방향이 남았다. 표지나 머리판을 무는 집게형, 책등이나 머리판에 거는 고리형, 집을 수도 세워 둘 수도 있는 받침 겸용. 요구 조건표를 옆에 놓고 따져 보았다. 고리형은 책 표지(약 1 mm)와 머리판(약 22 mm)을 한 고리로 걸 수 없었다. 받침 겸용은 매력적이었지만 세웠을 때 넘어지지 않게 하려면 바닥이 넓고 무거워져 80 g 안에 들기 어려워 보였다. 서윤의 선택은 집게형이었다. 다만 받침 겸용의 생각은 버리지 않고 "클립을 책상에 세울 수 있으면 좋겠다"를 희망 조건으로 적어 두었다.
집게형을 상자와 원기둥으로 나누어 투시 스케치를 그리고, 등머리와 몸통에 단면선을 그었다. 단면선을 긋자 서윤이 처음 그린 등머리가 생각보다 얇은 판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LED와 확산판이 들어가려면 두께가 10 mm는 넘어야 했다. 태오는 서윤에게 첫 3면도를 그리게 했다. 정면도로는 목과 등머리가 보이는 옆모습을 골랐고, 투상법은 국내 공장에 맞춰 제3각법으로 정해 표제란에 적었다. 평면도를 그리고서야 서윤은 등머리 폭을 한 번도 정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주 금요일, 서윤은 우드락과 옷걸이 철사로 실물 크기 모형을 만들었다. 화면에서 그린 등머리를 그대로 옮겼더니 길이가 100 mm를 넘어 책 위에서 페이지를 거의 다 가렸다. 태블릿에서 확대해 그리면서 크기 감각을 잃었던 것이다. 몇 번 잘라 고친 끝에 등머리는 72 mm로 줄었다. 토요일, 도경이 모형을 침대 머리판에 집고 누워서 책을 들어 보았다. "목이 조금만 더 길면 좋겠어. 등이 책 위로 넘어와야 위쪽 줄까지 밝지." 철사를 늘려 보며 목 길이를 정했다. 모형을 주방 저울에 올리니 우드락이라 고작 몇 그램이었다. 동전을 넣어 80 g을 맞추자 머리판에 집은 클립이 조금 처졌다.
핵심 정리
- 썸네일 스케치는 작게, 빠르게, 많이 그려 방향을 넓힌다. 판단은 다 그린 뒤 요구 조건표를 옆에 놓고 한다.
- 투시 스케치는 형태를 판단하고 보여 주는 데 쓴다. 단면선은 표면을 따라 도는 가상 단면의 테두리로, 윤곽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두께와 휨을 읽히게 한다.
- 선의 위계: 바깥 윤곽이 가장 굵고, 부품 경계, 모서리, 단면선 순으로 가늘어진다. 도면의 선 굵기(ISO 128)도 같은 생각이다.
- 정투상 3면도는 투상면과 나란한 길이를 그대로 보여 준다. 제3각법은 본 쪽에(평면도는 위, 우측면도는 오른쪽), 제1각법은 반대편에 놓는다. 그림 자체는 같고 자리만 다르므로 투상법을 반드시 표시한다. 한국의 KS 기계 제도는 제3각법이 원칙이다.
- 등각 투상은 평행선이 평행하게 남고 세 축의 길이가 같은 비율(약 0.816)로 줄어드는 평행 투상이다. 아주 먼 곳에서 본 투시와 같다.
- 치수는 기준면에서 잰다. 연쇄 치수는 어긋남이 쌓이고, 기준면 치수는 각 치수의 공차 안에 머문다.
- 화면과 그림은 크기를 숨긴다. 실물 크기 모형으로 손과 몸과 주변 물건에 대 보고 확인한다.
확인 퀴즈
1. 한국의 공장에 보낼 3면도를 제3각법으로 그린다. 위에서 본 평면도와 오른쪽에서 본 우측면도는 정면도를 기준으로 어디에 놓는가?
2. 등각 투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 구멍 다섯 개의 간격을 앞 구멍에서 다음 구멍으로 이어 적고(연쇄 치수), 치수마다 공차를 ±0.1 mm로 주었다. 첫 구멍은 기준면에서 ±0.1 mm로 잰다. 최악의 경우 다섯 번째 구멍은 기준면에서 계획한 자리보다 얼마까지 어긋날 수 있는가?
4. 제품 스케치에서 선의 위계를 세우는 방법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