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공학과 인체 치수
서윤이 3D 프린터로 뽑은 첫 클립은 서윤의 손에 꼭 맞았다. 엄지와 검지로 집으면 딸깍 벌어지고, 놓으면 책 표지를 단단히 문다. 그런데 도경은 두 손가락에 힘을 주다가 "이건 젊은 손을 위한 물건이네" 하고 내려놓았고, 태오는 굵은 손가락이 짧은 손잡이 위에 다 올라가지 않아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 같은 물건이 세 사람에게 세 가지 물건이었다. 이 장은 "누구의 손에 맞출 것인가"라는 질문을 숫자로 바꾸는 법을 다룬다. 사람의 몸은 하나의 값이 아니라 분포이고, 그 분포 위 어디에 선을 긋느냐가 디자인이다.
- 인체 치수를 정규분포와 퍼센타일로 읽고, 5~95% 설계 범위가 무엇을 뜻하는지 계산한다.
- 틈과 여유는 큰 쪽(95퍼센타일), 도달과 힘은 작은 쪽(5퍼센타일)에 맞춘다는 방향 규칙을 안다.
- 치수를 여러 개 겹치면 "평균인 사람"이 거의 사라진다는 것(Daniels 1952)을 직접 확인한다.
- 고정 치수와 조절 범위를 비교하고, 필요한 조절 폭을 분포에서 구한다.
- 파워 그립과 정밀 그립을 구분하고, 손잡이 지름과 감싸기의 관계를 본다.
- 클립의 지렛대에서 여는 힘과 손가락 벌림이 서로 반대로 움직이는 거래를 계산한다.
몸을 재는 일
인간공학(Ergonomics, Human factors)은 사람의 몸과 마음의 특성에 맞게 물건과 일과 환경을 설계하는 분야다. 그 바탕에 있는 자료가 인체 측정(Anthropometry), 곧 사람 몸의 치수를 재고 정리하는 일이다. 키, 앉은키, 오금 높이(앉았을 때 바닥에서 무릎 뒤 오목한 곳까지)처럼 몸 전체의 치수도 있고, 손 길이, 손 너비, 손가락 굵기처럼 작은 치수도 있다.
인체 치수에는 두 종류가 있다. 가만히 선 자세나 앉은 자세에서 뼈의 기준점 사이를 재는 정적 치수(Structural dimension)와, 팔을 뻗거나 손가락을 벌리는 동작을 하며 재는 동적 치수(Functional dimension)다. 클립을 여는 데 필요한 것은 동적 치수 쪽이다. 엄지와 검지를 얼마나 벌릴 수 있는지, 그 상태에서 얼마나 힘을 줄 수 있는지가 문제다. 어디를 어떤 자세로 재는지는 국제 표준 ISO 7250-1(기술 설계를 위한 기본 인체 측정 항목)이 정의해 두어서, 나라마다 잰 자료를 서로 비교할 수 있다.
한국인의 치수는 한국인 인체치수조사(Size Korea)가 기본 자료다. 국가기술표준원(과 그 전신 기관)이 1979년부터 여러 차례 전국의 남녀를 연령대별로 재어 온 조사로, 손과 발을 포함한 수백 개 항목의 측정값과 퍼센타일 표를 공개한다. 실제 제품을 설계할 때는 이런 원자료에서 사용자 집단(나이, 성별, 지역)에 맞는 항목을 찾아 쓴다. 이 장의 시뮬레이터에 나오는 손 치수와 힘은 모두 원리를 보여 주려고 정한 예시값이며, Size Korea나 다른 조사의 실제 값이 아니다. 숫자의 크기보다 숫자를 다루는 방법을 보는 데 집중한다.
정규분포와 퍼센타일
수백 명의 손 길이를 재어 막대그래프로 그리면, 가운데가 높고 양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종 모양이 된다. 많은 인체 치수가 이렇게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에 가깝게 퍼져 있다. 정규분포는 두 숫자로 요약된다. 가운데 위치인 평균(Mean, μ)과, 얼마나 넓게 퍼졌는지를 나타내는 표준편차(Standard deviation, σ)다.
디자이너가 더 자주 쓰는 말은 퍼센타일(Percentile)이다. 5퍼센타일 손 길이는 "100명을 줄 세웠을 때 짧은 쪽에서 다섯 번째 사람의 손 길이", 곧 집단의 5%가 그보다 짧은 값이다. 50퍼센타일은 가운데(정규분포에서는 평균과 같다), 95퍼센타일은 95%가 그보다 짧은 값이다. 정규분포라면 퍼센타일은 평균과 표준편차로 바로 계산할 수 있다.
"5~95퍼센타일에 맞춘다"는 말은 양 끝 5%씩, 모두 10%를 설계 범위 밖에 둔다는 뜻이다. 100%를 맞추는 것은 대개 불가능하거나 터무니없이 비싸다. 분포의 꼬리는 끝없이 이어지고, 극단에 가까워질수록 몇 명을 더 포함하는 데 드는 치수 변화가 커진다. 아래 그래프에서 두 손잡이를 끌어 설계 한계를 옮겨 본다.
설계 한계와 수용 비율
합친 집단은 봉우리가 둘인 넓은 분포가 된다. 이때 퍼센타일은 평균과 표준편차 공식으로 구할 수 없고, 두 분포를 더한 곡선의 넓이에서 직접 찾아야 한다. 실무에서 흔히 쓰는 "여성 5퍼센타일부터 남성 95퍼센타일까지"라는 범위가 합친 집단의 90%보다 조금 넓게(대개 95% 안팎) 덮는 것도 그래서다. 모든 치수가 정규분포를 따르는 것도 아니다. 몸무게처럼 한쪽 꼬리가 긴 치수는 정규분포 공식을 쓰면 퍼센타일이 어긋나므로 원자료의 퍼센타일 표를 직접 읽는다.
어느 쪽 끝에 맞출까
설계 한계를 하나만 정해도 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어느 쪽 끝에 맞출지는 치수의 성격이 정한다.
| 치수의 성격 | 실패하는 사람 | 맞출 끝 | 예 |
|---|---|---|---|
| 틈·여유(들어가야 한다) | 큰 사람 | 큰 쪽(95퍼센타일 이상) | 문 높이, 손잡이 안쪽 틈, 버튼 누르는 면, 손가락 구멍 |
| 도달·힘(닿아야 한다, 낼 수 있어야 한다) | 작은 사람, 약한 사람 | 작은 쪽(5퍼센타일 이하) | 선반 높이, 스위치까지의 거리, 클립 손가락 벌림, 여는 힘 |
| 둘 다(너무 커도 작아도 곤란) | 양쪽 | 조절 범위 | 의자 높이, 운전석, 헤드폰 머리띠 |
클립 하나에도 세 줄이 다 있다. 손가락이 올라가는 면의 폭은 굵은 손가락이 들어가야 하니 큰 쪽에, 손잡이를 집을 때 필요한 손가락 벌림과 여는 힘은 작고 약한 손이 해낼 수 있어야 하니 작은 쪽에 맞춘다. 서윤의 첫 시제품은 둘 다 서윤의 손에만 맞추었다. 태오는 첫째 줄에서, 도경은 둘째 줄에서 실패했다.
평균의 사람은 없다
"평균 체형에 맞춘 조종석"이라면 대부분에게 맞을 것 같다. 1950년대 초 미국 공군의 연구원 길버트 대니얼스(Gilbert S. Daniels)는 이 생각을 확인했다. 조종사 4,063명의 몸 치수 가운데 조종석 설계에 중요한 10개(키, 가슴둘레, 팔 길이 등)를 골라, 각 치수에서 평균 근처의 가운데 30%에 드는 사람을 "평균"이라고 넉넉하게 정의했다. 그리고 10개 치수 모두에서 평균인 조종사가 몇 명인지 세었다. 답은 0명이었다. 세 치수만 겹쳐도 평균인 사람은 몇 퍼센트에 불과했다(Daniels, 「The "Average Man"?」, 미 공군 Wright Air Development Center 기술 보고서, 1952). 이 결과는 조종석을 평균 한 사람에게 맞추는 대신 조절할 수 있게 만드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는 계기로 자주 인용된다.
이유는 확률의 곱셈이다. 한 치수에서 가운데 30%에 들 확률이 0.3이라면, 서로 관계없는 두 치수에서 모두 들 확률은 0.3 × 0.3 = 0.09, 열 치수면 0.310, 약 17만분의 1이다. 실제 치수들은 서로 관계가 있어서(키가 큰 사람은 팔도 긴 편이다) 이보다는 덜 줄어들지만, 관계가 완벽하지 않은 한 겹칠수록 빠르게 준다. 아래 가상의 집단 4,000명으로 확인해 본다.
모든 치수에서 평균인 사람 찾기
②와 ③이 이 절의 핵심이다. "평균인 사람"은 통계가 만든 그림자다. 그리고 "5~95%에 맞췄다"는 말도 치수 하나에 대한 말이다. 클립 하나만 해도 손가락 벌림, 손가락 굵기, 집는 힘이 함께 맞아야 한다. 치수마다 90%를 맞추면 셋을 모두 만족하는 사람은 90%보다 적다. 그래서 중요한 치수가 여러 개인 제품은 치수마다 범위를 조금 더 넓게 잡거나, 가상의 사용자 몇 명(작은 손에 약한 힘, 큰 손에 굵은 손가락 같은 조합)을 정해 모든 치수를 함께 시험한다.
고정할까, 조절할까
너무 커도 곤란하고 너무 작아도 곤란한 치수가 있다. 의자의 좌판 높이가 대표적이다. 좌판이 오금 높이보다 높으면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허벅지 뒤가 눌리고, 너무 낮으면 무릎이 솟아 엉덩이에 무게가 몰린다. 한 사람에게 편한 좌판 높이는 오금 높이 근처의 좁은 띠다. 고정 높이 의자 하나는 그 띠가 겹치는 사람만 맞는다.
조절 범위(Adjustable range)를 주면 맞는 사람이 늘어난다. 대신 조절 장치는 부품과 값과 고장 날 곳을 늘린다. 그래서 "얼마나 조절하면 되는가"를 분포에서 계산한다. 아래 축의 두 손잡이를 끌어 좌판 높이의 조절 범위를 정한다.
필요한 조절 폭
조절 범위의 아래 끝은 오금 높이가 작은 사람이, 위 끝은 큰 사람이 정한다. 그리고 사람마다 견딜 수 있는 띠가 있어서, 필요한 조절 폭은 분포의 폭(5~95퍼센타일 사이)에서 그 띠를 뺀 만큼이다. 이 생각은 의자 말고도 어디에나 쓰인다. 서윤의 독서등에서는 목의 관절이 조절 장치다. 책을 펼친 각도와 눈의 위치가 사람마다, 자세마다 다르니 빛의 방향을 하나로 고정할 수 없다. 반대로 클립의 벌림은 조절 장치를 달기엔 너무 작은 부품이라, 한 가지 치수로 작은 손부터 큰 손까지 맞추어야 한다. 무엇을 조절하게 하고 무엇을 고정할지도 디자인이다.
손으로 잡는 두 가지 방법
영국의 해부학자 존 네이피어(John Napier)는 손으로 물건을 잡는 동작을 크게 둘로 나누었다(Napier, 「The prehensile movements of the human hand」, Journal of Bone and Joint Surgery, 1956).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물건을 감싸 쥐는 파워 그립(Power grip)과, 엄지와 다른 손가락 끝 사이에 물건을 끼워 다루는 정밀 그립(Precision grip)이다. 망치 자루를 쥐는 손과 바늘에 실을 꿰는 손의 차이다. 같은 물건도 쓰는 순간에 따라 잡는 방법이 바뀐다.
파워 그립의 손잡이에서 가장 중요한 치수는 굵기다. 너무 가늘면 손가락이 남아 손바닥을 파고들고 힘이 한곳에 몰린다. 너무 굵으면 엄지와 손가락이 서로 닿지 않아 감싸지 못하고 힘이 빠진다. 여러 연구에서 쥐는 힘은 손잡이가 너무 가늘거나 굵으면 줄고 그 중간 어딘가에서 가장 크다고 보고된다. 그 "중간"이 손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문제다. 아래에서 손잡이 단면의 지름을 바꾸고 손 크기를 골라 본다.
손잡이 지름과 감싸기
독서등의 몸통은 파워 그립으로 쥐는 물건이 아니다. 하지만 클립을 열 때의 정밀 그립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 손가락 끝 두 곳 사이의 거리가 손에 비해 너무 멀면 힘이 빠지고, 누르는 면이 손가락에 비해 너무 좁으면 힘이 한 점에 몰려 아프다. 정밀 그립은 파워 그립보다 낼 수 있는 힘이 훨씬 작으니, 그 작은 힘 안에서 일이 끝나도록 지렛대를 설계해야 한다.
클립의 지렛대
빨래집게와 독서등의 클립은 같은 구조다. 가운데 축(피벗)을 중심으로 두 팔이 돌고, 축에 감긴 토션 스프링(Torsion spring)이 두 팔을 닫는 쪽으로 민다. 축 앞쪽이 물체를 무는 입(집게 턱), 뒤쪽이 손가락으로 누르는 손잡이다. 손잡이를 모으면 입이 벌어진다.
필요한 힘은 지렛대의 원리 그대로다. 스프링이 피벗에 거는 비트는 힘, 곧 토크(Torque)를 손잡이 길이로 나눈 값이다. 토션 스프링의 토크는 미리 감아 둔 만큼(초기 토크)에 벌어진 각도에 비례해 더해진다.
손잡이를 길게 하면 힘은 줄어든다. 그런데 공짜가 아니다. 손잡이가 길수록 같은 각도를 벌리는 데 손잡이 끝이 더 많이 움직여야 하고, 그만큼 처음에 손잡이 사이가 더 벌어져 있어야 한다. 손가락을 더 크게 벌려 집어야 한다는 뜻이다. 힘은 \(1/L_h\)로 줄고 벌림은 \(L_h\)에 비례해 는다. 아래 클립의 위쪽 손잡이를 아래로 끌어 직접 열어 본다.
클립을 열어 보기
서윤의 첫 시제품은 왜 손잡이가 짧고 스프링이 강했을까. 손잡이가 짧으면 클립이 작고 날렵해 보인다. 스프링이 강하면 책에 단단히 물려 등이 흔들리지 않는다. 둘 다 좋은 이유였다. 다만 그 두 선택이 겹치면서 여는 힘이 서윤의 손에만 맞는 크기로 올라갔다. 태오의 경우는 더 나빴다. 굵은 손가락이 16 mm짜리 손잡이에 다 올라가지 않아 피벗 가까운 곳을 누르게 되었고, 그만큼 실제 지렛대가 짧아져 힘이 더 들었다.
힘의 한계와 설계의 창
이제 두 조건을 함께 놓는다. 여는 힘은 약한 손이 낼 수 있어야 하고, 집기 시작할 때의 벌림은 작은 손이 닿아야 한다. 힘 조건은 손잡이를 길게 하라고, 벌림 조건은 짧게 하라고 한다. 두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손잡이 길이의 범위가 설계의 창이다. 창이 있으면 그 안에서 고르고, 창이 닫혀 있으면 스프링이나 입 벌림 같은 다른 조건을 바꿔야 한다.
힘의 한계는 "그 사람이 낼 수 있는 최대 힘"이 아니다. 최대 힘은 이를 악물고 한 번 내는 힘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졸린 손으로 여는 물건은 그보다 한참 아래에서 편해야 한다. 실무에서는 자주 쓰는 조작의 힘을 약한 사용자의 최대 힘의 몇 분의 일로 잡는 경험칙을 쓰는데, 그 비율은 문헌과 회사마다 다르다. 이 장의 모형은 최대 힘의 3분의 1로 두었다. 또 손가락 힘은 나이에 따라 달라서, 중년 이후 나이가 들수록 쥐는 힘이 줄어드는 경향이 여러 조사에서 보고된다. 도경 같은 사용자를 처음부터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유다.
손잡이 길이의 창
"편하게 열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을 보면 앞 절의 교훈이 다시 나온다. 벌림 조건과 힘 조건을 각각 95% 넘게 만족해도, 둘을 함께 만족하는 비율은 그 곱만큼 낮다. 그리고 창 한가운데가 늘 정답은 아니다. 손잡이를 창의 왼쪽 끝으로 잡으면 클립은 작아지지만 힘이 한계에 바짝 붙고, 오른쪽 끝으로 잡으면 쉽게 열리지만 손잡이가 길어져 등의 옆모습이 달라진다. 4장에서 정한 비례와도 맞아야 한다. 창은 선택지를 좁혀 줄 뿐, 그 안에서 고르는 것은 여전히 디자이너다.
서윤의 여름 제품 노트
내 손에 맞춘 클립은 내 손에만 맞았다
8월 첫 주, 서윤은 3D 프린터로 뽑은 등머리와 몸통에 철물점에서 산 토션 스프링을 끼워 첫 작동 시제품을 만들었다. 클립 손잡이는 피벗에서 16 mm, 날렵해 보이도록 짧게 했고, 스프링은 책에 단단히 물리도록 가장 센 것을 골랐다. 서윤의 손에는 꼭 맞았다.
책방에서 도경과 태오에게 건네자 반응이 갈렸다. 도경은 엄지와 검지로 두 번 시도하다 손을 털었다. "열리긴 하는데 매일 밤 이걸 하라면 못 하겠어." 태오는 손가락이 손잡이 끝을 넘어 피벗 쪽까지 덮였고, 미끄러지면서 손톱으로 손잡이를 긁었다. 태오는 주방 저울을 가져와 여는 힘을 쟀다. 침대 머리판 두께인 22 mm까지 벌리는 데 저울 눈금이 3 kg 가까이, 약 29 N이었다. 서윤 혼자 시험할 때는 한 번도 문제가 되지 않던 숫자였다.
세 사람은 그날 저녁 서로의 손을 쟀다. 서윤의 집게 벌림과 검지 너비는 가운데쯤이었고, 도경은 집는 힘이, 태오는 손가락 너비가 표의 끝에 가까웠다. 태오가 말했다. "벌림과 힘은 작은 손에, 손가락이 닿는 면은 큰 손에. 셋 중 하나라도 평균에 맞추면 누군가는 못 연다." 서윤은 예시 분포로 손잡이 길이의 창을 그려 보았다. 가장 센 스프링으로는 작은 손의 창이 아예 열리지 않았다. 힘을 맞추려면 손잡이가 46 mm를 넘어야 하는데, 그러면 손가락 벌림이 작은 손의 한계를 넘었다. 스프링을 한 단계 낮추자 손잡이 26~42 mm 사이에 창이 열렸고, 얇은 표지를 무는 힘은 여전히 4 N을 넘었다.
서윤의 선택은 손잡이를 창의 왼쪽 끝에 가까운 28 mm로 늘리고 스프링을 중간 세기로 바꾸는 것이었다. 창의 오른쪽으로 갈수록 열기는 쉽지만 클립이 길어진다. 손잡이가 길어져 옆모습이 조금 둔해진 것은 손잡이 끝을 얇게 깎아 달래기로 했다. 다시 뽑은 클립을 도경은 한 번에 열었고, 누르는 면을 넓힌 덕에 태오의 손가락도 미끄러지지 않았다. 저울 눈금은 1 kg이 조금 안 되었다.
핵심 정리
- 인체 치수는 한 사람의 값이 아니라 분포다. 정규분포에 가까운 치수의 퍼센타일은 \(P_k = \mu + z_k\sigma\)로 구하고, 5·95퍼센타일은 평균에서 1.645σ 떨어져 있다.
- 5~95퍼센타일 설계는 치수 하나에서 90%를 맞춘다는 뜻이다. 꼬리로 갈수록 몇 명을 더 맞추는 데 드는 치수 변화가 커진다. 봉우리가 둘인 합친 집단은 원자료에서 퍼센타일을 직접 구한다.
- 틈과 여유는 큰 쪽(95퍼센타일), 도달과 힘은 작은 쪽(5퍼센타일)에 맞추고, 양쪽이 다 문제면 조절 범위를 준다. 필요한 조절 폭은 분포의 폭에서 사람마다 견디는 띠를 뺀 만큼이다.
- 여러 치수를 겹치면 "평균인 사람"은 거의 사라진다(Daniels 1952: 조종사 4,063명, 10개 치수에서 0명). 치수마다 90%를 맞춰도 모두 맞는 사람은 90%보다 적다.
- 잡기는 손 전체로 감싸는 파워 그립과 손끝으로 끼우는 정밀 그립으로 나뉜다(Napier 1956). 정밀 그립의 힘은 훨씬 작다. 손잡이 굵기의 알맞은 범위는 손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 클립의 여는 힘은 \(F = (T_0 + k\theta)/L_h\)다. 손잡이를 늘리면 힘은 줄지만 손가락 벌림이 는다. 힘과 벌림의 한계를 함께 만족하는 범위가 설계의 창이다.
- 힘의 한계는 최대 힘이 아니라 자주 편하게 낼 수 있는 힘으로 잡는다. 표의 수치는 출발점이고, 다양한 손과 상황으로 시제품을 직접 시험한다.
확인 퀴즈
1. 어떤 집단의 집게 벌림이 평균 62 mm, 표준편차 9 mm인 정규분포를 따른다고 하자. 5퍼센타일 값에 가장 가까운 것은?
2. 클립에서 손가락이 올라가는 누르는 면의 폭과, 집기 시작할 때 필요한 손가락 벌림을 정하려 한다. 어느 퍼센타일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알맞은가?
3. 대니얼스(1952)의 조종사 연구가 보여 준 것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4. 토션 스프링은 그대로 두고 클립의 손잡이 길이(피벗~누르는 점)를 두 배로 늘렸다. 이 장의 지렛대 모형으로 볼 때 무엇이 달라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