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재료·마감
화면에서 고른 초록을 플라스틱 판에 입혀 가져오면 거의 언제나 "이 색이 아닌데"라는 말이 나온다. 숫자는 맞췄는데 판은 더 옅고 뿌옇다. 같은 판을 유광으로 뽑으면 이번에는 너무 짙고 번들거린다. 창가에서는 맞던 색이 침대 머리맡 전구 아래에서는 올리브색이 된다. 물건의 색은 안료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다. 표면이 빛을 어떻게 되돌려 보내는지, 그 표면에 무엇을 입혔는지, 어떤 빛 아래에서 보는지가 함께 정한다. 이 장은 그것을 하나씩 떼어 조작해 본다.
- CMF(색·재료·마감)가 왜 한 묶음으로 다뤄지는지, 같은 목표 색이 재료와 표면에 따라 어떻게 달라 보이는지 설명한다.
- 정반사와 확산 반사, 표면 거칠기와 광택도(60° 광택도계)의 관계를 안다.
- 무광 표면이 같은 안료의 유광보다 옅고 뿌옇게 보이는 이유를 계산하고, 무광으로는 닿을 수 없는 색이 있다는 것을 안다.
- 금형 텍스처(VDI 3400 등급)와 구배각, 도장·도금·아노다이징·인쇄 같은 마감 공정의 쓰임과 한계를 비교한다.
- 생산 색 일치를 CIELAB과 ΔE2000 허용차로 판정하고, 한도 견본과 여러 조명 아래의 비교(조건등색)가 왜 필요한지 안다.
CMF: 색은 표면 위에 있다
제품 디자인에서 CMF(Color, Material, Finish)는 색, 재료, 마감을 한 묶음으로 정하는 일을 말한다. 셋을 묶는 이유는 서로 떼어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안료라도 PC/ABS에 섞으면 불투명한 색이 되고, 투명한 PC에 섞으면 빛이 비치는 색이 된다. 같은 재료라도 금형 표면을 거울처럼 닦으면 유광, 모래알처럼 부식하면 무광이 된다. 그리고 표면이 바뀌면 색이 바뀌어 보인다.
ColorBook에서는 색을 주로 화면과 종이 위에서 다뤘다. 화면은 스스로 빛을 내고, 종이는 대체로 고르게 빛을 흩뜨린다. 손에 쥐는 물건은 다르다. 곡면이 있고, 곡면마다 빛을 받는 각도가 다르고, 표면은 빛의 일부를 색 없이 그대로 튕겨 낸다. 그래서 물건의 색은 한 점의 값이 아니라 밝은 쪽에서 어두운 쪽까지 이어지는 범위로 보인다.
아래에는 같은 목표 색을 입힌 네 가지 표면이 있다. 무광 플라스틱, 유광 플라스틱, 색을 입힌 알루미늄(아노다이징), 빛이 조금 비치는 반투명 플라스틱이다. 공 위를 끌어 조명의 방향을 바꿔 본다.
같은 색, 네 개의 표면
네 공은 모두 "같은 색"으로 칠했지만 평균 색은 서로 다르고, 무엇보다 밝고 어두운 범위가 다르다. 사람은 이 범위 전체를 보고 "이 물건의 색"을 판단한다. 그래서 CMF 디자이너는 색 견본 한 장으로 결정하지 않고, 실제 재료와 마감으로 만든 견본판(흔히 칩, 플라크라고 부른다)을 손에 들고 돌려 보며 정한다. 곡면이 있는 견본이 있으면 더 좋다.
광택: 정반사와 확산
빛이 플라스틱 표면에 닿으면 일부는 표면에서 바로 튕겨 나가고, 나머지는 재료 속으로 들어가 안료 알갱이에 부딪히며 흩어지다가 다시 나온다. 표면에서 튕겨 나간 빛은 안료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조명의 색 그대로다. 재료 속을 거쳐 나온 빛은 안료가 일부 파장을 흡수해 물체의 색을 띤다. 앞의 것을 정반사(Specular reflection), 뒤의 것을 확산 반사(Diffuse reflection)라고 한다.
그러니 유광과 무광의 차이는 "색 없는 반사가 얼마나 몰려 있느냐"의 차이다. 표면이 튕겨 내는 빛의 양 자체는 재료의 굴절률로 정해져 둘이 비슷하다(수직으로 들어오는 빛에서 플라스틱은 대략 4~5%). 매끈한 면은 그 빛을 좁은 방향에 몰아 작고 밝은 하이라이트와 주변 풍경의 반영을 만들고, 그 밖의 방향에서는 재료 속의 색만 보인다. 거친 면은 그 빛을 넓게 흩어 표면 전체에 얇은 흰 막을 씌운다.
표면이 얼마나 광택이 있는지는 광택도계(Glossmeter)로 잰다. 정해진 각도로 빛을 비추고 거울 방향의 좁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재서, 기준이 되는 검은 유리판을 100으로 한 광택 단위(GU, Gloss Unit)로 적는다. 측정 각도는 20°, 60°, 85°가 표준이다(ASTM D523, ISO 2813). 보통 60°로 재고, 60° 값이 70 GU를 넘는 높은 광택은 20°로, 10 GU에 못 미치는 낮은 광택은 85°로 다시 재 차이를 더 잘 가린다.
거칠기와 광택
광택은 보기에만 다른 것이 아니다. 유광 표면은 지문과 잔 흠집이 잘 보인다. 매끈한 면의 거울 방향 반사가 지문의 기름막이나 흠집 가장자리에서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무광 표면은 이미 반사가 흐트러져 있어 작은 흠이 묻힌다. 손에 오래 쥐는 물건, 책상 위에서 끌리는 물건에 무광이 많은 이유다. 대신 무광 표면에는 손의 기름이 스며 그 자리만 반질반질해지는 일이 생긴다. 오래 쓴 물건의 손 닿는 자리가 번들거리는 것이 그 흔적이다.
무광은 왜 옅어 보이나
앞 절의 공에서 무광 쪽이 늘 조금 옅고 뿌옇게 보인 이유를 숫자로 따져 본다. 무광 표면은 튕겨 낸 몇 퍼센트의 흰 빛을 사방으로 흩뜨린다. 그래서 어느 방향에서 보든 재료 속에서 나온 색에 그 흰 빛이 조금 더해진다. 밝은 색에는 4%의 흰 빛이 별 차이를 만들지 못하지만, 짙은 색에는 크다. 책방 초록의 빨강 채널은 선형 값으로 0.028에 불과해서, 여기에 0.04가 더해지면 두 배가 넘는다. 색이 회색 쪽으로 들뜨는 것이다.
유광 표면은 그 흰 빛을 거울 방향에 몰아 두므로, 거울 방향을 피해서 보면 재료 속의 색을 거의 그대로 본다. 같은 안료가 유광에서 더 짙고 진하게 보이는 이유다. 아래에서 두 판을 나란히 놓고, 광택을 바꾸고, 무광에서 목표 색에 맞추려면 안료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본다.
같은 안료, 다른 광택
이 계산이 CMF 실무에 주는 교훈은 두 가지다. 첫째, 무광 부품의 색 목표를 화면 값 그대로 주면 안 된다. 같은 값으로 안료를 맞추면 무광 판은 옅게 나온다. 목표는 그 표면 그대로 만든 견본판으로 정하고 그 판을 재야 한다. 둘째, 무광으로는 닿을 수 없는 색이 있다. 아주 짙은 색, 아주 진한 색은 표면의 흰 막 때문에 바닥이 떠 있다. 짙은 남색이나 검정을 깊게 보여야 하는 물건이 유광이나 반광을 고르는 이유다. 반대로 크림처럼 밝은 색은 흰 막의 영향이 작아 무광이어도 거의 그대로다.
질감: 금형에 새기는 무광
사출 성형품의 무광은 대개 칠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금형 표면에 새긴다. 금형의 안쪽 면을 화학 약품으로 부식시키거나(에칭), 방전 가공으로 거칠게 하거나, 모래를 쏘아(블라스트) 미세한 요철을 만들면, 성형품 표면에 그 요철이 거꾸로 찍힌다. 이렇게 성형품에 질감을 주는 일을 텍스처링(Texturing, 시보 가공)이라고 한다. 색은 수지에 안료를 섞어 넣고(원착색(Mass coloring)), 질감은 금형이 만들면 도장 공정이 아예 필요 없다. 흠집이 나도 속까지 같은 색이라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방전 가공 질감의 거칠기는 독일 기술자협회의 지침 VDI 3400의 등급으로 흔히 적는다. 등급 숫자 \(n\)과 표면의 산술 평균 거칠기 \(R_a\) 사이에는 \(n = 20\log_{10}(10\,R_a/\mu\mathrm{m})\)의 관계가 있다. 등급이 6 오르면 \(R_a\)가 약 두 배가 된다. 화학 부식 질감은 업체마다 고유한 무늬 번호와 견본판이 있다.
| VDI 3400 등급 | Ra (µm) | 느낌(대략) | 최소 구배(교육용 대표값) |
|---|---|---|---|
| Ref 12 | 0.40 | 반광에 가까운 고운 무광 | 0.5° |
| Ref 18 | 0.80 | 고운 무광 | 0.5° |
| Ref 24 | 1.60 | 무광, 손끝에 거의 걸리지 않음 | 1.0° |
| Ref 27 | 2.24 | 무광, 고른 모래알 느낌 | 1.5° |
| Ref 33 | 4.50 | 거친 무광, 손끝에 걸림 | 2.5° |
| Ref 45 | 18.0 | 매우 거침(공구 손잡이 등) | 4.5° |
질감은 공정에 대가를 요구한다. 성형품을 금형에서 밀어낼 때, 금형 벽과 나란히 미끄러지는 면의 요철은 금형 벽의 요철에 걸려 긁힌다. 그래서 질감 면에는 매끈한 면보다 큰 구배각이 필요하고, 질감이 깊을수록 더 필요하다. 아래에서 질감 등급과 구배각을 바꿔 성형품을 꺼내 본다.
질감 등급과 구배각
질감은 싱크와 흐름 자국 같은 성형의 작은 결함도 숨겨 준다. 9장에서 본 리브 뒤의 얕은 싱크는 유광 면에서는 또렷하지만 질감 면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질감은 금형 수정을 어렵게 한다. 질감을 넣은 뒤 금형을 깎아 고치면 그 자리의 질감을 다시 넣어야 하고, 이음매가 보일 수 있다. 그래서 텍스처링은 형태와 치수가 확정된 뒤 마지막에 한다.
입히고, 덮고, 새기는 마감
원착색과 금형 질감 말고도 표면을 바꾸는 방법은 많다. 공정마다 어울리는 재료와 수량, 남기는 문제가 다르다. 아래 표는 독서등 같은 작은 물건에서 흔히 견주는 마감을 정리한 것이다.
| 마감 | 무엇을 하나 | 어울리는 곳 | 주의할 점 |
|---|---|---|---|
| 원착색 + 금형 질감 | 수지에 안료를 섞고, 질감은 금형이 찍는다 | 대부분의 플라스틱 하우징 | 색을 바꾸려면 수지를 바꿔야 한다. 안료 배합마다 수축률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
| 도장(Painting) | 스프레이로 도료를 입힌다. 무광·유광·펄·메탈릭 등 | 원착색으로 안 나오는 색, 여러 부품의 색을 한 번에 맞출 때 | 공정과 불량이 는다. 모서리와 손 닿는 곳은 벗겨질 수 있다. 재활용 때 도막이 섞인다. |
| 소프트 터치 도장 | 고무 같은 촉감의 도막 | 손에 쥐는 면 | 세월이 지나면 끈적해지거나 벗겨지는 사례가 흔히 보고된다. 오래 쓰게 할 물건에는 신중히. |
| 도금(Plating) | 금속 막(크롬, 니켈 등)을 입힌다 | 금속처럼 보여야 하는 장식 | 플라스틱은 도금용 등급(ABS, PC/ABS 일부)만 잘 붙는다. 무게는 거의 그대로라 "가짜 금속"으로 느껴질 수 있다. |
| 아노다이징(Anodizing) | 알루미늄 표면에 산화막을 키우고 염료로 물들인다 | 알루미늄 부품 | 알루미늄에만 된다. 산화막이 투명해 바탕 금속의 결이 비친다. 같은 염료도 합금과 처리 조건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
| 패드 인쇄(Pad printing) | 실리콘 패드로 잉크를 옮겨 찍는다 | 곡면 위의 작은 로고·표시 | 한 도에 한 색. 무광 질감 위에서는 가장자리가 거칠어질 수 있어 시험 인쇄가 필요하다. |
| 실크스크린 인쇄 | 망판을 통해 잉크를 밀어 넣는다 | 평면의 넓은 인쇄 | 곡면에는 어렵다. |
| 레이저 마킹 | 레이저로 표면을 태우거나 색을 바꾼다 | 일련번호, 작은 표시 | 재료와 색에 따라 대비가 약하다. 잉크가 없어 벗겨지지 않는다. |
| IMD·IML(In-mold decoration / labeling) | 인쇄한 필름을 금형에 넣고 함께 성형한다 | 많은 수량의 무늬·그림이 있는 면 | 필름과 금형 준비 비용이 커서 수량이 많아야 맞는다. |
생산에서 색을 맞추는 일
디자이너가 색을 정하면, 수지 회사는 그 색을 내는 안료 배합(마스터배치)을 만들고, 성형 공장은 그 수지로 부품을 찍는다. 그런데 안료의 배치, 수지의 배치, 성형 온도가 조금씩 달라서 찍을 때마다 색이 조금씩 흔들린다. 그래서 생산의 색은 "같은가"가 아니라 "얼마나 다른가"로 관리한다. 색을 CIELAB의 L*, a*, b*로 재고, 기준과의 차이를 색차(Color difference, ΔE)로 적는다.
가장 단순한 색차는 Lab 공간에서의 직선거리 ΔE*ab다. 하지만 사람의 눈은 Lab 공간의 모든 방향에서 같은 만큼 예민하지 않다. 채도가 높은 색에서는 채도 차이에 둔하고, 색상 차이에는 예민하다. 이것을 보정한 식이 ΔE2000(CIEDE2000)이다(CIE 142-2001. 이 책의 엔진은 Sharma, Wu, Dalal 2005의 검산 자료로 확인했다). 생산에서 쓰는 허용차는 제품과 업계마다 다르다. ΔE2000으로 1 안팎을 엄격한 편, 2~3을 너그러운 편으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정해진 숫자는 없다. 같은 허용차라도 어느 방향으로 벗어났는지(밝기, 채도, 색상)에 따라 눈에 띄는 정도가 다르다.
아래 a*b* 평면의 가운데가 서윤의 표준 견본(무광 책방 초록)이다. 둘레의 다섯 점은 시사출에서 나온 다섯 배치(가상 자료)다. 점을 끌어 옮기고, 고른 배치의 밝기를 바꾸고, 허용차를 조절해 본다.
배치 다섯, 허용차 하나
측정기의 숫자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이 최종 판단을 하는 자리에는 한도 견본(Limit sample)을 둔다. 표준 견본 한 장과, "이보다 밝으면 안 된다", "이보다 어두우면 안 된다"처럼 허용 범위의 끝을 보여 주는 견본을 함께 만들어, 공장과 디자이너가 한 벌씩 나눠 갖는다. 검사자는 생산품을 표준과 한도 견본 사이에 놓고, 정해진 조명 아래에서 눈으로 본다. 숫자로 적기 어려운 질감, 광택, 얼룩까지 함께 판정할 수 있다.
창가에서는 맞고 전구 아래에서는 틀린 색
두 견본이 낮빛 아래에서 똑같아 보이다가 전구 아래에서 갈라지는 일이 있다. 두 견본의 반사 스펙트럼, 곧 파장마다 빛을 되돌리는 비율이 다른데, 낮빛 아래에서만 우연히 눈의 세 가지 원뿔세포에 같은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이것을 조건등색(Metamerism, 메타메리즘)이라고 한다(ColorBook에서 빛과 색의 관계로 다뤘다). 표준 견본과 다른 안료 조합으로 같은 색을 만들면 쉽게 생긴다.
그래서 색 승인은 한 가지 빛으로 끝내지 않는다. 표준 낮빛(D65), 백열전구(광원 A), 매장의 형광등처럼 물건이 실제로 놓일 빛을 골라, 여러 광원을 갖춘 색 비교 부스(Light booth)에서 차례로 켜며 본다. 아래에서 안료 배합의 차이를 키우고 빛을 바꿔 본다.
빛을 바꾸면 갈라지는 두 견본
화면, 종이, 플라스틱의 같은 초록
책방 E의 초록 #2f7d5b은 화면에서 태어났다. ColorBook 15장에서 이 초록을 종이에 찍을 때는 종이와 프로파일마다 다른 CMYK 값이 필요했고, 비코팅지에서는 화면 색에 끝내 닿지 못했다. 플라스틱에서도 같은 일이 다른 이유로 일어난다. 화면은 스스로 빛을 내고, 종이의 잉크는 종이의 흰색을 바탕으로 빛을 거르고, 플라스틱은 재료 속의 안료와 표면의 반사가 함께 색을 만든다. 세 매체의 "같은 초록"은 같은 숫자가 아니라 같아 보이게 맞춘 세 개의 다른 처방이다.
#2f7d5b
같은 값의 안료, 무광≈ #498669
보정한 안료(재료 속의 색)≈ #007349
보정한 안료, 무광으로 본 색≈ #387d5b
위 견본은 이 장의 교육용 모형으로 계산한 값이다. 화면 값 그대로 안료를 맞춘 무광 판은 ΔE2000 약 4.9만큼 옅고, 안료를 짙게 보정하면 무광으로 보이는 색이 약 1.1까지 다가간다. 실제 생산에서는 이 계산 대신 견본판을 여러 번 뽑아 재고 보면서 맞춘다. 그리고 그 판이 표준이 된다. 화면 값은 출발점이고, 승인된 견본판이 그 물건의 "진짜 색"이다.
서윤의 여름 제품 노트
화면의 초록, 판 위의 초록, 전구 아래의 초록
9월 셋째 주, 수지 회사가 보낸 첫 색 견본판이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서윤은 책방 초록의 화면 값 #2f7d5b을 그대로 보냈고, 수지 회사는 그 값에 맞춰 안료를 섞었다. 금형과 같은 질감으로 뽑은 무광 판은 화면 옆에 놓자 확연히 옅고 뿌옇게 보였다. 같은 배합의 유광 판은 화면 색에 훨씬 가까웠지만, 손에 쥐자마자 지문이 찍혔고 번들거림이 "기념품 가게 장난감" 같았다.
문태오는 무광을 지키자고 했다. 손에 쥐고 침대 머리판에 집어 쓰는 물건이라 긁힘과 지문이 덜 보여야 하고, 몸통의 리브 뒤 싱크도 질감이 숨겨 준다. 대신 안료를 짙게 다시 맞추고, 화면 값이 아니라 그 무광 판 자체를 표준으로 삼자고 했다. 두 번째 판은 눈으로 보기에 책방 초록에 꽤 가까웠다. 이 장의 모형으로 계산해도 무광으로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자리였다(화면 값과 ΔE2000 약 1.1).
세 번째 문제는 한도경이 찾았다. 도경은 견본판을 집에 가져가 침대 머리맡의 전구색 조명 아래에서 표준 판과 수지 회사가 새로 보낸 배치의 견본판을 나란히 놓아 보았다. 스튜디오의 창가에서는 똑같던 둘 가운데 하나가 올리브색으로 기울었다. 수지 회사에 묻자 그 배치는 공급이 끊긴 안료 하나를 다른 안료 둘로 바꿔 맞춘 것이었다. "이 등은 밤에 전구 아래서 쓰는 거잖아. 낮빛에서만 맞으면 안 돼."
등머리의 크림은 도경이 골랐다. 책방의 크림 #ffe2d7을 그대로 플라스틱에 옮기자 살구색에 가까운 분홍빛이 돌아 초록 몸통 옆에서 살결처럼 보였다. 도경은 분홍기를 빼고 노란 쪽으로 옮긴 미색을 골랐다. 서윤의 선택은 이렇게 정리되었다.
#2f7d5b와 ΔE2000 약 1.1)을 기록한다. 안료는 유광으로 보면 L* 42 안팎의 짙은 초록이다. 등머리: 크림 #efe4cf(L* 90.9, a* 0.3, b* 11.6, 같은 무광 질감). 허용 색차: 표준 견본과 ΔE2000 1.5 이하(D65), 그리고 전구 A 아래에서도 2.0 이하. 같은 안료 계열로만 맞춘다(안료를 바꾸면 다시 승인). 한도 견본 세 장: 표준, 밝은 쪽 한도(L* +1.5), 어두운 쪽 한도(L* −1.5), 같은 질감의 판으로 세 벌 만들어 스튜디오·수지 회사·성형 공장이 나눠 갖는다. 검사는 낮빛과 전구 아래에서 모두 한다.핵심 정리
- CMF는 색, 재료, 마감을 한 묶음으로 정하는 일이다. 같은 안료도 재료와 표면에 따라 다르게 보이므로 색은 실제 재료와 마감으로 만든 견본판으로 정한다.
- 표면은 빛의 몇 퍼센트를 색 없이 튕겨 낸다(정반사). 매끈한 면은 그 빛을 거울 방향에 모으고(유광), 거친 면은 넓게 퍼뜨린다(무광). 광택도는 20°·60°·85° 광택도계로 GU 단위로 잰다.
- 무광 표면은 흩어진 표면 반사가 색 위에 흰 막을 씌워 같은 안료의 유광보다 옅고 뿌옇게 보인다. 안료를 짙게 보정해 다가갈 수 있지만, 아주 짙거나 진한 색에는 무광으로 닿을 수 없다.
- 사출 성형품의 무광은 대개 금형 질감(VDI 3400 등급, 부식 무늬)으로 만든다. 질감이 깊을수록 더 큰 구배각이 필요하고, 질감은 싱크 같은 작은 결함을 숨겨 준다.
- 도장·도금·인쇄 같은 막은 먼저 닳고 재활용을 어렵게 한다. 아노다이징은 알루미늄에만 된다. 마감은 어디가 먼저 닳을지와 함께 고른다.
- 생산 색은 CIELAB으로 재고 ΔE2000 허용차로 관리하며, 사람의 최종 판단에는 표준과 한도 견본을 쓴다. 허용차의 숫자는 업계와 제품마다 다르다.
- 반사 스펙트럼이 다른 두 견본은 한 빛에서만 같아 보일 수 있다(조건등색). 색은 물건이 실제로 놓일 여러 빛에서 확인하고, 가능하면 같은 안료로 맞춘다.
확인 퀴즈
1. 같은 안료로 만든 짙은 초록 플라스틱 판 두 장 중 무광 판이 유광 판보다 옅고 뿌옇게 보인다. 가장 알맞은 설명은?
2. 시사출 배치가 표준 견본과 D65 아래에서 ΔE2000 0.6으로 합격했는데, 전구 아래에서 보니 눈에 띄게 달랐다. 가장 알맞은 판단과 대처는?
3. 매끈한 측벽에 구배 1°를 둔 몸통에 VDI 3400 Ref 33의 거친 질감을 넣기로 했다. 무엇을 함께 바꿔야 하는가?
4. 생산에서 한도 견본을 두는 주된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