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를 읽는 세 렌즈
미술관에서 사람들이 그림 한 점 앞에 머무는 시간은 길지 않다. 제목표를 읽고, 작가 이름을 확인하고, 다음 그림으로 간다. 이름과 연도는 남지만 그림은 남지 않는다. 이 장은 그림 앞에서 무엇을 볼지 세 가지 렌즈, 곧 색, 구도, 기법을 정하고, 거기에 "왜 그렇게 그렸는가"라는 질문 하나를 더한다. 그리고 앞으로 열한 장 동안 고대 이집트에서 19세기 말의 파리, 송나라의 산수와 조선의 진경, 에도의 판화까지 같은 렌즈로 읽어 갈 준비를 한다.
- 그림을 색·구도·기법의 세 렌즈와 "왜"라는 질문으로 나누어 읽는다.
- 그림 사진에서 팔레트를 뽑되, 사진 속 색이 원작의 색과 다르다는 것을 숫자로 확인한다.
- 흑백과 명암 덩어리로 화면의 짜임을 보고, 돋보기로 재료와 붓질을 본다.
- 사조의 이름이 대부분 뒤에 붙은 정리라는 것과, 한 가지 기준으로 사조를 자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 같은 시기 다른 지역의 그림을 나란히 놓고, "진보"의 한 줄 서사 대신 서로 다른 해답으로 읽는다.
그림 앞의 3초
아래 그림을 3초만 보고 눈을 감아 본다. 무엇이 남는가. 대부분은 "노란 밀밭", "나무 아래 쉬는 사람들" 정도를 기억한다. 이번에는 30초 동안 보되, 세 가지를 차례로 묻는다. 어떤 색들이 얼마나 넓게 칠해졌나. 어두운 곳과 밝은 곳은 어떻게 나뉘고, 눈은 어디서 어디로 움직이나. 무엇으로, 얼마나 두껍게, 어떤 붓질로 칠했나.

세 질문은 이 책의 세 렌즈다. 색의 렌즈(Color)는 어떤 색이 얼마나 넓게, 얼마나 밝고 짙게 쓰였는지를 본다. 구도의 렌즈(Composition)는 화면이 어떻게 나뉘고 눈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명암의 큰 덩어리가 어디에 놓였는지를 본다. 기법의 렌즈(Technique)는 무엇으로(템페라, 유화, 먹, 목판) 어떻게(얇게 겹쳐, 두껍게 얹어, 번지게) 그렸는지를 본다. 여기에 네 번째로 "왜"를 묻는다. 누가 주문했고, 어디에 걸렸고, 누가 보았는가. 같은 색도 교회의 촛불 아래와 시장의 진열대에서는 다른 일을 한다.
색의 렌즈: 팔레트를 뽑는다
그림의 색을 말로 적으면 금방 모호해진다. "따뜻한 색조", "차분한 색"은 사람마다 다르게 듣는다. 그래서 이 책은 그림 사진의 픽셀을 비슷한 색끼리 몇 무리로 묶어, 그 무리의 평균색과 넓이를 띠로 보여 준다. 이렇게 뽑은 색 목록을 팔레트(Palette)라고 부른다. 원래는 화가가 물감을 짜 놓는 판을 가리키는 말인데, 지금은 한 그림이나 디자인에 쓰인 색의 묶음을 뜻하기도 한다. 묶는 방법은 ColorBook 14장에서 다룬 k-평균 군집(k-means clustering)이다. 색의 무리 수 k를 정하면, 사람 눈의 색 차이에 가깝게 만든 색 공간(OKLab)에서 서로 가까운 픽셀끼리 k개로 나눈다.
아래에서 네 그림을 바꿔 가며 k를 움직여 본다. 13세기 말 이탈리아의 금빛 성모, 17세기 네덜란드의 실내, 19세기 일본의 목판화, 11세기 중국의 먹 그림이다.
그림에서 팔레트 뽑기
네 그림의 팔레트를 나란히 놓으면 시대와 매체가 바로 보인다. 두초의 금과 짙은 파랑, 페르메이르의 회백색 벽과 파랑·노랑, 호쿠사이의 프러시안 블루와 종이색, 곽희의 거의 무채색인 먹과 비단색. 하지만 이 숫자들은 그림의 색이 아니라 그림 사진의 색이다. 그 차이를 다음 절에서 직접 만든다.
사진 속 색은 원작이 아니다
지금 화면에 보이는 「물병을 든 젊은 여인」은 세 번 걸러진 색이다. 첫째, 350여 년 동안 물감과 그 위의 바니시(Varnish)가 변했다. 바니시는 유화 표면을 보호하고 광택을 주려고 바르는 투명한 수지 막인데, 오래되면 누렇게 변해 그림 전체에 노란 필터를 씌운다. 박물관은 보존 처리 때 변색된 바니시를 걷어 내고 새로 바르기도 하므로, 같은 그림의 옛 사진과 지금 사진이 크게 다르기도 하다. 둘째, 촬영할 때의 조명과 카메라 설정이 색을 바꾼다. 셋째, 보는 사람의 모니터가 다시 바꾼다(ColorBook 1장).
아래 비교 그림에서 오른쪽 층에 두 가지 변화를 준다. 하나는 누렇게 변한 바니시 막, 다른 하나는 촬영 조명의 색온도다. 카메라는 낮빛(6,500 K)에 맞춰 둔 채라고 가정한다. 경계선을 끌어 원래 사진과 비교한다.
바니시와 조명이 바꾼 색
ΔE2000이 2 안팎이면 나란히 놓았을 때 겨우 알아챌 정도이고, 10을 넘으면 다른 색이라 부를 만하다(ColorBook 3장). 그림 전체의 평균색만 비교해도 기본값에서 몇 단위가 벌어지고, 두 손잡이를 끝까지 밀면 10을 훌쩍 넘는다. 파란 픽셀의 비율처럼 특정 색만 세면 차이는 훨씬 크다. 그래서 이 책은 팔레트나 명도 분포를 비교할 때 항상 "소장처 사진에서 계산한 값"이라고 밝히고, 두 그림의 작은 색 차이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큰 차이, 예를 들어 금빛 바탕과 먹 그림의 채도 차이처럼 사진의 오차보다 훨씬 큰 것만 읽는다.
구도의 렌즈: 명암 덩어리
색을 잠시 지우면 화면의 짜임이 드러난다. 화가들은 그림을 몇 개의 밝고 어두운 덩어리로 줄여 보는 습관이 있다. 이렇게 명암을 두세 단계로 줄인 그림을 일본어에서 빌려 노탄(Notan, 濃淡)이라 부른다(CompositionBook에서 무게중심과 함께 다뤘다). 아래에서 경계 명도를 움직이면 그보다 어두운 픽셀은 검정, 밝은 픽셀은 종이색이 된다. 십자 표시는 어두운 덩어리의 무게중심, 가는 선은 3분할선이다.
명암 두세 덩어리로 줄이기
무게중심이 3분할 교점 가까이 온다고 좋은 그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렘브란트의 밝은 덩어리는 오히려 화면 가운데에 모여 있고, 정선의 바위는 화면 위쪽을 거의 다 채운다. 3분할은 구도를 읽는 자이지, 명작의 조건이 아니다. 이 책은 격자와 무게중심을 "재는 도구"로 쓰고, 그 값이 무엇을 말해 주는지는 그때마다 따져 본다.
기법의 렌즈: 가까이 보기
같은 노랑도 무엇으로 칠했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달걀노른자에 안료를 갠 템페라(Tempera)는 빨리 마르므로 가는 붓질을 촘촘히 겹쳐 칠한다. 기름에 갠 유화(Oil painting)는 천천히 말라 섞고 번지게 하거나 얇은 투명층을 겹칠 수 있다. 목판화는 판마다 한 색을 찍어 경계가 또렷하고, 먹은 물의 양으로 짙고 옅음을 만든다. 이런 차이는 그림을 멀리서 볼 때보다 가까이 볼 때 드러난다.
아래 돋보기를 그림 위로 끌어 본다. 배율을 올리면 소장처 사진의 한 픽셀이 실제 그림에서 몇 밀리미터인지가 함께 나온다. 실제 크기는 소장처가 기록한 작품 크기에서 계산한다.
돋보기로 붓질과 판 보기
쇠라에서 본 것처럼, 기법의 렌즈는 사진의 해상도에 가장 크게 기댄다. 색은 대충 맞아도 읽을 수 있지만, 붓질은 보이지 않으면 읽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은 기법을 이야기할 때 소장처의 재료 기록과 보존 연구에 기대고,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만 "보인다"고 쓴다.
사조의 이름은 뒤에 붙었다
"바로크", "로코코", "인상주의" 같은 이름을 사조(Movement, style period)라고 부른다. 비슷한 시기와 지역의 그림들을 한 이름으로 묶은 것이다. 편리하지만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대부분의 이름은 그 그림을 그린 사람들이 스스로 붙인 것이 아니라 나중에, 종종 낮춰 부르는 말로 붙었다는 것이다.
이름이 뒤에 붙었다는 것은 경계도 뒤에 그었다는 뜻이다. 한 사조를 "어두운 그림", "밝은 그림"처럼 한 가지 숫자로 자를 수 있을까. 아래 그래프는 이 책에 실린 서양 유화 열한 점의 평균 명도를 그려진 해에 따라 찍은 것이다. 연한 띠는 흔히 바로크라고 부르는 시기(대략 1600~1720년)다. 가로선을 위아래로 끌어 "이보다 어두우면 바로크"라는 규칙을 세워 본다.
"바로크는 어둡다"는 규칙 시험하기
"바로크는 어둡다"는 틀린 말이 아니라 경향이다. 경향은 한 그림을 판정하는 규칙이 되지 못한다. 페르메이르는 바로크 시대에 살았지만 창가의 낮빛을 그렸고, 프리드리히는 낭만주의자로 불리지만 달밤의 어둠을 그렸다. 이 책은 사조 이름을 장 제목에 쓰지만, 장마다 "그 이름에 들어맞지 않는 그림"을 함께 보여 준다.
같은 해, 다른 곳
미술사를 한 줄의 연대표로 배우면, 그림이 점점 "더 사실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이야기가 쉽게 만들어진다. 평면적인 이집트 벽화에서 원근법의 르네상스로, 다시 빛을 쫓는 인상주의로. 이 책은 그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 같은 시기에도 지역마다 전혀 다른 해답이 있었고, 각각은 그 그림이 맡은 일에 맞는 해답이었다.


아래 연대표의 세로선을 끌어 본다. 네 줄은 유럽과 지중해, 중국, 한국, 일본이고, 각 줄의 띠는 왕조나 흔히 쓰는 시대 이름이다. 점은 이 책에서 만날 그림들이다. 세로선 가까이에 있는 그림이 아래에 나온다.
같은 해, 네 지역
연대표 위에서 보면 "발전"보다 "동시에 일어난 서로 다른 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의 셋째 부가 동아시아에 세 장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아시아 회화는 서양 미술사의 곁가지가 아니라, 공간과 시간과 붓을 다르게 다룬 또 하나의 큰 줄기다.
두 번 보기: 이 책의 지도
한도경의 원칙은 짧다. "그림은 그 시대의 눈으로 한 번, 지금의 눈으로 한 번 본다." 그 시대의 눈은 그림이 어디에 걸렸고 누가 보았는지를 묻는다. 촛불 아래 교회에서, 왕의 방에서, 상인의 거실에서, 문인의 책상 위에서. 지금의 눈은 미술관 조명과 화면 속 사진으로, 그리고 이 책의 도구로 그림을 다시 잰다. 두 눈이 엇갈리는 곳이 가장 흥미롭다. 이집트 벽화는 지금 우리에게 "이상하게" 보이지만 무덤 속에서는 정확한 그림이었다(2장).
| 장 | 주제 | 주로 쓰는 렌즈 | 대표 도구 |
|---|---|---|---|
| 2 | 고대와 중세 | 구도 · 왜 | 격자, 위계적 크기, 금빛 바탕 |
| 3 | 르네상스 | 구도 · 기법 | 소실점, 템페라와 유화 |
| 4 | 바로크 | 색(명암) · 구도 | 명도 분포, 사선 |
| 5 | 네덜란드 황금기 | 왜 · 색 | 시장, 장르, 실내의 빛 |
| 6 | 로코코와 신고전주의 | 색 · 구도 | 팔레트 비교, 윤곽 |
| 7 |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 기법 · 왜 | 붓질 확대 |
| 8 | 인상주의 | 색 · 기법 | 색 그림자, 짧은 붓질 |
| 9 | 후기 인상주의 | 색 · 구도 | 광학 혼색, 구조 |
| 10 | 동아시아 회화 | 구도 · 기법 | 삼원법, 필묵, 두루마리 |
| 11 | 한국 미술 | 색 · 기법 · 왜 | 불화의 색, 진경, 풍속 |
| 12 | 판화와 우키요에 | 기법 · 구도 | 다색 목판 공정, 구도 |
| 13 | 미술사 실험실 | 세 렌즈 모두 | 연대표 위 비교 |
이제 세 렌즈를 한 번에 쓴다. 아래에서 그림을 고르고 렌즈를 바꾸면, 아래 카드의 세 줄이 그림의 픽셀에서 계산되어 채워진다. 마지막 줄의 질문은 직접 쓴다. 이 카드가 이 책 내내 쓰는 읽기 카드의 모양이다.
읽기 카드 만들기
카드의 세 줄은 그림에 대한 결론이 아니라 근거가 있는 관찰이다. 넷째 줄,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 좋은 질문은 대개 세 줄 사이의 어긋남에서 나온다. "어두운 덩어리는 오른쪽 아래에 있는데 왜 눈은 왼쪽 위로 가지?" 같은 질문이다. 그 답의 일부는 그림 밖, 곧 "왜"의 렌즈에 있다.
서윤의 그림 읽기 모임
외울 이름 열다섯 개를 지우다
가을에 책방 E의 색을 정하고, 겨울에 진열과 포스터를 짜고, 봄에 안내 책자의 드로잉을 그리고, 여름에 글자를 조판한 윤서윤에게 다시 가을이 왔다. 주인은 이번에는 서점 2층을 내주며 부탁했다. "토요일 저녁에 동네 사람들이 그림 이야기를 하러 오면 좋겠어요." 이름은 "그림 읽기 모임"으로 정했다. 2027년 9월 4일부터 11월 13일까지 매주 토요일, 한 번에 90분, 열한 번. 신청한 사람은 열두 명 안팎이었다.
서윤의 첫 기획안은 한 장짜리 표였다. 왼쪽 칸에 "고딕, 르네상스, 매너리즘,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사조 이름 열다섯 개, 오른쪽 칸에 연도. 매주 이름 몇 개와 대표작을 외우고 마지막 주에 퀴즈를 내는 계획이었다. 함께 모임을 준비하기로 한 화가 한도경은 표를 한참 보더니 오른쪽 칸을 접어 버렸다. "그림은 그 시대의 눈으로 한 번, 지금의 눈으로 한 번 본다. 이름은 그다음이야." 그러고는 이 장의 그림 3을 가리켰다. 서윤이 외우게 하려던 이름의 절반이 그 그림을 그린 사람들은 들어 보지도 못한 말이었다.
두 사람은 이름 대신 매주 같은 세 질문을 들고 가기로 했다. 색, 구도, 기법. 그리고 회차마다 참가자가 질문 하나를 남기게 하자고 했다. 도경은 화면에 그림을 띄우는 법을 몰라 서윤에게 노트북을 서점 텔레비전에 연결하는 법을 물었고, 서윤은 그 대신 도경이 수십 년 동안 미술관에서 산 엽서 상자를 빌렸다. 엽서 뒷면마다 연필로 짧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핵심 정리
- 그림은 색(어떤 색이 얼마나), 구도(덩어리와 시선), 기법(무엇으로 어떻게)의 세 렌즈로 나누어 읽고, 그림 밖의 질문 "왜(주문자·관객·쓰임)"를 더한다.
- 그림 사진에서 뽑은 팔레트는 안료 목록이 아니라 지금 이 사진에서 눈에 들어오는 색의 평균이다.
- 사진 속 색은 바니시의 황변, 물감의 변화, 촬영 조명, 모니터를 거친 색이다. 사진의 오차보다 큰 차이만 결론에 쓴다.
- 명암을 두세 덩어리로 줄이면 화면의 짜임이 드러난다. 3분할과 무게중심은 재는 도구이지 명작의 조건이 아니다.
- 기법은 가까이 볼 때 드러나며, 사진의 해상도가 볼 수 있는 한계를 정한다.
- 사조 이름은 대부분 뒤에, 때로는 흉으로 붙었고 경계도 뒤에 그었다. "바로크는 어둡다" 같은 말은 경향이지 판정 규칙이 아니다.
- 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는 다른 해답이 있었다. 미술사를 "점점 사실적으로" 발전한 한 줄로 읽지 않는다.
확인 퀴즈
1. 두 그림의 소장처 사진에서 팔레트를 뽑았더니 평균색의 ΔE2000이 3이었다. 이 결과로 할 수 있는 말로 가장 알맞은 것은?
2. "바로크"라는 이름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3. 노탄(명암 2단)으로 바꾼 그림에서 어두운 덩어리의 무게중심이 3분할 교점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가장 알맞은 해석은?
4. 13세기의 두초 「성모자」와 마원 「소나무 아래에서 달을 보다」를 나란히 놓았다. 이 책의 관점에 가장 가까운 설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