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3

르네상스: 원근과 비례

복도 끝에 서서 사진을 찍으면 바닥의 줄눈과 천장의 선이 모두 화면 한가운데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간다. 지금은 누구나 아는 이 모습을 그림 위에 규칙으로 옮긴 것은 15세기 피렌체의 건축가와 화가들이었다. 그 뒤로 그림은 벽에 뚫린 창문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 장은 그 규칙, 곧 선 원근법을 직접 작도하고 실제 작품 위에서 소실점을 찾아본다. 같은 시기에 바뀐 물감, 템페라에서 유화로의 변화와 북유럽 화가들의 세밀함, 레오나르도의 녹아드는 경계도 함께 본다. 그리고 규칙을 알던 화가들이 그 규칙을 어떻게 고쳐 썼는지도.

그림이 창문이 된 순간

아래 두 그림은 약 170년 떨어져 있다. 왼쪽은 시에나의 화가 두초가 1300년 무렵 그린 작은 성모자다. 인물 뒤는 금박으로 덮여 있고, 성모가 어떤 방에 앉아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떨어져 보고 있는지는 그려지지 않았다. 오른쪽은 1467년 이탈리아 중부의 화가 프라 카르네발레가 그린 「성모의 탄생」이다. 같은 성스러운 이야기를 다루지만 사람들은 대리석 궁전 앞 광장에 서 있고, 기둥과 아치는 깊숙이 물러나며, 계단 위 사람들은 뒤로 갈수록 작아진다. 우리는 그림 앞에 서서 창문 너머의 장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된다.

두초의 성모자. 금빛 바탕 앞에 짙은 청록 망토를 두른 성모가 붉은 옷의 아기 예수를 안고 있다. 아래쪽에 그려진 난간 말고는 공간을 알려 주는 것이 거의 없다.
그림 1. 두초 디 부오닌세냐, 「성모자」, 1290~1300년경. 금박 바탕은 하늘도 벽도 아닌, 성스러움 그 자체의 빛이다. 아래쪽 난간이 그림과 우리 사이의 문턱 노릇을 한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나무판에 템페라와 금.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프라 카르네발레의 성모의 탄생. 부조로 장식된 흰 대리석 궁전이 화면을 채우고, 큰 아치 너머 안쪽 방에서 산모와 갓난아이를 돌보는 여인들이 보인다. 앞쪽 계단과 광장에는 우아한 옷차림의 여인들이 서로 인사하고 있다.
그림 2. 프라 카르네발레, 「성모의 탄생」, 1467. 성모가 태어나는 장면은 아치 안쪽 깊숙한 방에서 작게 벌어지고, 앞쪽은 15세기 귀부인들의 광장이다. 건물의 선이 안쪽 방으로 모이며 우리 눈을 그리로 데려간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나무판에 템페라와 유채.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이 변화가 일어난 14세기 말~16세기의 이탈리아와 북유럽 미술을 우리는 르네상스(Renaissance)라고 부른다. "다시 태어남"이라는 뜻으로, 고대 그리스·로마의 학문과 예술을 되살린다는 당시 지식인들의 자의식에서 나온 말이다. 16세기 화가이자 전기 작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가 『미술가 열전』(1550)에서 미술의 "부활"을 말했고, 시대 이름으로 널리 굳은 것은 19세기 역사가들(쥘 미슐레,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책을 거치면서다. 그러니 이 이름도 1장에서 말한 대로 뒤에 붙인 정리다. 바사리는 앞 시대를 "서툰 그리스풍"이라 낮춰 불렀지만, 그림 1의 금빛은 서툶이 아니라 다른 목적의 선택이었다(2장).

두 그림의 차이를 만든 가장 큰 도구가 선 원근법(Linear perspective)이다. 한 눈으로 한 자리에서 본 장면을, 눈과 물체를 잇는 직선이 그림 면을 뚫고 지나가는 자리에 옮겨 그리는 방법이다. 그렇게 그리면 실제로 평행한 선들이 그림 속에서는 한 점으로 모인다. 그 점이 소실점(Vanishing point)이다.

선 원근법의 규칙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피렌체의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가 1420년 무렵, 대성당 앞에서 맞은편 세례당을 작은 판에 그리고 그 판에 구멍을 뚫어, 뒤에서 거울에 비친 그림을 들여다보게 했다고 한다. 거울을 치우면 진짜 세례당이 같은 자리에 같은 크기로 보였다는 것이다. 원판은 남아 있지 않고 이 실험은 그의 전기 작가가 남긴 기록으로만 전한다. 몇 해 뒤 인문학자이자 건축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는 『회화론』(De pictura, 1435, 이듬해 이탈리아어판)에서 그림의 틀을 "열린 창"으로 보고 그 창 위에 장면을 작도하는 방법을 글로 정리했다.

눈 그림 면(창) 기둥 A (거리 Z) 기둥 B (거리 2Z) 눈높이 = 지평선 거리 f
그림 3. 시각 피라미드와 그림 면. 눈에서 물체의 끝점으로 뻗은 직선이 그림 면을 뚫는 자리가 그림 속 점이 된다. 같은 높이의 기둥이라도 두 배 멀리 있는 B는 그림 면 위에서 절반 크기(두꺼운 선 둘의 차이)로 맺힌다. 눈높이를 지나는 수평면은 그림 면 위에서 한 줄, 곧 지평선이 된다.

그림 3을 식 하나로 줄이면 이렇다. 눈에서 그림 면까지의 거리를 \(f\), 물체까지의 거리를 \(Z\)라 하면, 그림 속 크기는 실제 크기에 \(f/Z\)를 곱한 것이다.

$$x' = f\,\frac{X}{Z},\qquad y' = f\,\frac{Y}{Z}$$
\(X, Y\): 눈을 기준으로 한 물체 점의 가로·세로 위치, \(Z\): 앞으로 떨어진 거리, \(x', y'\): 그림 면 위의 위치(소실점이 원점). 거리가 두 배면 크기는 절반이다. 화면 안쪽으로 뻗는 평행선은 \(Z\)가 커질수록 \(x', y'\)가 0으로 가므로 모두 소실점에 모인다.

알베르티의 작도는 바닥의 정사각형 타일에서 시작한다. 그림 아래 가장자리를 같은 간격으로 나누고 그 점들을 소실점과 이어 화면 안으로 들어가는 선(직교선)을 긋는다. 그다음 타일의 가로줄을 어디에 그을지가 문제인데, 이것을 정하는 것이 보는 사람과 그림 사이의 거리다. 지평선 위에서 소실점으로부터 그 거리만큼 떨어진 점을 거리점(Distance point)이라고 하는데, 정사각형 타일의 대각선은 모두 이 점으로 모인다. 아래에서 소실점을 끌고 거리를 바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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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티의 창: 바닥 타일 작도

소실점을 끈다
가로 화각—
바로 볼 자리—
첫 줄 타일의 깊이 : 폭(화면)—
해볼 것: ① 거리를 1.2에 두고 소실점을 위아래로 끈다. 지평선이 내려가면(눈이 낮아지면) 바닥이 납작해지고, 올라가면 바닥을 내려다보게 된다. ② 거리를 0.3까지 줄인다. 화각이 118°로 넓어지고, 첫 줄 타일의 화면 속 깊이가 폭의 0.28배에서 0.88배로 늘어나며 양옆 타일이 옆으로 크게 벌어진다. 바닥이 앞으로 쏟아지듯 보인다. 이 그림은 코앞에서 한 눈으로 봐야만 정사각형으로 보인다. ③ 거리를 3까지 늘리면 타일이 얇은 띠로 눌린다. 대각선이 모이는 거리점은 그림 밖으로 멀리 나간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대개 그림 폭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먼 거리를 골랐다. (한 눈, 고정된 시점, 평평한 그림 면을 가정한 핀홀 투영. 타일은 그림 아래 가장자리에서 시작한다.)

원근법은 "자연스러운 눈"이 아니라 몇 가지 약속 위에 서 있다. 눈은 하나이고, 움직이지 않으며, 그림 면은 평평하다. 실제 우리는 두 눈으로 보고 고개를 돌리며 장면을 훑는다. 그래서 짧은 거리로 작도한 그림을 다른 자리에서 보면 가장자리가 늘어나 보인다. 화가가 고른 거리는 그림이 걸릴 방과 관객의 자리를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뒤러의 목판화. 탁자 위에 류트가 놓여 있고, 오른쪽 벽의 고리에서 뻗은 실을 한 사람이 류트의 한 점에 대고 있다. 실이 탁자 가운데 세운 틀을 지나는 자리를 다른 사람이 틀에 끼운 종이에 점으로 찍는다.
그림 4. 알브레히트 뒤러, 「류트를 그리는 제도사」. 벽의 고리가 "눈"이고, 실이 시선이며, 틀이 알베르티의 창이다. 실이 틀을 지나는 점을 하나씩 찍으면 원근으로 줄어든 류트가 생긴다. 그림 3을 그대로 기계로 만든 셈이다. 뒤러는 이탈리아에서 원근법을 배워 와 독일어 교본에 이런 장치들을 실었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목판화.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원근법은 광학인가, 약속인가 선 원근법의 식은 핀홀 카메라와 같다. 그래서 사진은 원근법이 "맞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 눈의 망막은 둥글고, 우리는 장면을 한 번에 보지 않고 여러 번 시선을 옮겨 이어 붙인다. 넓은 장면을 선 원근법으로 그리면 가장자리의 둥근 기둥이 타원처럼 부푸는 일이 생기는데, 르네상스 화가들도 이를 알고 가장자리 인물을 원근 규칙보다 덜 늘려 그리곤 했다.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는 1927년 논문 「상징 형식으로서의 원근법」에서 원근법을 자연의 사실이라기보다 한 시대가 공간을 생각한 방식으로 읽자고 제안했다. 이 주장은 지금도 논쟁 중이지만, 원근법이 여러 가능한 그림 체계 중 하나라는 점은 널리 받아들여진다. 동아시아 산수화의 이동 시점(10장)은 또 다른 체계다.

그림 위에서 소실점 찾기

작도의 규칙을 알았으니 거꾸로 해 본다. 완성된 그림에서 실제로 평행했을 선, 곧 건물 벽의 처마선, 바닥의 줄눈, 창틀처럼 화면 안쪽으로 들어가는 선을 골라 연장하면 그 교점이 소실점이다. 아래는 보티첼리가 1500년 무렵 그린 「성 제노비우스의 세 기적」이다. 왼쪽 건물의 옆벽(노란 선 둘)과 오른쪽 바닥의 줄무늬(파란 선 둘)에 이 책이 직접 선을 그었다. 선의 끝 손잡이를 끌어 다른 모서리에 대 보고, 교점이 어떻게 흩어지는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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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티첼리의 광장에서 소실점 찾기

선 끝의 손잡이를 끈다
교점—
가장 먼 두 교점 사이—
지평선 높이(위에서)—
해볼 것: ① "이 책이 그은 선"에서 여섯 교점을 본다. 다섯 개는 가운데 풍경 열린 곳, 그림 폭의 약 3%(51 px) 안에 모이는데, 하나가 오른쪽 아래로 떨어져 있다. 같은 벽의 두 노란 선이 만든 교점이다. 기울기가 비슷한 두 선은 조금만 어긋나도 교점이 멀리 달아난다. ② "가로선 하나 섞기"를 누른다. 오른쪽 건물의 정면 창틀처럼 그림 면과 나란한 선은 소실점으로 가지 않으므로 교점이 엉뚱한 곳에 생긴다. ③ 손잡이를 끌어 왼쪽 건물 받침돌의 윗면, 오른쪽 건물 옆벽 같은 다른 모서리에 대 본다. 교점이 대체로 지평선(위에서 약 42%) 근처를 맴돈다. (선은 이 책이 1600 px 폭 사진 위에서 경계를 따라 맞춘 것이다. 사진의 왜곡과 화가의 붓 자국 때문에 몇 픽셀의 오차는 늘 있다.)

교점이 정확히 한 점에 모이지 않는다고 해서 보티첼리가 원근법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화가들은 판 위에 핀을 꽂고 실을 당겨 직교선을 긋곤 했고, 많은 르네상스 패널화의 소실점 자리에서 실제로 작은 구멍이나 긁은 선이 발견된다. 그러나 그 위에 템페라를 수십 겹 올리며 건물과 인물을 다듬는 동안 선은 조금씩 움직인다. 그리고 이 그림은 측량도가 아니라 성인의 기적 세 장면을 한 광장에 펼친 이야기 그림이다. 원근법의 정확함보다 장면을 읽히게 하는 일이 먼저였다(8절에서 다시 본다).

투명 필름으로 소실점 찾기 건물이나 복도가 들어 있는 그림 엽서, 화집의 한 면, 또는 직접 찍은 복도 사진을 준비한다. 그 위에 OHP 필름이나 투명 파일을 대고 유성펜과 자로 화면 안쪽으로 들어가는 선을 네 개 긋는다. 이때 같은 벽에서 두 개, 반대편 벽이나 바닥에서 두 개를 고른다(기울기가 비슷한 선끼리는 교점이 흔들린다). 선을 연장해 교점을 표시하고, 교점들을 감싸는 가장 작은 원을 그려 지름을 mm로 잰다. 마지막으로 원의 중심을 지나는 수평선을 긋는다. 그것이 그 그림의 지평선, 곧 화가(또는 카메라)의 눈높이다. 사진과 그림을 각각 해 보고 원의 크기를 비교한다.

눈높이와 비례

지평선은 하늘과 땅의 경계이기 전에 보는 사람의 눈높이다(그림 3). 이 사실에서 르네상스 화가들이 즐겨 쓴 요령이 하나 나온다. 평평한 땅에 선 같은 키의 사람들을 서 있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보면, 거리와 상관없이 모두의 눈이 지평선 위에 걸린다. 그래서 광장의 군중을 그릴 때 머리를 대략 한 줄에 맞추는 방식을 흔히 볼 수 있다. 알베르티는 『회화론』에서 그림 속 사람의 키를 셋으로 나눈 단위(braccio, 팔 길이)로 바닥의 눈금을 정하고, 소실점을 그 사람 키의 높이에 두라고 권했다. 사람이 그림 속 공간의 자가 된 것이다.

비례는 원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르네상스 사람들은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Vitruvius)의 『건축 십서』에 적힌 인체 비례(얼굴은 키의 10분의 1, 머리는 8분의 1 등)를 다시 읽고, 건물과 인체가 같은 수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체 비례는 DrawingBook의 인체의 비례에서 자세히 다룬다. 여기서는 원근과 비례가 만나는 자리, 곧 그림 속 사람의 크기를 정하는 규칙을 본다. 바닥 위의 사람을 끌어 옮기고 눈높이를 바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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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은 눈높이: 같은 키의 사람들

사람의 발이나 지평선의 손잡이를 끈다
눈높이—
앞사람 대비 거리—
머리와 지평선—
해볼 것: ① "서서 본 눈"에서 세 사람을 앞뒤로 끈다. 키 170 cm인 사람들의 눈(머리 꼭대기보다 10 cm쯤 아래)이 어디에 서든 지평선 근처에 걸린다. ② "바닥 가까이"로 바꾼다. 사람들이 지평선 위로 우뚝 솟고, 멀리 있는 사람도 머리는 하늘에 있다. 아이의 눈으로 본 광장이다. "2층 창에서"는 반대로 모두가 지평선 아래로 내려간다. ③ "규칙 무시"를 켜고 뒷사람을 지평선 가까이 끌어 올린다. 화면 크기가 같은 뒷사람은 거인처럼 보인다. 그림 속 크기는 거리와 눈높이가 함께 정한다. (사람 키 170 cm, 아이 120 cm, 평평한 바닥, 그림 아래 가장자리가 바닥의 시작이라고 가정한 핀홀 투영.)

눈높이 규칙을 알면 그림 속에서 화가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또는 서 있다고 상상하게 했는지)가 보인다. 높은 제단 위에 걸릴 그림은 지평선을 낮게 잡아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관객과 맞추기도 했고, 벽화는 방 안 관객의 눈높이를 염두에 두고 작도하기도 했다. 원근법은 그림 속 공간만이 아니라 그림 앞의 공간, 곧 관객의 자리까지 설계하는 도구였다.

템페라에서 유화로

그림 1과 그림 2의 차이에는 물감도 있다. 14~15세기 이탈리아 패널화의 주된 물감은 템페라(Tempera)였다. 안료 가루를 달걀노른자에 개어 쓰는 물감으로, 빨리 마르고 단단하며 무광에 가깝다. 빨리 마르기 때문에 색을 화면 위에서 섞어 문지르기 어렵고, 가는 붓으로 짧은 선을 촘촘히 겹쳐(해칭) 명암을 쌓는다. 14세기 말~15세기 초 피렌체의 화가 첸니노 첸니니(Cennino Cennini)의 『미술의 책』(Il libro dell'arte)은 패널을 준비하고 석고 바탕을 칠하고 금박을 붙이고 템페라를 쌓는 과정을 자세히 적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유화(Oil painting)는 안료를 아마인유 같은 건성유에 갠다. 기름은 천천히 마르고, 마른 뒤에는 투명한 막이 된다. 그래서 밝은 바탕 위에 색을 조금만 섞은 투명한 층을 여러 번 덮는 글레이즈(Glaze)가 가능해진다. 빛은 투명한 층들을 지나 밝은 바탕에서 반사되어 다시 층들을 지나 나온다. 지날 때마다 일부 색이 흡수되므로, 흰색이나 검정을 섞지 않고도 색이 깊고 어두워진다. 그림 2처럼 15세기 후반에는 템페라와 기름을 한 그림에 함께 쓰는 일도 흔했다. 아래에서 글레이즈를 한 겹씩 올리며, 같은 명도를 불투명한 물감 섞기로 맞춘 색과 비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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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레이즈를 한 겹씩: 투명한 층과 불투명한 섞기

글레이즈 L · C (OKLCH)—
같은 명도의 불투명 혼합 L · C—
채도 차이—
해볼 것: ① 붉은 레이크를 3겹 올린다. 명도 L 0.40에서 글레이즈의 채도는 0.16인데, 같은 명도를 불투명한 붉은 물감에 검정을 섞어 맞추면 채도가 그보다 낮다. 깊으면서도 맑은 어둠이 글레이즈의 장점이다. ② 1겹으로 줄인다. 이번에는 같은 명도를 내려면 흰색을 섞어야 하는데, 밝은 쪽에서는 오히려 흰색을 섞은 쪽의 채도가 조금 높다. 글레이즈의 장점은 어두운 쪽에서 나온다. ③ 8겹까지 올린다. 붉은 레이크는 L 0.24에서도 채도 0.10을 지키지만, 검정을 70% 섞어 같은 명도를 맞춘 쪽은 거의 회색이다. 울트라마린과 녹색은 검정만으로도 그 명도까지 내려가지 못한다. 대신 층이 두꺼울수록 바탕의 빛이 덜 돌아와 색이 무거워지므로, 화가들은 겹 수를 그림의 목적에 맞게 골랐다. (교육용 근사: 층의 투과율을 물감 반사 스펙트럼의 거듭제곱으로 두고 빛이 층을 두 번 지난다고 가정했다. 불투명 혼합은 이 책 엔진의 쿠벨카–뭉크 2상수 혼합이다. 실제 안료·기름·바탕과는 다르다.)

유화가 템페라를 단번에 대체한 것은 아니다. 템페라는 섬세한 선과 밝고 고른 색면에 강했고, 많은 화가가 밑칠은 템페라로, 마무리는 기름 글레이즈로 하는 식으로 둘을 섞었다. 바탕도 달라졌다. 16세기 베네치아 화가들은 나무판 대신 캔버스를 널리 썼고, 캔버스와 유화의 조합은 바로크(4장)를 거치며 서양 회화의 표준이 된다.

템페라처럼, 유화처럼 오늘날 화가들이 템페라를 다시 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섞지 말고 겹쳐라"다. 달걀 템페라는 몇 초 만에 손에 닿을 정도로 말라서, 팔레트에서 중간색을 만들어 칠하기보다 밝은 색 위에 어두운 색의 가는 선을 그물처럼 겹쳐 명암을 짓는다. 가까이서 보면 선이 보이고 몇 걸음 물러서면 매끈한 면으로 보인다. 반대로 유화 글레이즈는 한 겹을 올린 뒤 손에 묻지 않을 만큼 말리는 데 하루 이상 걸리므로, 몇 주에 걸쳐 층을 쌓는 계획이 필요하다. 수채 물감으로도 비슷한 차이를 볼 수 있다. 같은 색을 한 번에 진하게 칠한 칸과, 묽게 타서 마를 때마다 세 번 겹친 칸을 나란히 두면 겹친 칸이 더 맑다.

북유럽의 세밀함

같은 시기 알프스 북쪽, 지금의 벨기에 지역인 플랑드르의 화가들은 다른 길로 그림을 창문으로 만들었다.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와 그 뒤를 이은 화가들은 이탈리아식 수학적 작도보다 눈에 보이는 세부를 끝없이 쌓는 쪽을 택했다. 유화의 투명한 층으로 금속의 반사, 털가죽의 결, 유리와 보석의 빛을 그렸다.

반 에이크의 십자가 처형. 세로로 긴 화면 위쪽에 세 개의 십자가가 서 있고, 그 뒤로 도시와 푸르스름한 먼 산맥과 구름 낀 하늘이 펼쳐진다. 가운데는 말을 탄 병사와 군중이 빽빽하고, 맨 아래에는 푸른 옷의 성모와 슬퍼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림 5. 얀 반 에이크, 「십자가 처형; 최후의 심판」 중 왼쪽 폭, 1436~38년경. 높이 56.5 cm의 작은 판에 수십 명의 얼굴과 갑옷, 말의 장식, 먼 도시의 탑까지 그렸다. 십자가 사이로 보이는 산맥은 푸르고 옅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나무판에서 캔버스로 옮긴 유채.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두 폭 가운데 왼쪽 폭의 그림 면만 잘라 실었다.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페트뤼스 크리스튀스의 수도사 초상. 붉은 벽을 배경으로 흰 수도복을 입은 수염 난 남자가 4분의 3 측면으로 이쪽을 본다. 그림은 나뭇결무늬로 칠한 테두리 안에 있고, 아래 테두리 위에 작은 파리 한 마리가 앉아 있다.
그림 6. 페트뤼스 크리스튀스, 「카르투시오회 수도사의 초상」, 1446. 높이 29 cm. 아래쪽 칠한 테두리에 앉은 파리는 그림 속 공간이 아니라 우리 쪽 공간에 있는 것처럼 그려졌다. 그림이 창문이라면 파리는 창틀에 앉아 있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참나무판에 유채.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반 에이크가 유화를 발명했다? 바사리는 『미술가 열전』에서 반 에이크가 유화를 발명했다고 썼고, 이 이야기는 오래 정설처럼 전해졌다. 그러나 기름으로 안료를 개는 방법은 그보다 앞선 중세 문헌에도 나오고, 13~14세기 북유럽 작품에서도 쓰였다. 오늘날 연구자들은 반 에이크를 발명자가 아니라, 투명한 층을 정교하게 쌓는 기법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린 화가로 본다. "최초"라는 말은 미술사에서 특히 조심해서 써야 한다.

그림 5의 먼 산은 왜 푸르고 옅을까. ColorBook 6장과 DrawingBook의 풍경과 대기에서 본 대기 원근(Aerial perspective)이다. 멀리 있는 것일수록 그 사이 공기가 흩뜨린 하늘빛이 끼어들어 밝아지고, 푸르러지고, 대비가 줄어든다. 선 원근법이 크기로 거리를 만든다면 대기 원근은 색과 명암으로 거리를 만든다. 아래에서 그림 위의 두 표본 창을 끌어 가까운 곳과 먼 곳의 색을 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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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에이크의 먼 산: 가까운 곳과 먼 곳의 색 재기

그림 위의 두 창을 끈다
먼 곳 L* · 대비 · 색상—
가까운 곳 L* · 대비 · 색상—
차이—
해볼 것: ① "먼 산 · 앞 군중"에서 두 창의 평균 색을 비교한다. 먼 산은 L* 약 52로 앞 군중(약 27)보다 훨씬 밝고, 평균 색상이 청록(약 186°) 쪽이다. 앞 군중은 노랑–주황(약 49°) 쪽으로 따뜻하다. ② "도시 · 앞 군중"으로 바꾼다. 중간 거리의 도시는 명도가 군중과 비슷하고 색상도 그 사이에 있다. 대기 원근은 단계적으로 일어난다. "하늘 · 먼 산"에서는 먼 산(L* 약 52, 186°)이 하늘(약 62, 176°)과 명도도 색상도 가깝다. 먼 것일수록 하늘을 닮아 간다. ③ 창을 직접 끌어 하늘, 십자가의 몸, 성모의 푸른 옷에 대 본다. 성모의 옷은 가깝지만 푸르다. 색상만으로 거리를 판단할 수 없고, 명도·대비·색상이 함께 바뀌는지를 봐야 한다. (대비는 창 안 L*의 표준편차, 색상은 OKLab 평균의 색상각이다. 580년 가까이 된 그림의 바니시와 사진 조건 때문에 원래 색과 다르다.)

북유럽의 세밀함과 이탈리아의 작도는 서로를 배웠다. 플랑드르 유화는 15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크게 환영받았고, 이탈리아의 원근법은 뒤러(그림 4) 같은 북쪽 화가들이 열심히 공부했다. "이탈리아는 수학, 북유럽은 눈"이라는 대비는 이해를 돕는 단순화일 뿐이다.

스푸마토: 녹아드는 경계

르네상스 회화의 또 하나의 발명은 경계를 지우는 일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사물에 뚜렷한 윤곽선이 있다는 생각을 의심했다. 그의 노트에는 빛과 그림자가 선 없이 연기처럼 서로에게 스며들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 여러 번 나온다. 이렇게 밝음에서 어둠으로 경계를 느끼지 못할 만큼 서서히 옮겨 가는 기법을 스푸마토(Sfumato)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어로 "연기(fumo)처럼 사라진"이라는 뜻이다.

레오나르도의 성모 머리 소묘. 고개를 숙여 오른쪽 아래를 내려다보는 여인의 얼굴을 검은 초크와 붉은 초크로 그렸다. 얼굴의 명암은 부드럽게 번지고, 머리카락과 베일은 가볍게 스케치되어 있다.
그림 7. 레오나르도 다 빈치, 「오른쪽을 향한 4분의 3 측면의 성모 머리」, 1510~13. 눈꺼풀과 콧날, 뺨에서 턱으로 가는 면에 선이 거의 없다. 명암만으로 형태가 떠오른다. 루브르의 「성 안나와 성모자」를 위한 습작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검은 초크·목탄·붉은 초크.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스푸마토가 무엇을 바꾸는지 직접 본다. 아래 두 얼굴은 같은 빛, 같은 형태다. 왼쪽 층은 윤곽선과 또렷한 경계로, 오른쪽 층은 경계를 일정한 폭으로 녹여 그렸다. 가운데 경계선을 끌어 비교하고, 녹이는 폭을 바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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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곽선과 스푸마토

경계 폭—
뺨 가장자리의 명도 낙차(2 px 사이)—
해볼 것: ① 폭 6%에서 경계선을 좌우로 끈다. 오른쪽 얼굴은 윤곽선이 없어도 형태가 읽히고, 눈두덩과 코 밑 그림자가 공기 속에 잠긴 듯 부드럽다. ② 폭을 0으로 내리면 두 층의 차이는 윤곽선뿐이다. 선이 형태를 가두는 느낌과 명암이 형태를 띄우는 느낌을 비교한다. ③ 폭을 30%까지 올린다. 눈과 입이 사라지고 얼굴이 흐린 얼룩이 된다. 스푸마토는 모든 것을 흐리는 기술이 아니라, 어디를 얼마나 녹일지 고르는 기술이다. 레오나르도도 눈동자와 입꼬리는 상대적으로 또렷하게 남겼다. (구 모양 머리에 한 방향 빛을 둔 램버트 반사와 상자 흐림 두 번으로 만든 단순 모델이다. 실제 스푸마토는 얇은 층을 여러 번 겹쳐 얻는다.)

스푸마토는 대기 원근과 같은 관찰에서 나왔다. 둘 다 "우리가 보는 것은 물체 그 자체가 아니라 물체와 눈 사이를 지나온 빛"이라는 생각이다. 윤곽선을 포기한 대가로 형태는 명암이 지탱해야 했고, 이 방향은 다음 세기의 빛과 어둠의 그림(4장)으로 이어진다.

규칙이 깨지는 순간

보티첼리의 성 제노비우스의 세 기적. 가로로 긴 화면 왼쪽에 회색 신전 같은 건물, 오른쪽에 창이 줄지어 난 분홍빛 건물이 있고, 가운데로 멀리 언덕과 하늘이 보인다. 앞쪽 광장에는 세 무리의 사람들이 쓰러진 사람과 관 둘레에 모여 있다.
그림 8. 산드로 보티첼리, 「성 제노비우스의 세 기적」, 1500년경. 피렌체의 주교 성인 제노비우스가 죽은 이들을 되살린 세 이야기가 한 광장에 왼쪽부터 차례로 놓였다. 같은 성인이 한 화면에 여러 번 나온다. 시간이 다른 장면들이 한 원근 공간 안에 같이 있는 것이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나무판에 템페라.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사진 가장자리의 검은 테두리를 잘라 냈다.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그림 8은 원근법으로 한 순간, 한 자리에서 본 광장을 짓고는 그 안에 서로 다른 시간의 장면 세 개를 넣었다. 이렇게 한 화면에 이야기의 여러 순간을 늘어놓는 방식을 연속 서술(Continuous narrative)이라고 한다. 엄밀한 "창문"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관객은 별 어려움 없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야기를 읽는다. 원근법은 이야기를 담는 무대였지, 이야기보다 앞선 규칙이 아니었다.

규칙은 다른 방식으로도 굽혀졌다. 앞 시뮬레이터에서 본 교점의 흩어짐, 가장자리 인물을 덜 늘린 것, 주인공을 원근 규칙보다 크게 그린 것 모두 화가의 선택일 수 있다. 그리고 원근법이 없는 그림이 덜 발전한 그림인 것도 아니다. 그림 1의 금빛 바탕은 성모를 우리 세계 바깥의 존재로 보이게 하려는 목적에 맞는 방법이었고, 같은 시기 중국과 한국의 산수화는 한 시점에 묶이지 않고 화면 속을 거닐게 하는 공간을 발전시켰다(10장). 원근법은 15세기 유럽이 "그림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내놓은 한 가지 답이다. 그 답이 강력했기 때문에 이후 수백 년 동안 서양 미술의 기본값이 되었고, 19세기 말 화가들이 그 기본값을 다시 의심하기 시작한다(9장).

르네상스 화면 짓기

마지막으로 이 장의 도구를 한 무대에 모은다. 양쪽 건물 사이의 광장과 뒷벽, 세 사람(어른 둘과 아이 하나)이 있다. 소실점을 끌어 시점을 정하고, 보는 거리와 눈높이를 정한 뒤, 사람들을 광장 위에 배치한다. "소실점 흩기"를 켜면 보티첼리의 그림처럼 양쪽 건물의 소실점이 조금씩 어긋난다.

SIMULATOR

원근 무대 설계기

소실점과 사람을 끈다
가로 화각—
어른의 머리와 지평선—
가장 먼 사람 / 가장 가까운 사람—
해볼 것: ① 눈높이 160 cm, 거리 1.1로 두고 세 사람을 광장 여기저기에 놓는다. 어른의 머리는 늘 지평선 언저리에, 아이의 머리는 그 아래에 있다. 그림 2의 계단 위 사람들을 떠올린다. ② 소실점을 위로 끌고 눈높이를 450 cm로 올린다. 2층 창에서 내려다본 광장이 된다. 거리를 0.4로 줄이면 양쪽 건물이 화면 밖으로 쏟아지듯 벌어지고 앞사람이 짧고 넓적해진다. 화각이 100°를 넘으면 한 장의 그림으로 보기 힘들다. ③ "소실점 흩기"를 켠다. 화면 높이의 4%씩 어긋난 건물은 흑백으로 봐도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사람 눈은 원근의 작은 어긋남에 너그럽다. 대신 사람의 크기를 규칙에서 벗어나게 그리면 곧바로 눈에 띈다(3절의 "규칙 무시"). (핀홀 투영, 평평한 바닥, 어른 170 cm·아이 120 cm. 건물 폭과 깊이는 그림 폭에 맞춘 무대 크기다.)

르네상스 화가의 작업 순서도 이와 비슷했다. 먼저 지평선과 소실점을 정하고, 바닥과 건물을 작도하고, 인물의 자리와 크기를 그 위에 정한다. 그다음 물감으로 넘어가 템페라든 유화든 층을 쌓는다. 작도는 출발점이었고, 화가의 눈은 마지막까지 그 작도를 고쳤다.

작은 칸에 먼저 작도하기 큰 그림을 원근으로 짤 때 화가들은 작은 종이에 지평선과 소실점, 바닥 격자를 먼저 그리고, 그 위에 인물 자리를 표시한 뒤 격자를 큰 화면으로 옮겼다. 르네상스 패널과 벽화에서 밑그림의 격자선이나 긁어 낸 직교선이 발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늘날 무대 미술가와 일러스트레이터도 같은 순서를 쓴다. 한도경의 요령은 "소실점은 그림 밖에 두지 마라, 거리점은 그림 안에 두지 마라"다. 소실점이 화면 밖에 있으면 관객의 눈이 갈 곳을 잃고, 거리점이 화면 안에 들어오면 화각이 지나치게 넓어져 가장자리가 일그러진다.

그림 읽기 모임 노트

CASE 서윤그림 읽기 모임 · 2회차 · 3장

소실점은 한 점이 아니라 작은 원이었다

2회차(2027년 9월 11일, 토요일)의 주제는 원근법이다. 서윤의 처음 계획은 소실점의 원리를 슬라이드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한도경은 "설명은 5분이면 끝나. 사람들이 자로 직접 그어 보게 해"라고 했다. 둘은 90분 가운데 25분을 활동에 쓰기로 하고, 대상 그림으로 보티첼리의 「성 제노비우스의 세 기적」을 골랐다. 건물의 선이 양쪽에 있고, 이야기도 있어서 선을 긋다 지루해질 틈이 없다.

서윤은 이 장의 시뮬레이터에서 선 네 개(왼쪽 건물 옆벽 둘, 오른쪽 바닥 줄무늬 둘)로 교점 여섯 개를 구했다. 가장 먼 두 교점은 1600 px 폭 사진에서 124 px 떨어져 있었다. 그림을 A4 가로에 폭 270 mm로 뽑으면 약 21 mm다. 그런데 그 먼 교점 하나는 같은 벽의 두 선끼리 만든 것이었다. 그것을 빼면 나머지 다섯 교점은 51 px, 인쇄본에서 약 9 mm 안에 모였다. 교점들의 평균 높이, 곧 지평선은 그림 위에서 약 42% 자리였다. 서윤은 이 결과를 활동지의 규칙으로 바꿨다. "한쪽 벽에서 두 개, 반대쪽 벽이나 바닥에서 두 개."

예행연습에서 서윤이 그은 선은 연필이 굵어 교점이 더 흩어졌다. 도경은 종이에 직접 긋지 말고 투명 필름을 대고 가는 유성펜을 쓰자고 했다. 그러면 같은 인쇄본을 다음 사람도 쓸 수 있고, 조마다 필름을 겹쳐 비교할 수도 있다. 대학생 단골은 미리 활동지를 보고 질문을 남겼다. "원근이 정확할수록 더 좋은 그림인가요?" 도경은 그 질문을 활동지 마지막 칸에 그대로 옮겨 적자고 했다. "교점이 9 mm 흩어진 이 그림은 실패작일까?"를 함께 묻기 위해서다.

순서그림읽기 카드의 한 줄(색 · 구도 · 기법)
1두초, 「성모자」(비교용, 5분)금빛 바탕 · 깊이 대신 난간 하나 · 템페라와 금박
2프라 카르네발레, 「성모의 탄생」밝은 대리석과 푸른 옷 · 안쪽 방으로 모이는 건물 선 · 템페라와 유채
3보티첼리, 「성 제노비우스의 세 기적」(활동지)분홍 바닥과 회색 벽 · 지평선 약 42%, 세 장면이 한 광장에 · 나무판에 템페라
4반 에이크, 「십자가 처형」푸르고 옅은 먼 산 · 위아래로 쌓인 군중 · 투명한 유채 층
5레오나르도, 「성모 머리」 소묘초크의 붉은 기와 검정 · 숙인 얼굴의 사선 · 선 없는 명암(스푸마토)
이 장에서 정한 것2회차 그림 다섯 점(위 표)과 "소실점 찾기 활동지": 보티첼리 그림을 A4 가로 폭 270 mm 컬러 인쇄, 2인 1조(6조), 투명 필름 + 가는 유성펜 + 30 cm 자. 순서는 ① 화면 안쪽으로 들어가는 선 4개 고르기(한쪽 벽 2, 반대쪽 벽이나 바닥 2, 그림 면과 나란한 가로선은 고르지 않는다) ② 연장해 교점 표시 ③ 교점을 감싸는 가장 작은 원의 지름을 mm로 적기(이 책 기준 약 9 mm, 같은 벽 선끼리의 교점까지 넣으면 약 21 mm) ④ 원의 중심을 지나는 지평선을 긋고 인물들의 머리와 비교 ⑤ 질문 칸: "교점이 흩어진 이 그림은 실패작일까?" 활동 25분, 조별 필름을 겹쳐 보는 정리 10분.
아직 남은 문제원근법을 배운 날 참가자들이 원근이 없는 그림을 "틀린 그림"으로 보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이어 갈까. 이번 회차의 그림은 모두 밝은 낮의 화면이었다.
다음 단계4장: 3회차, 빛과 어둠의 그림.

핵심 정리

  1. 선 원근법은 한 눈, 고정된 시점, 평평한 그림 면을 가정하고 장면을 그림 면에 투영한다. 그림 속 크기는 거리에 반비례하고(\(x' = fX/Z\)), 화면 안쪽으로 뻗는 평행선은 소실점에 모인다.
  2. 정사각형 타일의 대각선은 거리점에 모인다. 거리점까지의 거리가 곧 그림을 바로 볼 거리이며, 너무 짧으면 가장자리가 늘어나고 너무 길면 바닥이 납작해진다.
  3. 실제 그림 위에서 소실선을 연장하면 교점은 작은 원으로 흩어진다. 기울기가 비슷한 선끼리의 교점은 불안정하므로 서로 다른 면의 선을 고른다.
  4. 지평선은 보는 사람의 눈높이다. 서서 본 광장에서는 같은 키 사람들의 눈이 거리와 상관없이 지평선 근처에 걸린다.
  5. 템페라는 빨리 말라 선을 겹쳐 명암을 쌓고, 유화는 투명한 글레이즈 층으로 흰색이나 검정을 섞지 않고도 깊은 색을 낸다. 반 에이크는 유화의 발명자가 아니라 그 기법을 정교하게 끌어올린 화가다.
  6. 대기 원근(먼 것이 밝고 푸르고 대비가 낮다)과 스푸마토(경계를 녹이는 명암)는 크기가 아니라 빛으로 거리를 만든다.
  7. 원근법은 이야기를 위한 무대였고 화가들은 그것을 고쳐 썼다. 원근법이 없는 그림은 덜 발전한 그림이 아니라 다른 목적의 그림이다.

확인 퀴즈

1. 알베르티의 방법으로 바닥 타일을 작도했더니 맨 앞줄 타일이 화면에서 거의 정사각형만큼 깊어 보이고 양옆 타일이 크게 벌어져 바닥이 앞으로 쏟아지는 듯하다. 가장 알맞은 원인은?

거리점이 소실점에 가까울수록, 곧 보는 거리가 짧을수록 앞줄 타일이 깊게 늘어난다. 이 책의 모델에서 거리를 그림 폭의 0.3배로 줄이면 화각이 118°가 되고, 앞줄 타일의 화면 속 깊이가 폭의 0.88배(거리 1.2배일 때는 0.28배)로 늘어난다. 소실점의 위치나 타일 개수, 물감 종류는 이 현상의 원인이 아니다.

2. 평평한 광장을 서 있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원근법으로 그렸다. 광장 여기저기에 선 같은 키의 어른들의 머리는 어디에 놓이는가?

지평선은 보는 사람의 눈높이다. 같은 높이에 있는 눈들은 거리와 상관없이 그 눈높이 면 위에 있으므로 그림에서 지평선에 걸린다(눈은 머리 꼭대기보다 조금 아래이므로 머리는 지평선 바로 위). 거리에 따라 바뀌는 것은 발의 위치와 몸 전체의 크기다.

3. 같은 어두운 붉은색을 낼 때, 유화 글레이즈가 불투명한 붉은 물감에 검정을 섞는 것보다 맑고 선명하게 보이는 까닭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글레이즈는 층을 지날 때마다 그 색이 아닌 빛을 걸러 내며 어두워진다. 검정을 섞으면 모든 파장을 고르게 흡수해 명도와 함께 채도도 떨어진다. 이 책의 모델에서 붉은 레이크 3겹(L 0.40)의 채도는 같은 명도로 맞춘 불투명 혼합보다 높다. 기름이 빛을 내지는 않는다.

4. 보티첼리의 그림에서 건물과 바닥의 선을 연장했더니 교점이 한 점이 아니라 지름 수 mm의 원 안에 흩어졌다. 가장 알맞은 해석은?

대부분의 교점은 가운데 풍경 근처의 작은 범위에 모인다. 원근법을 알고 작도했다는 뜻이다. 남은 흩어짐은 붓질과 수정, 사진 왜곡, 선을 긋는 사람의 오차가 섞인 결과다. 3점 투시는 수직선까지 모이는 경우를 말하며 이 그림과 관계없다. 그림은 이야기를 읽히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