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4

바로크: 빛과 어둠

정전이 된 밤, 촛불 하나를 켜면 방이 달라진다. 촛불 가까운 얼굴은 금빛으로 떠오르고, 방의 구석과 천장은 사라지며, 무엇을 볼지는 빛이 정한다. 1600년 무렵 로마에서 카라바조라는 화가가 이 경험을 그림의 중심에 놓았다. 인물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방향의 강한 빛을 받고, 장면은 무대 위의 한 순간처럼 터져 나온다. 이 장은 그 빛과 어둠을 재 본다. 어둠이 화면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지, 빛이 거리에 따라 얼마나 빨리 줄어드는지, 사선이 어떻게 움직임을 만드는지, 그리고 렘브란트가 빛을 물감의 두께로 어떻게 쌓았는지.

어둠 속 한 줄기 빛

아래 그림은 카라바조가 세상을 떠난 1610년에 그린 「성 베드로의 부인」이다. 예수가 붙잡혀 간 밤, 제자 베드로가 불가에서 "너도 그 사람과 한패지?"라는 물음에 세 번 그를 모른다고 한 이야기의 한 장면이다. 왼쪽의 하녀가 두 손가락으로 베드로를 가리키고, 투구를 쓴 병사의 손가락도 그를 향한다. 베드로는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부인한다. 배경은 아무것도 없는 어둠이고, 빛은 왼쪽 위 어딘가에서 세 얼굴과 손에만 떨어진다.

카라바조의 성 베드로의 부인. 거의 검은 어둠 속에 세 인물이 있다. 왼쪽에 투구를 쓴 병사의 옆모습, 가운데에 흰 두건을 쓴 여인이 손가락으로 오른쪽을 가리키고, 오른쪽에는 노란 겉옷의 대머리 노인이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있다. 빛은 얼굴과 손에만 닿는다.
그림 1. 카라바조, 「성 베드로의 부인」, 1610. 가리키는 손가락 두 개와 자기를 가리키는 손 두 개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배경을 그리지 않은 어둠이 이 손짓을 무대 조명처럼 드러낸다. 사진으로는 대부분이 검게 보이지만, 원작 앞에서는 어둠 속에서도 옷의 주름이 조금 더 읽힌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캔버스에 유채.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17세기 유럽 미술을 흔히 바로크(Baroque)라고 부른다. 포르투갈어로 "일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말에서 왔다는 설명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어원은 확실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18세기 비평가들이 이 말을 "지나치게 화려하고 규칙에서 벗어난"이라는 낮춤말로 썼고, 19세기 말에야 한 시대의 이름으로 중립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르네상스(3장)가 질서와 균형을 추구했다면, 바로크는 운동과 감정, 빛의 극적인 대비로 관객을 장면 속으로 끌어들였다. 가톨릭 교회가 종교개혁에 맞서 신앙을 생생하게 전하는 그림을 원했던 것, 궁정과 도시의 새 후원자들이 강렬한 그림을 찾았던 것이 그 배경으로 꼽힌다.

빛과 어둠의 대비로 형태와 극을 만드는 방법을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라고 한다. 이탈리아어로 "밝음-어둠"이다. 레오나르도의 스푸마토(3장)도 넓은 뜻의 키아로스쿠로다. 그중에서도 화면 대부분을 어둠에 잠기게 하고 좁은 빛으로 주인공만 드러내는 극단적인 방식을 테네브리즘(Tenebrism)이라고 부른다. "어두운"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tenebroso에서 온 말이다. 그림 1은 테네브리즘의 한 극이다.

빛의 방향과 형태

한 방향에서 오는 빛은 형태를 두 가지 방식으로 바꾼다. 빛을 받는 면은 떠오르고, 빛을 등진 면은 어둠에 녹는다. 둘 사이의 경계, 곧 빛이 스치듯 지나는 선(명암 경계선)이 형태의 둥근 정도를 말해 준다. DrawingBook의 명암의 단계에서 본 원리다. 바로크 화가들은 여기에 하나를 더했다. 주변을 채우는 은은한 빛(주변광)을 거의 없애는 것이다. 아래에서 광원을 끌고 주변광을 줄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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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향의 빛과 주변광: 형태가 떠오르고 사라지는 곳

빛(노란 점)을 끈다
구에서 빛을 받는 면—
배경에 녹은 윤곽—
화면에서 L* 20 아래—
해볼 것: ① 주변광 30%에서 빛을 구의 왼쪽 위로 끈다. 그림자 쪽에도 형태가 남아 있고 윤곽은 거의 다 보인다. 르네상스 그림의 고른 빛이다. ② 주변광을 0으로 내린다. 빛을 등진 쪽 윤곽이 배경에 녹아 사라지고(배경에 녹은 윤곽이 크게 늘어난다), 남은 밝은 면만으로 구를 읽어야 한다. 그래도 둥글게 보인다. 관객의 눈이 사라진 쪽을 채우기 때문이다. ③ 빛을 구 바로 뒤로 끌면 가장자리만 빛나는 역광이, 정면 가까이 끌면 그림자가 거의 없는 납작한 형태가 된다. 카라바조는 대개 옆 위에서 오는 빛을 골랐다. (점광원, 거리 제곱 감쇠, 램버트 반사, 고정된 카메라의 단순한 광선 추적 모델. 반사광과 공기의 산란은 빠져 있다.)

주변광을 없애면 윤곽의 일부가 사라진다. 이것을 화가들은 "잃어버린 가장자리"라고 부르며 일부러 쓴다. 모든 윤곽을 다 보여 주면 그림이 오려 붙인 듯 딱딱해지고, 일부를 어둠에 맡기면 관객의 상상이 형태를 완성한다. 테네브리즘은 단지 어두운 그림이 아니라 무엇을 보여 주지 않을지 정한 그림이다.

테네브리즘: 어둠의 넓이

카라바조는 처음부터 이렇게 어둡게 그리지 않았다. 아래 왼쪽의 「음악가들」(1597)은 그가 로마에서 이름을 얻기 시작할 무렵의 그림이다. 소년들의 살결과 흰 천이 화면을 넓게 차지하고 배경도 어둡지만 칠흑은 아니다. 그의 어둠은 그 뒤 십여 년 동안 점점 넓어졌다. 그리고 그의 그림을 본 유럽 곳곳의 화가들, 이른바 카라바지스티(Caravaggisti)가 이 방식을 퍼뜨렸다. 오른쪽은 로마에서 활동한 프랑스 화가 발랑탱 드 불로뉴의 「류트 연주자」다.

카라바조의 음악가들. 흰 천과 붉은 천을 두른 네 소년이 빽빽이 모여 있다. 앞의 소년은 류트를 조율하고, 뒤에서 한 소년은 악보를 들여다보며, 왼쪽 뒤 소년은 날개를 단 큐피드처럼 포도를 딴다.
그림 2. 카라바조, 「음악가들」, 1597. 빛은 이미 한 방향(왼쪽 위)이지만, 화면의 상당 부분이 밝은 살결과 천이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캔버스에 유채.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발랑탱 드 불로뉴의 류트 연주자. 어두운 배경 앞에 깃털 달린 검은 모자를 쓴 젊은이가 다리를 꼬고 앉아 류트를 연주하며 이쪽을 본다. 붉은 소매와 갑옷 가슴판, 류트의 앞판에 빛이 떨어진다.
그림 3. 발랑탱 드 불로뉴, 「류트 연주자」, 1625~26년경. 카라바조가 죽고 15년쯤 뒤의 그림. 같은 주제(음악 하는 젊은이)인데 어둠의 넓이가 전혀 다르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캔버스에 유채.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어둠이 넓어졌다"를 숫자로 확인한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그림 사진의 모든 점의 명도(L*)를 재어 분포(히스토그램)를 그리고, 기준 명도보다 어두운 점들을 그림 위에 파랗게 칠한다. 히스토그램 위의 손잡이를 끌어 기준을 바꾼다. 비교를 위해 앞 장의 프라 카르네발레(1467)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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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넓이: 명도 분포 비교

히스토그램의 기준선을 끈다
기준보다 어두운 넓이—
평균 명도—
가장 밝은 2%의 경계—
해볼 것: ① 기준 L* 20에서 그림을 차례로 누른다. 카르네발레는 3%, 카라바조의 1597년 그림은 약 48%, 1610년 그림은 약 97%가 기준 아래다. 발랑탱(약 89%)과 드 라 투르(약 86%)도 그 뒤를 잇는다. ② 카라바조 1610을 보며 "가장 밝은 2%"를 확인한다. L* 25 남짓이다. 이 사진에서 가장 밝은 얼굴조차 중간 회색보다 어둡다. 화가는 명도 범위의 아래쪽 4분의 1로 빛을 만들었다. ③ 기준선을 L* 5~10까지 내려 본다. 어둠 속에도 단계가 있다. 카라바조 1610의 어둠은 거의 한 덩어리지만, 렘브란트는 L* 3~15 사이에 옷과 배경의 단계를 남겼다. (명도는 사진 파일의 sRGB 값에서 계산한 L*다. 오래된 그림은 바니시가 누렇게 변하고 어두운 바탕칠이 더 어두워진 경우가 있으며, 어두운 그림일수록 촬영과 화면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사진 속 어둠은 원작의 어둠이 아니다 어두운 그림은 사진으로 가장 왜곡되기 쉬운 그림이다. 카메라는 어두운 영역의 미세한 차이를 잘 담지 못하고, 웹용 이미지로 줄이고 압축하면 어둠 속 단계가 한 덩어리로 뭉친다. 게다가 400년 된 그림은 원래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니스(바니시)가 누렇게 변하고, 일부 그림은 어두운 바탕칠이 세월이 지나며 위 물감층을 통해 비쳐 보여 처음보다 더 어두워졌다고 보고된다. 위 시뮬레이터의 숫자는 "이 사진 파일에서 이렇다"이지 "카라바조가 이렇게 칠했다"가 아니다. 그래도 같은 소장처의 사진끼리 비교하면 경향은 분명히 읽힌다.

그림 속 광원: 촛불과 창

카라바조의 빛은 대개 화면 밖, 왼쪽 위의 보이지 않는 창이나 등불에서 온다. 프랑스 로렌 지방의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광원을 화면 안에 그렸다. 아래 그림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거울 앞 촛불을 바라본다. 빛의 출처가 보이니, 우리는 빛이 얼굴과 손과 무릎 위 해골에 어떻게 닿고 어디서 끊기는지를 따라갈 수 있다.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어두운 방에서 흰 블라우스와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 탁자에 앉아 턱을 괴고, 금박 액자의 거울에 비친 촛불을 바라본다. 무릎 위에 해골을 얹고 있고, 탁자 위에는 책과 진주 목걸이가 있다.
그림 4. 조르주 드 라 투르,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1640년경. 광원은 거울 앞의 촛불 하나다. 촛불 가까운 이마와 손은 밝고, 멀어질수록 빛이 빠르게 줄어 등과 방은 어둠에 잠긴다. 거울 속에는 촛불이 한 번 더 비친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캔버스에 유채.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촛불 그림의 빛이 유난히 "가까워" 보이는 데는 물리 법칙이 있다. 작은 광원에서 나온 빛은 사방으로 퍼지므로, 거리가 두 배가 되면 같은 빛이 네 배 넓이에 흩어진다. 그래서 면이 받는 빛의 세기(조도)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E = \frac{I\cos\theta}{d^{2}}$$
\(E\): 면이 받는 빛(조도), \(I\): 광원의 세기, \(d\): 광원까지의 거리, \(\theta\): 빛이 면에 들어오는 각도(정면이면 0°). 작은 광원에만 맞는 식이다. 창처럼 넓은 광원은 가까이에서 이보다 훨씬 천천히 줄어든다.

이 식에서 중요한 것은 절대 거리가 아니라 거리의 비다. 촛불에서 30 cm 떨어진 얼굴과 60 cm 떨어진 등은 빛이 네 배 차이 나지만, 3 m 떨어진 창에서 보면 같은 30 cm 차이가 거의 아무것도 아니다. 아래에서 광원을 앞뒤로 옮기며 앞·가운데·뒤 세 물체가 받는 빛을 비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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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거리에 따라 얼마나 줄어드나

광원을 좌우로 끈다
앞 : 가운데 : 뒤—
앞과 뒤의 차이(스톱)—
해볼 것: ① 작은 광원을 앞 물체에서 60 cm에 둔다. 30 cm 뒤의 물체(90 cm)는 앞의 44%, 60 cm 뒤의 물체(120 cm)는 25%의 빛만 받는다. 뒤 물체까지 2스톱(빛이 4분의 1)이 떨어진다. ② 광원을 15 cm까지 바짝 붙인다. 뒤 물체는 앞의 4%로, 거의 어둠이다. 드 라 투르의 촛불이다. ③ 광원을 300 cm로 떨어뜨리면 세 물체의 차이가 0.5스톱 남짓으로 줄어든다. ④ "넓은 창"으로 바꾸면 가까이에서도 감쇠가 완만하다. 같은 60 cm에서 앞과 뒤의 차이가 2스톱에서 약 1.5스톱으로 준다. 페르메이르 같은 화가들의 창가 그림이 부드러운 이유 중 하나다(5장). (작은 광원은 역제곱 법칙, 넓은 창은 축 위의 원판 광원 공식 \(E \propto 1 - d/\sqrt{d^2+R^2}\)으로 계산했다. 물체는 빛을 정면으로 받는다고 가정했다.)

1스톱은 사진에서 빛이 절반이 되는 단위다. 사람 눈은 한 장면 안에서 꽤 넓은 범위를 보지만, 그림과 사진은 그 범위를 종이와 물감의 좁은 명도 범위에 담아야 한다. 촛불 그림의 화가는 앞 얼굴과 뒤 벽 사이의 몇 스톱을 어디까지 살리고 어디부터 어둠으로 묶을지 정해야 했다. 드 라 투르는 묶는 쪽을 택했다.

사선과 운동

바로크의 또 다른 표지는 사선이다. 르네상스 그림의 인물과 건물이 수평과 수직의 안정된 틀 안에 서 있었다면, 바로크의 인물은 기울고, 뻗고, 쓰러진다. 플랑드르의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비너스와 아도니스」에서 사냥을 떠나려는 아도니스는 오른쪽으로 몸을 내밀고, 그를 붙잡는 비너스는 반대쪽으로 기운다. 두 몸이 만드는 두 사선이 붙잡음과 떠남의 긴장을 만든다. 로마에서 태어나 피렌체·베네치아·나폴리에서 활동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의 「아하수에로 왕 앞의 에스더」에서는 왕 앞에서 기절하는 에스더가 뒤로 쓰러지고, 왕은 놀라 몸을 일으킨다. 두 사람 사이의 빈 바닥이 그 순간의 거리다.

루벤스의 비너스와 아도니스. 붉은 옷을 걸친 근육질의 아도니스가 창을 들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고, 바위에 앉은 나체의 비너스가 그의 팔을 붙잡는다. 아기 큐피드가 아도니스의 다리에 매달리고, 왼쪽에는 사냥개들이 있다.
그림 5. 페테르 파울 루벤스, 「비너스와 아도니스」, 1630년대 중반으로 추정. 아도니스의 몸은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비너스의 몸은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로 기운다. 밝은 살결과 붉은 천, 푸른 하늘. 바로크가 늘 어두운 것은 아니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캔버스에 유채(덧댄 띠 포함).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아하수에로 왕 앞의 에스더. 왼쪽에 금빛 드레스의 에스더가 두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뒤로 쓰러지고, 오른쪽 계단 위 왕좌에서 화려한 옷의 젊은 왕이 놀라 몸을 일으킨다. 두 사람 사이에 어두운 바닥이 비어 있다.
그림 6.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아하수에로 왕 앞의 에스더」, 1620년대. 쓰러지는 에스더와 일어서는 왕, 서로 반대로 기운 두 사선이 넓은 빈 공간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캔버스에 유채.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사람이 고른 주축선만으로는 "사선이 많다"를 확인하기 어렵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두 가지를 함께 보여 준다. 그림 위의 선 두 개는 이 책이 고른 주축이다(손잡이를 끌어 바꿀 수 있다). 오른쪽 장미 모양 그래프는 그림 픽셀에서 계산한 모든 테두리의 방향 분포다. 밝기가 바뀌는 곳마다 그 경계가 어느 방향으로 뻗는지 재서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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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 읽기: 주축선과 테두리 방향 분포

주축선의 끝 손잡이를 끈다
주축선의 기울기—
가로·세로 테두리(±15°)—
사선 테두리(30~60°)—
해볼 것: ① 루벤스에서 장미 그래프를 본다. 가로·세로 테두리가 약 37%, 사선이 약 32%다. 방향이 아무렇게나 흩어졌다면 둘 다 33%이니, 몸과 천과 나무가 어느 방향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흩어진 셈이다. ② 카르네발레로 바꾼다. 기둥과 처마 때문에 가로·세로가 약 60%로 크게 늘고 사선은 19%로 준다. 르네상스 건축 무대의 안정감이 숫자로 나온다. ③ 젠틸레스키는 그 사이(약 42%, 29%)다. 오른쪽의 계단과 기둥은 수평·수직인데 인물들이 기운다. 장면 전체가 아니라 인물의 몸이 사선을 맡았다. 주축선 손잡이를 끌어 자기가 보는 축을 그려 보고 각도를 비교한다. (테두리 방향은 가로 240 px로 줄인 사진의 밝기 기울기에서 계산하고 기울기의 크기로 가중했다. 붓 자국, 캔버스 결, 사진의 압축 무늬도 테두리로 잡힌다. 주축선은 이 책이 고른 선이다.)

사선은 방향이 있는 힘으로 읽힌다. 수평선은 쉬고, 수직선은 서 있으며, 사선은 넘어지거나 일어서는 중이다. CompositionBook의 점·선·면과 시선의 흐름에서 다룬 원리를 바로크 화가들은 이야기의 가장 극적인 순간, 곧 움직임이 멈추기 직전의 한 박자를 고르는 데 썼다. 그림 1의 손가락들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이어지는 시선의 길이다.

렘브란트: 빛을 쌓다

네덜란드의 렘브란트 판 레인(Rembrandt van Rijn)은 카라바조를 직접 보지 못했지만, 위트레흐트의 카라바지스티를 거쳐 빛과 어둠의 그림을 익혔다. 그리고 그것을 전혀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렘브란트의 어둠은 칠흑이 아니라 갈색과 금색이 겹겹이 스민 깊은 공간이고, 빛은 극적인 순간보다 사람의 내면을 비춘다.

렘브란트의 호메로스 흉상을 바라보는 아리스토텔레스. 어두운 배경 속에서 검은 모자와 넓은 흰 소매 옷을 입은 수염 난 남자가 오른손을 하얀 대리석 흉상의 머리에 얹고 있다. 금목걸이가 어깨에서 허리로 늘어져 있다.
그림 7. 렘브란트 판 레인, 「호메로스 흉상을 바라보는 아리스토텔레스」, 1653. 빛은 얼굴과 흰 소매, 흉상, 금목걸이에 머문다. 금목걸이의 반짝임은 물감을 두껍게 올려 실제로 튀어나온 자리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캔버스에 유채.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렘브란트의 1660년 자화상. 짙은 갈색 배경 앞에 검은 베레모를 쓰고 갈색 옷을 입은 중년의 렘브란트가 4분의 3 측면으로 이쪽을 본다. 이마와 코, 뺨에 빛이 떨어지고 곱슬한 회색 머리가 모자 아래로 나와 있다.
그림 8. 렘브란트 판 레인, 「자화상」, 1660. 쉰네 살의 얼굴. 이마와 코끝의 밝은 곳은 물감이 두껍게 덩어리져 있고, 그림자 쪽은 얇고 투명하게 칠했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캔버스에 유채.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렘브란트의 밝은 곳은 물감 자체가 두껍다. 이렇게 물감을 두껍게 올려 붓 자국과 덩어리가 그대로 남게 칠하는 기법을 임파스토(Impasto)라고 한다. 두꺼운 물감은 색으로만 밝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튀어나와 그림 앞의 빛을 받고, 작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반대로 그림자 쪽은 얇고 투명한 글레이즈(3장)로 남겨 빛이 깊이 스며들게 했다. 밝은 곳은 두껍고 불투명하게, 어두운 곳은 얇고 투명하게. 이 대비가 렘브란트의 빛이 화면에서 떠오르는 이유 중 하나다. 아래에서 물감 표면에 비치는 빛의 각도를 바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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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파스토: 두꺼운 물감이 빛을 받는 법

빛이 오는 방향을 끈다
두꺼운 곳의 명도 요동(L* 표준편차)—
얇은 곳의 명도 요동—
해볼 것: ① 두께 5, 빛의 높이 35°에서 가운데 밝은 덩어리를 본다. 붓 자국의 등성이마다 작은 하이라이트와 그림자가 생겨 같은 색인데도 반짝인다. 둘레의 얇은 어두운 칠은 매끈하다. ② 빛의 높이를 10° 아래로 낮춘다(전시실에서 옆으로 스치는 빛, 이른바 사광). 붓 자국이 크게 부풀어 보이고 두꺼운 곳의 명도 요동이 커진다. 미술관의 보존 전문가들이 그림 표면을 조사할 때 쓰는 빛이다. ③ 빛을 85°(정면 위)로 올리면 요동이 거의 사라진다. 두께를 0으로 내리면 빛의 방향과 상관없이 매끈한 색면이다. 같은 색, 같은 그림도 걸린 방의 빛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붓 자국을 높이 지도로 만들고 그 기울기로 법선을 구해 램버트 반사를 계산한 모델. 실제 물감의 광택과 투명도는 빠져 있다.)

렘브란트의 빛은 무대 조명이라기보다 사람을 향한 빛이다. 그림 7의 철학자는 손을 시인의 흉상에 얹고 생각에 잠겼고, 그림 8의 화가는 꾸밈없이 우리를 본다. 같은 키아로스쿠로라도 카라바조가 사건의 순간을 비췄다면 렘브란트는 그 순간이 지난 뒤의 고요를 비췄다. 빛과 어둠은 기법이지만, 무엇을 비출지는 화가의 질문이다.

모든 바로크가 어둡지는 않다

"바로크는 어둡다"는 요약은 절반만 맞다. 그림 5의 루벤스는 밝은 하늘과 살결, 붉은 천으로 화면을 채웠다. 루벤스의 공방이 그린 거대한 제단화와 궁전 천장화는 빛으로 넘친다. 스페인의 벨라스케스, 로마의 천장 화가들, 네덜란드의 풍경화가들도 각기 다른 빛을 그렸다. 바로크를 묶는 것은 어둠 자체보다 관객을 장면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극적인 연출에 가깝다. 어둠은 그 연출의 한 방법이었다.

같은 17세기, 조선과 명·청의 화가들은 그림자를 그리지 않았다. 광원과 그림자로 입체를 만드는 일은 동아시아 회화의 목표가 아니었고, 먹의 농담과 여백이 공간과 분위기를 맡았다(10장, 11장). 서양식 음영법은 18세기 이후 선교사와 서적을 통해 동아시아에 알려지고 일부 화가들이 받아들였다. 그림자를 그리지 않은 그림을 "입체를 몰랐다"고 읽지 않는 것, 3장의 원근법과 같은 이야기다.

카라바조는 렌즈를 썼을까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는 2001년 책 『명화의 비밀』(Secret Knowledge)에서 카라바조를 비롯한 여러 화가가 렌즈나 오목 거울로 장면을 투영해 보며 그렸을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강한 한 방향의 빛, 모델의 일부가 흐릿해 보이는 곳, 왼손잡이 연주자 같은 단서를 들었다. 이 가설은 많은 미술사학자와 과학자의 반론을 받았고, 지금까지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분명한 것은 카라바조가 실제 모델을 앞에 두고 그렸다는 당시 기록, 그리고 일부 그림의 바탕에서 구도를 잡으려고 긁어 낸 선이 발견된다는 기술 조사 결과다. "어떻게 그렸는가"는 지금도 연구가 진행 중인 질문이다.

한 줄기 빛 정물 무대

마지막으로 이 장의 도구를 모아, 불을 끈 방에서 정물에 한 줄기 빛을 비추는 장면을 만든다. 탁자 위에 사과 둘, 흰 도자기 병, 책이 있다. 화면 위의 노란 점을 끌어 광원을 옮기고, 광원의 거리와 방 안의 주변광, 빛의 종류를 바꾼다. 결과는 오른쪽 아래 작은 흑백 판과 수치로 함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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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끈 방의 정물: 한 줄기 빛 설계기

빛(노란 점)을 끈다
화면에서 L* 20 아래—
앞 사과 → 병 빛의 차이—
밝은 곳 · 어두운 곳 L*(상위·하위 2%)—
해볼 것: ① "스탠드 + 검은 종이 통", 거리 60 cm, 주변광 2%에서 시작한다. 빛은 정물의 왼쪽 앞 위(좌우 40°, 높이 약 57°)에서 온다. 빛의 원뿔 밖은 어둠에 잠겨 화면의 약 80%가 L* 20 아래다. 앞 사과(60 cm)와 병(80 cm)의 빛 차이는 약 0.8스톱. 카라바조의 방이다. ② 거리를 200 cm로 늘린다. 원뿔이 넓어져 어둠이 20% 아래로 줄고, 사과와 병의 차이도 0.2스톱 남짓으로 준다. 같은 스탠드라도 가까이 둘수록 극적이다. ③ "창"으로 바꾸고 주변광을 25%로 올린다. 그림자가 부드러워지고 L* 20 아래의 어둠이 거의 사라진다. 르네상스와 네덜란드 실내화의 빛에 가깝다. ④ 노란 점을 화면 왼쪽이나 오른쪽 끝으로 끌면 빛이 정물 뒤로 돌아가 사과의 가장자리만 빛나는 역광이 된다. (노출은 앞 사과가 받는 빛이 늘 같도록 맞췄다. (점광원·원뿔 조명·면광원(4점 표본)과 거리 제곱 감쇠, 램버트 반사의 단순 광선 추적. 물체 크기는 cm 단위의 가상 정물이다.)

결국 테네브리즘은 세 가지 선택의 조합이다. 광원을 좁게(원뿔), 가깝게(거리의 비를 크게), 그리고 방을 어둡게(주변광 0). 하나만 바꿔도 장면의 성격이 달라진다. 화가는 물감으로, 사진가는 조명으로, 무대 연출가는 조명기로 같은 결정을 내린다.

정물 하나, 빛 세 가지 한도경의 수업에서 학생들은 같은 정물을 세 번 그린다. 형광등 아래에서 한 번, 불을 끄고 창의 빛으로 한 번, 창을 가리고 탁상 스탠드 하나로 한 번. 스탠드에는 검은 도화지를 말아 통을 씌워 빛이 퍼지지 않게 한다. 세 장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사과가 전혀 다른 그림이 된다. 요령은 둘이다. 스탠드 그림에서는 어둠 속 윤곽을 모두 그리고 싶은 마음을 참는다. 그리고 그림자 쪽의 어둠을 검정 물감 하나로 칠하지 말고, 갈색·짙은 녹색·짙은 남색을 섞어 어둠에도 색을 남긴다. 렘브란트의 어둠이 깊어 보이는 이유다.
휴대폰 손전등으로 키아로스쿠로 어두운 방에서 탁자 위에 사과나 컵 하나를 놓는다. 휴대폰 두 대를 쓰거나 스탠드를 쓴다. 하나는 손전등으로 정물의 왼쪽 위 45° 방향, 약 50 cm에서 비추고, 다른 하나로 사진을 찍는다. 이어서 손전등을 같은 방향으로 150 cm까지 물려 다시 찍는다. 그리고 손전등 앞에 흰 종이를 한 장 대어 빛을 넓게 퍼뜨린 사진도 찍는다. 세 장을 흑백으로 바꿔 나란히 놓고, ① 정물 뒤 벽이 얼마나 어두운지 ② 그림자의 경계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③ 윤곽이 배경에 녹은 곳이 어디인지 적는다.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골라 연필이나 목탄으로 따라 그린다. 이때 종이 전체를 먼저 어둡게 칠한 뒤 지우개로 빛을 "꺼내는" 방식으로 그려 본다.

그림 읽기 모임 노트

CASE 서윤그림 읽기 모임 · 3회차 · 4장

불을 끄는 데 30초, 빛을 고르는 데 일주일

3회차(2027년 9월 18일, 토요일)는 바로크다. 서윤과 한도경은 그림을 보여 주기 전에 먼저 방의 불을 끄고 한 줄기 빛으로 정물을 비추는 시연을 하기로 했다. 문제는 "얼마나 어둡게, 얼마나 가깝게"였다. 서윤은 처음에 휴대폰 손전등을 생각했지만, 이 장의 시뮬레이터로 해 보니 맨 전구처럼 퍼지는 빛은 정물 뒤 벽까지 밝혀 어둠이 생기지 않았다. 도경은 화실에서 쓰는 탁상 스탠드에 검은 도화지를 말아 통을 씌우자고 했다.

거리도 계산했다. 시뮬레이터의 처음 자리처럼 스탠드를 정물의 왼쪽 앞 위에서 앞 사과까지 60 cm에 두면, 30 cm 뒤에 놓은 병까지는 약 80 cm다. (80/60)2 ≈ 1.78, 곧 병는 앞 사과가 받는 빛의 56%만 받는다. 약 0.8스톱이다. 스탠드를 같은 방향으로 200 cm까지 물리면 병까지 약 215 cm, (215/200)2 ≈ 1.16으로 0.2스톱 남짓밖에 차이 나지 않고, 종이 통이 만든 빛의 원뿔도 넓어져 정물 뒤 벽까지 밝아진다. 서윤은 시연을 두 단계로 나누기로 했다. 먼저 스탠드를 2 m 떨어뜨려 비추고, 그다음 60 cm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같은 빛이 다가오기만 해도 장면이 무대로 바뀌는 순간을 보여 주기 위해서다.

예행연습에서 아이와 함께 오는 참가자가 미리 물었다. "아이가 어두운 데를 무서워하는데 괜찮을까요?" 도경은 계단 쪽 발밑등 하나는 켜 두자고 했다. 시뮬레이터로 해 보니 주변광이 몇 퍼센트 생겨도 정물 쪽 어둠은 크게 줄지 않았다. 서윤은 그 아이를 위해 질문 하나를 카드에 넣었다. "그림 속에서 빛은 어디서 오고 있을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순서그림읽기 카드의 한 줄(색 · 구도 · 기법)
1카라바조, 「음악가들」(1597)살결과 흰 천이 넓다 · 네 소년을 빽빽이 · 왼쪽 위에서 오는 한 방향 빛
2카라바조, 「성 베드로의 부인」(1610)사진의 97%가 L* 20 아래 · 손가락들이 만드는 사선 · 배경 없는 어둠과 좁은 빛
3드 라 투르,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촛불의 금빛과 붉은 치마 · 촛불과 얼굴이 마주 보는 축 · 화면 안의 광원
4젠틸레스키, 「아하수에로 왕 앞의 에스더」금빛 드레스와 보랏빛 옷 · 서로 반대로 기운 두 사선과 빈 바닥 · 연극의 한 순간
5렘브란트, 「호메로스 흉상을 바라보는 아리스토텔레스」갈색의 깊은 어둠과 금목걸이 · 흉상 → 얼굴 → 손으로 이어지는 빛 · 밝은 곳의 두꺼운 물감
이 장에서 정한 것3회차 그림 다섯 점(위 표)과 시연 방법. 소품: 사과 2(빨강·초록), 흰 도자기 병(앞 사과에서 30 cm 뒤), 낡은 책 1권, 짙은 천을 덮은 탁자, 뒤쪽 벽. 조명: 탁상 스탠드 하나에 검은 도화지 통, 정물의 왼쪽 앞 위(좌우 약 40°, 높이 약 57°). 순서: ① 형광등 아래 정물을 휴대폰으로 찍어 화면에 띄운다 ② 불을 끄고(계단 발밑등만 켬) 스탠드를 앞 사과에서 2 m에 둔다(사과와 병의 빛 차이 약 0.2스톱) ③ 스탠드를 같은 방향으로 60 cm까지 끌어당긴다(약 0.8스톱, 정물 뒤는 어둠) ④ ②와 ③을 흑백 사진으로 찍어 「성 베드로의 부인」 옆에 나란히 띄운다. 시연 15분, 그다음 그림 다섯 점. 카드의 질문: "그림 속에서 빛은 어디서 오고 있을까?"
아직 남은 문제시연과 그림 모두 "극적인 빛"이었다. 같은 17세기에 창가의 고요한 빛을 그린 그림, 그리고 그 그림을 산 사람들은 어떻게 다룰까.
다음 단계5장: 4회차, 네덜란드 황금기.

핵심 정리

  1. 키아로스쿠로는 빛과 어둠의 대비로 형태와 극을 만드는 방법이고, 테네브리즘은 화면 대부분을 어둠에 잠기게 하고 좁은 빛으로 주인공만 드러내는 극단적인 키아로스쿠로다.
  2. 주변광을 없애면 빛을 등진 윤곽이 배경에 녹는다. 테네브리즘은 무엇을 보여 주지 않을지 정한 그림이다.
  3. 사진의 명도 분포로 재면 카라바조의 어둠은 1597년에서 1610년 사이 크게 넓어졌고(L* 20 아래 약 48% → 97%), 카라바지스티가 이를 이었다. 단, 사진과 바니시·바탕칠의 변화 때문에 원작의 어둠과는 다르다.
  4. 작은 광원의 빛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 줄어든다(\(E = I\cos\theta/d^2\)). 광원이 가까울수록 앞뒤 물체의 빛 차이가 커지고, 넓은 창의 빛은 가까이서도 완만하게 줄어든다.
  5. 바로크 화가들은 기울고 쓰러지는 몸의 사선으로 운동과 긴장을 만들었다. 테두리 방향 분포로 재면 르네상스 건축 무대보다 가로·세로 테두리가 적고 사선이 많다.
  6. 렘브란트는 밝은 곳을 두껍게(임파스토), 어두운 곳을 얇고 투명하게 칠했다. 두꺼운 물감은 실제로 빛을 받아 반짝이며, 빛이 스치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7. 바로크를 묶는 것은 어둠 자체보다 관객을 끌어들이는 극적인 연출이다. 루벤스처럼 밝은 바로크도 있고, 그림자를 그리지 않은 같은 시대 동아시아 회화는 다른 목표를 가진 그림이다.

확인 퀴즈

1. 다음 중 테네브리즘을 가장 잘 설명한 것은?

테네브리즘은 키아로스쿠로 가운데 어둠의 넓이와 대비가 극단적인 경우다. 윤곽을 녹이는 것은 스푸마토(3장), 두꺼운 물감은 임파스토이고, 파스텔과 곡선 장식은 로코코의 특징이다.

2. 촛불을 얼굴에서 20 cm 떨어진 곳에 두었다. 얼굴보다 40 cm 뒤(촛불에서 60 cm)에 있는 벽이 받는 빛은 얼굴이 받는 빛의 얼마쯤인가?(작은 광원, 빛을 정면으로 받는다고 가정)

조도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거리가 20 cm에서 60 cm로 세 배가 되면 빛은 3² = 9분의 1, 약 3.2스톱 줄어든다. 촛불 그림에서 얼굴은 빛나고 뒤 벽이 어둠에 잠기는 이유다. "3분의 1"은 거리에 정비례한다고 잘못 생각한 값이다.

3. 카라바조의 「성 베드로의 부인」 사진에서 화면의 97%가 L* 20 아래였다. 이 결과를 해석하는 태도로 가장 알맞은 것은?

같은 소장처의 사진끼리 비교하면 경향(1597년보다 1610년이 훨씬 어둡다)은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어두운 영역은 촬영과 압축에서 단계가 쉽게 뭉치고, 오래된 그림은 바니시 황변이나 바탕칠이 비쳐 보이는 변화를 겪었다. 어둠 속에도 옷의 주름과 형태가 그려져 있다.

4. 렘브란트의 밝은 부분이 물감을 두껍게 올린 임파스토로 칠해져 있다. 전시실에서 빛이 그림 표면을 옆으로 낮게 스치듯 비출 때 일어나는 일로 가장 알맞은 것은?

낮게 스치는 빛(사광)은 표면의 기울기 차이를 크게 만든다. 이 책의 모델에서도 빛의 높이를 낮추면 두꺼운 곳의 명도 요동이 커지고, 매끈한 얇은 칠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보존 전문가들이 그림 표면을 조사할 때 이런 빛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