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

동아시아 회화

미술관의 중국 회화 전시실에 들어서면 대개 유리장 안에 긴 두루마리가 끝까지 펼쳐져 있다. 그런데 이 그림들은 원래 그렇게 보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 두루마리는 탁자 위에서 오른쪽부터 어깨 폭만큼씩 펼치고, 본 부분은 다시 감으며 왼쪽으로 나아가는 그림이다. 족자는 손님이 올 때나 계절이 바뀔 때 벽에 걸었다가 다시 말아 두었다. 그림 위의 글씨와 붉은 도장은 "훼손"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그림을 본 사람들이 남긴 대화다. 이 장은 동아시아 회화를 서양 회화와 비교해 무엇이 "없는지" 묻는 대신, 그 그림이 스스로 세운 약속, 곧 보는 방식과 공간과 붓과 먹의 문법에서 출발한다.

그림을 보는 방식부터 다르다

동아시아 회화의 판형은 보는 몸짓을 정한다. 세로로 긴 족자(Hanging scroll, 掛軸)는 벽에 걸고 아래의 물가에서 위의 먼 산으로 시선을 올린다. 옆으로 긴 두루마리(Handscroll, 手卷)는 탁자에 놓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펼친다. 한 사람 또는 두세 사람이 함께 보는 크기다. 여러 장을 묶은 화첩(Album, 畫帖)은 책처럼 넘기고, 부채에 그린 선면(Fan painting, 扇面)은 손에 들고 본다. 세로쓰기 글씨가 오른쪽 줄부터 읽히듯, 두루마리의 시간도 오른쪽에서 시작한다.

두루마리(수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표지인수(引首)그림(화심)발문(跋文)축 큰 글씨 제목어깨 폭씩 펼친다후대 감상자의 글 보는 순서 족자(괘축) 천(天)그림지(地)축 물가 → 먼 산 · 제발(題跋): 그림 위나 앞뒤에 쓴 글. 작가, 친구, 후대 소장자가 쓴다.· 낙관(落款): 작가의 서명과 도장.· 감상인·소장인: 그림을 본 사람, 가진 사람의 도장.· 그림의 "끝"은 테두리가 아니라 지금 펼친 곳의 끝이다.
그림 1. 두루마리와 족자의 구성. 두루마리는 표지 다음에 큰 글씨의 제목(인수), 그림, 그리고 후대 사람들이 이어 붙인 발문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어진다. 발문이 그림보다 몇 배 긴 경우도 흔하다. 족자는 벽에 걸고 아래에서 위로 본다. 이름과 구성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며, 이 그림은 대표적인 짜임을 단순하게 나타낸 것이다.

북송의 화가 곽희(郭熙, Guo Xi)의 말을 아들 곽사가 엮은 『임천고치』(林泉高致)는 좋은 산수화를 "걸어갈 만한 곳, 바라볼 만한 곳, 노닐 만한 곳, 살 만한 곳"(可行·可望·可遊·可居)이 있는 그림이라고 했다. 산수화는 창밖의 한 장면을 옮기는 그림이기보다, 보는 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가 거닐도록 짠 그림이라는 뜻이다. 그보다 훨씬 앞선 5세기의 종병(宗炳)은 늙어 산에 갈 수 없게 되자 산수를 그려 방에 걸고 누워서 노닐었다고 전한다. 이것을 와유(臥遊, 누워서 노닐기)라고 한다. 두루마리를 펼치는 일은 바로 그 걸음이다.

"원근법이 없다"는 말을 피하는 이유 동아시아 회화를 소개할 때 "원근법이 발달하지 않았다", "그림자가 없다"는 설명이 흔하다. 이 말은 한 점의 눈에서 본 한 순간을 기준으로 삼을 때만 성립한다. 이 그림들은 그 기준을 따르지 않았을 뿐, 거리와 깊이를 나타내는 정교한 체계를 따로 갖고 있었다. 높이와 겹침, 먹의 농담, 안개와 물로 끊는 여백, 그리고 아래에서 다루는 삼원이다. 선 원근법은 3장에서 본 것처럼 15세기 피렌체에서 정리된 하나의 선택이었다. 이 장에서는 비교의 잣대를 바꾸지 않고, 그림이 스스로 세운 약속으로 읽는다.

천 년의 큰 흐름

산수화가 회화의 중심 장르가 된 것은 대략 10세기, 당이 무너진 뒤의 오대(907–960)부터다. 화북의 형호와 관동, 강남의 동원과 거연이 큰 산과 강남의 부드러운 물가를 각각 그렸다. 북송(960–1127)에서는 범관, 이성, 곽희가 화면을 압도하는 거대한 산, 이른바 "기념비적 산수"를 세웠다. 수도가 남쪽 항저우로 옮긴 남송(1127–1279)의 화원(궁정 화가들의 기관)에서는 마원과 하규가 화면의 한쪽 구석에 경물을 몰고 나머지를 안개로 비우는 서정적인 화면을 만들었다. 몽골이 다스린 원(1271–1368)에서는 관직에 나가지 않은 문인 화가들이 그림을 자기 마음을 적는 글씨처럼 다루었다. 명(1368–1644)에서는 쑤저우의 문인 화가들(오파)과 궁정·직업 화가들(절파)이 공존했고, 명 말의 동기창이 화가들의 계보를 다시 짰다. 청(1644–1912)에서는 그 계보를 따르는 정통파와, 거기서 벗어난 개성적인 화가들이 함께 활동했다.

9001100130015001700 오대 북송 남송 원 명 청 동원 · 거연강남의 물가 범관 · 이성 · 곽희기념비적 산수 마원 · 하규한쪽 구석과 안개 조맹부 · 황공망오진 · 예찬 · 왕몽문인의 붓 심주 · 문징명오파 · 절파 동기창남북종론 사왕 · 팔대산인 · 석도 왕조는 대략의 기간이다. 원(1271)과 남송(1279)처럼 겹치는 해도 있다.
그림 2. 중국 산수화의 큰 흐름. 왕조 이름은 편의상의 시대 구분이다. 한 시대 안에도 궁정 화가, 직업 화가, 문인 화가, 승려 화가가 함께 있었고, 후대 화가들은 앞 시대 대가들의 양식을 골라 "~의 필의로" 그리며 대화했다. 연대표는 진보의 계단이 아니라 서로를 참조하는 그물이다.
짙은 갈색으로 바랜 비단 위의 세로로 긴 산수화. 화면 위쪽 가운데에 거대한 바위산이 솟아 있고, 산 아래로 안개가 띠처럼 걸린다. 아래쪽에는 물가와 나무 숲, 바위가 짙은 먹으로 그려져 있고, 왼쪽에는 먼 물과 낮은 산이 보인다.
그림 3. 작가 미상, 「범관 양식의 산수」, 12세기 초, 북송. 북송의 범관(10세기 말~11세기 초 활동)이 세운 양식을 따른 그림이다. 거대한 주봉이 화면 위쪽을 채우고, 그 아래 안개의 띠가 가까운 숲과 먼 산을 끊는다. 비단이 오래되어 짙게 바래 먹과 바탕의 차이가 줄었다. 원래는 지금보다 훨씬 밝은 바탕 위에서 먹이 또렷했을 것이다. 이렇게 큰 족자는 보는 사람이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게 만든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Gift of Irene and Earl Morse, 1956), 족자, 비단에 먹과 색.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족자는 아래에서 위로 읽는다. 가까운 물가와 나무는 짙은 먹으로 또렷하게, 먼 산은 옅은 먹으로 흐리게 그리는 것이 보통이다. 정말 그런지 그림의 먹에서 직접 재 본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족자를 가로로 40개의 띠로 나눠, 띠마다 바탕보다 얼마나 어두운지(먹의 양)와 밝기가 얼마나 흩어져 있는지(대비)를 오른쪽 그래프에 그린다. 그래프 위의 손잡이를 끌어 한 띠를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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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자를 아래에서 위로: 높이에 따른 먹

그래프의 손잡이를 위아래로 끈다
고른 띠의 먹 / 대비—
아래 1/3 대비—
위 1/3 대비—
해볼 것: ① 범관 양식에서 손잡이를 아래에서 위로 끈다. 위쪽 4분의 1(하늘)은 먹이 거의 없고, 주봉의 산허리와 아래쪽 숲에서 먹이 가장 많다. 그 사이 높이 60% 근처에서 먹이 한 번 줄어드는 골이 안개 띠다. 비단이 짙게 바래 대비는 어디서나 4 안팎으로 낮다. ② 예찬을 고른다. 먹이 높이 절반 근처와 아래쪽 4분의 1 근처에서 두 번 줄어든다. 위쪽 산과 아래 물가 사이의 강, 그리고 나무 아래의 물이다. 가운데에 나무가 서 있어 완전히 비지는 않고, 위쪽의 글씨도 먹으로 잡힌다. ③ 왕시민을 고른다. 맨 위가 가장 옅고 아래로 갈수록 짙어져 "먼 것은 옅게"를 가장 충실히 따른다. 동원을 고르면 오히려 위쪽 먹이 아래보다 많게 나온다. 산이 화면 끝까지 겹겹이 찬 구성과, 고르지 않게 바랜 비단의 얼룩이 함께 잡힌 결과다. (먹의 양은 그림 전체 밝기의 92번째 백분위를 바탕으로 보고, 띠마다 바탕보다 어두운 정도의 평균이다. 대비는 띠 안 L*의 표준편차. 좌우 끝 10%는 표구일 수 있어 뺐다. 글씨와 도장, 비단의 얼룩도 먹으로 잡힌다.)

"먼 것은 옅게"는 출발점이지 규칙이 아니다. 범관 양식은 먼 주봉을 무겁게 세우고 안개 띠로 거리를 끊고, 예찬은 강의 띠를 비워 넓이를 만들며, 왕시민은 위로 갈수록 옅게 쌓아 규칙을 충실히 따른다. 동원의 그래프는 숫자가 그림의 생각만이 아니라 재료의 역사도 함께 잰다는 것을 보여 준다. 천 년 가까이 된 비단은 고르게 바래지 않는다. 그래프를 읽을 때는 그림이 거쳐 온 시간도 함께 읽어야 한다.

짙게 바랜 비단 위의 세로로 긴 산수화. 화면 위쪽까지 겹겹이 이어지는 산등성이가 부드러운 곡선의 긴 붓질로 그려져 있고, 산 사이로 폭포와 물길이 흐른다. 아래쪽 물가에는 나무와 집이 있고, 오른쪽 아래로 물이 넓게 열린다.
그림 4. 전(傳) 동원, 「계안도(溪岸圖, 물가)」, 10세기, 남당. 강남의 부드러운 흙산을 삼베의 올처럼 긴 붓질로 쌓았다. 이 그림은 소장처가 동원의 작품으로 보지만, 1990년대 후반 일부 연구자가 20세기의 위작이라는 주장을 내면서 큰 논쟁이 벌어졌고, 소장처는 1999년 학술 대회를 열어 그 쟁점을 다뤘다. 지금도 견해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동아시아 회화에서 "누가 그렸는가"는 서명보다 양식과 기록, 소장 내력을 함께 따지는 어려운 문제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Ex coll.: C. C. Wang Family, Gift of Oscar L. Tang Family, in memory of Douglas Dillon, 2016), 족자, 비단에 먹과 색. 표구 부분을 잘라 냈다.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삼원: 세 가지 거리

『임천고치』는 산을 보는 세 가지 거리를 이렇게 정리한다. 산 아래에서 산꼭대기를 올려다보는 것을 고원(高遠), 산 앞에서 산 뒤를 엿보는 것을 심원(深遠),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것을 평원(平遠)이라 한다(自山下而仰山巔謂之高遠, 自山前而窺山後謂之深遠, 自近山而望遠山謂之平遠). 곽희는 고원의 기세는 우뚝하고, 심원의 뜻은 겹겹이 이어지며, 평원은 아득히 퍼진다고 덧붙였다. 이것은 소실점의 규칙이 아니라 시점의 종류다. 한 화면 안에 셋이 함께 있어도 된다.

옆으로 긴 비단 두루마리의 한 부분. 가운데에 앙상한 고목 몇 그루와 둥근 바위가 있고, 그 뒤 언덕 위에 정자가 있다. 왼쪽으로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과 아주 옅은 먼 산이 보인다. 오른쪽 위에 큰 붉은 도장이, 왼쪽 표장 부분에 여러 개의 작은 도장이 찍혀 있다.
그림 5. 곽희, 「고목평원도(古木平遠圖)」, 1080년경, 북송. 평원의 예다. 앞쪽의 고목과 바위는 짙은 먹과 날카로운 붓으로, 그 뒤의 정자와 다리는 중간 먹으로, 왼쪽의 먼 물가와 산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옅은 먹으로 그렸다. 오른쪽 위의 큰 도장은 18세기 청의 건륭제가 찍은 감상인이다. 황제도 수백 년 뒤에 이 그림의 "독자" 중 하나였다. 사진은 두루마리의 한 구간과 표장 일부만 보여 준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Gift of John M. Crawford Jr., in honor of Douglas Dillon, 1981), 두루마리, 비단에 먹과 색.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남송에 이르면 공간의 강조점이 바뀐다. 마원은 경물을 화면의 한쪽 모서리에 몰고 나머지를 비워 "마일각"(馬一角, 한 모서리의 마원), 하규는 화면의 반쪽만 채워 "하반변"(夏半邊, 반쪽의 하규)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북송의 산이 보는 사람을 압도했다면, 남송의 화면은 그림 속 인물과 함께 빈 곳을 바라보게 한다. 빈 곳은 아무것도 없는 곳이 아니라 안개와 물, 소리와 시간이 있는 곳이다(CompositionBook의 여백).

갈색으로 바랜 비단 위에 먹으로 그린 정사각형에 가까운 그림. 왼쪽 위에서 굽은 소나무 가지들이 대각선으로 뻗어 내려오고, 왼쪽 아래에는 난간 옆에 선 흰 옷의 선비와 시동, 검은 바위가 있다. 그 뒤로 가는 폭포가 떨어진다. 오른쪽 위 절반은 거의 비어 있다.
그림 6. 마원, 「폭포를 바라보는 선비」, 13세기 초, 남송. 소나무와 바위, 선비와 시동이 모두 왼쪽 아래 대각선 안쪽에 몰려 있다. 바위의 모난 면은 넓은 붓을 비스듬히 눕혀 도끼로 찍은 듯 그었다(아래의 부벽준). 선비의 시선과 소나무 가지가 빈 오른쪽으로 향해, 비어 있는 곳이 그림의 목적지가 된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Ex coll.: C. C. Wang Family, Gift of The Dillon Fund, 1973), 화첩 한 면, 비단에 먹과 채색.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필묵: 붓과 먹이 곧 그림

동아시아 회화에서 붓과 먹은 형태를 옮기는 도구이기 전에 그 자체로 감상의 대상이었다. 6세기 남제의 사혁(謝赫)이 『고화품록』(古畫品錄)에서 정리한 그림의 여섯 가지 법, 곧 육법(六法)은 천 년 넘게 그림을 평가하는 말이 되었다.

육법대략의 뜻이 장에서 보는 곳
기운생동(氣韻生動)기운이 살아 움직인다. 가장 높은 덕목이며 가르쳐서 얻기 어렵다고 여겼다전체
골법용필(骨法用筆)뼈대 있는 붓 쓰기. 선의 힘과 구조붓 한 획 시뮬레이터
응물상형(應物象形)대상에 맞게 형태를 그린다준법
수류부채(隨類賦彩)종류에 따라 색을 입힌다채색 산수, 비단의 색
경영위치(經營位置)화면의 배치를 짠다삼원, 제발의 자리
전이모사(傳移模寫)옛 그림을 옮겨 그려 전한다"~의 필의로", 정통파

뜻풀이는 시대마다 달라졌다. 원문은 짧고 띄어 읽는 법부터 견해가 갈린다. 다만 첫째로 꼽힌 "기운"과 둘째의 "붓 쓰기"가 이후 문인화에서 특히 중시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먹도 한 가지가 아니다. 물을 얼마나 섞느냐에 따라 짙고 옅음이 생기고, 붓에 머금은 물이 많으면 번지고(습필), 적으면 갈라진다(갈필). 붓이 빠르게 지나가 먹이 다 묻지 않아 흰 자국이 비치는 획을 비백(飛白)이라 한다. 아래에서 직접 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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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한 획: 속도, 먹, 물

종이 위에 끌어 획을 긋는다
마지막 획 길이—
획 끝의 마른 털—
그은 획 수—
해볼 것: ① 천천히 짧게 긋고, 같은 길이를 빠르게 긋는다. 천천히 그으면 붓을 누른 것처럼 굵고 먹이 고르며, 빠르면 가늘어지고 끝이 갈라진다. ② 물기를 0으로 내리고 길게 긋는다. 금방 털 사이가 벌어져 흰 줄이 비친다. 바위의 거친 결이나 마른 나뭇가지에 쓰는 갈필과 비백이다. ③ 물기를 100, 먹의 농도를 30으로 두고 화선지 위에서 천천히 긋는다. 가장자리가 번져 안개 같은 옅은 먹이 된다. "아교 먹인 비단"으로 바꾸면 번짐이 거의 없다. 송의 화원 화가들이 주로 비단에, 원 이후 문인들이 종이에 더 많이 그린 것은 재료가 붓의 표정을 바꾸기 때문이기도 하다. (붓은 14가닥의 털로 근사했다. 털마다 머금은 먹이 획을 따라 줄고, 속도가 빠를수록 붓 폭이 좁아지며, 물기가 많으면 덜 빨리 마르고 화선지에서는 둘레로 번진다. 실제 붓과 종이를 흉내 낸 교육용 모형이다.)

붓 한 획에 속도와 압력, 먹과 물의 양이 모두 남는다. 그래서 동아시아에서 선은 형태의 가장자리이면서 그린 사람의 몸짓의 기록이었다. 같은 대나무를 그려도 누구의 대나무인지 알아볼 수 있다는 생각, 그림을 "쓴다"(寫)고 말하는 습관이 여기서 나온다. 붓의 종류와 선의 성격은 DrawingBook의 선에서도 다룬다.

먹 한 번 찍어 어디까지 가나 붓펜이나 수채 붓 하나, 먹물(또는 검은 수채 물감), 화선지나 얇은 한지, 그리고 비교용으로 매끈한 복사지를 준비한다. 붓에 먹을 한 번만 찍고 종이 왼쪽 끝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한 줄을 긋는다. 먹이 다해 끊어질 때까지 간다. 다음 줄은 같은 양의 먹으로 빠르게 긋는다. 셋째 줄은 붓을 물에 한 번 담갔다가 먹을 찍어 긋는다. 세 줄의 길이와 끝 모양(갈라짐, 번짐)을 비교하고, 같은 실험을 복사지에 해 본다. 한지에서는 번지고 복사지에서는 겉돈다. 마지막으로 마른 붓에 진한 먹을 묻혀 바위 하나의 윤곽을 빠르게 그어 보면, 갈라진 흰 자국이 저절로 돌의 거친 살결이 된다.

준법: 산의 살결을 그리는 선

산수화에서 바위와 산의 표면, 곧 결과 주름과 덩어리를 나타내는 붓질의 유형을 준법(皴法, Texture strokes)이라 한다. 서양 소묘의 해칭이 빛의 양을 선의 밀도로 쌓는다면, 준법은 산의 지질과 질감, 덩어리의 방향을 선의 종류로 말한다. 준법에는 계보가 있어서, 어떤 준법을 쓰느냐가 곧 어느 대가를 잇느냐를 뜻했다.

준법모양어울리는 산대표 화가
피마준(披麻皴)삼베 올을 풀어 놓은 듯한 길고 부드러운 선강남의 흙산동원, 거연, 황공망
우점준(雨點皴)빗방울 같은 짧은 점과 획을 촘촘히화북의 거대한 바위산범관
부벽준(斧劈皴)넓은 붓을 눕혀 도끼로 찍은 듯한 모난 획깎아지른 바위이당, 마원, 하규
절대준(折帶皴)옆으로 긋다 꺾어 내리는 띠 모양의 획평평한 바위 언덕예찬
미점(米點)옆으로 누운 먹점을 겹겹이비에 젖은 산미불, 미우인

준법의 이름은 후대에 정리된 분류여서, 실제 그림에서는 여러 준법이 섞이고 경계가 흐릿하다. 아래 시뮬레이터에서 돋보기를 끌어 네 그림의 바위와 산을 확대한다. 오른쪽에는 돋보기 안의 붓질 방향 분포가 그려진다. 이름표보다 먼저 눈으로, 그다음 숫자로 결을 비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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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로 준법 찾기

왼쪽 그림 위에서 돋보기를 끈다
결의 정렬도—
주된 방향—
먹이 덮은 비율—
해볼 것: ① 처음 자리(동원의 산비탈)에서 방향 분포를 본다. 가로에 가까운 완만한 선과 약 50~60°의 비탈 선, 두 무리로 모인다(정렬도 약 0.5). 산의 비탈을 따라 흘러내리는 피마준이다. ② 범관 양식으로 바꾼다. 주봉의 절벽 위에서는 방향이 세로(약 100°)로 강하게 모인다. 빗방울 같은 짧은 획이 위아래로 찍혀 쌓이며 깎아지른 바위의 결을 만든다. ③ 마원의 바위에서는 정렬도가 가장 낮다(약 0.38). 넓은 먹 면은 선이 아니라 면이어서, 방향은 면의 모난 가장자리에서만 생기고 흩어진다. 예찬으로 바꾸면 방향이 가로(약 5°)로 강하게 모인다. 옆으로 긋는 절대준의 획과 평평한 바위의 윗면이다. 돋보기를 옮기면 같은 그림 안에서도 숫자가 크게 달라진다. (L* 기울기의 구조 텐서로 방향과 정렬도를 계산했다(Bigün·Granlund 1987). 비단의 올, 바랜 얼룩, 사진의 압축도 결로 잡히므로 숫자는 눈으로 본 것을 확인하는 보조 자료다. 먹이 덮은 비율은 바탕보다 L* 12 이상 어두운 픽셀의 비율이다.)

준법을 알면 그림 앞에서 "이 바위는 누구의 말로 그렸는가"를 물을 수 있다. 원 이후의 화가들은 그림에 "동원의 필의로", "황공망을 본떠" 같은 글을 적어, 지금 어느 선배와 대화하는지 밝혔다. 이것은 베끼기가 아니라 인용과 변주다. 육법의 마지막 "전이모사"가 하찮은 기술이 아니었던 이유다.

문인화: 그린 사람이 보이는 그림

북송의 문인 소식(蘇軾, 소동파)은 그림을 겉모습이 닮았는지로 논하는 것은 아이의 견해와 다를 바 없다고 읊었다(論畫以形似, 見與兒童鄰). 관직에 있는 학자들, 곧 문인(文人, Scholar-official)이 여가에 그리는 그림은 직업 화가의 정밀한 묘사와 달리 그린 사람의 인품과 생각을 드러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생각으로 그린 그림을 문인화(文人畫, Literati painting)라고 한다. 시와 글씨와 그림을 한 사람이 함께 다루는 것을 이상으로 여겨 "시서화"(詩書畫)를 함께 말했다.

원의 조맹부(趙孟頫, 1254–1322)는 송 황실의 후손이면서 원 조정에 나가 관직을 지낸 복잡한 인물이고, 당대 최고의 서예가였다. 그는 한 그림의 제시에서 돌은 비백처럼, 나무는 전서(籀)처럼 그리고, 대나무에는 서예의 팔법이 통해야 하며, 이것을 아는 사람은 글씨와 그림이 본래 같다는 것을 알리라고 썼다(石如飛白木如籀, 寫竹還應八法通. 若也有人能會此, 須知書畫本來同). 그림의 선을 글씨의 획과 같은 기준으로 보는 이 생각을 흔히 서화동원(書畫同源)이라 부른다.

옆으로 긴 종이 두루마리. 오른쪽에 키 큰 소나무 두 그루가 바위 옆에 서 있고, 그 아래로 낮은 바위와 물가가 있다. 가운데는 거의 비어 있는 넓은 물이고 작은 배 한 척이 떠 있으며, 왼쪽 위로 아주 가는 선의 먼 언덕이 길게 이어진다. 왼쪽 끝에는 열 줄 남짓한 글씨가 있고, 오른쪽 끝과 아래에는 붉은 도장이 많다.
그림 7. 조맹부, 「쌍송평원도(雙松平遠圖)」, 1310년경, 원. 오른쪽부터 읽는다. 작가가 쓴 제목과 서명(雙松平遠 子昂趙作), 근경의 두 소나무와 바위, 빈 물과 작은 배, 아득히 이어지는 먼 언덕, 그리고 왼쪽 끝의 글이다. 소나무 줄기와 바위는 마른 붓의 가는 선으로 서예의 획처럼 그었고, 먹은 거의 한 가지 농도다. 왼쪽 끝의 글에서 조맹부는 당과 오대의 대가들(왕유, 이사훈 부자, 형호, 관동, 동원, 범관)을 들며 자신이 옛사람에 견줄 수는 없지만 요즘 화가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자부하고, 야운(野雲)이라는 사람의 청으로 그렸다고 밝혔다. 북송 곽희의 "평원"을 문인의 붓으로 다시 쓴 그림이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Ex coll.: C. C. Wang Family, Gift of The Dillon Fund, 1973), 두루마리, 종이에 먹. 그림 26.8 × 107.5 cm(표구 포함 전체 길이 781.5 cm).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원 말의 예찬(倪瓚, 1306–1374)은 문인화의 극단을 보여 준다. 그는 자신이 그림이라 부르는 것은 붓 가는 대로 대충 그려 겉모습의 닮음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 즐길 따름이라고 했다(逸筆草草, 不求形似, 聊以自娛耳). 그의 화면은 거의 언제나 같다. 아래쪽 물가의 바위와 몇 그루 나무, 가운데의 빈 강, 위쪽의 낮은 먼 산. 이 짜임을 일하양안(一河兩岸, 강 하나와 두 기슭)이라 부른다. 사람은 그리지 않았다.

세로로 긴 종이 그림. 위쪽에 바위산이 마른 붓의 옅은 먹으로 그려져 있고, 그 위 오른쪽과 왼쪽에 여러 줄의 글씨가 있다. 가운데에는 가는 나무 몇 그루가 서 있고, 아래쪽에는 평평한 바위 언덕이 겹쳐 있다. 화면 곳곳에 붉은 도장이 찍혀 있다.
그림 8. 예찬, 「우산임학도(虞山林壑圖)」, 1372, 원. 마른 붓의 옅은 먹이 종이 위를 스치듯 지나가고, 바위의 윗면은 옆으로 긋다 꺾어 내리는 절대준으로 그렸다. 화면 위쪽의 여러 줄 글씨는 작가와 다른 사람들이 남긴 시와 글이다. 글씨가 산과 하늘 사이를 채워, 그림과 글이 한 화면의 무게를 나눠 진다. 사진에는 그림 둘레의 표구 비단이 조금 남아 있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Ex coll.: C. C. Wang Family, Gift of The Dillon Fund, 1973), 족자, 종이에 먹.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제발은 화면의 일부다. 그 자리를 옮기면 그림의 균형이 바뀌는지 시험해 본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예찬의 그림에서 오른쪽 위의 글씨 덩어리를 떼어 내 옮길 수 있게 했다. 글씨 상자를 끌어 다른 자리에 놓고, 그림 전체의 먹이 어디에 모이는지(먹의 중심)를 본다. 점선 십자는 원래 자리의 먹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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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를 옮겨 보기: 제발의 자리

글씨 상자를 끈다
먹 중심(가로·세로)—
위 절반 : 아래 절반—
왼쪽 : 오른쪽—
해볼 것: ① 처음 상태의 숫자를 적는다. 먹은 위·아래가 거의 반반(1.06)이고, 왼쪽이 조금 무겁다(1.22). ② "글씨 지우기"를 켠다. 위·아래 비가 1 아래(약 0.91)로, 좌우 비는 약 1.46으로 바뀌어 먹 중심이 아래와 왼쪽으로 옮겨 가고 오른쪽 위가 텅 빈다. 산과 하늘 사이가 허전해지고, 나무가 선 아래쪽이 무거워진다. ③ 글씨 상자를 왼쪽 아래 물가로 끌어 놓는다. 먹 중심이 왼쪽 아래로 크게 쏠린다. 빈 강을 글씨가 가로막아 일하양안의 짜임이 무너진다. 원래 자리가 그림의 균형을 함께 잡고 있었다는 것을 숫자로 볼 수 있다. (그림의 종이 부분만 계산했다. 먹은 종이 바탕(밝은 쪽 85번째 백분위)보다 어두운 정도이고, 붉은 도장도 먹으로 잡힌다. 지운 자리는 종이 바탕색으로 채웠다. 글씨 상자의 범위는 이 책이 눈으로 정했다.)

제발을 쓴 사람은 작가만이 아니다. 친구가 감상을 적고, 수백 년 뒤의 소장자가 도장을 찍고, 황제가 시를 덧붙였다. 서양 회화에서 그림 위에 글을 쓰는 일은 대개 훼손이지만, 동아시아 두루마리와 족자에서 그것은 그림이 거쳐 온 사람들의 대화로 남는다. 도장이 너무 많아 화면을 덮는 경우에는 비판도 있었다. 그래도 이 흔적들은 누가 언제 이 그림을 보았는지 알려 주는 일차 자료다.

두루마리의 시간

두루마리를 실제 크기와 펼치는 폭으로 다시 본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탁자 위에 두루마리를 놓고, 오른쪽에서부터 정한 폭만큼만 펼친다. 왼쪽에는 아직 보지 않은 부분이, 오른쪽에는 이미 본 부분이 감겨 있다. 화면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끌면 왼쪽을 풀고 오른쪽을 감는다. 아래의 작은 띠는 전체에서 지금 보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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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리 펼치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두루마리를 좌우로 끈다
펼친 자리(오른쪽 끝에서)—
지금 보이는 것—
지금까지 본 길이—
해볼 것: ① 쌍송평원도를 폭 50 cm로 두고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끈다. 작가의 제목과 소나무가 먼저 나오고, 소나무를 감아 넣은 다음에야 빈 물과 배가, 그다음 먼 언덕과 글이 나온다. 한 번에 보이는 장면은 대개 두세 가지뿐이다. ② 폭을 110 cm로 늘린다. 그림 전체가 한꺼번에 보여 오른쪽의 소나무와 왼쪽의 먼 언덕이 동시에 눈에 들어온다. 근경에서 원경으로 "걸어가는" 시간이 사라진다. ③ 하산도로 바꾸고 폭 40 cm로 끈다. 넓은 물과 먼 산(평원)에서 시작해 높은 봉우리(고원)를 지나 골짜기 안쪽(심원)으로 들어가는 순서가 펼치는 시간 위에 놓인다. (길이는 소장처 기록의 그림 부분 길이: 쌍송평원도 107.5 cm, 형계초은도 92.6 cm, 하산도 115.3 cm. 구간과 이름은 이 책이 눈으로 나눈 것이다. 사진에는 그림 앞뒤의 발문이 대부분 빠져 있다.)

한눈에 펼친 두루마리는 편하지만 다른 그림이 된다. 화가는 펼치는 폭 안에서 장면이 시작되고 끝나도록, 빈 물과 안개를 장면 사이의 쉼표로 배치했다. 쌍송평원도의 가운데를 거의 비워 둔 것도, 펼치는 사람이 소나무를 감아 넣고 빈 물을 지나는 동안 숨을 고르게 하는 시간이다. 이것은 영화의 장면 전환이나 만화의 칸 넘김과 닮았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된 시간의 화면이다.

옆으로 긴 종이 두루마리. 오른쪽에 짙은 먹의 높은 산과 폭포가 있고, 가운데에는 나무와 둥근 바위, 물가의 집들이 이어지며, 왼쪽에는 숲과 초가가 있다. 왼쪽 위에 세로로 쓴 제목과 글이 있고, 그 아래 붉은 도장이 찍혀 있다. 산과 바위는 굵고 반복적인 붓질의 덩어리로 쌓여 있다.
그림 9. 동기창, 「형계초은도(荊谿招隱圖)」, 1611, 명. 왼쪽 위에 제목과 신해년(1611)이라는 해가 적혀 있다. 산과 바위는 실제 지형을 옮기기보다 비슷한 모양의 붓질 덩어리를 쌓고 엇갈려 놓아 짰고, 나무는 먹의 굵기와 농담을 바꿔 리듬을 만든다. 동기창은 자연을 닮게 그리는 일보다 옛 대가들의 필묵을 소화해 화면을 재구성하는 일을 그림의 목표로 삼았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Gift of Mr. and Mrs. Wan-go H. C. Weng, 1990), 두루마리, 종이에 먹. 그림 26 × 92.6 cm.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남종과 북종: 이름표의 힘과 한계

명 말의 동기창(董其昌, 1555–1636)과 그 주변의 문인들은 선종 불교가 남종과 북종으로 갈린 이야기에 빗대어, 산수화가들도 두 계보로 나눴다. 남종화(南宗畫, Southern school)는 당의 왕유에서 시작해 동원, 거연, 미불 부자를 거쳐 원의 네 대가(황공망, 오진, 예찬, 왕몽)로 이어지는 문인의 계보이고, 북종화(北宗畫, Northern school)는 당의 이사훈 부자의 채색 산수에서 송의 조백구와 마원, 하규로 이어지는 계보다. 동기창은 남종을 높였다. 깨달음에 단번에 이르는 남종선처럼, 문인의 그림은 기술의 축적이 아니라 교양과 인품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 구분은 큰 영향을 남겼다. 청의 정통파는 남종 계보를 그림의 정도로 삼았고, 조선 후기와 에도 시대 일본에서도 "남종화"(일본에서는 "남화")가 문인 취향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

종이에 먹으로 그린 세로 산수화. 위쪽에 큰 산봉우리가 부드러운 긴 붓질과 둥근 먹점으로 겹겹이 쌓여 있고, 가운데는 흰 안개 띠가 산허리를 감싼다. 아래쪽에는 나무 숲과 물가의 집들이 있다.
그림 10. 왕시민, 「황공망 필의의 산수」, 1666, 청. 청 초 정통파의 첫 세대인 왕시민은 동기창의 가르침을 받아 원의 황공망을 평생 연구했다. 긴 피마준과 둥근 태점으로 산을 쌓고, 흰 안개 띠로 덩어리 사이를 끊었다. 남종 계보를 "올바른 길"로 삼은 이들의 그림은, 자연을 새로 관찰하기보다 선배의 필묵을 깊이 소화하는 데 가치를 두었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Ex coll.: C. C. Wang Family, Gift of Douglas Dillon, 1980), 족자, 종이에 먹.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이름표가 그림의 눈에 보이는 성질을 얼마나 가르는지 직접 재 본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이 장의 그림 열 점에서 먹의 대비, 여백의 비율, 결의 정렬도, 평균 채도를 뽑아 두 축 위에 찍는다. 점의 색은 동기창 계보에서의 자리다. 파랑은 남종(또는 남종을 이었다고 자처함), 주황은 북종, 회색은 그 계보에 이름이 오르지 않은 그림이다. 점을 누르면 어느 그림인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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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표와 측정값

점을 누르거나 끈다
가로축 평균(남종 / 북종)—
고른 그림—
해볼 것: ① 처음의 "먹 대비 × 여백"을 본다. 남종의 파란 점 네 개는 먹 대비 4에서 12까지 넓게 흩어지고, 북종인 두 마원은 그 사이(8~9)에 놓인다. 눈으로는 가장 비어 보이는 예찬의 여백 값이 0.2도 안 되게 낮은데, 마른 붓의 옅은 먹이 종이 전체를 살짝 덮어 "바탕에 가까운" 픽셀이 적게 잡히기 때문이다. 측정의 정의가 눈의 인상과 어긋나는 예다. ② 세로를 "채도"로 바꾼다. 위쪽에 놓이는 마원 폭포, 조맹부, 곽희는 비단의 갈색, 붉은 도장, 노란 표장이 채도로 잡힌 것이다. 그린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재료와 세월과 촬영의 흔적이다. ③ 가로를 "결 정렬도"로 바꿔 평균을 비교한다. 북종 평균이 조금 높지만 점이 둘뿐이고, 남종의 예찬이 마원 폭포보다 높아 두 무리가 겹친다. 계보는 사회적 정체성과 존경의 대상을 말하는 이름이고, 화면의 측정값 하나로 가를 수 있는 분류가 아니다. (그림마다 좌우 10%를 빼고 가로 200 px로 줄여 계산했다. 여백은 바탕(밝은 쪽 92번째 백분위)에서 L* 6 이내인 픽셀의 비율. 곽희처럼 밝은 표장이 함께 찍힌 사진은 바탕이 표장으로 잡혀 여백이 작게 나온다. 열 점은 표본이 너무 작아 통계적 결론을 낼 수 없으며, 측정값의 차이를 보여 주는 예시다.)
같은 언어, 다른 억양: 한국과 일본 산수화와 문인화의 언어는 한국과 일본으로 건너가 각자의 억양을 얻었다. 조선 초의 안견은 1447년 「몽유도원도」에서 곽희 계통의 화풍을 바탕으로 꿈속의 복숭아 마을을 두루마리에 펼쳤고(현재 일본 덴리 대학 소장), 18세기의 정선은 중국 화보의 산이 아니라 금강산과 한양의 실제 산을 그리며 자기 준법을 만들었다. 일본의 승려 화가 셋슈 도요는 1460년대 말 명에 건너가 그림을 보고 돌아와 일본 수묵화의 큰 줄기를 열었다. 이것들은 중국 회화의 "지방판"이 아니라, 같은 문법으로 다른 이야기를 쓴 독자적인 전통이다. 한국 미술은 11장에서, 판화와 우키요에는 12장에서 따로 읽는다.
산수화 앞에서 먼저 하는 세 가지 동양화를 그리는 화가와 큐레이터들이 그림 앞에서 권하는 순서가 있다. 첫째, 판형을 확인하고 읽는 방향을 정한다. 족자는 아래에서, 두루마리는 오른쪽에서. 둘째, 그림 속 길을 찾는다. 다리, 오솔길, 배, 사람이 어디서 들어와 어디로 가는지 손가락으로 따라가면 화가가 짠 걸음이 보인다. 셋째, 글씨와 도장을 그림의 일부로 센다. 누가 언제 썼는지 소장처 설명을 읽고, 글씨가 화면의 어느 빈자리를 채우는지 본다. 이 세 가지를 하고 나서야 준법과 필묵의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

종합: 산수화 무대

지금까지의 요소를 한 화면에 모아 직접 짜 본다. 아래 무대는 족자 한 폭에 산수를 그린다. 구도를 고원, 평원, 심원, 일하양안 가운데 고르고, 산의 살결을 준법으로 고르고, 여백(안개와 물)의 양을 정한다. 주봉의 손잡이를 끌어 산의 높이와 자리를 옮긴다. 아래 숫자는 그려진 화면에서 다시 잰 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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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 무대: 구도·준법·여백

주봉의 손잡이를 끈다
여백 비율—
위 1/3 : 아래 1/3 먹—
먹 중심 높이—
해볼 것: ① 고원에서 여백을 50에서 10으로 내린다. 산허리의 안개 띠가 얇아지고 중간 거리의 능선이 들어차, 가까운 숲과 주봉 사이의 거리가 붙어 버린다(이 모형에서 여백 비율 약 63% → 57%). 다시 올리면 안개 띠가 가까운 것과 먼 것을 다른 거리로 떼어 놓는다. 주봉을 위쪽 끝까지 끌어 올리면 산이 화면을 압도한다. ② 일하양안을 고르고 준법을 절대준으로 바꾼다. 위 1/3의 먹이 아래 1/3의 7분의 1쯤으로 줄고 먹 중심이 화면 아래 4분의 1 근처로 내려가, 가운데가 빈 예찬의 짜임이 된다. 여기서 부벽준을 고르면 문인의 담담한 화면에 화원 화가의 날카로운 바위가 붙어 어색해진다. ③ 먼 산의 옅어짐을 0으로 내린다. 먼 산이 가까운 산만큼 짙어져 거리가 무너지는데, 동기창처럼 거리의 재현보다 붓질 덩어리의 구성을 앞세우려는 의도라면 그것도 선택이다. (산의 모양은 시드를 고정한 난수 능선이고, 준법은 각 유형의 붓질 모양을 단순하게 흉내 낸 것이다. 여백 비율은 바탕에서 거의 칠하지 않은 픽셀의 비율, 먹 중심 높이는 화면 아래에서부터의 비율이다.)

어떤 조합이 "맞는" 산수화는 아니다. 곽희는 평원과 고원을 한 화면에 함께 쓰라고 했고, 예찬은 평생 같은 짜임을 되풀이하며 그 안에서 미세한 변주를 했으며, 동기창은 자연을 닮지 않은 구성을 일부러 택했다. 산수화의 문법은 정답표가 아니라, 무엇을 전하려는가에 따라 고르는 말의 목록이다.

서윤의 작업 노트

CASE 서윤작업 노트 · 10장

9회차: 50센티미터씩,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10월 30일 토요일, 9회차. 지난주 참가자의 질문("동양화는 처음부터 평면이었는데, 그걸 뒤처졌다고 하면 안 되지 않느냐")이 서윤의 준비를 바꿨다. 처음 만든 슬라이드는 「쌍송평원도」 전체 사진을 한 화면에 띄우고 "서양 그림과 무엇이 다른가"를 묻는 것이었다. 한도경은 노트북 화면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이건 미술관 진열장 방식이야. 원래는 이렇게 안 봐. 펼쳐야 해."

두 사람은 화면 위에서 두루마리를 펼치기로 했다. 그림 부분의 길이는 소장처 기록으로 107.5 cm, 높이 26.8 cm다. 2층 화면에는 높이를 26.8 cm로 맞춰 실물 크기로 띄웠다. 한 번에 펼치는 폭은 서윤이 직접 어깨 폭을 재고 탁자 위에서 팔을 벌려 본 끝에 50 cm로 정했다. 50 cm 창을 반씩(25 cm) 겹치며 오른쪽 끝에서 왼쪽으로 옮기면, 창의 오른쪽 끝은 0, 25, 50, 57.5 cm(마지막은 왼쪽 끝에 맞춤)에 놓여 모두 네 번 펼치면 끝난다. \(\lceil (107.5 - 50)/25 \rceil + 1 = 4\)이다. 서윤은 펼칠 때마다 30초씩 말없이 보고, 다음으로 넘기기 전에 "지금 무엇이 보이는가" 한 가지만 묻기로 했다.

펼침오른쪽 끝에서(cm)보이는 것(이 책이 나눈 구간)묻는 것
10–50소장자의 도장, 작가의 제목과 서명(雙松平遠 子昂趙作), 두 소나무와 바위그림은 어디서 시작하나?
225–75소나무 왼쪽 끝, 빈 물, 먼 언덕의 오른쪽소나무를 감으면 무엇이 남나?
350–100빈 물과 작은 배, 먼 언덕, 글의 시작배는 어디로 가나?
457.5–107.5빈 물의 왼쪽과 배, 먼 언덕의 왼쪽 끝, 조맹부의 글화가는 무엇이라고 썼나?

모임에서 가장 반응이 컸던 것은 2번 펼침이었다. 소나무를 감아 넣자 화면의 대부분이 텅 빈 종이가 되었고, 정 선생님이 "아무것도 없는데 강이 보인다"고 말했다. 대학생 단골은 4번의 글을 번역해 달라고 했고, 서윤은 조맹부가 옛 대가들의 이름을 들며 "옛사람에 견줄 수는 없지만 요즘 화가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쓴 대목을 읽어 주었다. 아이와 함께 온 부모는 아이가 붉은 도장의 수를 세다가 스무 개쯤에서 포기했다고 웃었다. 도경은 그 도장 하나하나가 이 그림을 펼쳐 본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에 서윤은 같은 그림을 한눈에 띄웠다. 몇 사람이 "이렇게 보니 오히려 작아 보인다"고 했다.

9회차의 그림은 네 점으로 정했다. 범관 양식의 산수(족자, 아래에서 위로), 조맹부 「쌍송평원도」(두루마리, 네 번 펼침), 예찬 「우산임학도」(족자, 글씨의 자리), 동기창 「형계초은도」(두루마리, 남종 이야기). 대표 읽기 카드는 이렇다.

읽기 카드 · 9회차조맹부, 「쌍송평원도」, 1310년경
색먹 한 가지와 종이 바탕. 붉은색은 모두 도장이다(작가와 후대 소장자).
구도오른쪽부터: 두 소나무(근경) → 빈 물과 배 → 먼 언덕(평원) → 작가의 글. 50 cm씩 네 번 펼친다.
기법마른 붓의 가는 선. 소나무 줄기와 바위를 서예의 획처럼 그었다(서화동원).
질문그림의 절반이 비어 있다. 그 빈 곳에는 무엇이 있나?
이 장에서 정한 것9회차(10월 30일) 그림 목록 네 점과 조맹부 읽기 카드. 두루마리는 실물 높이(26.8 cm)로 띄우고, 한 번에 50 cm씩 반을 겹쳐 오른쪽 끝 0, 25, 50, 57.5 cm 자리에서 네 번 펼친다. 펼칠 때마다 30초 보고 질문 하나. 족자는 아래에서 위로, 마지막에만 한눈에 보여 준다.
아직 남은 문제모임이 끝나고 정 선생님이 물었다. "다음 주는 우리 그림이죠? 정선의 산도 이렇게 펼쳐 보나요?" 서윤은 한국 그림을 중국 회화의 연장으로만 소개하게 될까 걱정이다. 같은 문법이 조선에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아직 자기 말로 설명하지 못한다.
다음 단계10회차는 참가자들이 가장 기다린 한국 미술이다(11장). 이번 회차의 "판형부터 확인하기"와 "글씨와 도장도 세기"를 이어 쓰기로 했다.

핵심 정리

  1. 동아시아 회화는 판형이 보는 몸짓을 정한다. 족자는 아래에서 위로, 두루마리는 오른쪽에서 어깨 폭씩 펼쳐 왼쪽으로 본다. 제발과 인장은 그림을 본 사람들의 대화로 화면의 일부가 된다.
  2. 산수화는 오대·북송의 기념비적 산수, 남송 화원의 한쪽 구석과 여백, 원의 문인화, 명의 오파·절파와 동기창, 청의 정통파와 개성파로 이어졌다. 연대표는 진보의 계단이 아니라 서로를 인용하는 그물이다.
  3. 곽희의 삼원(고원·심원·평원)은 소실점의 규칙이 아니라 시점의 종류다. 높이, 겹침, 먹의 농담, 안개와 물의 여백이 거리를 만들며, "먼 것은 옅게"는 출발점일 뿐 깨지기도 한다.
  4. 필묵은 형태를 옮기는 도구이면서 그 자체로 감상의 대상이다. 붓의 속도와 압력, 먹과 물의 양, 종이와 비단의 성질이 한 획에 모두 남는다. 사혁의 육법은 기운과 붓 쓰기를 앞세웠다.
  5. 준법은 산과 바위의 살결을 선의 종류로 말한다. 피마준, 우점준, 부벽준, 절대준, 미점은 각각 지형과 대가의 계보를 품고 있으며, 실제 그림에서는 섞인다.
  6. 문인화는 겉모습의 닮음보다 그린 사람의 생각과 붓을 중시하고, 시서화를 한 화면에 모은다. 조맹부의 서화동원, 예찬의 일하양안이 대표적이다.
  7. 동기창의 남종·북종 구분은 지리가 아니라 선종에 빗댄 계보이며, 문인 대 직업 화가의 위계가 섞여 있다. 화면의 측정값으로 깔끔히 갈리지 않는다. 같은 언어는 한국과 일본에서 독자적인 전통이 되었다.

확인 퀴즈

1. 길이 107.5 cm의 두루마리를 원래 방식대로 감상하려 한다. 가장 알맞은 방법은?

두루마리는 세로쓰기 글처럼 오른쪽에서 시작해 왼쪽으로 펼친다. 한 번에 보이는 것은 펼친 폭만큼이고, 장면이 시간을 두고 이어진다. 끝까지 펼쳐 놓는 것은 현대 미술관의 진열 방식이며, 벽에 걸고 아래에서 위로 보는 것은 족자다.

2. 곽희의 『임천고치』가 말한 "평원(平遠)"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삼원은 시점의 종류다.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것이 고원, 산 앞에서 뒤를 엿보는 것이 심원,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것이 평원이다. 소실점 작도는 선 원근법의 방법이고, 띠 모양의 준법은 절대준이다.

3. 예찬의 족자에서 화면 위쪽의 글씨를 지웠더니, 먹의 중심이 아래로 내려가고 오른쪽 위가 텅 비어 보였다. 이 결과가 보여 주는 것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동아시아 회화에서 제발은 그림과 함께 화면을 짠다. 글씨를 지우거나 옮기면 먹이 모이는 자리와 빈 곳의 관계가 바뀐다. 이 그림에는 작가와 다른 사람들의 글이 함께 있으며, 후대의 글이라고 해서 위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4. 동기창의 남종·북종 구분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남종·북종은 선종이 남북으로 갈린 이야기에 빗댄 계보이며 출신지와 관계없다. 동기창은 문인의 계보인 남종을 높였고, 마원·하규 같은 화원 화가를 북종에 넣었다. 화면을 측정해 보면 두 무리가 겹친다. 이 구분은 양식의 분류라기보다 문인 취향의 사회적 선언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