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6

로코코와 신고전주의

18세기 프랑스 미술관의 방 두 개를 차례로 걸어 본다고 하자. 첫 방에는 분홍과 하늘색 비단, 금빛 곡선 액자, 정원에서 류트를 켜는 연인들이 있다. 둘째 방에는 돌벽 앞에 선 고대 철학자, 팽팽한 윤곽, 무대처럼 한 줄로 늘어선 인물들이 있다. 두 방의 그림이 백 년쯤 떨어져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같은 도시에서 한 세대 안에 그려졌고, 같은 아카데미의 회원들이 그렸다. 이 장은 곡선과 장식의 로코코, 그리고 그에 맞선 엄격한 윤곽과 고대의 질서를 색·구도·기법의 렌즈로 나란히 읽는다.

조개껍데기와 곡선: 로코코

1715년 루이 14세가 죽자 프랑스 궁정의 중심은 한동안 베르사유에서 파리로 옮겨 갔다. 귀족과 부유한 금융가들은 파리 시내의 저택(hôtel)을 새로 짓거나 고쳤고, 거대한 의전용 방 대신 작고 아늑한 응접실과 침실을 꾸몄다. 벽은 흰색과 연한 색으로 칠하고, 문과 거울 둘레를 금빛 곡선 장식으로 감쌌다. 그림은 그 벽의 일부, 곧 문 위와 벽판 안에 끼워 넣는 장식이 되었다.

이 양식을 오늘날 로코코(Rococo)라고 부른다. 정원의 인공 동굴을 꾸미던 조개껍데기와 바위 모양 장식, 곧 로카유(Rocaille)에서 나온 말이다. 이 이름은 양식이 한창일 때가 아니라 18세기 말에 붙었고, 처음에는 지나치게 꾸민 옛 취향을 낮춰 부르는 말이었다는 설명이 흔하다. 4장의 바로크가 그랬듯, 사조의 이름은 뒤에 붙인 정리다.

장앙투안 와토의 메제탱. 짙은 초록 정원의 돌 벤치에 분홍과 하늘색 줄무늬 옷을 입은 남자가 앉아 기타를 켜며 고개를 젖히고 노래한다. 흰 주름 깃과 분홍 베레, 분홍 망토를 걸쳤고, 흰 스타킹을 신은 다리를 꼬았다. 뒤쪽 나무 사이로 등을 돌린 여인의 석상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림 1. 장앙투안 와토, 「메제탱」, 1718~20년경. 이탈리아 즉흥 희극(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인물 메제탱이 정원에서 사랑 노래를 부른다. 뒤쪽 석상의 여인은 등을 돌렸다. 노래가 닿지 않는 사랑이다. 분홍과 하늘색이 번갈아 드는 줄무늬 옷, 가볍게 끊어 찍은 붓질, 짙은 숲 앞에서 빛나는 흰 스타킹이 와토의 손이다. 크기는 55 × 43 cm로 작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Munsey Fund, 1934), 캔버스에 유채, 55.2 × 43.2 cm.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장앙투안 와토(Antoine Watteau)는 1717년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에 입회 작품을 냈다. 귀족 남녀가 사랑의 섬 키테라로 떠나는 장면이었는데, 아카데미는 이 그림을 기존 장르 어디에도 넣지 못해 페트 갈랑트(Fête galante), 곧 "우아한 연회"라는 새 이름으로 기록했다. 정원과 공원에서 차려입은 남녀가 음악과 대화와 연애를 즐기는 그림이다. 역사화처럼 큰 사건도, 네덜란드 장르화처럼 보통 사람의 일상도 아닌, 꿈과 연극 사이의 장면이었다.

로코코 장식의 특징은 곡선만이 아니다. 바로크와 그 이전의 장식은 대개 좌우가 대칭이었는데, 로카유 장식은 일부러 좌우를 어긋나게 만들곤 했다. 한쪽 소용돌이는 위로 말리고 다른 쪽은 아래로 흘러내린다. 아래 시뮬레이터에서 액자 장식의 비대칭과 소용돌이의 말림을 바꿔 본다. 맨 위의 조개껍데기 꼭짓점은 끌어서 옮길 수 있다.

SIMULATOR

로카유 액자: 비대칭과 말림

맨 위 조개껍데기의 꼭짓점을 끈다
좌우 어긋남—
소용돌이 회전—
윤곽 중 곡선의 비율—
해볼 것: ① 비대칭을 0으로 내린다. 좌우가 거울처럼 같은 액자가 되며, 곡선은 많아도 차분하고 의젓해 보인다. ② 비대칭을 1로 올린다. 오른쪽 소용돌이가 커지고 흘러내리며 액자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지나치면 액자가 쓰러질 것처럼 불안해진다. ③ "신고전 액자"로 바꾼다. 직선과 직각, 좌우 대칭, 위의 작은 삼각 박공만 남는다. 같은 크기의 판인데 인상이 정반대다. (장식의 모양은 이 책이 로카유 장식의 일반적 특징을 바탕으로 만든 예시이며, 특정 작품의 복제가 아니다. 좌우 어긋남은 오른쪽 윤곽 점들이 왼쪽 윤곽의 거울상에서 벗어난 평균 거리를 판 너비로 나눈 값이다.)

비대칭을 조금 넣으면 액자가 살아 움직이고, 너무 많이 넣으면 무너진다. 로코코 장인들은 대칭이라는 큰 틀은 지키면서 세부에서 어긋남을 주는 쪽을 택했다. 같은 시기의 의자 다리, 촛대, 시계, 도자기 손잡이에도 같은 곡선과 어긋남이 나온다. 로코코는 그림의 양식이기 전에 방 전체의 양식이었다.

아름다움의 선

영국의 화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는 1753년 『미의 분석』(The Analysis of Beauty)이라는 책을 냈다. 그는 여러 굵기와 휨의 선을 늘어놓고 비교하며, 지나치게 곧은 선은 밋밋하고 지나치게 휜 선은 투박한데, 그 사이에서 알맞게 휜 S자 선이 가장 아름답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선을 아름다움의 선(Line of beauty)이라 불렀다. 호가스 자신은 로코코 화가라기보다 풍자 판화가였지만, 그의 S자 선은 같은 시대 유럽의 취향을 잘 요약한다. 다만 "가장 아름다운 휨"은 호가스의 의견이지 측정된 사실이 아니다.

프랑수아 부셰의 비너스의 단장. 청록색 비단 휘장 아래, 금빛 장식의 의자와 분홍 천 위에 비너스가 몸을 비틀어 앉아 있다. 날개 달린 아기 큐피드들이 머리를 매만지고 진주 목걸이를 건넨다. 앞쪽에 흰 비둘기 두 마리, 꽃, 금빛 향로와 은 그릇이 흩어져 있다.
그림 2. 프랑수아 부셰, 「비너스의 단장」, 1751. 비너스의 몸은 머리에서 어깨, 허리, 무릎으로 S자를 그리며 비틀린다. 청록 휘장, 분홍 천, 금빛 의자 다리도 모두 곡선이다. 직선은 거의 없다. 소장처 설명에 따르면 퐁파두르 부인이 자신의 벨뷔 성을 위해 주문한 그림이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Bequest of William K. Vanderbilt, 1920), 캔버스에 유채, 108.3 × 85.1 cm.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는 로코코를 대표하는 화가다. 왕의 애첩이자 큰 후원자였던 퐁파두르 부인의 사랑을 받았고, 1765년 왕의 수석 화가가 되었다. 그는 그림만이 아니라 보베와 고블랭 공방의 태피스트리 밑그림, 세브르 도자기의 장식 도안도 그렸다. 그림과 공예가 같은 곡선을 나눠 쓴 것이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S자 선 하나의 휨을 바꾸고, 그 선을 의자 다리와 꽃병의 옆모습에 그대로 써 본다.

SIMULATOR

S자 선 하나로: 선, 의자 다리, 꽃병

선 위의 손잡이를 좌우로 끈다
가장 크게 휜 곳(높이 대비)—
굽은 방향이 바뀌는 곳—
호가스의 말로는—
해볼 것: ① 휨을 0으로 내린다. 선은 곧은 막대, 의자 다리는 각진 기둥, 꽃병은 원통이 된다. ② 휨을 0.3~0.5 사이에 둔다. 위는 바깥으로 부풀고 아래는 안으로 들어가는 S자가 생기고, 의자 다리는 18세기 프랑스 가구의 굽은 다리(카브리올 다리)를 닮는다. ③ 휨을 1까지 올린다. 선이 뱀처럼 꿈틀거리고 의자 다리는 버티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위아래 균형을 끝까지 밀면 S자의 한쪽 굽이만 남는다. (S자 선은 사인 곡선 한 주기를 위아래 비율에 맞춰 늘인 이 책의 모형이다. "호가스의 말로는" 칸은 『미의 분석』의 요지를 이 책이 휨의 크기에 대응시킨 것으로, 호가스가 수치를 정한 것은 아니다.)

휨을 조금씩 바꾸면 같은 선이 막대에서 우아한 S로, 다시 꿈틀거리는 뱀으로 바뀐다. 무엇이 "알맞은" 휨인지는 시대와 쓰임에 따라 다르다. 의자 다리라면 무게를 버틸 듯 보여야 하고, 비단 휘장이라면 흘러내려야 한다. 로코코 화가와 장인들은 이 곡선을 그림의 인물, 액자, 가구에 같은 문법으로 썼다. 그래서 방 전체가 한 덩어리의 장식처럼 보였다.

파스텔: 재료와 색

"파스텔"이라는 말은 두 가지를 가리킨다. 하나는 재료다. 안료 가루에 접착제를 아주 조금 섞어 막대 모양으로 굳힌 것으로, 종이에 문질러 그린다. 이탈리아어 pastello(반죽)에서 온 이름이다. 다른 하나는 색이다. 흰색이 많이 섞여 밝고 부드러운 분홍, 하늘색, 연두 같은 색을 "파스텔 톤"이라 부른다. 둘은 이어져 있다. 파스텔 막대는 안료에 흰 백토나 분필 가루를 섞어 밝은 단계들을 미리 만들어 두기 때문이다.

로살바 카리에라의 가면무도회 의상을 입은 거스테이버스 해밀턴 초상. 회청색 바탕 앞에 젊은 남자가 검은 삼각모와 검은 레이스 두건을 쓰고, 흰 목 장식 위로 털 테두리가 달린 선명한 파란 외투를 걸쳤다. 얼굴은 부드러운 분홍빛이다.
그림 3. 로살바 카리에라, 「가면무도회 의상을 입은 거스테이버스 해밀턴, 제2대 보인 자작」, 1730~31. 종이에 파스텔로 그렸다. 얼굴의 분홍은 문질러 녹인 부드러운 면이고, 외투의 파랑은 짙은 막대를 눌러 그은 굵은 선이며, 털 테두리는 짧게 끊어 찍었다. 물감이 마를 시간이 필요 없어서 모델 앞에서 빠르게 그릴 수 있었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Purchase, George Delacorte Fund Gift, in memory of George T. Delacorte Jr., and Gwynne Andrews, Victor Wilbour Memorial, and Marquand Funds, 2002), 종이에 파스텔, 캔버스에 붙임, 56.5 × 42.9 cm.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베네치아의 로살바 카리에라(Rosalba Carriera)는 파스텔 초상으로 유럽 전역의 귀족과 여행자에게 이름을 떨쳤고, 1720년 파리를 방문했을 때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다. 그 뒤 파리에서는 파스텔 초상이 크게 유행했다. 파스텔은 마르는 시간이 필요 없어 모델을 오래 앉혀 두지 않아도 되었고, 가루가 빛을 고르게 흩어 피부와 비단, 분가루를 바른 머리를 부드럽게 표현했다.

흰색을 섞으면 색은 어떻게 변할까. 밝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채도와 색상도 함께 바뀐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이 책 엔진의 물감 혼합 모형(쿠벨카–뭉크)으로 안료에 흰색을 조금씩 더한 단계표를 만들고, 각 단계를 명도–채도 판 위에 놓는다. 판 위의 점을 끌어 단계를 고른다. 회색 점들은 부셰의 「비너스의 단장」에서 뽑은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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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을 섞으면: 파스텔 톤의 길

명도–채도 판 위의 점을 길을 따라 끈다
흰색의 비율—
명도 L* · 채도 C*—
순색 대비 색상 변화—
해볼 것: ① 크림슨의 길을 본다. 흰색 50%에서 명도 60·채도 48, 97%에서 명도 87·채도 15로, 밝아질수록 채도가 꾸준히 떨어진다. 점을 길의 위쪽으로 끌어 분홍을 만든다. ② 옐로 오커로 바꾼다. 흰색이 많아질수록 색상이 눈에 띄게 돈다(97%에서 OKLCH로 약 +17°). 울트라마린은 거의 돌지 않는다. 같은 "흰색 섞기"라도 안료마다 길이 다르다. ③ 세룰리안은 처음 30% 남짓까지 채도가 조금 오르거나 그대로이다가 그 뒤에 떨어진다. 원래 탁한 안료라 흰색이 색을 펴 주는 구간이 있다. "화면에서 섞기"를 켜서 OKLab 평균과 비교해 보면, 물감 모형의 길이 휘는 곳에서 두 방법이 갈린다. ④ 부셰의 색 점들을 본다. 대부분 판의 왼쪽, 곧 채도가 낮은 쪽에 중간 명도로 모여 있다. 화면 전체가 "파스텔"인 것은 아니고, 몇몇 밝은 면이 그렇게 보이게 한다. (물감은 이 책 엔진의 교육용 근사이며 흰색은 티타늄 화이트로 계산했다. 18세기 화가들은 연백을 썼다. 부셰의 색은 사진에서 k-평균으로 뽑았으므로 원작의 색과 다르다.)

흰색을 섞은 색이 "부드럽게" 보이는 이유의 절반은 명도가 오르는 것, 나머지 절반은 채도가 내려가는 것이다. 둘이 함께 일어나므로 파스텔 톤끼리는 서로 부딪치지 않고 쉽게 어울린다. 부셰의 화면에서 분홍 천과 청록 휘장이 나란히 놓여도 시끄럽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반대로 부셰의 그림을 숫자로 재 보면 화면의 대부분은 꽤 어둡고 탁하다. 밝은 파스텔 면은 넓은 중간 톤 위에 얹힌 일부다. 색의 인상과 색의 분포는 다를 수 있다.

파스텔 작가의 세 가지 요령 첫째, 종이의 결(투스)이 가루를 붙잡는다. 매끈한 종이에는 몇 겹 못 올리므로 거친 파스텔 전용지나 사포 같은 종이를 쓴다. 둘째, 문지르면 부드러워지지만 탁해진다. 피부처럼 녹아야 할 곳만 손가락이나 찰필로 문지르고, 마지막 하이라이트와 선명한 색은 문지르지 않고 얹는다. 셋째, 파스텔 그림은 가루가 떨어지기 쉬워 정착액을 뿌리는데, 뿌리면 색이 조금 어두워진다. 그래서 많은 작가가 마지막 층에는 정착액을 뿌리지 않고 액자의 유리로 보호한다. 18세기 파스텔 초상이 지금까지 남은 것도 대부분 유리 액자 덕분이다.

사적인 방과 새 관객

로코코 그림의 주제는 대부분 사적이다. 연애편지를 받은 여인, 그네 타는 연인, 화장하는 여신,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 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 Honoré Fragonard)의 「연애편지」는 그 분위기를 잘 보여 준다.

장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연애편지. 금빛 휘장이 드리운 방에서 은빛 비단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인이 책상 앞에 앉아 꽃다발에 끼운 편지를 들고 이쪽을 돌아본다. 머리는 분을 발라 높이 올리고 분홍 꽃으로 장식했다. 책상에는 펼친 책이 있고, 의자 위에 작은 흰 개가 엎드려 있다. 화면 전체가 금색과 주황빛으로 따뜻하다.
그림 4. 장오노레 프라고나르, 「연애편지」, 1770년대 초. 화면 전체가 금빛과 주황으로 물들었다. 붓질은 빠르고 물결치듯 휘어, 휘장과 드레스의 주름이 한 번에 흐른다. 여인은 편지를 든 채 우리를 돌아본다. 들킨 것일까, 보여 주는 것일까. 이야기의 결말은 정해 주지 않는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The Jules Bache Collection, 1949), 캔버스에 유채, 83.2 × 67 cm.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이런 그림은 누가 보았을까. 우선 주문한 귀족과 금융가의 응접실에 모인 손님들이다. 그런데 18세기 파리에는 새로운 관객도 생겼다. 왕립 아카데미는 회원들의 신작을 루브르 궁의 "네모난 방"(Salon Carré)에서 전시했고, 1737년부터는 정기적으로(처음에는 해마다, 뒤에는 대개 2년에 한 번) 열었다. 방 이름을 따서 이 전시를 살롱(Salon)이라 불렀다. 입장은 무료였고, 귀족과 상인, 장인과 하인까지 수많은 사람이 벽을 빼곡히 채운 그림을 보러 왔다.

관객이 생기자 비평도 생겼다. 철학자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는 1759년부터 살롱 전시평을 써서 유럽의 구독자들에게 보냈다. 그는 부셰의 그림이 기교는 뛰어나지만 경박하다고 거듭 비판했고, 대신 장바티스트 그뢰즈(Jean-Baptiste Greuze)의 교훈적인 가정 장면이나 장시메옹 샤르댕(Jean Siméon Chardin)의 소박한 정물과 부엌 장면을 높이 평가했다. 그림이 "무엇을 가르치는가"를 묻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이 목소리는 다음 절의 아카데미, 그리고 신고전주의로 이어진다.

시누아즈리: 상상 속의 중국 로코코 장식에는 중국풍 인물과 정자, 원숭이, 우산이 자주 나온다. 이런 유럽식 중국 취향을 시누아즈리(Chinoiserie)라 부른다. 부셰도 보베 공방의 "중국" 태피스트리 연작 밑그림을 그렸다. 시누아즈리는 수입된 도자기와 칠기, 벽지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실제 중국의 회화나 생활을 옮긴 것이 아니라 유럽 사람들이 상상한 이국의 무대였다. 5장의 칼프 정물 속 청화백자처럼 동아시아의 물건은 유럽 그림에 소재로 들어왔다. 그 물건을 만든 쪽의 미술은 10장과 12장에서 그 자체로 읽는다.

아카데미와 장르의 위계

프랑스의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Académie royale de peinture et de sculpture)는 1648년에 세워졌다. 화가를 길드의 장인에서 "학문을 하는 예술가"로 끌어올리려는 기관이었고, 회원 선발, 교육, 살롱 전시, 왕실 주문의 배분을 쥐었다. 아카데미의 교육은 고대 조각의 석고상 소묘에서 시작해 남성 누드 모델 소묘로 나아갔다. 형태는 먼저 윤곽과 소묘로 잡고 색은 그 뒤라는 생각이 바탕에 있었다.

아카데미는 주제에도 높낮이를 매겼다. 1667년 아카데미의 강연록 서문에서 앙드레 펠리비앵(André Félibien)이 정리한 이 서열을 흔히 장르의 위계(Hierarchy of genres)라 부른다. 성경·신화·역사 속 인간의 행동을 그리는 역사화가 맨 위에, 생명 없는 물건을 그리는 정물이 맨 아래에 놓였다.

1 역사화 2 초상화 3 장르화 4 풍경화 5 정물화 성경·신화·역사 속 인간의 행동 큰 화면, 아카데미 교육의 목표 특정 인물의 얼굴과 지위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일상 자연과 도시의 경치 생명 없는 물건 5장의 네덜란드 시장에서 많이 팔린 쪽 펠리비앵(1667)의 정리를 바탕으로 이 책이 그린 도식
그림 5. 장르의 위계. 아카데미가 가장 높이 친 것은 역사화였다. 인간의 행동과 덕을 보여 주며, 해부학·원근법·고전 지식을 모두 요구했기 때문이다. 5장의 네덜란드 시장에서 많이 팔린 정물과 풍경은 이 서열의 아래쪽이다. 서열은 공식 평가였을 뿐, 샤르댕의 정물처럼 아래쪽 장르로 높은 명성을 얻은 화가도 있었다.

아카데미는 여성에게 거의 닫혀 있었다. 몇몇 여성이 회원으로 받아들여졌지만 1770년에는 여성 회원을 한 번에 네 명까지로 제한했고, 여성은 누드 모델 수업에 참여할 수 없었다. 역사화의 기본기인 인체 소묘를 배울 길이 막혔으니, 여성 화가들은 주로 초상과 정물로 이름을 얻었다. 1783년 같은 날, 두 여성 초상화가 아델라이드 라비유기아르(Adélaïde Labille-Guiard)와 엘리자베트 비제르브룅(Élisabeth Vigée Le Brun)이 아카데미에 입회했다.

아델라이드 라비유기아르의 두 제자와 함께 있는 자화상. 어두운 화실에서 은빛 비단 드레스와 깃털 장식 모자를 쓴 여성 화가가 큰 이젤 앞에 앉아 팔레트와 붓을 들고 이쪽을 본다. 뒤에서 두 젊은 여성 제자가 몸을 기울여 화면을 들여다본다. 왼쪽에는 이젤의 뒷면이 크게 보이고, 뒤쪽 어둠 속에 흉상이 있다.
그림 6. 아델라이드 라비유기아르, 「두 제자와 함께 있는 자화상」, 1785. 높이 2 m가 넘는 큰 화면에 화가 자신과 두 제자 마리 가브리엘 카페, 마리 마르그리트 카로 드 로즈몽을 그렸다. 역사화만 한 크기로, 여성 화가가 제자를 가르치는 모습을 당당히 보여 준다. 은빛 비단의 차가운 반사와 날카로운 윤곽이 눈에 띈다. 뒤쪽 어둠 속의 흉상은 고대 조각 소묘라는 아카데미 교육의 출발점을 떠올리게 한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Gift of Julia A. Berwind, 1953), 캔버스에 유채, 210.8 × 151.1 cm.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이미지에서 액자를 잘라 냈다.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라비유기아르는 이 자화상을 1785년 살롱에 냈다. 그는 여성 제자들을 길러 냈고, 여성 회원 수 제한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제르브룅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가로 유명했고, 1789년 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를 떠나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지에서 초상화가로 일했다. 마지막 절의 시뮬레이터에서 그가 1787년에 그린 딸 쥘리의 초상을 볼 수 있다.

신고전주의: 윤곽과 질서

18세기 중반, 유럽은 고대를 새로 발견했다. 나폴리 근처에서 화산재에 묻혔던 헤르쿨라네움(1738년부터)과 폼페이(1748년부터)의 발굴이 시작되어 고대 로마의 벽화, 가구, 그릇이 쏟아져 나왔다. 독일의 미술사가 요한 요아힘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은 1755년의 글 『그리스 회화와 조각의 모방에 대한 생각』에서 그리스 미술의 본질을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edle Einfalt und stille Größe)이라고 요약했다. 로코코의 장식과 관능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 말은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이렇게 고대 그리스·로마를 본보기로 삼은 미술을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라 부른다.

자크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 돌벽으로 둘러싸인 감옥 안, 흰 옷을 걸친 소크라테스가 침대에 앉아 한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며 다른 손으로 독이 든 잔을 받으려 한다. 붉은 옷의 청년이 고개를 돌린 채 잔을 건네고, 둘레의 제자들은 얼굴을 감싸거나 벽에 기대 슬퍼한다. 침대 끝에는 늙은 플라톤이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인물들은 화면과 나란히 한 줄로 늘어서 있다.
그림 7. 자크루이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 인물들은 화면과 나란한 얕은 무대 위에 한 줄로 늘어서, 고대의 부조를 보는 것 같다. 윤곽은 단단하고 붓 자국은 감춰졌다. 뒤쪽 벽과 아치가 수평·수직의 틀을 만들고, 그 앞에서 소크라테스의 들어 올린 팔과 잔을 향한 손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1787년 살롱에 전시되었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Catharine Lorillard Wolfe Collection, Wolfe Fund, 1931), 캔버스에 유채, 129.5 × 196.2 cm.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는 신고전주의 회화의 중심에 선 화가다. 로마 유학에서 고대 조각과 라파엘로, 푸생을 공부했고, 1780년대에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1784~85, 루브르)와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으로 살롱의 주목을 받았다. 이 그림들의 주제는 사랑이 아니라 의무와 희생, 죽음 앞의 덕이다. 그리고 방식도 정반대다. 프라고나르의 붓이 물결치듯 흐른다면 다비드의 붓은 보이지 않는다. 형태는 날카로운 윤곽으로 닫혀 있고, 빛은 조각을 비추듯 고르고 단단하다.

다비드의 구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물들이 깊이 쪽으로 흩어지지 않고 화면과 나란한 얕은 띠에 늘어선다는 점이다. 고대 신전의 띠 모양 부조(Frieze)를 닮아 흔히 부조 같은 구도(Frieze-like composition)라 부른다. 아래 시뮬레이터에서 무대 위 다섯 사람을 평면도에서 옮겨 앞에서 본 모습을 비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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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무대와 깊은 무대: 부조 같은 구도

평면도의 사람을 끈다
무대의 깊이 폭—
가장 큰 사람 ÷ 가장 작은 사람—
앞에서 겹치는 쌍—
해볼 것: ① "얕은 띠"에서는 다섯 사람이 거의 같은 크기로 겹치지 않고 늘어선다. 각자의 몸짓이 윤곽으로 또렷하게 읽힌다. 다비드의 무대다. ② "사선으로 깊게"로 바꾼다. 앞사람은 크고 뒷사람은 작아지며, 화면 안쪽으로 빨려 드는 움직임이 생긴다. 바로크와 로코코의 천장화나 큰 화면이 즐겨 쓴 구성이다. ③ "한데 모으기"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가려 누가 무엇을 하는지 읽기 어렵다. 평면도에서 한 사람씩 끌어 겹침이 0이 되는 배치를 찾아본다. 보는 거리를 늘리면 깊은 무대에서도 크기 차가 줄어든다. (사람은 키 175 cm, 폭 50 cm의 기둥으로 단순화했다. 눈높이 160 cm의 핀홀 투시로, 이 책 엔진의 ART.project를 썼다.)

얕은 무대에서는 모든 인물의 몸짓이 같은 크기와 같은 선명도로 읽힌다. 관람자는 장면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보다 한 걸음 떨어져 연설을 듣듯 바라본다.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판단하게 만드는 구도다. 이것이 신고전주의가 원한 효과였다. 물론 다비드도 언제나 이 구도만 쓴 것은 아니고, 부조 같은 구도 자체는 고대와 르네상스, 푸생에게서 이미 쓰였다. 신고전주의는 그것을 다시 앞세웠다.

앙겔리카 카우프만의 텔레마코스와 칼립소의 님프들. 해 질 녘 바닷가 동굴 앞에서 고대 그리스 옷을 입은 젊은 여인들이 화관과 꽃줄을 들고 춤추듯 다가온다. 가운데 바위에 청년 텔레마코스가 앉아 있고, 그 옆에 갈색 망토를 두른 노인이 서 있다. 인물들은 화면과 나란히 한 줄로 늘어섰다.
그림 8. 앙겔리카 카우프만, 「텔레마코스와 칼립소의 님프들」, 1782. 고대 서사시 『오디세이아』 뒷이야기의 한 장면이다. 인물들은 얕은 띠 위에 나란히 서고, 옷은 고대 조각처럼 몸을 따라 흐른다. 그러나 분홍, 연노랑, 연두의 옷 색은 로코코의 부드러운 색과 멀지 않다. 신고전주의의 무대에 로코코의 색이 남아 있는 그림이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Bequest of Collis P. Huntington, 1900), 캔버스에 유채, 82.6 × 112.4 cm.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스위스 태생의 앙겔리카 카우프만(Angelica Kauffmann)은 로마와 런던에서 활동했고, 1768년 런던 왕립 아카데미가 세워질 때 창립 회원 가운데 두 여성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여성이 거의 그리지 못했던 역사화를 그렸다. 카우프만의 그림은 로코코와 신고전주의가 칼로 자르듯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무대와 주제는 고대의 것이지만, 색과 몸짓은 부드럽다.

윤곽 먼저, 명암은 그 안에서 신고전주의 화가들의 소묘 교육은 오늘날의 석고 소묘에도 남아 있다. 먼저 가는 연필이나 분필로 형태의 바깥 윤곽을 정확히 닫는다. 윤곽이 맞을 때까지 명암을 넣지 않는다. 그다음 윤곽 안에서 명암을 넓은 면으로 나누고, 경계는 가능한 한 매끈하게 이어 붓 자국을 감춘다. 반대로 로코코 화가들의 소묘는 붉은 분필과 흰 분필로 빠르게 형태를 쓸어 내는 경우가 많다. 둘은 우열이 아니라 목적의 차이다. 윤곽 먼저는 형태를 단단하고 읽기 쉽게, 쓸어 내기는 움직임과 공기를 살아 있게 한다.
같은 컵을 두 가지로 컵이나 병 하나를 창가에 놓고 엽서 크기의 종이 두 장에 그린다. 첫 장은 신고전주의 방식이다. 가는 연필로 윤곽을 한 번에 정확히 닫고, 그 안을 밝음·중간·어둠 세 면으로 나눠 경계를 매끈하게 칠한다. 둘째 장은 로코코 방식이다. 윤곽선을 긋지 말고, 색연필이나 파스텔의 옆면으로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빠르게 쓸어 형태가 떠오르게 한다. 시간은 첫 장 15분, 둘째 장 5분으로 정한다. 두 장을 나란히 붙이고 "무엇이 더 정확한가"가 아니라 "무엇이 더 무거운가, 무엇이 더 가벼운가"를 적어 본다.

한 시대, 두 그림

교과서의 연표는 로코코 다음에 신고전주의를 놓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겹쳐 있었다. 프라고나르는 1806년까지 살았고, 다비드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낸 1787년 살롱에는 비제르브룅과 라비유기아르의 초상도 걸렸다. 같은 아카데미의 회원들이 같은 벽에 정반대의 그림을 걸었다. 1789년 혁명은 이 균형을 무너뜨렸다. 로코코는 무너진 구체제의 취향으로 여겨졌고, 다비드는 혁명 정부에서 미술 행정의 중심에 섰다. 그 뒤 이야기는 7장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시뮬레이터는 같은 시대의 그림 두 점을 골라 팔레트와 명도·채도를 나란히 놓는다. 양쪽에서 그림을 하나씩 고르고, 아래 판에서 두 팔레트가 어디서 겹치고 어디서 갈리는지 본다. 동그라미는 A, 네모는 B다.

SIMULATOR

같은 시대 두 그림: 팔레트 비교기

A (동그라미)
B (네모)
평균 명도 L* (A · B)—
평균 채도 C* (A · B)—
어두운 면 L*<25 (A · B)—
해볼 것: ① 처음 상태(프라고나르와 다비드)를 본다. 프라고나르의 색 점들은 판의 오른쪽, 곧 채도가 높은 금빛·주황 쪽으로 퍼지고, 다비드의 점들은 왼쪽 아래의 어둡고 탁한 쪽에 모인다. 평균 채도는 세 배 넘게 차이 난다. ② B를 라비유기아르로 바꾼다. 은빛 비단 때문에 "로코코처럼" 보이던 그림인데, 숫자로는 오히려 다비드 쪽에 가깝다. 화면 대부분이 어두운 화실이다. ③ A를 와토로, B를 카우프만으로 놓는다. 로코코 초기 화가와 신고전주의 화가의 그림인데 평균 채도가 거의 같다(16.6과 15.7). 사조의 이름이 팔레트를 깨끗이 나누지는 않는다. (사진 속 색은 원작과 다르다. 다비드와 라비유기아르처럼 어두운 그림은 바니시와 촬영 조건의 영향이 특히 크다. 평균은 화면을 가로 160px로 줄여 모든 점에서 CIELAB으로 계산했고, 팔레트는 이 책 엔진의 OKLab k-평균이다.)

숫자는 인상을 확인해 주기도 하고, 뒤집기도 한다. 프라고나르와 다비드는 인상 그대로 크게 다르다. 그런데 라비유기아르의 자화상은 은빛 비단의 인상과 달리 화면의 대부분이 어둡다. 로코코와 신고전주의를 가르는 것은 팔레트만이 아니라, 무엇을 그리는가(사랑과 덕), 어떻게 짜는가(곡선과 비대칭, 얕은 띠와 수평·수직), 무엇으로 그리는가(드러난 붓질과 감춘 붓질)의 묶음이다. 한 가지 렌즈로만 보면 경계는 흐려진다. 세 렌즈를 함께 대야 같은 시대의 두 그림이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것이 보인다.

서윤의 작업 노트

CASE 서윤작업 노트 · 6장

5회차, 두 그림의 팔레트를 나란히

5회차는 10월 2일 토요일이다. 서윤은 이번 회차를 "비교 카드" 한 장으로 끝내기로 했다. 같은 시대의 그림 두 점을 카드 앞면에 나란히 놓고, 각각의 팔레트를 나란히 붙이는 것이다. 첫 안은 부셰의 「비너스의 단장」(1751)과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이었다. 도경이 연도를 짚었다. "36년 차이면 같은 시대라고 하기엔 좀 멀지 않아? 그 사이에 사람이 한 세대 바뀌었어."

서윤은 다비드와 더 가까운 해의 그림을 찾았다. 처음 떠올린 것은 라비유기아르의 1785년 자화상이었다. 은빛 비단과 깃털 모자가 로코코 쪽 그림으로 딱 맞아 보였다. 그런데 팔레트 비교기에 넣어 보니 예상과 달랐다. 이 책의 모델로 계산하면 라비유기아르의 평균 명도는 L* 약 21, 평균 채도는 C* 약 11로, 다비드(L* 약 15, C* 약 10)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화면 대부분이 어두운 화실이기 때문이다. 서윤은 이 결과를 버리지 않고 카드 뒷면의 "숫자가 뒤집은 인상" 칸에 넣기로 했다.

앞면의 짝은 프라고나르의 「연애편지」(1770년대 초)와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으로 정했다. 두 화가는 같은 시대 파리에서 활동했고, 프라고나르는 다비드보다 오래 살았다. 프라고나르는 1765년 아카데미의 준회원 자격을 얻었지만 정회원 절차를 마치지 않고 개인 수집가의 주문에 힘을 쏟았다. 살롱보다 응접실의 화가였던 셈이다. 이 책의 모델로 계산하면 프라고나르의 평균 채도는 C* 약 32, 다비드는 약 10으로 세 배가 넘게 차이 나고, 명도 L* 25 아래의 어두운 면은 프라고나르가 화면의 약 28%, 다비드가 약 85%다. 팔레트는 각각 다섯 색으로 뽑아 카드에 붙였다. 도경은 숫자 옆에 그림의 크기도 적자고 했다. 「연애편지」는 83 × 67 cm,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130 × 196 cm다. "응접실 벽의 그림과 살롱 벽의 그림이라는 것도 같이 보여 줘야지."

칸프라고나르, 「연애편지」, 1770년대 초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
색금빛·주황이 화면 전체를 물들임, 평균 채도 C* 약 32어두운 돌벽 앞의 흰 옷과 붉은 옷, 평균 채도 C* 약 10
구도휘장과 드레스의 사선과 곡선, 인물은 돌아봄화면과 나란한 얕은 띠, 벽과 아치의 수평·수직
기법물결치는 빠른 붓질감춘 붓질, 닫힌 윤곽
크기·자리83 × 67 cm, 저택의 사적인 방130 × 196 cm, 1787년 살롱
질문같은 도시, 같은 시대의 두 화가가 이렇게 다른 그림을 그렸다면, 무엇이 달랐을까? 그린 사람일까, 보는 사람일까?

대학생 단골이 미리 남긴 질문은 이랬다. "로코코가 끝나서 신고전주의가 온 거죠?" 서윤은 그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고, 회차의 마지막 활동으로 카우프만의 1782년 그림을 띄워 참가자들에게 "어느 쪽 방에 걸지" 투표하게 하기로 했다. 무대는 신고전, 색은 로코코인 그림이다. 정 선생님은 파스텔 이야기를 듣고 집에 있던 오래된 파스텔 상자를 가져오겠다고 했다. 서윤은 흰색을 섞어 가는 단계표를 참가자들이 직접 문질러 보게 하는 5분짜리 활동을 카드 뒷면 아래에 적었다.

이 장에서 정한 것5회차 비교 카드. 앞면은 프라고나르 「연애편지」(1770년대 초)와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의 팔레트 각 다섯 색과 평균 채도·어두운 면 비율, 크기와 걸린 자리. 뒷면은 "숫자가 뒤집은 인상"으로 라비유기아르의 1785년 자화상, 그리고 카우프만 1782년 그림의 "어느 방에 걸까" 투표와 파스텔 단계표 문지르기 5분.
아직 남은 문제다비드와 라비유기아르처럼 어두운 그림은 사진과 바니시의 영향이 커서 숫자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 카드에 "사진에서 잰 값"이라고 꼭 적어야 한다. 그리고 숫자로는 갈리지 않는 차이(곡선과 윤곽)를 카드 한 장에 어떻게 보여 줄지.
다음 단계7장: 6회차는 붓질을 확대해 보는 활동이다.

핵심 정리

  1. 로코코는 1715년 이후 파리 저택의 작은 방들을 꾸민 곡선과 비대칭의 장식 양식이다. 이름은 로카유(조개껍데기·바위 장식)에서 왔고, 18세기 말에 붙은 뒤늦은 이름이다.
  2. 와토의 페트 갈랑트, 부셰의 신화, 프라고나르의 연애 장면처럼 로코코의 주제는 사적이고, 그림은 액자·가구·태피스트리와 같은 곡선의 문법을 나눠 썼다. 호가스는 이 곡선을 "아름다움의 선"으로 정리했다.
  3. 파스텔은 가루 막대 재료이자 흰색이 많이 섞인 밝고 부드러운 색이다. 흰색을 섞으면 명도는 오르고 채도는 대체로 내려가며, 안료에 따라 색상도 돈다.
  4. 왕립 아카데미는 역사화를 맨 위, 정물을 맨 아래에 둔 장르의 위계를 세웠고, 살롱 전시로 새로운 대중 관객과 비평을 만들었다. 여성 회원은 수가 제한되었고 누드 소묘 교육에서 배제되었다.
  5. 신고전주의는 고대 발굴과 빙켈만의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을 기준으로, 닫힌 윤곽, 감춘 붓질, 화면과 나란한 얕은 무대(부조 같은 구도), 의무와 덕의 주제를 내세웠다.
  6. 로코코와 신고전주의는 같은 시대, 같은 아카데미 안에서 겹쳐 있었다. 팔레트 숫자만으로는 둘이 깨끗이 나뉘지 않으며, 색·구도·기법을 함께 대야 차이가 보인다.

확인 퀴즈

1. "로코코"라는 이름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로코코는 로카유에서 나온 말이며 18세기 말에 붙은 뒤늦은 이름이다. 와토의 입회 작품에 붙은 이름은 "페트 갈랑트"라는 장르 이름이었다. 고대로 돌아가려 한 것은 신고전주의이고, 로코코는 루이 14세가 죽은 뒤 파리 저택에서 꽃피었다.

2. 옐로 오커에 흰 물감을 점점 더 섞어 단계표를 만들었다. 이 책의 물감 모형에서 나타나는 변화로 가장 알맞은 것은?

흰색은 빛을 고르게 많이 돌려보내므로 섞을수록 밝아지고, 안료의 색은 묽어져 채도가 떨어진다. 이 책의 물감 모형에서 옐로 오커는 흰색 97%에서 색상이 OKLCH로 약 17° 돈다(울트라마린처럼 거의 돌지 않는 안료도 있다). 탁한 안료는 처음에 흰색을 조금 섞을 때 채도가 잠깐 유지되거나 오르기도 한다. 파스텔 톤이 순색과 다른 색으로 보이는 이유다.

3.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의 장르 위계에서 가장 높이 평가된 장르는?

성경·신화·역사 속 인간의 행동을 그리는 역사화가 맨 위였고, 초상화, 장르화, 풍경화, 정물화가 뒤를 이었다. 5장의 네덜란드 시장에서 많이 팔린 정물과 풍경은 이 서열의 아래쪽이다. 서열은 공식 평가였을 뿐, 샤르댕처럼 낮은 장르로 큰 명성을 얻은 화가도 있었다.

4.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에서 인물들이 화면과 나란한 얕은 띠에 늘어선 구도가 주는 효과로 가장 알맞은 것은?

얕은 띠(부조 같은 구도)에서는 인물의 크기 차와 겹침이 작아 몸짓이 윤곽으로 또렷하게 읽힌다. 깊이 쪽으로 빨려 드는 효과는 사선으로 깊게 배치할 때 생긴다. 얕은 무대여도 원근법은 그대로 있다. 바닥과 벽은 여전히 소실점으로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