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9

후기 인상주의와 그 너머

1886년 5월, 파리에서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가 열렸다. 그 방에는 스물여섯 살의 조르주 쇠라가 2년 동안 매달린 커다란 그림 한 점이 걸렸다. 공원에서 쉬는 사람들을 그렸는데, 붓질이 없었다. 화면 전체가 작은 점으로 덮여 있었다. 같은 해 빈센트 반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왔고, 폴 세잔은 엑상프로방스에서 혼자 산을 그리고 있었으며, 폴 고갱은 브르타뉴로 떠날 준비를 했다. 네 사람은 인상주의에서 출발했지만 저마다 다른 문을 열었다. 이 장은 그 네 개의 문을 작품 위에서 하나씩 열어 본다. 점은 정말 눈에서 섞이는가, 산은 왜 조각난 색으로 쌓였는가, 붓질은 어떻게 감정이 되었는가, 그림은 왜 다시 평평해졌는가.

한 사조가 아닌 네 갈래

후기 인상주의(Post-Impressionism)라는 말은 화가들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니다. 영국의 비평가 로저 프라이(Roger Fry)가 1910년 11월 런던 그래프턴 갤러리에서 연 전시 「마네와 후기 인상주의자들」(Manet and the Post-Impressionists)의 제목으로 쓰면서 퍼졌다. 그때는 쇠라와 고흐, 고갱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세잔도 4년 전에 죽은 뒤였다. "후기"는 "인상주의 다음에 온 여러 가지"라는 뜻에 가깝다. 공통의 선언문도, 함께한 모임도 없었다. 그래서 이 장은 사조의 정의를 외우는 대신, 네 사람이 각자 인상주의의 어떤 문제를 붙들었는지에서 시작한다.

인상주의는 야외의 빛을 빠른 붓질로 붙잡았다(8장). 그 대가로 두 가지가 흐려졌다는 불만이 나왔다. 하나는 형태와 구조다. 순간의 빛을 좇다 보니 사물의 단단함과 화면의 짜임이 녹아 버렸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의미와 감정이다. 눈에 비친 것만 그리면 화가가 느끼고 생각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이다. 네 화가의 답은 이렇게 갈린다.

1880188518901895190019051910 1886 마지막 인상주의전 1910 프라이의 전시 쇠라 점과 색의 과학 · 1891 사망 세잔 엑상프로방스에서 구조를 짓다 · 1906 사망 고흐 어두운 색 → 밝은 색 1886 파리 · 1888 아를 · 1889 생레미 · 1890 사망 고갱 평면과 상징 · 1888 퐁타벤 · 1891 타히티 · 1903 사망 1884–86 「그랑드자트」
그림 1. 네 화가의 시간. 막대는 이 장에서 다루는 활동 기간을 대략 나타낸다(세잔은 그 전부터 그렸다). 1886년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에 쇠라의 큰 그림이 걸렸고, 같은 해 고흐가 파리에 왔다. "후기 인상주의"라는 이름은 네 사람 중 세잔만 살아 있던 때도 지난 1910년에 붙었다. 이 이름은 공통점보다 "인상주의 다음"이라는 시간의 위치를 말한다.
화가인상주의에서 이어받은 것새로 붙든 문제이 장의 렌즈
쇠라밝은 색, 색 그림자, 야외의 빛빠른 붓질 대신 체계: 색을 점으로 나눠 눈에서 섞는다색·기법
세잔자연 앞에서 그리기, 짧은 붓질순간이 아닌 구조: 형태와 화면을 색의 조각으로 짓는다구도·기법
고흐밝은 팔레트, 보색, 일본 판화보이는 색이 아닌 느끼는 색, 붓질의 방향과 두께색·기법
고갱밝은 색, 일본 판화의 평면관찰에서 기억과 상징으로: 색면과 윤곽선색·구도

쇠라: 점으로 나눈 색

쇠라는 색에 관한 당대의 과학 책을 열심히 읽은 화가였다. 프랑스의 화학자 미셸외젠 슈브뢸(Michel-Eugène Chevreul)이 1839년에 낸 『색의 동시대비 법칙에 관하여』, 미국의 물리학자 오그던 루드(Ogden Rood)의 『현대 색채학』(Modern Chromatics, 1879, 프랑스어판 1881)이 대표적이다. 루드는 물감을 섞으면 색이 탁해지지만, 작은 색 조각을 나란히 놓고 멀리서 보면 눈에서 섞인다는 것을 실험으로 보였다. 쇠라는 이 생각을 화면 전체에 체계적으로 적용했다. 색을 팔레트에서 섞지 않고 작은 점으로 나눠 나란히 찍는 방법이다. 이것을 점묘법(Pointillism)이라고 부르고, 쇠라와 동료들은 색을 "나눈다"는 뜻에서 분할주의(Divisionism)라는 말을 더 좋아했다. 비평가 펠릭스 페네옹(Félix Fénéon)은 1886년에 이들을 신인상주의(Neo-Impressionism)라고 불렀다.

강가 공원의 풀밭. 왼쪽 위로 푸른 강물과 돛단배가 보이고, 나무 그늘이 진 초록 풀밭 위에 양산을 든 여인들, 앉아 쉬는 사람들, 아이와 개가 흩어져 있다. 오른쪽 앞에는 검은 옷의 남녀가 옆모습으로 서 있다. 인물들은 모두 단순한 옆모습이나 정면으로 굳어 있고, 화면 전체가 작은 색 점과 짧은 붓자국으로 덮여 있다.
그림 2. 조르주 쇠라,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위한 습작, 1884. 시카고 미술관에 있는 큰 그림(1884–86)을 준비하며 그린 수십 점의 습작 가운데 하나다. 인물의 배치가 최종 그림에 가깝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공원의 한순간을 그렸다면, 쇠라는 사람들을 단순한 옆모습과 정면으로 굳혀 고대 부조처럼 늘어놓았다. 그늘 진 풀밭을 가까이 보면 초록 사이에 파랑과 보라 점이, 햇빛 든 풀밭에는 노랑과 주황 점이 섞여 있다. 습작이라 점이 최종 그림보다 크고 거칠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Bequest of Sam A. Lewisohn, 1951), 캔버스에 유채.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점이 눈에서 섞인다는 말은 반만 맞다. 얼마나 섞이는지는 점 하나가 눈에서 차지하는 각도에 달려 있다. 같은 점도 가까이 서면 크게, 멀리 서면 작게 보인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쇠라의 「서커스 사이드쇼」에서 가스등과 남자의 머리 부분을 잘라 왔다. 이 책의 이미지에서 재면 점 하나의 지름은 대략 8픽셀, 실물로 약 3 mm다. 아래 바닥 그림에서 사람을 끌어 그림과의 거리를 바꾸고, 그 거리의 눈에 무엇이 남는지 본다. 그림은 눈에 맺히는 상을 같은 크기로 확대해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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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묘와 보는 거리

바닥의 사람을 좌우로 끈다
점 하나의 시각—
색—
명암의 결—
해볼 것: ① 사람을 그림 앞 1 m에 세운다. 점 하나가 약 10.5분(1분은 1/60도)으로 보여 주황·파랑·초록 점이 하나하나 따로 보인다. ② 3.5 m 근처로 물러난다. 색 점은 보랏빛 갈색 하나로 녹는데, 밝고 어두운 점의 오돌토돌한 결은 아직 남아 반짝인다. ③ "명암과 색을 따로 흐리기"를 끄고 같은 거리를 다시 본다. 색과 명암을 같은 정도로 흐리면 반짝임이 함께 사라져 쇠라 그림의 독특한 떨림이 설명되지 않는다. "2배로 띄움"을 고르면 같은 일이 두 배 먼 거리에서 일어난다. (이 책의 모델: 명암은 약 1분, 색은 그 세 배인 약 3분보다 작은 무늬를 구별하지 못한다고 보고, 표준편차가 그 절반인 가우스 흐림을 OKLab의 명도와 색 성분에 따로 걸었다. 시력이 1.0인 사람의 세부 해상도가 1분이라는 시력표의 정의와, 색만 다른 무늬의 해상도가 명암 무늬보다 훨씬 낮다는 멀런(Mullen 1985)의 결과를 단순하게 옮긴 것이다. 실제 눈은 사람, 밝기, 색 방향에 따라 다르다.)

멀어질수록 색이 먼저 섞이고 명암의 결은 더 오래 남는다. 눈이 색 차이보다 밝기 차이를 더 촘촘하게 읽기 때문이다(ColorBook 6장). 쇠라 그림 앞에서 적당히 떨어져 서면, 색은 하나로 보이는데 표면은 고르지 않고 빛나는 듯 떨린다. 쇠라와 동료들은 이 떨림을 "빛남"으로 여겼다. 다만 점묘가 물감 섞기보다 더 밝고 선명한 색을 만든다는 당시의 기대는 절반만 맞았다. 아래에서 그 이유를 계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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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트에서 섞기와 점으로 나란히 찍기

섞은 색 L*—
점의 평균 L*—
두 결과의 색 차이—
해볼 것: ① 울트라마린과 카드뮴 옐로를 반반으로 둔다. 팔레트에서 섞으면 어두운 올리브 초록(L* 약 37)이 되는데, 점으로 찍어 멀리서 보면 밝은 베이지 회색(L* 약 68)이 된다. 초록이 아니다. ② 세룰리안과 레몬 옐로로 바꾼다. 섞은 쪽은 선명한 초록이 되고, 점 쪽은 더 밝지만 덜 선명한 연두 회색이 된다. ③ 카드뮴 레드와 티타늄 화이트를 고른다. 섞으면 산호색이, 점으로 찍으면 훨씬 밝지만 채도가 낮은 분홍빛 회색이 된다. 점묘는 언제나 더 밝지만, 더 선명하지는 않다. (팔레트 섞기는 이 책 엔진의 쿠벨카–뭉크 혼합(양의 비율), 점 섞기는 두 물감 색을 넓이 비율대로 선형광에서 평균한 값이다. 물감 스펙트럼은 교육용 근사다.)

점으로 나란히 놓인 색은 눈에 들어오는 빛이 더해져 평균이 된다. 그래서 두 색 사이의 밝기를 갖는다. 팔레트에서 섞은 물감은 두 안료가 각자 빛을 빼앗으므로 대개 둘 중 어두운 쪽보다도 어두워진다. 이 점에서 점묘는 확실히 "밝다". 그러나 색상환에서 멀리 떨어진 두 색의 빛을 평균하면 가운데의 회색 쪽으로 간다. 파랑과 노랑 점은 초록이 아니라 회색을 만든다. 쇠라의 그림이 가까이서는 강렬한 색 점의 잔치인데, 멀리서는 의외로 차분한 회색 기운이 도는 이유다. 앞의 「서커스 사이드쇼」 부분도 가까이서는 주황 점 사이에 파랑과 초록 점이 촘촘히 섞여 있는데, 이 책의 계산으로 그 빛을 평균하면 어두운 보랏빛 갈색(#584745)이 된다. 밤의 가스등 아래 공기가 그렇게 칠해졌다.

점묘와 화면의 픽셀, 인쇄의 망점 점으로 나눈 색이 멀리서 섞인다는 원리는 쇠라 이후 기술의 원리가 되었다. 컬러 인쇄는 청록·자홍·노랑·검정의 작은 망점을 나란히 또는 겹쳐 찍고, 모니터는 빨강·초록·파랑의 작은 발광 소자를 나란히 놓는다(ColorBook 13장). 다만 쇠라의 점은 기계의 점과 달리 크기와 모양이 고르지 않고 붓 자국이 남아 있다. 그 불규칙함이 앞의 시뮬레이터에서 본 표면의 떨림을 만든다. 쇠라의 점묘를 "최초의 픽셀 그림"이라고 부르는 것은 재미있는 비유이지만, 쇠라가 해상도를 고민한 것은 아니다.

세잔: 조각난 색으로 짓는 산

세잔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전시했지만, 1880년대부터는 고향 엑상프로방스에서 거의 혼자 작업했다. 그가 붙든 문제는 순간의 빛이 아니라 오래 남는 것, 곧 사물의 무게와 화면의 짜임이었다. 1904년 4월 젊은 화가 에밀 베르나르(Émile Bernard)에게 보낸 편지에서 세잔은 자연을 원기둥, 구, 원뿔로 다루고 모든 것을 제대로 된 원근 속에 놓으라고 썼다. 이 구절은 훗날 입체주의의 예언처럼 자주 인용되지만, 편지의 맥락은 기하학적 추상이 아니라 자연을 단단한 덩어리로 보라는 화가의 조언에 가깝다.

옆으로 긴 풍경. 왼쪽 위에 청회색 바위산이 솟아 있고, 그 아래로 넓은 평야가 오른쪽으로 펼쳐진다. 평야는 초록, 황토, 청록의 짧은 붓자국 조각들로 덮여 있고, 하늘도 파랑과 초록의 조각난 붓자국으로 칠해져 있다. 붓자국의 방향이 대체로 비스듬히 나란하다.
그림 3. 폴 세잔, 「생트빅투아르산」, 1902~06년경. 세잔은 집 근처의 이 산을 유화와 수채로 수십 번 그렸다. 말년의 이 그림에서 하늘과 산과 들은 같은 크기의 납작한 색 조각으로 지어져 있다. 미술사가 시어도어 레프(Theodore Reff)는 1962년 논문에서 이렇게 비스듬히 나란한 붓자국을 구축적 붓질(Constructive stroke)이라고 불렀다. 먼 산의 파랑이 하늘에도, 들판의 초록이 산에도 나와 거리가 다른 것들이 한 면 위에서 서로 묶인다. 「흑백」을 눌러 보면 명암 차이가 생각보다 작다는 것도 보인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The Walter H. and Leonore Annenberg Collection, Gift of Walter H. and Leonore Annenberg, 1994, Bequest of Walter H. Annenberg, 2002), 캔버스에 유채.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세잔의 정물에는 이상한 곳이 있다. 탁자 뒤 모서리가 천 왼쪽과 오른쪽에서 높이가 맞지 않고, 그릇 입구는 옆에서 본 것보다 둥글게 열려 있다. 르네상스 이후의 선 원근법(3장)으로 재면 틀린 그림이다. 한 가지 해석은 세잔이 오래 바라보는 동안 몸과 눈이 움직였고, 그때그때 본 것을 한 화면에 쌓았다는 것이다. 다른 해석은 화면의 균형과 덩어리의 존재감을 위해 일부러 시점을 고쳤다는 것이다. 두 해석이 꼭 배타적이지는 않다. 아래에서 탁자 왼쪽과 오른쪽의 눈높이를 따로 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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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화면, 두 눈높이

양옆의 눈 손잡이를 위아래로 끈다
왼쪽 눈높이—
오른쪽 눈높이—
뒤 모서리 어긋남—
해볼 것: ① "두 눈높이 맞추기"를 누른다. 탁자 뒤 모서리가 한 줄로 이어지고 그릇과 항아리의 입구가 같은 눈높이로 보이는, 선 원근법으로 맞는 그림이다. ② 오른쪽 눈 손잡이를 위로 끌어 올린다. 오른쪽 탁자 면이 넓게 열리고 그릇 안이 들여다보인다. 과일이 앞으로 쏟아질 듯 탁자가 기운다. ③ "천으로 이음매 가리기"를 끈다. 어긋난 모서리가 그대로 드러나 어색하다. 세잔의 여러 정물에서 구겨진 천이나 병이 탁자 모서리의 중간을 가로막는다는 점과 비교해 본다. (탁자 앞 모서리에서 60 cm, 깊이 50 cm인 탁자를 눈높이에 따라 투영했다. 가로 방향의 원근은 생략한 단순 모형이고, 그릇 입구의 납작함은 눈과 그릇을 잇는 각도의 사인값으로 그렸다.)
밝은 나무 탁자 위에 노랗고 붉은 사과와 배가 놓여 있다. 왼쪽에는 흰 접시 위에 연두색 사과가, 오른쪽에는 흰 접시 위에 붉은 사과 두 개가 있다. 탁자 윗면은 위에서 내려다본 듯 넓게 펼쳐져 있는데, 아래의 탁자 앞면과 서랍은 거의 정면에서 본 모습이다. 뒤쪽 벽은 회청색 판과 갈색 띠로 칠해져 있다.
그림 4. 폴 세잔, 「사과와 배가 있는 정물」, 1891~92년경. 탁자 윗면은 위에서 내려다본 듯 앞으로 기울어 과일이 미끄러질 것처럼 보이는데, 그 아래 탁자의 앞면과 서랍은 거의 정면에서 본 직사각형이다. 왼쪽 접시도 위에서 본 것처럼 둥글게 열려 있다. 한 화면에 두 눈높이가 들어 있는 셈이다. 그리고 사과 한 알 안에서도 밝은 쪽은 노랑과 연두로, 돌아가는 쪽은 주황과 빨강으로 바뀐다. 검정이나 흰색을 섞어 명암을 내는 대신 색을 바꿔 둥근 덩어리를 세웠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Bequest of Stephen C. Clark, 1960), 캔버스에 유채.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그림 4의 사과가 바로 세잔의 두 번째 도구다. 아카데미의 전통적인 방법은 빛을 받는 쪽에 흰색을, 그늘 쪽에 검정이나 갈색을 섞어 명암의 계조로 둥근 덩어리를 만드는 모델링(Modeling)이다. 세잔은 대신 색 자체를 단계적으로 바꾸는 방법을 말했다. 이것을 흔히 색의 전조(Modulation)라고 옮긴다. 아래에서 같은 사과를 두 방법 사이로 옮겨 가며 칠해 본다. 빛의 방향은 손잡이로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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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 모델링과 색의 전조

빛 손잡이를 끈다
빛~그늘 명도 차이—
빛~그늘 색상 차이—
해볼 것: ① 0%(모델링)에서 "흑백"을 켠다. 사과는 흰색에서 거의 검정까지 넓은 명도 계조로 둥글다. ② 100%(전조)로 밀고 흑백을 다시 본다. 명도 차이가 크게 줄어 흑백에서는 덜 둥근데, 색으로 보면 노랑에서 빨강, 보라로 넘어가며 여전히 둥글게 읽힌다. ③ 전조 상태에서 색상의 폭을 160까지 올린다. 그늘이 파랑 쪽으로 너무 멀리 가면 사과가 둥근 덩어리가 아니라 두 색으로 나뉜 공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0으로 내리면 명도 차이도 작아 평평한 원판이 된다. (빛은 램버트 반사로 계산했다. 모델링은 고유색을 OKLab에서 흰색·검정과 섞었고, 전조는 OKLCH에서 명도 폭을 좁히고 색상을 빛 쪽은 노랑으로, 그늘 쪽은 보라·파랑으로 돌렸다. 실제 세잔의 팔레트를 재현한 것이 아니다.)

색의 전조는 덩어리의 명도 계조를 줄이는 대신 색상 변화로 형태를 말한다. 그 결과 화면 전체가 고른 밝기의 색 조각으로 채워지고, 깊은 그늘에 구멍이 뚫리지 않는다. 그림 3의 산과 들이 거리가 다른데도 한 면 위에 단단히 붙어 있는 듯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화면 밖의 깊이와 화면 위의 평면을 함께 붙드는 이 긴장이, 젊은 화가들이 세잔에게서 본 새로움이었다.

세잔처럼 보려면 오래 본다 화가들이 세잔에게서 배우는 실용적인 요령은 "한 번에 하나의 면"이다. 사과를 동그라미로 그리지 말고, 빛을 받는 면, 돌아가는 면, 그늘 면을 서너 개의 납작한 색 조각으로 나눠 붙인다. 조각마다 이웃보다 조금 따뜻하게 또는 조금 차갑게 칠하고, 명도는 이웃과 크게 벌리지 않는다. 붓자국의 방향은 형태를 따라가기보다 화면 전체에서 몇 가지 방향으로 맞춘다. 그러면 사과와 벽과 천이 같은 재료로 지어진 듯 묶인다. 정물을 놓을 때 어긋남이 생길 자리, 곧 탁자 모서리의 중간에 천이나 병을 두는 것도 세잔의 정물에서 배울 수 있는 연출이다.

고흐: 한 캔버스의 두 얼굴

반 고흐는 그림을 늦게, 스물일곱 살 무렵에 시작했다. 네덜란드 뉘넌에서 농민을 그리던 1885년의 그림은 흙빛과 검은 갈색으로 어둡다. 1886년 동생 테오가 있는 파리로 온 뒤 그의 팔레트는 극적으로 바뀐다.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 그림을 직접 보고, 쇠라 계열의 점과 짧은 붓질을 시험하고, 일본 목판화를 모았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이 변화가 한 장의 캔버스 앞뒤에 남아 있다. 고흐는 1887년 파리에서 캔버스가 모자라자 1885년의 습작 「감자 깎는 사람」의 뒷면에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을 그렸다.

그림 5. 빈센트 반 고흐, 「감자 깎는 사람」(1885, 왼쪽)과 그 뒷면의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1887, 오른쪽). 가운데 경계선을 끌어 같은 캔버스의 앞뒤를 비교한다. 뉘넌의 농부 여인은 어둠 속에서 흰 모자와 손만 떠오르고, 2년 뒤 파리의 자화상은 노란 밀짚모자와 파랑·주황의 짧은 붓자국으로 밝다. 자화상의 배경과 얼굴에는 쇠라 계열의 나뉜 붓질이 보이지만, 점이 아니라 방향이 있는 짧은 선이다. 고흐는 남의 방법을 빌려 와 곧 자기 붓질로 바꿨다. 소장처는 자화상을 앞면(67.187.70a)으로 정리한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Bequest of Miss Adelaide Milton de Groot (1876-1967), 1967), 캔버스에 유채.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자화상 작품 페이지 · 감자 깎는 사람 작품 페이지 · 크레딧

두 면의 차이를 눈대중이 아니라 숫자로 본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두 그림에서 주요 색을 뽑아(OKLab k-평균) 넓이 비율대로 띠를 만들고, 아래 판에 색의 위치를 찍는다. 판의 가운데는 무채색이고, 가운데에서 멀수록 채도가 높으며, 방향이 색상이다. 팔레트 띠의 칸을 누르거나 끌면 그 색이 그림의 어디에 있는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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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넌의 팔레트와 파리의 팔레트

팔레트 띠의 칸을 누르거나 끈다
평균 명도 L* (1885 / 1887)—
평균 채도 C (1885 / 1887)—
고른 색—
해볼 것: ① k = 6에서 두 띠를 나란히 본다. 1885년 쪽은 모든 칸이 검은 갈색과 갈색이고 평균 명도가 L* 14 남짓이다. 1887년 쪽은 베이지와 황토, 노랑으로 평균 명도가 L* 60 가까이 올라간다. ② 색상 판의 픽셀 구름을 본다. 1887년의 점들은 노랑·주황 쪽으로 길게 뻗는데, 눈으로는 분명히 파랗게 보이던 옷과 배경의 붓자국이 판에서는 가운데 근처(채도 0.03 이하)에 머문다. 측정하면 거의 회색에 가까운 회청색이다. ③ k를 10까지 올려도 파랑 칸은 따로 생기지 않는다. 작은 파랑 붓자국은 주변의 주황과 함께 평균되어 베이지 칸에 섞인다. 앞에서 본 점묘의 원리가 색 추출에서도 일어난다. (사진 속 색은 원작과 다르다. 조명과 촬영, 바니시의 황변과 안료의 퇴색이 모두 섞여 있다. 고흐가 쓴 일부 붉은 안료는 빛에 바랜다고 알려져 있다. k-평균은 시드를 고정했다.)

평균 명도와 채도가 함께 크게 올라간다. 그런데 두 번째 발견이 더 흥미롭다. 자화상에서 파랗게 보이는 붓자국은 측정하면 채도가 아주 낮은 회청색이다. 그것이 파랗게 보이는 것은 바로 옆의 주황과 노랑 붓자국 때문이다. 슈브뢸이 말한 동시대비(Simultaneous contrast), 곧 이웃한 색이 서로를 반대 방향으로 밀어 보이게 하는 현상이다(ColorBook의 색의 상대성). 고흐는 비싼 순색 파랑을 넓게 칠하지 않고도 주황 곁에 회청색을 놓아 파랑을 "보이게" 했다. 다만 이 사진의 색은 바니시의 황변과 촬영 조건을 거친 것이어서, 원작의 파랑이 지금보다 선명했을 가능성도 있다.

뉘넌의 그림은 밤의 실내를 그렸으니 어둡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흐가 이 시기에 남긴 다른 그림들도 대부분 어둡고, 그는 편지에서 렘브란트와 밀레 같은 어두운 그림을 자주 언급했다. 파리 이후의 고흐는 색을 "보이는 대로"보다 "느끼는 대로" 쓰겠다고 여러 번 썼다. 남프랑스 아를로 옮긴 1888년부터는 색이 더 강해지고, 붓질은 짧은 점과 선에서 두껍고 긴 곡선으로 바뀐다. 물감을 두껍게 올려 붓자국이 그대로 입체로 남는 칠을 임파스토(Impasto)라고 한다.

여름 밀밭 풍경. 오른쪽에 짙은 초록의 사이프러스 나무가 불꽃처럼 하늘로 치솟고, 앞에는 노란 밀밭이 바람에 물결친다. 뒤로 푸른 언덕과 소용돌이치는 흰 구름이 떠 있는 파란 하늘이 보인다. 하늘, 구름, 나무, 밀 모두 굵고 굽은 붓자국으로 칠해져 있다.
그림 6. 빈센트 반 고흐,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1889. 생레미의 요양원에 머물던 해의 그림이다. 사이프러스는 위로 꼬이며 솟는 붓자국으로, 밀은 짧게 꺾이는 노란 붓자국으로, 구름은 둥글게 감기는 흰 붓자국으로 칠했다. 사물마다 붓질의 방향과 리듬이 다르고, 그것이 바람과 열기 같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린다. 물감이 두꺼워 사진에서도 붓자국 가장자리의 그림자가 보인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Purchase, The Annenberg Foundation Gift, 1993), 캔버스에 유채.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붓질의 방향은 측정할 수 있다. 이미지의 각 자리에서 밝기가 가장 급하게 변하는 방향을 구하면, 붓자국은 그 방향에 수직으로 놓인다. 주변 여러 픽셀의 방향이 얼마나 한쪽으로 모이는지를 결의 정렬도(0~1)로 나타낸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네 그림 위에 그 방향을 짧은 선으로 그린다. 돋보기를 끌어 한 부분의 방향 분포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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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질의 결: 방향의 흐름

그림 위에서 돋보기를 끈다
그림 전체 정렬도—
돋보기 안 정렬도—
돋보기 안 주된 방향—
해볼 것: ① 고흐 밀밭에서 돋보기를 사이프러스 위에 놓는다. 방향선이 세로로 꼬이며 이어지고, 오른쪽 장미 그림의 꽃잎이 세로 근처로 모인다. 하늘로 옮기면 방향이 둥글게 돈다. ② "세잔 산"을 고른다. 그림 전체 정렬도가 네 그림 가운데 가장 높다(약 0.53). 하늘과 들 어디에 두어도 가로에 가까운 완만한 사선이 되풀이된다. 사물을 따라가지 않고 화면 전체에 같은 방향의 조각을 깐 구축적 붓질이다. ③ "쇠라 습작"을 고른다. 점은 방향이 없어 정렬도가 네 그림 가운데 가장 낮다(약 0.41). 대신 사람의 윤곽 같은 큰 경계에서만 선이 정리된다. 칸 크기를 키우면 붓자국보다 큰 형태의 경계가 방향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밝기 L*의 기울기로 구조 텐서를 만들어 주변을 평균한 뒤, 고유벡터로 방향을, 두 고윳값의 차이 비율로 정렬도를 계산했다(Bigün·Granlund 1987, Kass·Witkin 1987의 방법). 붓자국뿐 아니라 캔버스 결, 균열, 사진 해상도도 함께 잡힌다.)

세 화가의 결은 숫자로도 다르다. 고흐의 붓질은 사물마다 다른 방향으로 길게 이어지고, 세잔의 붓질은 사물과 상관없이 화면 전체에서 같은 방향을 되풀이하며, 쇠라의 점은 방향을 지운다. 붓질은 그림을 만드는 수단이면서 그 자체로 화면의 내용이 되었다. 이것이 20세기 표현주의와 추상 회화가 이어받은 가장 큰 유산 가운데 하나다.

고흐의 그림을 병으로 읽지 않기 고흐의 소용돌이치는 붓질을 정신 질환의 "증상"으로 풀이하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그는 발작이 있는 기간에는 거의 그리지 못했다고 편지에 썼고, 남은 그림들은 대부분 구도를 계획하고 같은 주제를 여러 번 고쳐 그린 결과다.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도 여러 판본이 있다. 그림 속 특정한 붓질을 특정한 병명에 대응시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고흐의 붓질은 일본 판화의 윤곽선, 신인상주의의 나뉜 붓질, 밀레의 농민화 같은 분명한 출처에서 자라난 화가의 선택으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고갱: 평면과 윤곽

고갱은 증권 거래소 직원으로 일하며 그림을 사 모으다 서른다섯 살 무렵 전업 화가가 되었다. 그는 인상주의가 눈에 보이는 것만 좇는다고 보고, 기억과 상상, 상징으로 그리려 했다. 1888년 브르타뉴의 퐁타벤에서 에밀 베르나르와 함께 굵은 윤곽선 안을 평평한 색면으로 채우는 방식을 발전시켰다. 중세 스테인드글라스나 금속 칸 안에 유약을 채우는 칠보(Cloisonné)를 닮았다고 해서 클루아조니즘(Cloisonnism)이라고 불렸고, 고갱은 관찰과 기억과 감정을 한 화면에 합친다는 뜻에서 종합주의(Synthetism)라는 말을 썼다. 같은 해 가을 고갱은 아를의 고흐를 찾아가 두 달 남짓 함께 지냈고, 그 끝은 잘 알려진 대로 불행했다.

열대의 숲. 오른쪽에 붉은 꽃무늬 천을 두른 여인이 어깨에 아이를 태우고 서 있고, 두 사람의 머리 뒤에 금빛 후광이 있다. 가운데에는 꽃무늬 천을 두른 두 여인이 두 손을 모으고 있고, 그 뒤 꽃나무 사이로 노란 날개의 천사가 보인다. 앞쪽에는 바나나와 과일이 담긴 제단 같은 받침이 있고, 왼쪽 아래에 IA ORANA MARIA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그림 7. 폴 고갱, 「이아 오라나 마리아(마리아께 경배를)」, 1891. 타히티에 처음 도착한 해의 그림이다. 제목은 성모송의 첫 구절을 타히티 말로 옮긴 것이고, 성모와 아기 예수를 타히티 여인과 아이로, 경배하는 이들을 꽃무늬 천을 두른 여인들로 그렸다. 인물의 자세는 고갱이 가져간 자와 보로부두르 사원 부조의 사진에서 빌려 왔다고 알려져 있다. 붉은 천, 노란 땅, 짙은 초록 잎이 윤곽선 안의 넓은 색면으로 맞붙는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Bequest of Sam A. Lewisohn, 1951), 캔버스에 유채.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평면이 무엇을 하는지 보려면 극단까지 밀어 보면 된다. 아래 비교는 왼쪽이 원본, 오른쪽이 그림을 일곱 가지 색으로 줄이고 색이 바뀌는 경계에 짙은 윤곽선을 그은 것이다. 경계선을 끌어 본다.

그림 8. 원본과 "일곱 색면 + 윤곽선". 오른쪽은 이 책이 OKLab k-평균(k = 7)으로 색을 줄이고 이웃한 색이 다른 자리에 선을 그은 것이다. 붉은 천, 짙은 초록 잎, 노란 과일 같은 큰 덩어리는 색을 줄여도 거의 그대로 남는다. 고갱의 그림이 처음부터 이런 넓은 색면으로 짜여 있다는 뜻이다. 반면 얼굴과 손의 미묘한 살빛은 하나의 면으로 뭉개진다. 고갱은 그 부분에서는 면 안에 은근한 변화를 남겼다. 평면화는 모두를 똑같이 지우지 않고, 화가가 남긴 곳과 지운 곳을 드러낸다.

고갱의 평면은 일본 목판화(12장)와 중세 미술, 그리고 그가 "원시"라고 부른 비유럽 미술에서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 이 그림들은 다른 눈으로도 읽힌다. 고갱은 타히티를 문명에 물들지 않은 낙원으로 그렸지만, 그가 도착한 1891년의 타히티는 이미 프랑스 식민지였고 많은 주민이 기독교인이었다. 그의 그림과 글에는 유럽 남성의 환상이 섞여 있고, 그곳에서 어린 여성들과 맺은 관계는 오늘날 비판의 대상이다. 도경의 원칙대로 이 그림은 "그 시대의 눈"으로 평면과 색의 혁신을 보고, "지금의 눈"으로 누가 누구를 어떻게 그렸는지 다시 볼 수 있다. 두 읽기는 서로를 지우지 않는다.

일본 판화가 열어 준 창

네 화가 모두 일본 목판화에서 무언가를 얻었다. 1850년대 일본이 문호를 연 뒤 파리에는 우키요에가 쏟아져 들어왔다. 고흐는 수백 장을 모았고, 1887년에는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판화 두 점을 유화로 옮겨 그렸다. 그중 하나가 아래의 「오하시 다리와 아타케의 소나기」다. 고흐의 모사는 지금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있다.

세로로 긴 목판화. 위에서 내려다본 나무다리 위로 우산과 도롱이를 쓴 사람들이 비를 피해 서두른다. 하늘 위쪽은 짙은 먹색 구름이고, 화면 전체에 가는 사선의 빗줄기가 내린다. 다리 아래 강에는 뗏목을 미는 사공이 있고, 강 건너편 둑은 안개 속에 흐리다.
그림 9. 우타가와 히로시게, 「오하시 다리와 아타케의 소나기」(『명소 에도 백경』 중), 1857. 다리가 화면을 비스듬히 가로지르고, 하늘과 강은 넓은 색면으로, 비는 가는 선의 반복으로 처리했다. 그림자로 입체를 만들지 않고 윤곽선과 평평한 색으로 장면을 세우며, 화면 가장자리가 대상을 과감하게 자른다. 고흐는 이 판화를 유화로 옮기며 둘레에 일본 글자를 흉내 낸 테두리까지 그려 넣었다. 판화의 공정과 구도는 12장에서 자세히 본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The Howard Mansfield Collection, Purchase, Rogers Fund, 1936), 다색 목판화.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유럽 화가들이 판화에서 본 것은 대략 네 가지다. 그림자 없이 평평하게 칠한 색면, 형태를 감싸는 분명한 윤곽선, 화면 가장자리에서 대상을 과감하게 자르는 구도, 그리고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높은 시점이다. 이 영향을 통틀어 자포니즘(Japonisme)이라고 한다. 다만 유럽 화가들은 판화를 그 자체의 맥락(에도의 출판 시장, 명소 그림의 관습, 판각과 인쇄의 분업)보다는 자기 문제를 풀 열쇠로 읽었다. 판화는 서양 회화의 각주가 아니라 자기 전통 안에서 완성된 미술이었다. 이 점은 10장과 12장에서 동아시아 미술을 그 자체의 말로 읽으며 다시 확인한다.

20세기로 가는 문

1890년대에 네 화가 중 세 명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이 연 문은 20세기 초에 한꺼번에 열렸다. 1905년 파리 가을 살롱에서 앙리 마티스와 동료들의 원색 그림이 "야수들"이라는 조롱을 받았고(야수주의(Fauvism)), 1907년 세잔 회고전 무렵부터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는 사물을 여러 시점의 면으로 쪼개 다시 짜는 입체주의(Cubism)로 나아갔다. 독일에서는 강한 색과 일그러진 형태로 내면을 드러내는 표현주의(Expressionism)가 자랐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아직 저작권 보호 기간에 있거나 공공 도메인 이미지를 구하기 어려워, 이 책에서는 도식으로만 잇는다.

쇠라 세잔 고흐 고갱 야수주의1905~ 순색, 색의 해방 입체주의1907~ 여러 시점의 면 표현주의1905~ 붓질과 내면 나비파·상징주의1890~ 평면과 장식 선은 대표적인 영향의 예다. 실제로는 더 많이 엇갈리고, 다른 원천도 많다.
그림 10. 네 갈래와 20세기 초. 쇠라의 순색 점과 고흐의 강한 색은 야수주의의 색으로, 세잔의 구조와 여러 시점은 입체주의로, 고흐의 붓질과 고갱의 상징적 색은 표현주의로, 고갱의 평면은 나비파의 장식적 화면으로 이어졌다고 흔히 정리한다. 하지만 마티스는 신인상주의 점묘를 거쳐 야수주의로 갔고, 입체주의는 세잔만이 아니라 아프리카·이베리아 조각에서도 큰 자극을 받았다. 한 화가에서 한 사조로 그은 선은 기억을 돕는 지도일 뿐이다.

이 장의 시작에서 말했듯 후기 인상주의는 "진보"의 한 계단이 아니다. 원근법이 원근법 없는 그림보다 앞선 것이 아니듯, 평면이 입체보다, 추상이 재현보다 앞선 것도 아니다. 네 화가는 각자 무엇을 전하려 했는지에 맞는 도구를 골랐다. 쇠라에게는 체계와 고요가, 세잔에게는 오래 남는 구조가, 고흐에게는 감정이, 고갱에게는 상징이 중요했다. 같은 시기 동아시아에서는 수백 년 동안 다듬어 온 필묵과 여백의 언어가 이어지고 있었다. 다음 장에서 그 언어를 그 자체의 문법으로 읽는다.

사인펜 점묘로 귤 하나 노랑, 주황, 빨강, 파랑, 초록 사인펜과 흰 종이를 준비한다. 지름 5 cm쯤의 원을 연필로 아주 옅게 그리고, 안쪽을 점으로만 채운다. 밝은 쪽에는 노랑을 많이, 주황을 조금, 가장자리로 갈수록 주황과 빨강을, 그늘 쪽에는 빨강 사이에 파랑 점을 드문드문 섞는다. 탁자 위 그림자에는 파랑과 주황 점을 반반 찍는다. 다 찍으면 종이를 벽에 붙이고 1 m, 3 m, 5 m에서 본다. 그림자의 파랑·주황 점이 어느 거리에서 회색 하나로 섞이는지, 귤의 밝은 쪽이 같은 색을 섞어 칠한 것보다 밝아 보이는지 적는다. 같은 크기의 귤을 같은 사인펜으로 칠해서(겹쳐 칠해 섞어서) 옆에 붙이면 앞의 두 번째 시뮬레이터를 종이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림 앞의 거리를 정하는 화가들 쇠라의 그림을 거는 미술관은 관람객이 너무 가까이 붙지 않도록 바닥에 선을 긋기도 하지만, 화가들은 오히려 두 거리에서 보라고 권한다. 붙어서 점과 붓자국이 어떻게 놓였는지 한 번, 물러서서 그것들이 무엇이 되었는지 한 번. 자기 그림을 그릴 때도 같다. 작업대에서 물러설 공간이 없으면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작게 보거나, 거울에 비춰 거리를 두 배로 늘린다. 점묘나 짧은 붓질로 그릴 때는 완성 크기와 걸어 둘 자리의 거리를 먼저 정하고, 그 거리에서 섞일 만한 점 크기를 고른다.

종합: 한 장면, 네 가지 말

네 화가의 방법을 한 장면에 차례로 입혀 본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같은 원본을 네 가지 "말"로 다시 칠한다. 점묘는 검정 없이 열한 가지 물감 색의 점만으로 원본의 색을 맞추고(점의 색은 이웃 점과 오차를 나눠 가지며 고른다), 구축적 붓질은 화면 전체에 같은 방향의 납작한 붓자국을 깔고, 흐르는 붓질은 원본의 결을 따라 긴 획을 긋고, 색면은 색을 몇 개로 줄여 윤곽선 안에 채운다. 원본은 "책방 골목"(이 책이 그린 가상의 장면), 세잔의 산, 고갱의 그림 가운데 고른다.

SIMULATOR

후기 인상주의 번역기

끌면 원본과의 경계가 움직인다
붓자국·점 수—
흐려 본 원본과의 차이—
명도 범위(5~95%)—
해볼 것: ① 책방 골목을 점묘로 두고 붓 크기를 3에서 14까지 올린다. 점이 커질수록 흐려 본 원본과의 차이(ΔE2000 평균)가 커진다. 같은 차이를 유지하려면 그만큼 멀리서 봐야 한다. ② 색 강조를 100으로 올리고 네 가지 말을 차례로 고른다. 점묘와 색면은 강조를 올려도 명도 범위가 크게 변하지 않고, 흐르는 붓질은 원본의 결을 따라 화면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③ 고갱을 고르고 "색면과 윤곽"으로 둔다. 원래 그림과 가장 덜 달라지는 말이 무엇인지, 세잔 산에서는 어느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지 비교한다. 원본과 번역이 잘 맞는다는 것은 그 화가가 이미 그 말로 생각했다는 뜻이다. (점묘는 선형광에서 오차 확산(플로이드–스타인버그)으로 물감 색 점을 고른다. 차이는 두 이미지를 같은 정도로 흐린 뒤 400곳에서 잰 ΔE2000의 평균이다. 모든 붓자국은 시드를 고정한 난수로 놓는다. 화가의 실제 공정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원리를 과장한 모형이다.)

어느 말로 옮겨도 원본의 무언가는 잃고 무언가는 얻는다. 점묘는 색을 밝게 띄우는 대신 선과 윤곽이 흐려지고, 구축적 붓질은 화면을 단단히 묶는 대신 사물의 개별성을 누르고, 흐르는 붓질은 움직임을 얻는 대신 고요를 잃고, 색면은 강렬함을 얻는 대신 미묘한 변화를 버린다. 후기 인상주의를 읽는 가장 좋은 질문은 "이 그림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택했는가"이다.

서윤의 작업 노트

CASE 서윤작업 노트 · 9장

8회차: 바닥에 붙인 세 줄의 테이프

10월 23일 토요일, 그림 읽기 모임 8회차. 서윤의 첫 계획은 쇠라의 「서커스 사이드쇼」 전체를 화면 가득 띄우고 "가까이 와서 점을 보세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리허설에서 한도경이 고개를 저었다. "화면에 그림 전체를 띄우면 실물보다 작아져. 그럼 점이 화면의 화소보다 작아져서 아예 안 보여." 이 책의 이미지에서 점 하나는 약 8픽셀이고, 원본 사진은 가로 3,920픽셀에 그림 폭 149.9 cm이므로 점의 지름은 약 3.06 mm다. 그림 전체를 가로 1 m로 띄우면 점은 2 mm가 되는데, 띄운 이미지의 해상도로는 점 하나가 겨우 몇 화소라 뭉개진다.

그래서 서윤은 가스등과 남자의 머리가 있는 부분(실물로 가로 30.6 cm)만 잘라 실물 크기로 띄우기로 했다. 화면에 띄운 이미지의 폭을 줄자로 재어 30.6 cm에 맞췄다. 그러면 바닥에 서는 자리를 계산할 수 있다. 이 책의 모델로 점 하나가 3분보다 작아지면 색이 섞이므로 \(3.06\,\text{mm} / \tan 3' \approx 3.5\,\text{m}\), 1분보다 작아지면 명암의 결도 사라지므로 \(3.06\,\text{mm} / \tan 1' \approx 10.5\,\text{m}\)이다. 2층 방은 화면에서 가장 먼 창가까지 6.2 m였다. 서윤은 바닥에 테이프 세 줄을 붙였다. 1 m(점이 약 10.5분으로 보여 하나하나 셀 수 있다), 3.5 m(색이 섞이기 시작한다), 6 m(색은 하나인데 표면이 아직 떤다).

모임에서는 참가자들이 테이프를 따라 물러서며 "몇 번째 줄에서 점이 사라졌는지"를 카드에 적었다. 정 선생님은 안경을 벗으면 두 번째 줄에서 이미 섞인다고 했고, 대학생 단골은 세 번째 줄에서도 파란 점이 보인다고 우겼다. 서윤은 그 차이가 모형의 숫자보다 더 좋은 답이라고 노트에 적었다. 눈마다, 조명마다 거리가 다르다는 것을 모두가 몸으로 겪었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온 부모는 "멀리서 보면 왜 갈색이 되느냐"고 물었다. 이 부분의 색을 선형광에서 평균하면 #584745(L* 약 32)로, 가까이서 보이던 주황·파랑·초록 어느 것도 아닌 어두운 보랏빛 갈색이다. 서윤은 이 질문을 받아 두 번째 시뮬레이터의 파랑·노랑 점을 화면에 띄웠다.

멀리서 본 가스등 부분(평균)#584745 L*32 울트라마린+옐로 섞기#545a48 L*37 울트라마린+옐로 점#bf9f85 L*68

8회차의 그림은 네 점으로 정했다. 쇠라 「서커스 사이드쇼」(가스등 부분, 실물 크기), 세잔 「생트빅투아르산」, 고흐 「감자 깎는 사람」과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앞뒤를 한 장으로 넘기며), 고갱 「이아 오라나 마리아」. 읽기 카드는 쇠라의 것을 대표로 이렇게 만들었다.

읽기 카드 · 8회차쇠라, 「서커스 사이드쇼」(부분), 1887–88
색가까이서는 주황·파랑·초록 점, 3.5 m 밖에서는 보랏빛 갈색 하나(#584745). 점으로 섞은 색은 밝기는 평균, 색은 회색 쪽으로 간다.
구도가로로 늘어선 가스등과 세로 기둥의 격자. 인물은 옆모습과 정면으로 굳어 있다.
기법지름 약 3 mm의 점을 나란히 찍었다(분할주의). 1 m, 3.5 m, 6 m 세 줄에서 본다.
질문나는 몇 번째 줄에서 점이 사라졌나? 옆 사람과 같은가?
이 장에서 정한 것8회차(10월 23일) 그림 목록 네 점과 쇠라 읽기 카드. 점묘 체험은 그림 전체가 아니라 부분(실물 30.6 cm)을 실물 크기로 띄우고, 바닥 테이프 1 m·3.5 m·6 m에서 본다. 거리는 점 지름 3.06 mm와 이 책의 모델(색 3분, 명암 1분)로 계산했다. 고흐는 앞뒤 두 면을 한 카드에 함께 싣는다.
아직 남은 문제네 화가가 모두 서양 화면의 문제를 푼 이야기로 끝났다. 참가자 한 명이 "동양화는 처음부터 평면이었는데, 그걸 뒤처졌다고 하면 안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서윤도 아직 동아시아 그림을 "서양과 비교해서"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다음 단계9회차는 동아시아 회화다. 비교가 아니라 그 그림이 원래 보이는 방식, 곧 두루마리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펼쳐 읽는 것에서 시작하기로 했다(10장).

핵심 정리

  1. "후기 인상주의"는 로저 프라이가 1910년 전시에서 붙인 묶음 이름이다. 쇠라, 세잔, 고흐, 고갱은 인상주의에서 출발해 각자 다른 문제(체계, 구조, 감정, 상징)를 붙들었다.
  2. 쇠라의 점묘에서 색이 섞이는지는 점 하나가 눈에서 차지하는 각도에 달려 있다. 눈은 명암을 색보다 촘촘히 읽으므로, 물러서면 색이 먼저 섞이고 명암의 결은 더 오래 남아 표면이 떨린다.
  3. 점으로 나란히 놓은 색은 빛의 평균이라 팔레트에서 섞은 물감보다 밝다. 그러나 멀리 떨어진 색끼리는 회색 쪽으로 가므로 더 선명하지는 않다. 파랑과 노랑 점은 초록이 아니라 회색을 만든다.
  4. 세잔은 한 화면에 여러 눈높이를 쌓고, 명암 모델링 대신 색의 전조로 덩어리를 세웠다. 그 결과 깊이와 화면의 평면이 함께 붙들린다. 비스듬히 나란한 구축적 붓질이 화면을 하나의 재료로 묶는다.
  5. 고흐의 팔레트는 뉘넌의 검은 갈색에서 파리의 밝은 색으로 바뀌었다(이 책의 이미지로 평균 L* 약 14 → 60). 파랗게 보이는 붓자국은 측정하면 채도가 낮은 회청색이고, 주황 곁에서 동시대비로 파랗게 보인다. 붓질의 방향과 두께가 사물마다 달라 보이지 않는 바람과 열기를 그린다. 그의 그림을 병의 증상으로 읽는 것은 근거가 약하다.
  6. 고갱의 클루아조니즘은 윤곽선 안의 평평한 색면으로 관찰보다 기억과 상징을 그린다. 그 그림은 혁신으로, 동시에 식민지 시선의 기록으로 함께 읽힌다.
  7. 네 갈래는 야수주의, 입체주의, 표현주의, 나비파로 이어졌다고 흔히 정리하지만 실제 계보는 엇갈린다. 어느 방법도 다른 방법보다 "발전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전하려 했는가에 따른 선택이다.

확인 퀴즈

1. 쇠라 그림 앞에서 1 m 떨어져 서면 주황·파랑 점이 따로 보이다가, 몇 미터 물러서면 색은 하나로 섞이는데 표면은 여전히 떨리는 듯 보인다. 가장 알맞은 설명은?

섞임은 그림이 아니라 눈에서 일어난다. 점 하나가 눈에서 차지하는 각도가 작아질수록 구별이 어려워지는데, 눈은 색만 다른 무늬보다 밝기가 다른 무늬를 더 촘촘하게 구별한다. 그래서 색이 먼저 섞이고 명암의 결은 남아 표면이 떨린다. 물감이나 점의 크기는 거리와 상관없이 그대로다.

2. 울트라마린 블루와 카드뮴 옐로를 같은 비율로 점을 찍어 멀리서 보았다. 팔레트에서 섞은 경우와 비교한 결과로 가장 가능성 높은 것은?

나란히 놓인 점은 눈에 들어오는 빛이 평균되므로 두 색 사이의 밝기가 된다(이 책의 모델로 L* 약 68). 파랑과 노랑은 색상환에서 멀어 빛을 평균하면 회색 쪽으로 간다. 팔레트에서 섞으면 두 안료가 각자 빛을 흡수해 어두운 올리브 초록(L* 약 37)이 된다. 점묘가 "더 밝고 더 선명하다"는 기대는 밝기만 맞다.

3. 세잔의 정물에서 탁자 뒤 모서리가 천의 왼쪽과 오른쪽에서 높이가 맞지 않는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세잔은 아카데미 교육을 받은 화가들과 교류했고 원근법을 알았다. 어긋남은 오래 바라보는 동안 바뀐 시점을 쌓은 결과라는 해석과, 화면의 균형과 사물의 존재감을 위해 의도적으로 시점을 바꾼 것이라는 해석이 있으며, 둘이 꼭 배타적이지는 않다. 그의 여러 정물에서는 천이나 병이 모서리의 중간을 가로막아 어긋남이 덜 드러난다.

4. 고흐의 「감자 깎는 사람」(1885)과 그 뒷면의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1887)에서 주요 색을 뽑아 비교했다. 결과와 그 해석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같은 캔버스의 앞뒤라 바탕과 크기가 같아 비교하기 좋다. 1885년 뉘넌의 그림은 갈색과 검은 갈색이 대부분이고(평균 L* 약 14), 1887년 파리의 자화상은 베이지·황토·노랑으로 밝다(평균 L* 약 60). 파란 붓자국은 채도가 낮아 k-평균의 팔레트에 따로 잡히지 않는데, 이웃한 주황이 그것을 더 파랗게 보이게 한다. 사진 속 색이 원작과 다르다는 점은 늘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이만한 차이는 촬영 조건으로 설명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