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7

상자로 생각하기

길가의 우체통을 그려 보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빨간 칠, 투입구, 글자, 모서리의 둥근 맛까지 빠짐없이 그렸는데 완성된 그림은 종이에 오려 붙인 딱지처럼 납작하다. 반대로 숙련된 사람의 연습장에는 투명한 상자 몇 개와 그 안을 가로지르는 선 몇 줄뿐인데 우체통이 땅 위에 단단히 서 있다. 차이는 세부가 아니라 덩어리에 있다. 이 장은 복잡한 물체를 상자·원통·구·원뿔로 줄여 보고, 그 단순한 입체를 원근 속에 바르게 세우는 몇 가지 요령, 곧 대각선, 단면선, 축을 직접 움직여 익힌다.

복잡한 물체 안의 단순한 덩어리

앞의 장들에서 우리는 공간의 뼈대를 세웠다. 4장과 5장에서 눈높이와 소실점으로 상자와 복도를, 6장에서 기운 원이 타원이 되는 이치를 보았다. 그런데 실제로 그리고 싶은 것은 상자나 원이 아니라 우체통, 자전거, 의자, 사람이다. 이 장은 그 사이의 다리를 놓는다. 방법은 단순하다. 어떤 물체든 먼저 몇 개의 기본 입체(Primitive forms)로 줄여 본다. 기본 입체는 상자(직육면체), 원통, 구, 원뿔처럼 모양을 몇 개의 숫자로 다 말할 수 있는 단순한 덩어리를 말한다.

이렇게 줄이는 까닭은 기본 입체에는 원근의 규칙이 그대로 통하기 때문이다. 상자의 모서리는 소실점으로 모이고, 원통의 단면은 타원이 되며, 구의 윤곽은 언제나 원이다. 우체통의 둥근 지붕이 어디서 얼마나 납작해 보여야 하는지를 직접 계산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이 "상자 위에 얹은 반쪽 원통"이라는 것을 알면 상자와 원통의 규칙으로 맞출 수 있다.

손전등병사과 원통 + 원뿔대원통 + 원뿔대 + 원통구 (조금 눌린)
그림 1. 물체 안의 기본 입체. 검은 선은 물체의 겉모습, 파란 점선은 그 안에서 찾은 기본 입체와 축이다. 손전등은 원통과 넓어지는 원뿔대, 병은 몸통 원통·어깨 원뿔대·목 원통, 사과는 위아래가 조금 눌린 구다. 세 물체 모두 하나의 중심축을 공유한다. 축을 먼저 세우면 단면 타원들이 그 축에 꿰어진다.

이 생각을 가장 자주 인용되는 형태로 남긴 사람은 화가 폴 세잔(Paul Cézanne)이다. 그는 1904년 젊은 화가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연을 원통과 구와 원뿔로 다루고 모든 것을 원근 속에 놓으라는 취지의 말을 적었다. 이 문장은 뒤에 입체주의의 예언처럼 자주 인용되었지만, 세잔 자신의 그림이 도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사과는 기하학적인 구가 아니라 손으로 더듬어 쌓은 색면이다. 기본 입체는 그림의 결과가 아니라 그리는 동안 붙잡는 생각의 손잡이에 가깝다.

먼저 네 가지 기본 입체를 돌려 보며 각각의 성격을 익힌다. 캔버스를 좌우로 끌면 입체가 돌고, 위아래로 끌면 내려다보는 높이가 바뀐다. 파란 선은 입체의 표면을 따라 그은 단면선(다음 절에서 자세히 본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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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기본 입체 돌려 보기

끌어서 돌린다
보는 높이—
윤곽이 알려 주는 것—
해볼 것: ① "구"를 고르고 단면선을 끈다. 어느 쪽으로 돌려도 윤곽은 똑같은 원이다. 단면선을 다시 켜야 구가 어느 쪽으로 돌아 있는지 보인다. ② "상자"를 정면에서 보도록(보이는 면 1개) 돌리면 그냥 사각형이 된다. 조금만 돌리거나 내려다보면 면이 2개, 3개로 늘며 입체가 선다. ③ "원통"을 위아래로 끌어 보는 높이를 80°에 가깝게 올린다. 윗면의 타원이 거의 원이 되고 옆면은 사라진다. 원통도 바로 위에서 보면 원 하나다. ④ "숨은 선 보기"를 켜면 뒤쪽 모서리가 점선으로 나타난다. 숙련된 사람이 구조 스케치에서 뒤쪽 선까지 투명하게 그리는 이유다. (핀홀 원근 투영, 이 책 엔진의 ART.project로 계산했다. 숨은 선은 면이 눈을 등지는지로만 판정한다.)

구는 윤곽만으로는 아무 정보도 주지 않는다. 상자도 정면에서 보면 사각형 하나, 원통도 바로 위에서 보면 원 하나다. 우리가 윤곽선만으로 그린 그림이 납작해 보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윤곽은 물체의 가장자리만 알려 줄 뿐, 그 안쪽 표면이 앞으로 부푸는지 뒤로 꺼지는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입체를 세우려면 윤곽 안쪽의 정보, 곧 면이 몇 개 보이는가와 표면이 어떻게 휘는가를 함께 그려야 한다.

모든 것은 상자에 들어간다

네 가지 입체 가운데 가장 먼저 익혀야 하는 것은 상자다. 원통도, 구도, 원뿔도 꼭 맞는 상자 안에 넣을 수 있고, 상자는 원근으로 가장 그리기 쉬운 입체이기 때문이다. 물체를 꼭 맞게 감싸는 상자를 경계 상자(Bounding box)라고 한다. 3D 그래픽 프로그램에서 물체를 고르면 둘레에 나타나는 바로 그 상자다. 드로잉에서도 순서는 같다. 물체의 폭·높이·깊이 비율을 재서(2장의 연필 재기) 경계 상자를 원근 속에 먼저 세우고, 물체는 그 안에서 깎아 낸다.

상자 안에 원을 넣으려면 면의 가운데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원근 속에서는 면의 가운데가 눈대중의 가운데와 다르다. 멀리 있는 절반이 더 작게 보이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4장에서 바닥 타일을 나눌 때 쓴 대각선이다. 사각형의 두 대각선이 만나는 점은 원근 속에서도 언제나 실제 가운데다. 직선은 원근 투영을 거쳐도 직선으로 남고, 두 직선의 교점도 교점으로 남기 때문이다.

아래 상자를 좌우로 끌어 돌리고, 슬라이더로 보는 높이와 거리를 바꿔 본다. 윗면에 대각선(파랑)과 가운데를 지나는 두 선, 그리고 그 안에 꼭 맞는 원이 그려진다. 붉은 ×는 윗면 네 꼭짓점의 화면 평균, 곧 "눈대중 가운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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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선으로 가운데 찾고 원 넣기

좌우로 끌어 돌린다
눈대중 가운데의 어긋남—
타원 중심과 원 중심의 거리—
윗면 화면 깊이 ÷ 폭—
해볼 것: ① 거리를 10에 두면 눈대중 가운데(×)와 대각선 교점(●)이 거의 겹친다. 멀리서 보면 원근이 약해 눈대중도 통한다. ② 거리를 1.4까지 줄인다. ×가 앞쪽으로 크게 밀려나고, 상자는 광각 사진처럼 일그러진다. 이것이 값을 끝까지 밀었을 때의 모습이다. 가까울수록 대각선이 꼭 필요하다. ③ "타원의 중심"(+)을 본다. 꼭 맞는 원을 그리면 타원의 한가운데는 원의 실제 중심(●)보다 조금 앞쪽에 온다. 원의 뒤쪽 절반이 더 작게 보이기 때문이다. 컵 입구에 빨대를 꽂을 자리가 타원의 한가운데가 아닌 이유다. ④ 보는 높이를 75°로 올리면 윗면이 정사각형에 가까워지고 세 점이 다시 모인다. (핀홀 원근 투영. 타원의 중심은 투영된 원 둘레가 둘러싼 넓이의 무게중심으로 계산했다.)

원근 속 원(타원)의 중심과 원 자체의 중심이 다르다는 사실은 처음에 놀랍다. 하지만 시뮬레이터에서 본 대로, 꼭 맞는 정사각형의 대각선 교점을 기준으로 삼으면 헷갈릴 일이 없다. 원은 정사각형의 네 변 가운데점에서 변에 닿고, 그 네 점은 대각선 교점을 지나는 두 선이 변과 만나는 자리다. 그래서 "상자 → 대각선 → 가운데 선 → 네 접점 → 타원"의 순서로 그리면 원근 속 원이 저절로 맞는다. 원의 납작함과 기울기 자체는 6장에서 본 규칙을 따른다.

모서리를 연장해 점검한다 상자를 몇 개 그린 뒤 자로 각 모서리를 길게 연장해 본다. 같은 방향의 모서리 넷이 종이 밖 어딘가의 한 점(소실점) 근처로 모이면 상자가 바르다. 앞으로 갈수록 벌어지는 모서리, 곧 소실점이 등 뒤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자는 역원근(Reverse perspective) 오류가 난 것이다. 손으로 그린 상자는 완벽할 필요가 없지만, 같은 방향의 모서리가 서로 벌어지는 일은 눈에 금방 띈다. 처음에는 연필로 가볍게, 확인한 뒤에 진하게 긋는다.

단면선: 표면을 따라 걷는 선

앞에서 본 것처럼 윤곽선만으로는 표면의 굴곡을 알 수 없다. 이것을 알려 주는 선이 단면선(Cross-contour)이다. 물체를 얇은 판으로 썰었을 때 그 자른 면의 테두리가 표면 위에 남기는 선, 또는 개미 한 마리가 표면 위를 한 방향으로 곧게 걸어갈 때 남기는 발자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평평한 곳에서는 곧게, 부푼 곳에서는 휘어서 지나간다. 지도의 등고선, 줄무늬 옷이 몸을 따라 휘는 모습, 수박의 줄무늬가 모두 같은 원리로 부피를 보여 준다.

아래 판의 덩어리는 위에서 내려다본 것이라 윤곽은 늘 같다. 그 위에 비스듬한 판으로 자른 단면선을 긋는다. 첫 슬라이더는 덩어리가 얼마나 부풀었는지, 둘째 슬라이더는 자르는 판의 기울기, 곧 단면선이 얼마나 크게 휘어 보일지를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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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윤곽, 다른 부피

단면선의 최대 휨—
읽히는 형태—
해볼 것: ① 부풀기를 0으로 내린다. 단면선이 모두 곧은 평행선이 되고, 덩어리는 종이에서 오려 낸 판이 된다. ② 부풀기를 천천히 올린다. 윤곽은 그대로인데 선이 가운데에서 휘며 덩어리가 솟아오른다. 선이 가장 많이 휘는 곳이 가장 높은 곳이다. ③ "격자"로 바꾸면 그물이 덮인 것처럼 보여 부피가 가장 분명해진다. 다만 실제 드로잉에서 격자를 다 그리면 그림이 시끄러워진다. ④ 단면의 기울기를 1.5 이상으로 올린다. 왼쪽 가장자리 근처에서 선이 되접히며 고리처럼 꼬인다("가로"에서는 0.95쯤부터 위쪽 가장자리가 먼저 꼬인다). 단면선을 지나치게 휘게 그리면 형태가 오히려 무너진다. (높이가 가장자리에서 0,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매끈한 언덕 모형이다. 단면선은 기울어진 판과 표면이 만나는 선을 위에서 본 것으로, 마칭 스퀘어 방법으로 그렸다.)

단면선 몇 줄이 덩어리를 세운다는 것은 지각 연구에서도 다뤄졌다. 컴퓨터 비전 연구자 켄트 스티븐스(Kent A. Stevens)는 1981년 논문 「표면 윤곽선의 시각적 해석」(The visual interpretation of surface contours, Artificial Intelligence)에서 표면 위에 그은 선의 모양만으로 사람이 표면의 방향과 굴곡을 상당히 일관되게 읽어 낸다는 점을 분석했다. 사람의 눈은 표면 위의 선을 "평평한 판으로 자른 단면"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화가가 단면선을 아무 방향으로나 긋지 않고, 마치 물체를 일정한 간격의 판으로 썬 것처럼 그리는 이유와 맞닿는다.

단면선과 해칭은 같은 선이다 3장에서 본 해칭은 명도를 쌓는 도구였다. 그런데 해칭 선을 아무 방향으로나 긋지 않고 단면선 방향으로 그으면, 같은 선이 명도와 부피를 함께 나른다. 이것을 컨투어 해칭(Contour hatching)이라고 부른다. 판화가들이 동판 위에서 둥근 몸과 천을 표현할 때 오래 써 온 방법이다. 반대로 둥근 물체에 곧은 해칭을 그으면 명도는 맞아도 표면이 평평하게 읽히기 쉽다. 펜 한 자루로 그리는 드로잉이라면 해칭의 방향을 고르는 일이 곧 형태를 고르는 일이다.
고무줄을 감은 감자 감자나 배처럼 울퉁불퉁한 채소·과일 하나를 골라 고무줄 서너 개를 같은 간격으로 감는다. 첫 장에는 윤곽만 그린다. 둘째 장에는 윤곽과 함께 고무줄이 표면을 따라 휘는 모양을 그대로 옮긴다. 셋째 장에서는 고무줄을 벗기고, 기억에 의지해 단면선을 상상으로 그어 본다. 세 장을 나란히 놓고 어느 것이 가장 무겁고 둥글게 보이는지 비교한다. 고무줄이 물체 뒤로 돌아 들어가는 지점, 곧 단면선이 윤곽에 닿는 순간 방향이 바뀌는 모습을 특히 잘 본다.

축을 세우면 타원이 따라온다

원통·원뿔·병·컵·바퀴처럼 둥근 물체에는 모두 하나의 중심선, 곧 축(Axis)이 있다. 둥근 물체를 그릴 때 가장 먼저 그어야 하는 선이 이 축이다. 축이 서면 단면의 타원들은 그 축에 꿰어진 구슬처럼 자리를 잡는다. 이때 따르는 규칙이 6장에서 본 "타원의 단축(짧은 지름)은 축과 같은 방향"이다. 똑바로 선 컵이면 축이 수직이니 타원은 수평으로 눕고, 옆으로 누운 깡통이면 축이 수평이니 타원은 세로로 선다.

규칙은 쉽지만 축이 기울면 손이 자꾸 틀린다. 눈이 타원을 수평으로 눕히는 데 익숙해서다. 아래에서 원통의 축 끝 손잡이를 끌어 원통을 이리저리 기울여 본다. 길이를 줄이면 자전거 바퀴, 늘리면 파이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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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을 기울이면 타원도 돈다

축 끝의 손잡이를 끈다
축의 화면 기울기—
타원 단축의 기울기—
타원의 납작함(단축 ÷ 장축)—
해볼 것: ① 손잡이를 끌어 원통을 비스듬히 눕힌다. 축(파란 점선)과 앞쪽 타원의 단축(파란 실선)이 거의 한 줄에 놓인다. 둘의 차이는 대개 몇 도 이내다. ② "흔한 실수"를 켠다. 같은 크기의 타원을 수평으로 눕혀 그린 붉은 점선이 겹쳐진다. 축이 기울수록 원통이 비틀린 것처럼 보인다. ③ 손잡이를 원 가장자리 가까이 끌어 축을 화면과 거의 나란하게 눕힌다. 타원이 아주 납작해지고(0.1 아래), 원통의 옆모습은 직사각형에 가까워진다. 손잡이를 가운데로 끌면 축이 눈을 향하고 타원은 원에 가까워진다. ④ 길이를 0.1로 줄이면 바퀴가 된다. 바퀴의 타원도 같은 규칙을 따른다. 자전거 바퀴의 단축은 바퀴통(허브) 축 방향이다. (핀홀 원근 투영. 원근에서는 타원의 단축이 축과 정확히 한 줄이 아니라 몇 도쯤 벗어날 수 있다. 축이 화면 가장자리에 있거나 눈에 가까울수록 차이가 커진다.)

평행 투영이라면 단축은 축과 정확히 겹친다. 원근 투영에서는 조금 벗어나지만, 손으로 그리는 크기에서는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니 "축 먼저, 단축은 축에 맞춰"는 실용적인 규칙으로 충분하다. 원뿔과 원뿔대도 마찬가지다. 차이는 축을 따라 가며 타원의 크기가 바뀐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축을 따라 멀어질수록 같은 크기의 단면이라도 조금씩 둥글어진다. 눈높이에서 멀어질수록 타원이 둥글어지는 6장의 규칙이 기울어진 축 위에서도 그대로 일하기 때문이다.

$$\frac{b}{a} \approx \lvert \sin\theta \rvert$$
\(a\): 타원의 장축, \(b\): 단축, \(\theta\): 시선과 원판(단면)이 이루는 각. 시선이 원판에 수직이면(\(\theta = 90°\)) 원, 원판과 나란하면(\(\theta = 0°\)) 직선이 된다. 멀리서 본 평행 투영의 근사이며, 원근에서는 원판이 화면 가장자리에 있을수록 이 값에서 벗어난다.

덩어리를 더하고 빼기

기본 입체를 손에 쥐었으면 이제 조합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더하기(Additive construction)로, 작은 덩어리들을 붙여 쌓아 올린다. 몸통 상자 위에 반원통 지붕을 얹고 아래에 받침 상자를 붙이면 우체통이 된다. 다른 하나는 빼기(Subtractive construction)로, 큰 경계 상자 하나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 낸다. 의자의 경계 상자에서 앉는 면 아래의 빈 공간과 등받이 앞의 빈 공간을 덜어 내면 의자가 남는다. 조각가가 돌덩이를 깎는 방식과 같다.

반원통상자받침 더하기: 쌓아 올린다 덜어 낸빈 공간 빼기: 경계 상자에서 깎아 낸다
그림 2. 더하기와 빼기. 왼쪽 우체통은 받침 상자, 몸통 상자, 반원통 지붕을 차례로 쌓았다(파란 점선은 전체 경계 상자). 오른쪽 의자는 경계 상자 하나에서 앉는 면 아래와 등받이 앞의 빈 공간(옅은 파랑)을 덜어 냈다. 실제 드로잉에서는 둘을 섞어 쓴다. 큰 덩어리는 빼기로 비율을 잡고, 작은 부품은 더하기로 붙인다.

더하기로 그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덩어리들이 어떻게 만나는가다. 반원통 지붕은 상자 윗면의 깊이와 같은 지름이어야 하고, 받침 상자는 몸통의 가운데에 와야 한다. 그래서 몸통 상자의 윗면과 아랫면에 대각선을 긋고 가운데를 찾는 일이 다시 쓸모 있어진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우체통 하나를 다섯 단계로 세운다. 단계 슬라이더를 하나씩 올리며, 각 단계에서 무엇이 새로 정해지는지 본다. 캔버스를 좌우로 끌면 우체통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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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통을 다섯 단계로 세우기

좌우로 끌어 돌린다
이 단계에서 정하는 것—
경계 상자 폭 : 높이 : 깊이—
해볼 것: ① 1단계에서 경계 상자만 본다. 이 비율이 틀리면 뒤의 모든 단계가 틀린다. ② 2단계에서 높이를 받침·몸통·지붕으로 나누는 수평선이 상자를 한 바퀴 돈다. 이 선들도 같은 소실점으로 간다. ③ 4단계에서 지붕의 반원은 옆면에 그린 직사각형 안에 넣는다. 직사각형의 대각선으로 반원의 꼭대기를 찾는다. ④ 5단계에서 "구조선 남기기"를 껐다 켠다. 구조선이 사라진 펜 그림만으로도 우체통이 서 있다면 구조가 제 일을 한 것이다. 우체통을 정면 가까이 돌려 보면 지붕의 반원이 얇아지며 옆면이 사라지는 것도 본다. (가상의 우체통, 받침 30 cm, 몸통 85 cm, 지붕 반지름 20 cm. 펜 선은 면을 먼 곳부터 칠하는 화가의 알고리즘으로 가렸다.)
구조선이 그림을 덮지 않게 구조선은 그림을 세우는 비계다. 건물이 다 서면 비계를 걷는 것처럼, 펜으로 마무리할 때는 구조선을 지우거나 아주 옅게 남긴다. 구조선을 진하게 그은 채로 펜을 올리면 어느 선이 물체이고 어느 선이 계산인지 구별되지 않아 그림이 시끄러워진다. 구조선은 HB 이하의 연필이나 지워지는 색연필로 가볍게 긋고, 같은 자리에 선을 여러 번 덧긋지 않는다. 반대로 일부러 구조선을 남겨 "생각의 과정"을 보여 주는 드로잉도 있다. 디자이너의 제품 스케치가 대표적이다. 어느 쪽이든 선택이지 실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작품 속 단순한 덩어리

기본 입체로 생각하기는 드로잉 교실의 요령만이 아니라 많은 화가의 작업 방식이었다. 16세기 이탈리아 제노바의 화가 루카 캄비아소(Luca Cambiaso)는 인물을 상자 같은 덩어리로 줄여 그린 소묘로 잘 알려져 있다. 머리·가슴·골반을 각진 블록으로 그려 몸이 어느 쪽을 향하는지 먼저 정한 그 소묘들은, 몇백 년 뒤의 인체 드로잉 교본에 나오는 "마네킹"을 떠올리게 한다. 인체를 덩어리로 세우는 일은 12장에서 다시 다룬다.

세잔의 정물화. 나무 탁자 위에 크고 붉은 사과와 노란 배 여러 개가 놓여 있고, 흰 접시 두 개가 비스듬한 타원으로 보인다. 탁자의 앞 모서리는 가로로 길게 지나가고, 뒤쪽은 어두운 벽이다.
그림 3. 폴 세잔, 「사과와 배가 있는 정물」, 1891~92년경. 사과와 배는 거의 구, 접시는 납작한 원기둥, 탁자는 상자다. 그런데 세잔은 이 입체들을 한 시점의 원근으로 엄격하게 맞추지 않았다. 오른쪽 접시의 타원은 왼쪽 접시보다 더 위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둥글고, 탁자 앞 모서리는 좌우가 수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기본 입체로 덩어리를 붙잡되, 그 덩어리들을 한 장의 원근 상자에 가두지 않은 셈이다. "흑백"을 켜면 각 과일이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두세 덩어리로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8장).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Bequest of Stephen C. Clark, 1960), 캔버스에 유채.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세잔의 그림은 이 장의 규칙이 어디까지 출발점인지 보여 준다. 접시의 타원 둘이 서로 다른 눈높이에서 본 것처럼 그려졌다는 점은 미술사가들이 자주 지적하는 특징이다. 이것을 원근의 실수로 볼 수도 있지만, 많은 해석은 세잔이 한 자리에서 본 모습보다 물체 하나하나를 오래 보며 확인한 무게와 자리를 화면에 쌓았다고 본다. 규칙대로라면 틀렸는데 그림은 단단하다. 기본 입체는 덩어리의 존재감을 주는 도구이고, 한 시점의 원근은 그 덩어리를 배치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동아시아 회화도 덩어리를 세웠지만 방식이 달랐다. 산수화에서 바위를 그릴 때 "돌은 세 면으로 나뉜다(石分三面)"는 말이 오래 전해진다. 바위의 위·옆·앞, 또는 밝은 면·어두운 면·그 사이를 나눠 덩어리를 세우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그 면을 단면선이나 소실점으로 맞추지 않고, 3장에서 본 준법의 붓질 방향과 먹의 농담으로 나눴다. 시점도 하나로 고정하지 않았다. 상자로 생각하기는 서양 아카데미 소묘의 강력한 도구이지만, 덩어리를 세우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투명하게 그리기 구조 스케치의 첫 단계에서는 물체가 유리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뒤쪽 모서리와 바닥면까지 그린다. 영어권 드로잉 교육에서 "드로잉 스루"(Drawing through)라고 부르는 습관이다. 뒤쪽 선을 그려 보면 상자의 맞은편 모서리가 제자리에 오는지, 의자 다리 네 개가 한 평면 위에 서 있는지가 바로 드러난다. 앞에서 보이는 선만 그리면 다리 하나가 공중에 뜨거나 땅에 박혀도 알아채기 어렵다. 숨은 선은 마무리 단계에서 지운다.

소품의 구조 스케치 세우기

마지막 시뮬레이터는 이 장의 도구를 모아 서점 앞의 소품 세 가지, 우체통·자전거·의자의 구조 스케치를 세운다. 물체를 고르고 캔버스를 좌우로 끌어 돌린다. 슬라이더로 눈높이(서서 보면 약 1.6 m)와 물체까지의 거리를 바꾼다. 경계 상자, 중심선과 단면, 펜 윤곽을 한 겹씩 켜고 끄며 그리는 순서를 따라가 본다. 회색 점선은 눈높이선, 곧 수평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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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앞 소품 구조 스케치

좌우로 끌어 돌린다
경계 상자(폭 × 높이 × 깊이)—
두 소실점 간격 ÷ 그림 폭—
눈높이선과 물체—
해볼 것: ① 우체통을 고르고 눈높이를 1.6 m로 둔다. 눈높이선이 지붕 위를 지나므로 지붕 윗면이 조금 보인다. 눈높이를 0.6 m(쪼그려 앉은 높이)로 내리면 눈높이선이 몸통을 가로지르고 윗면이 사라진다. ② 거리를 1.6 m까지 줄인다. 두 소실점이 그림 폭 안으로 들어오며 상자가 찌그러진다. 소실점 간격이 그림 폭의 1.5배보다 좁아지면 경고가 뜬다(5장). ③ 자전거를 고르고 바퀴의 단축이 바퀴통 축(파란 짧은 선)과 같은 방향인지 본다. 자전거를 거의 옆모습으로 돌리면 바퀴가 원에, 앞에서 보도록 돌리면 아주 납작한 타원에 가까워진다. ④ 의자를 고르고 "펜 윤곽"만 끈다. 다리 네 개의 발끝이 바닥의 한 직사각형(파랑) 꼭짓점에 놓여 있다. 구조선을 이렇게 남겨 두면 다리가 뜨지 않는다. (가상의 소품 치수, 핀홀 원근. 그림 폭에 대한 초점거리는 1.0, 곧 가로 시야 약 53°로 두었다. 펜 윤곽은 화가의 알고리즘으로 가린 근사라 가는 부품이 겹치는 곳에서 조금 틀릴 수 있다.)

세 소품은 같은 순서로 선다. 경계 상자를 원근 속에 세우고, 그 상자를 높이와 깊이로 나누고, 축과 단면을 넣고, 마지막에 펜으로 보이는 선만 고른다. 자전거처럼 상자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물체도 바퀴 두 개가 들어가는 납작한 상자와 그 가운데를 지나는 판 하나로 시작하면 길을 잃지 않는다. 구조가 서면 세부는 거의 저절로 자리를 찾는다. 그 반대, 곧 세부부터 그리고 구조를 나중에 맞추는 일은 거의 언제나 처음부터 다시 그리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할 것이 있다. 구조 스케치는 그림의 시작이지 목표가 아니다. 정확하게 세운 상자가 좋은 드로잉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세잔의 접시처럼 원근을 비켜 간 그림도, 동아시아의 바위처럼 상자를 쓰지 않은 그림도 단단할 수 있다. 상자로 생각하는 법을 익히는 이유는 그 생각을 언제 내려놓을지 고를 수 있게 되기 위해서다.

서윤의 작업 노트

CASE 서윤작업 노트 · 7장

공중에 뜬 의자 다리

창가의 컵과 화분을 끝낸 다음 토요일, 서윤은 「골목 산책」의 서점 외관 그림에 들어갈 소품 세 가지를 따로 연습하기로 했다. 서점 앞의 빨간 우체통, 주인이 늘 세워 두는 자전거, 문 옆의 나무 의자다. 첫 연습장은 실망스러웠다. 우체통은 투입구와 글자까지 그렸는데 판자처럼 납작했고, 자전거는 바퀴 두 개만 그럴듯할 뿐 몸체가 바퀴 사이에 끼인 철사 같았다. 의자는 더 이상했다. 앞다리 하나가 땅에 닿지 않고 떠 있었다.

도경은 연습장을 넘기다 말없이 의자 둘레에 상자 하나를 그렸다. 보이지 않는 뒤쪽 모서리까지. "다리 네 개는 이 상자의 바닥 네 귀퉁이에서 올라와야 해. 보이는 다리만 그리니까 하나가 혼자 떠다니는 거야." 서윤은 회사에서 3D 모형을 다룰 때 늘 보던 경계 상자를 떠올렸다. 그날 오후 두 사람은 줄자를 들고 나가 세 소품의 치수를 쟀다. 우체통은 폭 45 cm, 깊이 40 cm, 받침 30 cm·몸통 85 cm·반원통 지붕 반지름 20 cm로 전체 높이 135 cm, 자전거는 바퀴 지름 66 cm, 두 바퀴통 사이 104 cm, 전체 길이 170 cm, 높이 100 cm, 핸들 폭 58 cm, 의자는 앉는 면 42 × 40 cm, 앉는 높이 45 cm, 등받이 끝 85 cm였다.

서윤은 치수를 비율로 바꿔 경계 상자부터 그렸다. 우체통 폭 : 높이 : 깊이 = 1 : 3.0 : 0.89, 자전거 길이 : 높이 : 폭 = 1.70 : 1 : 0.58, 의자 폭 : 높이 : 깊이 = 1 : 2.0 : 0.95. 우체통은 높이를 30 : 85 : 20으로 나누는 수평선을 상자 둘레에 돌리고, 지붕 반원은 옆면의 40 × 20 cm 직사각형에 대각선을 그어 넣었다. 자전거는 상자 한가운데에 몸체가 놓일 세로 판을 먼저 긋고, 두 바퀴통을 잇는 축선(바닥에서 33 cm)을 그은 뒤 바퀴 타원의 단축을 바퀴통 축 방향에 맞췄다. 의자는 다리 네 개의 발끝을 바닥 직사각형의 꼭짓점에 찍고 나서 다리를 올렸다. 이 장의 시뮬레이터에서 거리 3.5 m, 눈높이 1.6 m로 놓아 보니 우체통은 지붕 윗면이 조금 보이고, 자전거와 의자는 눈높이선 아래에 완전히 들어갔다. 도경은 세 장을 보며 "이제 선 수는 반인데 물건은 두 배로 무겁다"고 했다. 서윤은 대신 도경에게 휴대폰 사진 위에 선을 그어 모서리를 연장하는 법을 보여 주었다. 도경은 이 소품들이 외관 그림 안에서는 건물과 같은 소실점을 따라야 한다는 점을 짚었다.

이 장에서 정한 것소품 세 개의 구조 스케치. 우체통: 경계 상자 45 × 135 × 40 cm(1 : 3.0 : 0.89), 받침 30 · 몸통 85 · 반원통 지붕 20 cm의 더하기. 자전거: 경계 상자 170 × 100 × 58 cm, 가운데 세로 판과 바퀴통 축선(높이 33 cm)을 먼저 긋고 바퀴 타원의 단축을 바퀴통 축에 맞춘다. 의자: 경계 상자 42 × 85 × 40 cm에서 빈 공간을 덜어 내는 빼기, 발끝 네 점은 바닥 직사각형의 꼭짓점. 구조선은 연필로 투명하게(뒤쪽 선까지) 긋고, 펜을 올린 뒤 지운다.
아직 남은 문제구조는 섰지만 선만으로는 오후 햇빛이 어느 쪽에서 오는지, 어느 면이 밝고 어두운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음 단계8장: 창가 정물에 오후 빛을 들이고 명암의 단계를 해칭으로 옮긴다.

핵심 정리

  1. 복잡한 물체는 상자·원통·구·원뿔 같은 기본 입체의 더하기와 빼기로 줄여 본다. 기본 입체에는 원근 규칙이 그대로 통한다.
  2. 윤곽선은 가장자리만 알려 준다. 구의 윤곽은 늘 원이고, 상자도 정면에서는 사각형이다. 입체는 보이는 면의 수와 표면의 굴곡을 함께 그려야 선다.
  3. 물체를 꼭 맞게 감싸는 경계 상자를 먼저 세운다. 원근 속 사각형의 가운데는 대각선의 교점이며, 눈대중 가운데는 앞쪽으로 어긋난다.
  4. 단면선은 표면을 판으로 자른 선이다. 같은 윤곽이라도 단면선의 휨이 부피를 정한다. 지나치게 휘면 형태가 오히려 무너진다.
  5. 둥근 물체는 축부터 긋는다. 타원의 단축은 축과 같은 방향이다(원근에서는 몇 도 안의 차이).
  6. 구조선은 투명하게, 가볍게 긋고 마무리에서 지운다. 기본 입체와 한 시점의 원근은 출발점이며, 세잔의 정물이나 동아시아 산수처럼 다른 방식으로도 단단한 덩어리를 세울 수 있다.

확인 퀴즈

1. 구를 윤곽선 하나로만 그렸더니 원반처럼 납작해 보인다. 구가 둥근 입체로 읽히게 하는 가장 알맞은 방법은?

구의 윤곽은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원이라 윤곽만으로는 부피 정보가 없다. 표면을 따라 휘는 단면선이 굴곡을 알려 준다. 곧은 평행선은 오히려 평평한 판으로 읽히게 하고, 윤곽선의 굵기나 정확도는 입체감을 만들지 않는다.

2. 원근으로 그린 정사각형 윗면에 꼭 맞는 원을 넣으려 한다. 원의 중심 자리를 찾는 바른 방법은?

대각선의 교점은 원근 투영 뒤에도 실제 가운데로 남는다. 화면에서 반을 재거나 꼭짓점을 평균 내면 먼 쪽 절반이 작게 보이는 것을 무시하게 되어 가운데가 앞쪽으로 어긋난다. 타원의 한가운데도 원의 실제 중심보다 조금 앞에 온다.

3.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깡통을 그린다. 깡통 양 끝의 타원은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

원통의 단면 타원은 단축이 축 방향과 일치한다(원근에서는 몇 도 안의 차이). 축이 기울면 타원도 함께 돈다. 타원을 습관처럼 수평으로 눕히면 깡통이 비틀린 것처럼 보이고, 장축을 축에 맞추면 깡통이 축을 가로질러 납작해진다.

4. 의자를 보이는 선만 따라 그렸더니 다리 하나가 공중에 뜬 것처럼 보인다. 이 문제를 막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습관은?

다리 네 개의 발끝은 바닥의 한 평면 위에 있어야 한다. 경계 상자의 바닥 면을 투명하게 그려 두면 그 직사각형의 꼭짓점이 발끝 자리가 된다. 굵게 그리거나 그림자로 가리는 것은 구조의 오류를 숨길 뿐이고, 정면 모습만 그리면 입체를 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