섞기
어릴 때 물감 통의 색을 전부 섞어 본 적이 있다면 결과를 기억할 것이다. 검정도 아니고 무지개도 아닌, 진흙 같은 갈색. 반대로 무대 조명 세 개를 한곳에 겹치면 흰빛이 된다. 같은 "섞기"인데 한쪽은 밝아지고 한쪽은 어두워진다. 이 장은 빛과 물감이 섞이는 규칙을 반사율 곡선 하나로 풀고, 물감이 왜 탁해지는지, 어떻게 하면 덜 탁하게 섞을 수 있는지, 그리고 물감 세 개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직접 섞어 보며 확인한다.
- 빛을 더하는 가산 혼합과 빛을 빼는 감산 혼합을 구별하고, 화면과 물감의 "삼원색"이 다른 이유를 설명한다.
- 물감의 색을 반사율 곡선으로 읽고, 섞인 물감의 곡선이 왜 두 곡선보다 아래로 내려가는지 본다.
- 물감마다 색을 내는 힘(착색력)이 달라 "반반"이 눈으로는 반반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다.
- 흰색·검정·회색을 섞는 틴트·셰이드·톤과, 보색을 섞을 때 색이 탁해지는 길을 따라가 본다.
- 겹쳐 칠하기와 섞어 칠하기의 차이, 그리고 제한 팔레트 세 색이 낼 수 있는 색의 범위를 비교한다.
더하기와 빼기
화면은 빛을 낸다. 아무것도 켜지 않은 화면은 검정이고, 빨강·초록·파랑의 작은 빛을 켤수록 밝아진다. 이렇게 빛을 더해 색을 만드는 방식을 가산 혼합(Additive mixing)이라고 한다. 빛 두 개를 겹치면 두 빛의 에너지가 그대로 더해지므로, 섞을수록 밝아지고 셋을 모두 켜면 흰색에 가까워진다.
종이 위의 물감은 빛을 내지 않는다. 흰 종이가 돌려보내는 빛 가운데 일부를 물감이 흡수해 없앤다. 그래서 물감을 칠할수록, 섞을수록 돌아오는 빛은 줄어든다. 이렇게 빛을 빼서 색을 만드는 방식을 감산 혼합(Subtractive mixing)이라고 한다. 인쇄 잉크의 시안·마젠타·노랑(CMY)은 각각 빨강·초록·파랑 빛을 주로 빼는 잉크이고, 셋을 모두 겹치면 거의 모든 빛이 빠져 어두워진다.
아래 시뮬레이터에서 원 세 개를 끌어 겹쳐 본다. "빛" 모드는 어두운 방에서 손전등 세 개를 벽에 비추는 경우, "필터" 모드는 흰 종이 위에 색 셀로판 세 장을 겹쳐 올리는 경우다. 슬라이더는 빛의 세기 또는 필터의 진하기다.
빛 세 개, 필터 세 장
빛은 0에서 시작해 더해지고, 필터는 1(흰 종이)에서 시작해 곱해진다. 더하면 커지고 1보다 작은 수를 곱하면 작아진다. 섞기의 두 규칙은 결국 이 차이다. 그래서 화면의 삼원색(빨강·초록·파랑)과 인쇄의 삼원색(시안·마젠타·노랑)이 다르다. 미술 시간의 "빨강·노랑·파랑" 삼원색은 그 중간쯤에 있는 오래된 관습이다. 이 이야기는 5장 색상환에서 다시 만난다.
물감은 무엇을 빼는가: 반사율 곡선
필터 셀로판은 빛을 거르기만 한다. 물감은 조금 더 복잡하다. 물감의 알갱이(안료)는 빛을 흡수하기도 하고 사방으로 흩뜨리기도 한다. 흩어진 빛 일부가 다시 표면 밖으로 나와 눈에 들어온다. 물감의 색은 파장마다 빛을 몇 할 돌려보내는지, 곧 반사율(Reflectance) 곡선으로 적을 수 있다(1장). 노랑 물감의 곡선은 파랑 쪽(짧은 파장)에서 바닥에 붙어 있다가 500 nm 근처에서 솟아오르고, 파랑 물감은 450~480 nm 근처만 볼록하다.
두 물감을 섞으면 곡선은 어떻게 될까. 단순히 두 곡선의 평균이라면 섞은 물감은 두 물감의 중간 밝기가 되어야 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물감을 섞는 방식을 잘 설명하는 고전 모형이 쿠벨카–뭉크 모형(Kubelka–Munk theory)이다. 1931년 쿠벨카와 뭉크가 칠한 층 안에서 빛이 흡수되고 흩어지는 과정을 두 개의 숫자로 단순화한 것으로, 지금도 물감·잉크·플라스틱의 배합 계산에 기초로 쓰인다. 핵심은 반사율 대신 "흡수와 산란의 비율"을 섞는다는 것이다.
아래 그래프는 두 물감의 반사율(가는 선)과, 둘을 섞은 물감의 반사율(굵은 선)이다. 점선은 두 곡선의 단순 평균으로, 두 색을 아주 작은 점으로 나란히 찍어 멀리서 볼 때(병치 혼합)의 반사율이다. 섞는 비율을 바꿔 가며 굵은 선이 어디에 놓이는지 본다.
반사율 곡선으로 섞기
섞은 물감의 곡선은 거의 언제나 두 곡선의 평균보다 아래에 있다. 한 물감이 흡수하는 파장은 다른 물감이 아무리 돌려보내도 대부분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감을 섞으면 어두워지는 이유가 이것이고, 섞을수록 남는 빛의 띠가 좁고 낮아져 색이 탁해지는 이유도 이것이다. "노랑+파랑=초록"이 성립하는 것은 두 물감이 함께 돌려보내는 좁은 초록 띠가 우연히 남기 때문이고, 그 띠가 없는 조합에서는 초록이 나오지 않는다.
반반은 반반이 아니다: 착색력
수채화를 처음 배울 때 흔히 겪는 일이 있다. 노랑에 파랑을 "조금" 넣었는데 노랑이 순식간에 진한 초록이 된다. 반대로 파랑에 노랑을 아무리 넣어도 좀처럼 초록이 되지 않는다. 물감마다 색을 내는 힘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양을 섞었을 때 결과 색을 얼마나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지를 착색력(Tinting strength)이라고 한다. 프탈로 블루처럼 입자가 작고 흡수가 강한 안료는 착색력이 매우 세고, 레몬 옐로처럼 밝은 안료는 약한 편이다.
쿠벨카–뭉크 모형에서 착색력은 산란 계수 \(S\)의 크기에 들어 있다. \(S\)가 큰 물감은 같은 양으로도 혼합물의 흡수와 산란에 더 큰 몫을 차지한다. 아래 띠는 두 물감을 0%에서 100%까지 열한 단계로 섞은 것이다. 위 줄은 물감으로 섞은 결과, 가운데 줄은 점으로 둔 결과, 아래 줄은 화면 숫자를 그대로 평균한 결과다. 줄마다 작은 삼각형은 "눈으로 보기에 양쪽 끝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색", 곧 지각적 중간이 놓인 자리다. 슬라이더로 두 번째 물감의 착색력을 바꿔 본다.
섞는 비율 띠와 착색력
물감 줄과 숫자 줄은 같은 두 끝을 잇는데도 가운데가 전혀 다르다. 디지털 그림 도구의 "혼합" 브러시가 물감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 하나가 여기에 있다. 화면의 평균은 착색력을 모르고, 감산 혼합의 어두워짐도 모른다. 반대로 실제 물감을 다룰 때는 이 비대칭을 몸으로 익혀야 한다.
흰색, 검정, 회색 더하기
한 가지 색을 밝게, 어둡게, 차분하게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은 흰색, 검정, 회색을 섞는 것이다. 순수한 색에 흰색을 섞은 것을 틴트(Tint), 검정을 섞은 것을 셰이드(Shade), 회색을 섞은 것을 톤(Tone)이라고 부른다. 틴트는 밝고 연해지고, 셰이드는 어둡고 깊어지며, 톤은 밝기는 비슷하게 두고 선명함만 줄인다. 디자인 도구의 "밝게·어둡게" 단추와 이름은 같지만, 물감에서는 결과가 생각과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아래에서 기준 물감을 고르고 섞는 양을 늘려 본다. 네 줄은 각각 흰색, 검정, 중간 회색, 그리고 검정 대신 그 색의 반대편 물감을 섞은 결과다.
틴트·셰이드·톤
검정이 노랑을 올리브로 만드는 현상은 화가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다. 이유는 두 가지가 겹친다. 하나는 물리적인 쪽으로, 노랑의 반사율 곡선은 500 nm 근처에서 가파르게 솟는데 검정을 섞으면 곡선 전체가 내려앉으면서 남는 빛의 무게중심이 초록 쪽으로 옮겨 간다. 다른 하나는 지각적인 쪽으로, 노랑은 본래 밝은 색이라서 어두운 노랑을 우리는 노랑으로 느끼지 못하고 다른 이름(올리브, 카키, 황토)으로 부른다. 그래서 노랑을 어둡게 할 때 화가들은 검정 대신 황토색이나 갈색, 붉은 기운이 있는 물감을 섞기도 한다.
왜 탁해지는가: 보색 사이의 길
색상환에서 마주 보는 두 색, 예를 들어 노랑과 보라, 빨강과 청록을 보색(Complementary colors)이라고 한다(정확한 짝은 어느 색상환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5장). 보색끼리 섞으면 서로의 색을 지우며 회색 쪽으로 간다. 반사율 곡선으로 보면 이유가 분명하다. 한쪽이 돌려보내는 파장을 다른 쪽이 흡수하므로, 섞으면 곡선이 거의 평평해진다. 평평한 곡선은 어느 파장도 특별히 많이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뜻, 곧 무채색이다.
보색을 섞는 과정을 색의 지도 위에서 따라가 본다. 아래 평면은 OKLab 공간을 위에서 내려다본 것이다. 가운데가 무채색이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선명하며, 둘레를 돌면 색상이 바뀐다. 두 물감을 0%에서 100%까지 섞을 때 색이 지나가는 길을 점으로 찍었다. 손잡이를 길을 따라 끌면 그 비율의 색을 보여 준다.
보색 사이의 길
보색을 섞는 일이 늘 실패는 아니다. 오히려 화가들이 가장 자주 쓰는 기술이다. 선명한 초록 풀밭에 빨강을 아주 조금 넣으면 자연스러운 그늘의 초록이 되고, 주황과 파랑을 적당히 섞으면 검정 물감보다 색 기운이 살아 있는 어두운 회색이 된다. "탁하다"는 것은 실수의 결과일 때 문제이지, 계획한 결과라면 화면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힘이 된다. 탁한 색이 어떻게 선명한 색을 살리는지는 7장에서 다룬다.
섞지 않고 겹치기
물감을 꼭 팔레트에서 섞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투명한 물감을 한 층 칠하고 마른 뒤 다른 색을 위에 겹쳐 칠해도 두 색이 합쳐진 색이 보인다. 유화에서는 이 기법을 글레이즈(Glaze)라고 부르고, 수채화에서는 흔히 "겹칠", 레이어링이라고 한다. 겹친 층은 셀로판 필터처럼 빛을 차례로 거른다. 빛이 위층을 지나 종이에 닿고, 종이에서 튕겨 나와 다시 위층을 지나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겹치기는 곱셈에 가깝다(그림 1의 필터 모드).
아래 종이에는 가로로 첫 번째 물감, 세로로 두 번째 물감을 묽게 칠했다. 가운데 겹친 부분이 글레이즈다. 오른쪽은 같은 두 물감 웅덩이를 반반 섞어 한 번에 칠한 것이다. 두 슬라이더는 각 물감의 진하기(물을 얼마나 탔는지)다.
겹쳐 칠하기와 섞어 칠하기
겹치기와 섞기는 결과 색만 다른 것이 아니다. 겹친 그림에서는 아래층의 붓자국과 가장자리가 그대로 비쳐 보이고, 두 색이 각자 남아 있다가 겹친 곳에서만 만난다. 그래서 같은 초록이라도 한 번에 섞어 칠한 초록과 노랑 위에 파랑을 올린 초록은 화면에서 다른 표정을 짓는다. 디지털 도구의 "곱하기" 레이어가 바로 이 겹치기를 흉내 낸 것이다. 엔진의 ART.mixFilter도 같은 곱셈으로 셀로판을 겹친다.
수채화의 흰색은 종이다
유화나 과슈(불투명 수채)에서는 흰 물감을 섞어 밝은 색을 만든다. 투명 수채화에서는 보통 흰 물감을 쓰지 않는다. 밝은 색은 물을 많이 타서 종이가 비치게 만들고, 가장 밝은 흰색은 아예 칠하지 않고 남겨 둔 종이다. 이 차이가 혼색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흰 물감을 섞은 틴트는 분필처럼 탁해지기 쉽지만(틴트), 물로 묽힌 수채 색은 종이에서 튕겨 나온 빛이 물감 층을 지나오므로 맑게 보인다.

호머는 수채화를 많이 그린 미국 화가로, 말년의 카리브해 수채화들은 밝은 빛과 투명한 색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그림에서 볼 것은 "가장 선명한 색을 가장 적게 썼다"는 점이다. 화면 넓이의 대부분은 회색에 가까운 벽과 연한 하늘이고, 붉은 잎은 몇 군데에 흩어져 있을 뿐이다. 만약 벽도 잎처럼 선명했다면 잎은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 섞어서 탁해진 색이 실패가 아니라 무대가 되는 경우다. 그림 오른쪽 위의 "흑백" 단추를 눌러 보면, 붉은 잎은 하늘보다 조금 어두운 회색일 뿐 색으로 볼 때만큼 튀지 않는다. 잎을 돋보이게 하는 큰 몫은 밝기보다 색의 차이다(6장, 8장).
세 물감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나: 제한 팔레트
화방에는 수십 가지 물감이 있지만, 많은 화가들이 일부러 몇 가지만 골라 쓴다. 이렇게 적은 수의 물감으로 그림 전체를 그리는 것을 제한 팔레트(Limited palette)라고 한다. 물감 수가 적으면 모든 색이 같은 물감에서 나오므로 화면의 색이 저절로 서로 이어지고, 물감마다의 성질을 깊이 익힐 수 있다. 스웨덴 화가 안데르스 소른(Anders Zorn, 1860–1920)의 이름을 딴 "소른 팔레트"(옐로 오커, 빨강, 검정, 흰색)는 초상화가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예다. 다만 소른이 실제로 늘 이 네 색만 썼는지에 대해서는 그의 그림을 보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동아시아의 수묵화는 더 극단적인 제한 팔레트다. 먹 하나의 농담만으로 화면을 짓고, 당나라 장언원의 『역대명화기』(9세기)에는 먹을 잘 운용하면 다섯 가지 색이 갖추어진다는 취지의 말이 있어 흔히 "묵분오채"로 요약된다.
세 물감을 고르면 그 세 물감과 물(종이의 흰색)로 낼 수 있는 색의 범위, 곧 그 팔레트의 색역(Gamut)이 정해진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고른 물감들을 여러 비율로 섞고 네 단계로 묽혀 만든 수백 가지 색을 OKLab 평면에 찍는다. 색이 찍힌 영역을 감싸는 다각형이 그 팔레트의 대략적인 색역이다. 점선은 비교용으로 다른 3색 조합의 색역이다. 목표 색을 고르거나 평면 위의 십자 손잡이를 끌면, 그 팔레트에서 가장 가까운 혼합과 배합을 찾아 준다.
세 물감의 색 지도
두 조합의 차이는 고른 원색의 위치에서 나온다. A 조합의 세 물감은 인쇄의 시안·마젠타·노랑에 가까운 자리에 있다. 프탈로 블루는 초록 쪽으로 기운 파랑이고 레몬 옐로는 초록 쪽으로 기운 노랑이라서, 둘이 섞이면 함께 돌려보내는 초록 띠가 넓게 남는다. B 조합은 따뜻한 쪽으로 기운 노랑(카드뮴)과 보라 쪽으로 기운 파랑(울트라마린)이라서, 섞으면 반사율이 서로 엇갈려 초록이 탁해진다(그림 2). 대신 B 조합은 울트라마린 덕분에 남색과 보라 쪽으로 더 멀리 가고, B 조합의 초록은 "자연스럽게 가라앉은" 초록이라 풍경에서는 그대로 쓰기 좋다는 화가도 많다. 어느 쪽이 낫다는 정답은 없다. 무엇을 그릴지에 따라 넓은 색역이 필요할 때도, 좁지만 서로 잘 어울리는 색역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이 시뮬레이터가 보여 주는 또 한 가지는 어떤 팔레트도 화면의 색역을 다 채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밝고 선명한 청록, 어둡고 선명한 색은 대부분의 물감 조합 밖에 있다. 반대로 물감은 화면에 없는 질감과 투명함을 갖고 있다. 화면과 인쇄의 색역 차이는 15장에서 다시 다룬다.
서윤의 작업 노트
세 물감을 고르는 일은 그릴 수 있는 세계를 고르는 일
서윤의 수채 물감 상자에는 스물네 가지 색이 있다. 「창가의 책」을 시작하려고 팔레트를 펼치자 도경이 반쯤 웃으며 말했다. "가을 그림 세 점을 한 사람이 그린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으면 물감부터 줄여. 세 개, 많아야 네 개." 도경이 오래 써 온 조합은 카드뮴 옐로·알리자린 크림슨·울트라마린(B 조합)이다. 서윤은 인쇄 잉크처럼 레몬 옐로·퀴나크리돈 마젠타·프탈로 블루(A 조합)를 쓰면 더 많은 색이 나오지 않을까 궁금했다.
두 사람은 같은 저녁에 두 가지 방법으로 비교했다. 도경은 종이에 두 조합의 삼각형 색 지도를 칠했고, 서윤은 이 장의 시뮬레이터로 두 조합을 섞어 보았다. 이 책의 모델로 계산하면 A 조합의 색역 넓이(OKLab a, b 평면)는 B 조합의 약 1.5배다. A는 초록·청록 쪽으로 훨씬 넓었고, B는 남색·보라 쪽이 조금 더 나왔다. 서윤이 서점 로고 후보 #2f7d5b를 목표로 두자, A 조합은 레몬 옐로 약 81%에 프탈로 블루 약 19%로 색차(ΔE2000) 1 미만의 색을 냈다. B 조합에서 가장 가까운 색은 카드뮴 옐로와 울트라마린을 섞은 탁한 올리브로, 색차가 17을 넘었다. 도경의 종이 색 지도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B 조합의 초록 칸은 모두 올리브빛으로 가라앉았다.
도경은 B 조합의 편을 들었다. "B는 무엇을 섞어도 서로 잘 어울려. A는 프탈로가 너무 세서 조심하지 않으면 그림 전체가 파래지지." 서윤은 그림 세 점을 다시 떠올렸다. 「비 오는 골목」에는 차갑고 다양한 회색이, 「해 질 녘 서점 앞」에는 따뜻한 흙색과 노을빛이 필요하다. 그래서 A 조합에 번트 시에나를 하나 더하기로 했다. 이 책의 모델로 프탈로 블루와 번트 시에나를 반반 섞으면 푸른 회색 #364f5d, 시에나를 7할로 늘리면 거의 중립 회색 #494e4d가 된다. 시에나는 색역을 넓히지는 않지만, 그림 3의 벽 같은 탁한 중간색에 더 가깝게, 더 적은 단계로 닿게 해 준다. 도경은 서윤의 손 색 일지 첫 장에 두 조합의 색 지도를 나란히 붙이고 "선명한 색은 나중에 눌러 탁하게 할 수 있어도, 탁한 색을 선명하게 되돌릴 수는 없다"고 적었다.
기본 1
퀴나크리돈 마젠타기본 2
프탈로 블루기본 3
번트 시에나보조
프탈로+시에나#364f5d
핵심 정리
- 빛은 0(검정)에서 시작해 더해지고(가산), 물감과 필터는 1(흰 종이)에서 시작해 빛을 뺀다(감산). 그래서 화면의 삼원색(RGB)과 인쇄의 삼원색(CMY)이 다르다.
- 물감의 색은 반사율 곡선으로 읽는다. 섞은 물감의 곡선은 대개 두 곡선의 평균보다 아래에 있어, 섞을수록 어둡고 탁해진다. 쿠벨카–뭉크 모형은 반사율 대신 흡수와 산란의 비율(K/S)을 섞는다.
- 물감마다 착색력이 달라 같은 양을 섞어도 결과는 센 물감 쪽으로 기운다. 밝고 약한 색에 어둡고 센 색을 조금씩 넣는다.
- 흰색을 섞으면 밝아지면서 탁해지고(틴트), 검정은 노랑을 올리브로 만드는 것처럼 색상까지 바꾼다(셰이드). 어둡게 할 때 반대편 색이나 어두운 물감을 쓰면 색 기운을 지킬 수 있다.
- 보색끼리 섞으면 반사율이 평평해져 무채색 쪽으로 간다. 실수라면 진흙색, 계획이라면 검정보다 살아 있는 회색이다.
- 투명한 층을 겹치면 곱셈처럼 진해지고, 섞으면 한 층 안에서 평균에 가까워진다. 수채화의 가장 밝은 흰색은 칠하지 않은 종이다.
- 제한 팔레트의 색역은 고른 원색의 위치가 정한다. 시안·마젠타·노랑에 가까운 조합은 넓고, 따뜻한 노랑·보랏빛 파랑 조합은 좁지만 차분하다. 정답이 아니라 그릴 것에 맞춰 고른다.
확인 퀴즈
1. 카드뮴 옐로와 울트라마린을 반반 섞었더니 맑은 초록이 아니라 탁한 올리브 회색이 되었다. 가장 알맞은 설명은?
2. 레몬 옐로 웅덩이에 프탈로 블루를 10%만 넣었는데 눈에는 이미 반쯤 초록으로 보인다. 이 현상과 관련이 가장 큰 성질은?
3. 노란 레몬을 그리다 그림자 부분을 어둡게 하려고 노랑에 검정을 섞었더니 올리브색이 되었다. 노랑의 색 기운을 더 지키며 어둡게 하는 방법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4. 수채화에서 연한 노랑 층이 마른 뒤 연한 파랑을 겹쳐 칠했다. 같은 두 물감 웅덩이를 반반 섞어 한 번 칠한 것과 비교하면, 겹친 부분은 대체로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