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1

제품 디자인의 지도

"앱을 하나 만들어 주세요." 동네 책방 네 곳의 주인이 탁자에 둘러앉아 저마다 종이 한 장씩을 내민다. 포인트 적립, 손님과 채팅, 아이 나이별 추천, 중고책 매입 시세. 종이마다 기능이 빼곡하다. 디자이너는 그날 밤 화면 열두 장을 그려 온다. 다음 날 아침, 화면을 넘겨 보던 사용자 연구자가 묻는다. "그 화면을 누가, 언제 써요?" 아무도 대답하지 못한다. 이 장은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디지털 제품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화면을 그리는 일보다 넓다는 것, 넓혔다가 좁히는 일의 리듬, 늦게 알아챌수록 무엇이 비싸지는지를 둘러보고, 앞으로 열한 장에서 하나씩 풀 질문을 한 장의 지도로 펼친다.

화면보다 문제가 먼저

이 책에서 말하는 제품 디자인(Product design)은 앱과 웹 서비스 같은 디지털 제품을 설계하는 일이다. 손에 쥐는 물건의 디자인은 IndustrialBook이 다룬다. 비슷한 자리에서 UX 디자인(User experience design)이라는 말도 자주 쓴다. 사용자 경험, 곧 사람이 제품을 알게 되고 써 보고 다시 찾거나 떠나기까지 겪는 일 전체를 설계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1990년대에 애플에서 일하던 인지과학자 도널드 노먼(Donald Norman)이 자기 직함에 쓰면서 퍼졌다고 알려져 있다. 두 이름의 경계는 회사마다 다르고, 이 책은 둘을 거의 같은 뜻으로 쓴다.

어느 이름으로 부르든 이 일의 가운데에는 화면이 아니라 사람과 그 사람의 상황이 있다. 화면은 그 상황에 내놓는 답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런데 의뢰는 거의 언제나 답의 모양으로 온다. "채팅 기능을 넣어 주세요", "추천을 보여 주세요". 이런 요청을 기능 요청(Feature request)이라고 한다. 기능 요청은 쓸모없지 않다. 요청한 사람이 무언가 곤란을 겪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다만 요청에 담긴 것은 그 사람이 상상한 해결책이고, 해결책 뒤에 있는 문제는 대개 말해지지 않는다.

이 책에서 문제(Problem)라고 할 때는 세 가지가 들어 있는 문장을 말한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하려다가 어려움을 겪는가. "포인트 적립"에는 이 셋이 없다. "찾는 책이 어느 가게에 있는지 가 보기 전에는 모른다"에는 셋이 다 있다(손님이, 책방에 가기 전에, 재고를 알 수 없다). 아래는 네 책방 주인이 첫 모임에서 한 말을 카드로 옮긴 것이다. 카드를 끌어 아래 세 상자 중 하나에 넣는다.

SIMULATOR

기능인가, 문제인가

카드를 상자로 끈다
분류한 카드—
하린의 분류와 같은 카드—
해결책 상자—
카드를 하나 끌어 상자에 넣으면 여기에 그 카드를 누가 말했는지와 하린의 해설이 나온다.
해볼 것: ① "포인트 적립"을 "문제" 상자에 넣어 본다. 해설은 그것이 해결책이며 뒤에 어떤 바람이 숨어 있을 수 있는지를 말한다. ② "찾는 책이 어느 가게에…" 카드에서 누가, 언제, 무엇이 어려운지를 짚어 본다. ③ 열 장을 다 넣은 뒤 해결책 상자를 본다. 주인들이 가져온 종이는 대부분 이 상자로 간다. (분류의 기준은 이 장이 정한 단순한 것이다. 누가·언제·무엇이 어려운지가 들어 있으면 문제, 무엇을 만들지가 들어 있으면 해결책, 둘 다 없으면 바람·의견. 실제 요청은 둘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열 장 중 넷이 해결책, 넷이 문제, 둘이 바람이나 의견이었다. 해결책 카드가 틀린 것은 아니다. "포인트 적립" 뒤에는 "손님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는 주인의 바람이, "손님과 채팅" 뒤에는 "가게를 보면서 전화를 받기 힘들다"는 곤란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추측이다. 그리고 같은 문제에도 해결책은 여럿이다. 손님이 재고를 모르는 문제는 앱으로 풀 수도 있지만, 가게 앞 칠판이나 문자 한 통으로도 풀릴 수 있다. 해결책부터 받아 적으면 그 여러 길이 처음부터 닫힌다.

그래서 제품 디자이너는 기능 목록을 받으면 그것을 버리지 않고, 카드 하나하나를 "이것이 있으면 누구의 어떤 순간이 달라지나요?"라는 질문으로 바꿔 둔다. 그 질문의 답을 찾으러 사람을 만나는 일이 2장(사용자 조사)이고, 모은 답에서 풀 문제 하나를 고르는 일이 3장(문제 정의)이다.

"그게 있으면 무엇이 달라지나요?"를 두 번 묻는다 기능 요청을 받으면 바로 "좋네요"나 "어렵습니다"로 답하지 않는다. 먼저 "그 기능이 있으면 누구의 어떤 순간이 달라지나요?"라고 묻고, 답이 나오면 같은 질문을 한 번 더 한다. "채팅이 있으면요?" "손님이 책 있냐고 물어볼 수 있죠." "그게 되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전화를 덜 받겠죠. 계산하다 전화 받는 게 제일 힘들어요." 두 번째 답에서 비로소 문제가 나온다. 이렇게 물어도 요청한 사람이 불쾌해하지 않게, 질문은 따지듯이 하지 않고 궁금한 듯이 한다. 그리고 받은 기능 목록은 따로 모아 두었다가, 문제를 고른 뒤에 다시 꺼내 본다.

화면은 맨 위층이다

서윤이 첫날 밤에 그린 열두 장의 화면에는 색과 글자와 버튼이 다 있었다. 빠진 것은 그 아래였다. 웹 디자이너 제시 제임스 개릿(Jesse James Garrett)은 『The Elements of User Experience』(2002)에서 사용자 경험을 다섯 층으로 나눠 그렸다. 아래부터 전략(Strategy)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이루려는가, 범위(Scope)는 그래서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 것인가, 구조(Structure)는 넣은 것들을 어떻게 나누고 잇는가, 골격(Skeleton)은 화면 위 어디에 무엇을 놓는가, 표면(Surface)은 그것이 어떤 색과 글자와 모양으로 보이는가다.

개릿의 요점은 층의 이름보다 층 사이의 관계에 있다. 위층의 결정은 아래층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만 의미가 있다. 버튼의 색(표면)은 그 버튼이 화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골격)가 정해진 뒤에야 고를 수 있고, 버튼의 자리는 그 버튼이 어느 흐름의 몇 번째 단계인지(구조)를 알아야 정할 수 있다. 아래 슬라이더로 층을 하나씩 쌓아 보고, 체크 상자로 서윤이 첫날 밤에 한 일을 본다.

SIMULATOR

다섯 층으로 쌓는 화면

맨 위층—
이 층이 답하는 질문—
비어 있는 아래층—
해볼 것: ① 슬라이더를 1에서 5까지 한 칸씩 올린다. 오른쪽(좁은 화면에서는 아래쪽) 그림이 문장 → 목록 → 상자와 화살표 → 회색 상자 → 색을 입은 화면으로 바뀐다. ② "서윤의 첫날 밤 화면"을 켠다. 표면은 가장 완성되어 보이지만 아래 네 층이 점선으로 비어 있다. ③ 첫날 밤 화면을 켠 채로 슬라이더를 움직여 본다. 아래층을 채우기 전까지는 위의 화면이 무엇 위에 서 있는지 알 수 없다. (층의 이름과 순서는 개릿의 다섯 층을 따랐다. 그림 속 내용은 특정 서비스의 답이 아니라 각 층에서 만드는 것의 모양만 보여 주는 예시다.)

표면만 있는 화면은 가장 완성되어 보이지만 가장 쉽게 무너진다. 포인트 배너를 맨 위에 둔 결정, 탭을 다섯 개로 나눈 결정은 아래층의 질문("누구를 위해?", "무엇을 넣고 뺄까?")에 답하지 않은 채 내려졌다. 아래층의 답이 나오면 그 결정들은 대부분 다시 내려야 한다. 그렇다고 층을 반드시 아래부터 차례로 끝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개릿도 층들이 서로 겹쳐 진행된다고 했고, 실제로는 화면을 빠르게 그려 보면서 아래층의 질문을 찾아내기도 한다(7장). 중요한 것은 지금 그리는 화면이 어느 층의 결정 위에 서 있는지, 그 결정이 확인된 것인지 상상한 것인지를 아는 것이다.

휴대폰 앱 하나를 거꾸로 벗겨 보기 자주 쓰는 앱 하나를 골라 첫 화면을 종이에 대충 옮겨 그린다. 그 아래에 네 줄을 적는다. ① 골격: 첫 화면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한 것은 무엇인가. ② 구조: 그 화면에서 갈 수 있는 곳은 몇 군데이고 이름이 무엇인가. ③ 범위: 이 앱에 없는 것 중 있을 법한 기능 하나는 무엇인가. 왜 뺐을까. ④ 전략: 이 앱은 누구의 어떤 순간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짐작하는가. 마지막 줄이 가장 쓰기 어렵다. 겉에서 보이지 않는 층일수록 짐작이 되고, 짐작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적어 둔다.

넓혔다가 좁힌다: 더블 다이아몬드

문제를 고르는 일과 해결책을 고르는 일에는 같은 리듬이 있다. 먼저 가능성을 넓게 펼치고, 그다음 근거를 대며 좁힌다. 넓히는 생각을 발산(Divergence), 좁히는 생각을 수렴(Convergence)이라고 한다. 심리학자 길퍼드(J. P. Guilford)가 1950년대 창의성 연구에서 쓴 "발산적 사고"와 "수렴적 사고"의 구분에서 온 말이다. 발산할 때는 판단을 미루고 양을 늘리고, 수렴할 때는 기준을 세우고 버린다. 둘을 한꺼번에 하면 둘 다 잘 안 된다. 새 생각을 꺼내는 자리에서 곧바로 "그건 안 돼요"가 나오면 더는 아무도 꺼내지 않는다.

영국 디자인 카운슬(Design Council)은 2005년에 이 리듬을 두 개의 마름모로 요약한 더블 다이아몬드(Double Diamond)를 내놓았다. 첫 마름모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사람을 만나며 문제를 넓게 찾고(발견, Discover), 그중 풀 문제 하나를 정한다(정의, Define). 두 번째 마름모는 해결책에 관한 것이다. 해결안을 여럿 만들어 시험하고(발전, Develop), 되는 것을 다듬어 내놓는다(전달, Deliver).

문제 공간 해결 공간 발견 Discover 정의 Define 발전 Develop 전달 Deliver 풀 문제 하나 내놓을 해결안 의뢰 발산 수렴 발산 수렴
그림 1. 더블 다이아몬드. 마름모의 폭은 그 시점에 살아 있는 가능성의 수다. 첫 마름모에서 문제의 후보를 넓게 찾고(발견) 하나로 좁힌다(정의). 두 번째 마름모에서 해결안을 여럿 만들고(발전) 시험을 거쳐 하나를 내놓는다(전달). 두 마름모 사이의 점이 "풀 문제 하나"다. 이 책의 이해 부(2·3장)가 첫 마름모를, 구조와 검증 부(4~9장)가 두 번째 마름모를 주로 다룬다.

그림으로 보면 단순하지만, 실제 프로젝트에는 마감이 있다. 서윤의 서비스는 6월 말에 문을 열어야 한다. 첫 마름모를 넓게 그리면 문제를 놓칠 위험은 줄지만 해결안을 다듬을 시간이 줄고, 좁게 그리면 시간이 남지만 엉뚱한 문제를 정성껏 풀 위험이 커진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4월 첫 주부터 6월 말까지 약 12주를 가로축에 놓았다. 위쪽 손잡이를 끌어 첫 마름모의 꼭짓점(언제까지, 몇 개의 문제 후보를 펼칠지)을, 가운데 줄의 손잡이를 끌어 문제를 정하는 날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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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주 안의 두 마름모

두 손잡이를 끈다
펼친 문제 후보—
진짜 문제가 후보에—
해결안을 다듬을 기간—
시험해 볼 수 있는 횟수—
해볼 것: ① 처음 상태에서 "숨은 진짜 문제 보기"를 켠다. 일곱 번째로 떠오른 후보가 진짜 문제라면, 후보를 열 개쯤 펼친 지금은 그것이 마름모 안에 있다. ② 위 손잡이를 아래로 끌어 후보를 세 개로 줄인다. 시간이 남아 시험 횟수는 늘지만 진짜 문제는 마름모 밖에 남는다. ③ "곧장 해결안"을 누른다. 주인들의 기능 목록을 그대로 문제로 삼고 12주를 모두 해결안에 쓴다. 시험은 가장 많이 하지만 무엇을 시험하는지가 틀렸을 수 있다. ④ "다른 프로젝트"를 몇 번 눌러 진짜 문제가 떠오르는 순서를 바꿔 본다. 어느 폭이 언제나 옳은지는 정할 수 없다. (교육용 모형: 문제 후보는 한 주에 최대 4개를 살펴볼 수 있고, 후보 n개를 하나로 좁히는 데 약 0.35·log₂n주가 든다. 진짜 문제가 몇 번째 후보로 떠오르는지는 프로젝트마다 2~15번째 중 하나로 두었고, 수렴할 때는 후보 가운데 진짜 문제를 알아본다고 가정했다. 해결안은 남은 기간의 40% 동안 펼치고, 나머지 기간에 1.5주마다 한 번 시험한다.)

첫 마름모를 납작하게 누를수록 남는 시간은 늘지만, 진짜 문제가 아예 후보에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수렴은 이미 펼친 것 중에서만 고를 수 있다. 떠올리지 않은 문제는 아무리 잘 좁혀도 고를 수 없다. 반대로 첫 마름모를 끝없이 넓히면 해결안을 시험할 시간이 사라진다. 모형의 숫자는 지어낸 것이지만, 이 거래 자체는 실제 프로젝트에서 늘 일어난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마감을 보고 첫 마름모의 크기를 미리 정한다. "조사는 2주, 그동안 사람 열두 명을 만난다"처럼. 정하지 않으면 발산은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이 아니라 불안이 허락하는 만큼 줄어든다.

마름모는 한 번에 지나가지 않는다 더블 다이아몬드는 순서도가 아니라 요약이다. 시험하다 보면 문제를 잘못 정의했다는 것이 드러나 첫 마름모로 돌아가기도 하고, 해결안 하나를 다듬는 동안 작은 다이아몬드가 여러 번 되풀이되기도 한다. 디자인 카운슬도 2019년에 이 그림을 원칙과 방법, 참여와 리더십까지 함께 담은 "혁신을 위한 틀(Framework for Innovation)"로 넓히면서, 단계 사이를 오가는 화살표를 강조했다. 이 책은 더블 다이아몬드를 "지금 넓히는 중인가, 좁히는 중인가"를 묻는 도구로만 쓴다. 회의를 시작할 때 이 질문 하나에 답해 두면, 발산하는 자리에서 비판이 나오고 수렴하는 자리에서 새 아이디어가 쏟아지는 일이 줄어든다.
한 장면에서 문제 문장 열 개 쓰기 동네 가게 한 곳에서 겪은 작은 불편 하나를 떠올린다(빵집에서 원하는 빵이 이미 다 팔렸다, 세탁소가 문을 닫았다). 그 장면을 두고 "누가, 언제, 무엇이 어렵다"의 형식으로 문제 문장을 열 개 쓴다. 손님의 문제, 주인의 문제, 다른 손님의 문제, 배달하는 사람의 문제처럼 사람을 바꿔도 되고, 같은 사람의 다른 순간을 써도 된다. 다섯 개를 넘기면 쓰기가 어려워지는데, 그 뒤에 나오는 문장이 처음 떠올린 것과 가장 다른 경우가 많다. 열 개를 다 쓴 다음에만 그중 두 개에 동그라미를 친다. 무엇을 기준으로 골랐는지 한 줄로 적는다.

늦게 찾을수록 다시 할 일이 많다

하린이 첫날 화면 열두 장을 보고 놀란 이유는 화면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그 화면들이 아직 확인하지 않은 결정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결정은 다른 결정의 바닥이 된다. 문제를 하나 고르면 그 문제를 푸는 흐름이 짜이고, 흐름에 맞춰 화면 목록이 나오고, 화면마다 문구와 코드가 붙고, 공개하면 손님의 습관과 쌓인 기록과 주인들 사이의 약속까지 그 위에 올라간다. 바닥에 있는 결정이 틀렸다는 것을 나중에 알수록, 그 위에 쌓인 것을 더 많이 걷어 내야 한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이 관계를 블록으로 그렸다. 위쪽 단추로 "틀린 결정"의 종류를 고르고, 가로축 위의 손잡이를 끌어 그것을 언제 발견했는지를 옮긴다. 붉은 블록이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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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결정을 언제 찾았나

발견 시점을 끈다
발견한 때—
다시 만들 것—
다시 할 일(가상 단위)—
—
해볼 것: ① "풀 문제"를 고른 채 손잡이를 "정의"에서 "공개 후"까지 한 칸씩 옮긴다. 붉은 블록이 계단처럼 불어난다. ② "버튼 문구"로 바꿔 같은 일을 한다. 문구에 기대는 것이 적어서 늦게 찾아도 다시 할 일이 훨씬 적다. ③ "흐름"을 고르고 "공개 후"에 둔다. 코드와 데이터뿐 아니라 손님이 이미 익힌 순서까지 바꿔야 한다. (교육용 모형: 단계마다 만드는 것과 각각이 어느 결정에 기대는지를 이 장이 정했고, 블록 크기는 일의 양을 나타내는 가상의 단위다. 실제 비용의 배수가 아니다.)

같은 시점에 발견해도 틀린 결정이 바닥에 가까울수록 다시 할 일이 많았다. 그리고 같은 결정이라도 늦게 찾을수록 많았다. 이것이 제품 디자인이 "가장 바닥의 결정", 곧 누구의 어떤 문제를 풀 것인가부터 확인하려는 이유다. 확인하는 데 드는 비용이 가장 싼 때가 가장 이른 때이기 때문이다. 손님 열 명과 이야기하는 데는 며칠이면 되지만, 공개한 서비스의 흐름을 바꾸는 데는 몇 주가 들고 손님의 습관을 바꾸는 데는 그보다 오래 걸린다.

"1 : 10 : 100"이라는 숫자 "설계 단계에서 1이 드는 수정이 개발 단계에서는 10, 공개 뒤에는 100이 든다" 같은 배수가 발표 자료에 자주 나온다. 소프트웨어 공학에서 결함을 늦게 찾을수록 고치는 비용이 커진다는 관찰은 오래되었고, 배리 보엠(Barry Boehm)의 『Software Engineering Economics』(1981)가 흔히 그 출처로 꼽힌다. 그러나 돌아다니는 구체적인 배수는 어떤 프로젝트를 어떻게 잰 값인지 거슬러 올라가기 어렵고, 로랑 보사비(Laurent Bossavit)는 『The Leprechauns of Software Engineering』에서 이런 숫자들이 원자료와 어긋나게 인용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변경을 쉽게 만드는 개발 방식에서는 곡선이 훨씬 완만하다는 반론도 있다. 이 책은 배수를 쓰지 않는다. 대신 위 시뮬레이터처럼 왜 늘어나는지, 곧 무엇이 그 결정 위에 쌓이는지를 본다. 그 구조는 프로젝트마다 그려 볼 수 있다.

두 쪽의 사용자, 여러 사람의 일

이 책을 관통하는 케이스는 동네 책방 네 곳이 함께 쓰는 작은 모바일 웹 서비스 "맡아 두기"다. 주인들이 처음 말한 뼈대는 이렇다. 손님이 찾는 책을 휴대폰으로 검색해 어느 책방에 있는지 보고, 미리 맡겨 두었다가(최대 3일) 가게에 가서 찾아간다. 값은 가게에서 치른다. 서비스 안에 결제는 없다.

손님 휴대폰으로 찾고, 맡기고, 가게에서 찾아간다 맡아 두기 모바일 웹 책방 E 신간 · 그림책 헌책방 나무 헌책 · 한 권씩 작은 숲 어린이 책 한 줄 시집 · 주인 혼자 찾기·맡기기 알림 재고 요청 최대 3일 안에 가게에 가서 찾고, 값은 가게에서 치른다
그림 2. "맡아 두기"의 두 쪽. 왼쪽의 손님만 사용자가 아니다. 오른쪽의 네 주인도 재고를 알리고 맡김 요청을 확인하는 사용자다. 네 책방은 파는 책도, 재고를 적는 방식(엑셀, 공책, 판매 시스템)도, 일하는 사람 수도 다르다. 이 그림은 주인들이 첫 모임에서 말한 뼈대일 뿐이고, 실제 단계는 5장에서 다시 짠다.

이런 서비스를 흔히 양면 서비스(Two-sided service)라고 한다. 두 부류의 사용자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서비스다. 손님 쪽 화면이 아무리 좋아도 주인이 재고를 알리지 않으면 검색 결과는 비고, 주인 쪽 화면이 아무리 편해도 손님이 오지 않으면 주인은 곧 쓰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의 조사와 테스트는 언제나 두 쪽을 함께 본다. 한 줄의 주인처럼 혼자 가게를 보는 사람에게 "확인" 버튼 하나를 누르는 3초가 어떤 무게인지는 손님을 아무리 만나도 알 수 없다.

만드는 쪽에도 여러 사람이 있다. 화면과 흐름을 설계하는 디자이너, 사람을 만나 무엇이 사실인지 가려내는 사용자 연구자(User researcher), 실제로 동작하게 만들고 무엇이 얼마나 드는지 아는 개발자, 그리고 돈을 내고 결과를 책임지는 의뢰인. 이 케이스에서는 의뢰인(네 주인)이 동시에 사용자다. 그래서 그들의 요청은 두 번 들어야 한다. 한 번은 의뢰인의 바람으로, 한 번은 사용자의 경험으로.

개발자를 첫 모임부터 부른다 디자인이 다 끝난 뒤에 개발자에게 화면을 넘기면, "이건 석 달 걸려요"라는 말이 너무 늦게 나온다. 작은 팀일수록 개발자를 조사와 문제 정의 회의에 함께 앉힌다. 개발자는 무엇이 쉽고 무엇이 어려운지만 아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네 책방의 엑셀과 판매 시스템에서 재고를 꺼낼 수 있는가)을 가장 빨리 알아본다. 대신 발산하는 자리에서 "그건 못 만들어요"를 바로 말하지 않기로 미리 약속한다. 만들 수 있는지는 수렴할 때 따진다.

이 책의 지도

제품 디자인의 일은 네 가지 질문으로 모인다. 이 책은 그 질문마다 한 부를 둔다.

부질문장
이해누구의 어떤 문제인가2 사용자 조사 · 3 문제 정의
구조어떻게 짜고 잇는가4 정보 구조 · 5 사용자 흐름 · 6 상호작용의 원리
검증정말 되는지 어떻게 아는가7 스케치와 프로토타입 · 8 사용성 테스트 · 9 숫자로 확인하기
운영만든 뒤에는 무엇을 지키는가10 UX 라이팅 · 11 디자인 시스템 · 12 다크 패턴과 윤리
01 제품 디자인의 지도 13 실험실 14 용어집 이해 구조 검증 운영
그림 3. ProductBook의 지도. 1장을 가운데 두고 2~12장이 시계 방향으로 둘레를 돈다. 칸의 색은 부를 나타낸다. 이해는 첫 마름모, 구조와 검증은 두 번째 마름모, 운영은 마름모를 지나 서비스가 문을 연 뒤의 일이다. 둘레를 다 돌면 13장 실험실에서 흐름·퍼널·사용성 테스트·A/B 결과를 한 서비스 위에서 함께 다룬다. 칸을 누르면 그 장으로 간다.

네 갈래는 차례로 지나가는 단계이기도 하지만, 같은 화면을 보는 네 개의 렌즈이기도 하다. 마지막 시뮬레이터는 서윤이 첫날 밤 그린 열두 장 가운데 첫 화면이다. 위쪽 단추로 렌즈를 고르고, 화면의 번호 칸을 눌러 그 렌즈로 보면 어떤 질문이 생기는지 본다.

SIMULATOR

네 렌즈로 첫날 밤 화면 읽기

번호 칸을 누른다
살펴본 칸—
지금 렌즈의 질문—
지금 답할 수 있는 질문—
—
해볼 것: ① "이해" 렌즈에서 2번 칸(포인트 배너)을 누른다. 질문은 "이것이 손님의 문제인가"다. ② 같은 칸을 둔 채 렌즈를 "구조", "검증", "운영"으로 바꾼다. 같은 배너에서 전혀 다른 질문이 나온다. ③ 일곱 칸을 다 눌러 본 뒤 "지금 답할 수 있는 질문"을 본다. 스물여덟 개 중 하나도 없다. 서윤의 화면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화면은 이 책이 만든 가상의 시안이다. 질문 옆의 장 번호는 그 질문을 주로 다루는 장이다.)

스물여덟 개의 질문 중 지금 답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 책의 나머지 장은 이 질문들에 답하는 방법을 하나씩 다룬다. 사람을 만나 묻고 지켜보는 법(이해), 나누고 잇고 반응하게 하는 법(구조), 만들기 전에 그리고 만든 뒤에 확인하는 법(검증), 말을 고르고 체계를 지키고 사람을 해치지 않는 법(운영). 각 장의 시뮬레이터는 정답 화면을 보여 주지 않는다. 대신 무엇을 바꾸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그리고 그 결론이 얼마나 확실한지를 직접 흔들어 보게 한다.

한 사람에게 과업 하나 맡겨 보기 가족이나 친구 한 사람에게 휴대폰으로 해 본 적 없는 작은 일을 하나 부탁한다. "이 앱에서 다음 주 화요일 저녁 7시 영화를 두 장 예매하는 데까지 가 보세요. 결제 직전에 멈추면 돼요."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도와 달라고 해도 "평소처럼 해 보세요"라고만 한다. 종이에 그 사람이 멈칫한 곳, 되돌아간 곳, 혼잣말을 적는다. 다 끝나면 "어디가 가장 헷갈렸어요?"라고 묻고 답을 적은 뒤, 내가 적은 멈칫한 곳과 비교한다. 말한 곳과 멈칫한 곳이 다를 때가 많다. 이것이 2장(말과 행동)과 8장(사용성 테스트)의 출발점이다.

서윤의 봄 서비스 노트

CASE 서윤서비스 노트 · 1장

열두 장의 화면과 하나의 질문

책방 E의 새 웹사이트가 3월 첫 주에 문을 열고 한 달이 지난 2028년 4월 3일 월요일 저녁, 윤서윤은 책방 E 안쪽 탁자에서 네 사람을 만났다. 책방 E의 주인, 헌책방 나무의 주인, 어린이 책방 작은 숲의 주인, 시집 전문 책방 한 줄의 주인이다. 네 가게는 걸어서 15분 안에 모여 있고, 손님 일부를 나눠 갖는다. 책방 E 주인이 말을 꺼냈다. "새 사이트를 보고 다들 부러워해서요. 이번엔 넷이 같이 쓰는 앱을 만들어 주세요."

주인들은 저마다 종이 한 장씩을 내밀었다. 책방 E는 포인트 적립과 신간 알림, 나무는 중고책 매입 시세 조회, 작은 숲은 아이 나이별 추천, 한 줄은 손님과의 채팅과 "오늘의 시 한 편". 공통으로 적힌 것은 하나였다. 손님이 찾는 책을 검색해 어느 가게에 있는지 보고, 미리 맡겨 두었다가 가게에서 찾아가는 기능. 주인들은 이것을 "맡아 두기"라고 불렀다. 지금도 단골 몇몇은 전화로 그렇게 하고 있었다. 결제는 가게에서 하기로 했다. 함께 온 오지후는 네 책방의 재고가 엑셀, 공책, 판매 시스템에 제각각 적혀 있다는 말을 듣고 수첩에 별표를 그렸다.

서윤은 그날 밤 종이 네 장의 기능을 모두 담아 화면 열두 장을 그렸다. 첫 화면 맨 위에 포인트 배너, 그 아래 검색창, 오늘의 추천, 중고책 팔기 버튼, 오른쪽 아래에 떠 있는 채팅 단추, 맨 아래에 탭 다섯 개. 다음 날 아침 책방 E에서 화면을 넘겨 보던 단골 손님 민하린이 손을 멈췄다. 하린은 큰 회사에서 15년 동안 사용자 연구를 하다가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한다. "예뻐요. 그런데 이 화면을 누가, 언제 써요?" 서윤은 "손님이 책 찾을 때요"라고 답하려다 멈췄다. 어떤 손님이,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이 화면을 여는지 서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하린이 덧붙였다. "저는 사람이 말한 것보다 한 것을 믿어요. 주인분들 말씀도, 서윤 씨 화면도, 아직은 다 말이에요." 지후는 다른 쪽에서 계산을 했다. "이걸 다 만들면 6월 말까지는 못 열어요."

서윤의 선택은 화면 그리기를 멈추는 것이었다. 열두 장은 버리지 않고 "첫날 밤" 폴더에 넣었다. 주인들의 기능 목록도 버리지 않고, 이 장의 첫 시뮬레이터처럼 카드마다 "이것이 있으면 누구의 어떤 순간이 달라지나요?"라는 질문을 붙여 따로 모았다. 그리고 6월 말 공개까지 남은 12주를 다섯 단계로 나눴다. 하린은 조사와 시험을 돕기로 했다.

이 장에서 정한 것① 6월 말 공개까지의 순서와 대략의 기간: 조사(4월 5일~18일, 2주) → 정의(4월 19일~23일) → 구조(4월 24일~30일) → 시험(5월 1일~6월 23일, 프로토타입·사용성 테스트·시범 운영) → 공개(6월 30일 금요일, 나흘 전 26일에 마지막 점검). 날짜는 주인들의 사정에 따라 움직일 수 있지만 순서는 바꾸지 않는다. ② 구조 단계 전에는 완성된 화면을 그리지 않는다(손으로 그린 흐름 스케치는 예외). ③ 주인들의 기능 목록은 버리지 않고 질문을 붙여 "나중 상자"에 보관한다. 무엇을 넣고 뺄지는 문제를 정한 뒤에 정한다. ④ 손님과 주인, 두 쪽을 모두 사용자로 보고 조사한다.
아직 남은 문제손님은 실제로 책을 어떻게 찾고 있는가. 주인들이 겪는 곤란은 무엇인가. "앱"이어야 하는가(주인들은 앱을 원하지만, 손님이 설치할지는 모른다).
다음 단계2장: 손님과 주인을 만나 묻고, 가게에서 지켜본다. 서윤은 먼저 질문지부터 쓴다.

핵심 정리

  1. 이 책의 제품 디자인은 앱과 웹 서비스 같은 디지털 제품의 디자인이다. 가운데에는 화면이 아니라 사람과 그 사람의 상황이 있다.
  2. 의뢰는 대개 기능(해결책)의 모양으로 온다. 문제는 누가,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하려다 어려움을 겪는지가 들어 있는 문장이다. 기능 요청은 버리지 않고 "그게 있으면 누구의 어떤 순간이 달라지나요?"라는 질문으로 바꿔 둔다.
  3. 화면(표면)은 전략·범위·구조·골격 위에 놓인다(Garrett 2002). 아래층이 확인되지 않은 화면은 완성되어 보여도 쉽게 무너진다.
  4. 더블 다이아몬드(Design Council 2005)는 문제와 해결책 각각을 발산했다가 수렴하는 리듬으로 요약한다. 떠올리지 않은 문제는 아무리 잘 좁혀도 고를 수 없고, 너무 오래 넓히면 시험할 시간이 사라진다. 마감을 보고 발산의 크기를 미리 정한다.
  5. 결정은 다른 결정의 바닥이 된다. 바닥의 결정이 틀린 것을 늦게 찾을수록 그 위에 쌓인 것을 많이 걷어 내야 한다. 흔히 인용되는 "1:10:100" 같은 배수는 근거가 불분명하므로 쓰지 않고, 무엇이 쌓이는지를 본다.
  6. 이 책은 이해·구조·검증·운영의 네 갈래로 나뉜다. 네 갈래는 차례로 지나는 단계이자 같은 화면을 보는 네 렌즈다.

확인 퀴즈

1. 한 책방 주인이 "손님과 채팅하는 기능을 꼭 넣어 주세요"라고 했다. 디자이너가 처음 할 일로 가장 알맞은 것은?

"채팅"은 해결책이다. 그 뒤에 "가게를 보면서 전화를 받기 힘들다" 같은 문제가 숨어 있을 수 있고, 그 문제라면 채팅 말고도 풀 방법이 여럿이다. 시안부터 그리면 그 길들이 닫히고, 바로 거절하면 신호를 놓친다. 다른 서비스에 있다는 것은 이 손님들에게 필요하다는 근거가 아니다.

2. 더블 다이아몬드의 첫 번째 마름모에서 "발산"하는 목적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첫 마름모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수렴은 이미 펼친 후보 중에서만 고를 수 있으므로, 진짜 문제가 후보에 오르려면 먼저 넓게 찾아야 한다. 화면 시안을 여럿 만드는 것은 두 번째 마름모(해결 공간)의 발산이고, 기능을 많이 넣는 것은 발산이 아니라 수렴을 미루는 것이다.

3. "문제를 늦게 찾을수록 고치기 비싸다"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늘어나는 이유는 의존 관계다. 바닥에 가까운 결정(풀 문제)일수록 그 위에 쌓이는 것이 많고, 늦게 찾을수록 쌓인 것이 많다. "1:10:100" 같은 정확한 배수는 원자료로 거슬러 올라가기 어려워 이 책은 쓰지 않는다. 고치지 않는 비용도 계속 쌓이므로 "언제나 싸다"고 할 수 없다.

4. "버튼 문구를 바꾼 뒤 실제로 책을 맡겨 두는 손님의 비율이 달라졌는지 확인한다"는 이 책의 네 갈래 중 어디에 속하는가?

바꾼 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를 숫자로 확인하는 일은 검증 부의 9장(숫자로 확인하기)에서 다룬다. 문구를 어떻게 쓸지는 운영 부의 10장(UX 라이팅)이지만, 그 문구가 정말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검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