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실험실
한 장의 거리 풍경을 그리려면 앞 장들에서 따로 배운 것을 한꺼번에 정해야 한다. 어디서 볼지(눈높이), 얼마나 떨어져 볼지(소실점), 몇 시인지(해와 그림자), 누가 어디에 서 있는지(사람의 크기). 이 넷은 서로 묶여 있다. 눈높이를 바꾸면 사람들의 머리가 수평선에서 떨어지고, 소실점을 당기면 건물이 찌그러지며, 시각을 옮기면 어느 벽이 밝은지가 바뀐다. 이 장은 골목 모퉁이의 서점 한 채를 놓고 그 네 가지를 함께 움직여 보는 실험실이다. 펜을 들기 전, 연필 밑그림 단계에서 쓰는 도구다.
- 눈높이·소실점·해·사람의 네 결정이 서로 어떻게 묶여 있는지 한 장면에서 확인한다.
- 수평선을 끌어 눈높이를 바꾸고, 사람들의 머리가 수평선과 이루는 관계로 눈높이를 읽는다.
- 두 소실점의 간격에서 보는 거리와 모퉁이 각, 60° 시야 원을 계산해 왜곡을 점검한다.
- 날짜와 시각에서 해의 위치를 구하고, 처마·간판·사람의 그림자를 투영한다.
- 눈높이 법칙으로 사람의 크기를 정하고, 최종 밑그림의 값들을 메모로 남긴다.
실험실 사용법
실험실의 장면은 서윤이 「골목 산책」의 표지로 그리는 책방 E의 외관이다. 두 골목이 만나는 모퉁이의 2층 건물로, 출입문과 둥근 간판이 있는 정면 벽은 남서쪽을, 옆면은 남동쪽을 향한다. 건물의 크기와 방향, 서윤이 선 자리, 그림 칸의 크기는 앞 장들에서 정한 값을 그대로 가져왔다(5장, 9장, 11장). 계산은 이 책 엔진의 핀홀 투시(ART.project)와 그림자 투영(ART.shadowPoint)을 쓴다.
패널은 결정의 순서대로 놓았다. 화가마다 순서는 조금씩 다르지만, 앞의 결정이 뒤의 결정을 묶는다는 점은 같다. 사람의 크기는 눈높이 없이 정할 수 없고, 그림자의 방향은 건물이 선 뒤에야 그을 수 있다.
눈높이 패널: 수평선을 끈다
첫 결정은 눈높이다. 그림 속 수평선은 언제나 그리는 사람의 눈높이에 있다(4장). 아래 패널에서 파란 수평선의 손잡이를 위아래로 끈다. 모퉁이의 바닥과 건물의 크기는 그대로 두고 눈높이만 바뀌므로, 같은 자리에서 몸을 낮추거나 계단을 올라가며 보는 것과 같다. 사람 넷은 11장에서 서윤이 잰 단골들이다.
눈높이 패널
사람들의 머리가 수평선과 어떤 관계인지만 보아도 그림의 눈높이를 거꾸로 읽을 수 있다. 서 있는 어른들의 머리가 모두 수평선 근처에 줄지어 있으면 서서 본 그림이고, 모두 수평선 아래에 있으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그림이다. 이 관계를 숫자로 만든 것이 다섯째 절의 눈높이 법칙이다.
소실점 패널: 간격이 곧 거리다
두 번째 결정은 두 소실점의 자리다. 모퉁이 건물을 2점 투시로 그릴 때, 두 소실점의 간격은 보는 거리를 정한다(5장). 정면 벽이 그림면과 이루는 각을 \(\theta\), 보는 거리를 \(d\)라 하면 왼쪽 소실점은 중심에서 \(d/\tan\theta\), 오른쪽은 \(d\tan\theta\)만큼 떨어지고, 둘의 곱은 언제나 \(d^2\)이다. 아래 패널은 이 관계를 거꾸로 써서, 끈 소실점의 자리에서 보는 거리를 구한다. 건물이 그림 칸에서 같은 높이로 보이도록 서 있는 자리(모퉁이까지 거리)도 함께 옮긴다.
소실점 패널
간격을 넓힐수록 그림은 덜 찌그러지지만 소실점이 종이 밖으로 나가 다루기 어려워진다. 서윤이 5장에서 왼쪽 소실점(칸 밖 330 mm)을 찍지 않고 비례 사다리로 대신한 이유다. 어느 쪽이 옳은 것은 아니다. 일부러 소실점을 당겨 건물이 위압적으로 다가오는 그림을 만들기도 한다. 다만 그 왜곡이 의도인지 실수인지는 그린 사람이 알고 있어야 한다.
해 패널: 시각이 그림자를 정한다
세 번째 결정은 시각이다. 9장에서 서윤은 4월 17일 서울의 해를 계산해 16시를 골랐다. 아래 패널은 그날의 시각을 움직이거나, 오른쪽 위의 작은 하늘 지도에서 해를 직접 끌어 옮긴다. 하늘 지도는 가운데가 머리 위, 가장자리가 지평선이고 위쪽이 북이다. 파란 점선은 서윤이 바라보는 방향(북북동)이다.
해 패널
사람 패널: 눈높이 법칙
네 번째 결정은 사람이다. 평평한 땅에 선 사람의 그림 속 키는 그 사람이 얼마나 멀리 있든 같은 규칙을 따른다. 발끝에서 수평선까지의 거리를 \(a\), 눈높이를 \(E\), 그 사람의 키를 \(H\)라 하면
아래 패널에서 사람들의 발을 끌어 옮긴다. 키는 계산이 저절로 맞춘다. 고른 사람(빨간색)의 숫자가 아래에 나오고, "발끝–수평선 자"를 켜면 각 사람의 \(a\)가 점선으로 표시된다. 눈높이를 앉은 1.1 m로 바꾸어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본다.
사람 패널

첫 스케치와 밑그림
이제 네 결정을 모두 내렸다. 아래의 두 층은 같은 건물을 그린 두 장면이다. 왼쪽 층은 서윤이 봄 과제 초반에 했던 선택들을 모았다. 소실점을 그림 칸 안 양쪽 2 cm에 찍고(5장의 첫 스케치), 그림자는 시각을 생각하지 않고 넣었으며(여기서는 정오로 두었다), 사람은 교본의 8등신을 같은 크기로 세웠다(11장의 첫 시도). 오른쪽 층은 앞 장들을 거쳐 정한 값이다. 경계선을 끌어 비교한다.
첫 스케치의 선택들과 최종 밑그림
어느 하나만 고쳐서는 오른쪽처럼 되지 않는다. 소실점만 넓히고 사람을 그대로 두면 사람들이 떠 보이고, 사람만 고치고 소실점을 그대로 두면 사람들은 맞는데 건물이 찌그러진다. 실험실을 마지막 절에서 한꺼번에 여는 이유다.
종합 실험실
모든 손잡이를 한 장면에 모았다. 파란 수평선(빈 곳을 끌면 눈높이), 수평선 위의 빨강·파랑 손잡이(두 소실점), 오른쪽 위 하늘 지도의 해, 그리고 사람들을 끌 수 있다. 위의 단추로 서윤의 선택과 다른 선택지 세 가지를 불러온다. 아래 메모 칸에는 지금 장면의 값이 정리된다. 종이에 옮길 때 그대로 쓰면 된다.
드로잉 실험실: 서점 외관의 밑그림
서윤의 작업 노트
한 장면에 모은 열두 장의 결정
5월 넷째 토요일, 「골목 산책」의 마감이 열흘 남았다. 표지가 될 서점 외관 그림의 구조선은 이미 몇 번 그렸지만, 눈높이는 5장에서, 그림자는 9장에서, 사람의 크기는 11장에서 따로따로 정한 것이었다. 서윤은 그 값들을 실험실 한 장면에 모두 넣어 보았다. 회사에서 화면 시안을 넘기기 전에 모든 화면을 한 줄로 늘어놓고 여백과 글자 크기를 맞춰 보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값은 대부분 서로 맞았다. 이 책의 모델로 계산하면 그림 칸 240 × 180 mm에서 모퉁이의 바닥은 아래에서 13.5 mm, 옥상 난간 꼭대기는 155.2 mm, 수평선은 45 mm에 놓인다. 소실점은 왼쪽 칸 밖 330 mm(−330 mm), 오른쪽 칸 밖 30 mm(270 mm)로 보는 거리 260 mm, 옥상 모서리는 129.9°, 바닥 모서리는 164.1°, 그림의 가장 먼 곳(정면 벽 왼쪽 위 끝)도 시선에서 28.5°로 60° 시야 원 안이다. 16시의 해는 고도 36.0°, 방위 253.6°라서 정면이 밝고 옆면이 그늘이며, 처마 그림자는 정면을 0.50 m 덮고, 높이 7.2 m의 모퉁이가 만드는 땅 그림자는 9.9 m 길이로 동북동, 그림 칸 오른쪽 끝까지 눕는다. 주인(168 cm)은 문 앞에서 발끝을 수평선 아래 30 mm에 두어 키 31.5 mm, 정 선생님(160 cm)은 옆 골목 안쪽에서 발끝 17.9 mm(11장의 18 mm)에 키 17.9 mm로 머리가 정확히 수평선에 걸렸다.
한 군데가 어긋났다. 하율이다. 11장에서 정한 대로 발끝을 수평선 아래 45 mm에 두면, 수평선이 아래에서 45 mm이므로 발끝이 그림 칸의 아래 끝에 정확히 닿는다. 발이 테두리에 붙은 사람은 그림 밖으로 걸어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서윤은 하율을 조금 뒤로 물려 발끝을 40 mm 아래에 두었다. 키는 \(40 \times 128 / 160 = 32.0\) mm가 되고, 머리는 여전히 수평선보다 8 mm 아래라 아이로 읽힌다. 대학생(181 cm)은 모퉁이 앞 골목에 세워 발끝 34 mm, 키 38.5 mm로 머리가 수평선 위 4.5 mm로 솟게 했다. 장면에서 가장 큰 사람이 가장 앞에 서지 않게 한 것이다. 네 사람의 그림자는 각자 키의 1.38배로 모두 오른쪽 뒤로 나란히 눕는다. 13장에서 고른 손님 크로키 세 점은 이 장면에 넣지 않고 안쪽 쪽들의 여백에 따로 두기로 했다. 외관 그림은 서점이 주인공이고, 사람은 크기와 눈높이로 그 앞의 거리를 재는 자 역할이다.
서윤은 다른 선택지도 지우지 않고 메모로 남겼다. 앉은 눈높이 1.1 m는 수평선이 35.2 mm로 내려가 모든 사람의 머리가 수평선 위로 솟는다. 서가 그림(4장)과 같은 "앉은 사람의 눈"으로 책자의 첫 장과 셋째 장을 묶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14시 안은 그림자가 높이의 0.67배로 짧아 건물 뒤로 숨는다. 소실점을 1.5배로 당긴 안은 모퉁이까지 7.9 m로 다가서야 하고, 옥상 모서리가 107.0°, 그림의 가장 먼 곳이 37.7°로 시야 원을 넘는다. 세 안 모두 그릴 수 있는 그림이었지만, 서윤의 선택은 서서 본 1.6 m, 소실점 간격 2.5배, 16시였다. 표지는 동네를 처음 걷는 사람의 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경은 출력한 메모 아래에 연필로 적었다. "숫자는 다 맞았어. 이제 숫자를 잊고 그려. 펜을 들면 0.5 mm 선을 어디에 쓸지만 생각해." 그리고 한 줄을 더 적었다. "하율이 발을 옮긴 건 계산이 아니라 눈이 한 일이야. 그게 제일 좋았어."
핵심 정리
- 거리 풍경의 밑그림은 눈높이, 소실점(보는 거리), 해, 사람의 네 결정이 서로 묶인 한 덩어리다. 하나만 고치면 다른 것이 어긋난다.
- 수평선은 그리는 사람의 눈높이다. 서서 본 그림에서는 어른들의 머리가 거리와 상관없이 수평선 근처에 줄을 선다. 머리와 수평선의 관계로 눈높이를 거꾸로 읽을 수 있다.
- 2점 투시에서 두 소실점까지의 거리의 곱은 보는 거리의 제곱이다. 간격이 좁으면 가까이서 본 그림이 되어 모서리가 뾰족해지고 시야 원 밖으로 왜곡이 생긴다.
- 그림자의 방향과 길이는 날짜·시각과 건물의 방향이 정한다. 평행한 햇빛의 그림자들은 수평선 위의 한 점으로 모이고, 어느 벽이 밝은지도 함께 정해진다.
- 눈높이 법칙: 그림 속 키 = 발끝에서 수평선까지의 거리 × 실제 키 ÷ 눈높이. 키가 눈높이와 같은 사람은 어디에 서든 머리가 수평선에 걸린다.
- 실험실의 숫자는 구조선이 서로 맞는지 점검하는 도구다. 어느 선택이 좋은지는 무엇을 전하려는가에 달려 있고, 다른 선택지도 그릴 수 있는 그림이다.
확인 퀴즈
1. 눈높이 1.6 m로 서서 본 거리 그림에서, 수평선 아래 20 mm에 발끝이 있는 키 180 cm 사람의 그림 속 키는?
2. 2점 투시로 모퉁이 건물을 그렸더니 옥상 모서리가 90°보다 뾰족하게 앞으로 튀어나와 보인다. 가장 알맞은 고침은?
3. 서울에서 남서쪽을 향한 건물 정면을 그린다. 4월 오후 4시 무렵의 장면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4. 서윤이 하율의 발끝을 수평선 아래 45 mm에서 40 mm로 옮긴 이유로 가장 알맞은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