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3

한글의 구조

라틴 글자 A는 혼자서 한 글자다. 한글의 "책"은 다르다. ㅊ, ㅐ, ㄱ 세 조각이 네모난 자리 안에 모여 비로소 한 자가 된다. 그래서 같은 ㄱ도 "가"에서는 왼쪽 위에 비스듬히, "고"에서는 위쪽에 납작하게, "각"에서는 아래에 받침으로 앉는다. 조각은 스물네 개뿐인데, 모일 수 있는 방법은 만 개가 넘는다. 이 장은 그 모임의 규칙을 손으로 늘리고 줄여 본다. 받침 하나가 글자의 높이와 무게를 어떻게 바꾸는지, 한글 글꼴은 왜 수천 자를 그려야 하는지, 네모난 틀을 벗어난 한글은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처음 설계된 1446년의 원리까지.

세 조각이 모여 한 자가 된다

한글은 소리를 적는 글자, 곧 음소 문자(Alphabet, Phonemic script)다. 자음 하나, 모음 하나가 각각 소리 하나를 맡는다는 점에서 라틴 알파벳과 같다. 다른 점은 쓰는 방식이다. 라틴 글자는 낱자를 옆으로 늘어놓지만(b, a, n, g), 한글은 한 음절에 속한 낱자들을 네모난 자리 하나에 모아 쓴다(방). 이 방식을 모아쓰기(Syllabic block writing)라고 한다. 모아쓴 한 덩어리가 음절 글자(Syllable block)이고, 타이포그래피에서 "한글 한 자"라고 하면 보통 이것을 가리킨다.

음절 글자 안의 자리는 셋이다. 첫소리 자음이 들어가는 초성(Initial), 가운뎃소리 모음이 들어가는 중성(Medial), 끝소리 자음이 들어가는 종성(Final)이다. 종성 자리에 들어간 자음을 흔히 받침(Batchim)이라 부른다. 받침이 없는 글자(가, 고)를 민글자, 받침이 있는 글자(각, 곡)를 받침글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낱자 하나하나는 자모(Jamo)다.

초성 ㅎ · 첫소리 자음 중성 ㅏ · 가운뎃소리 모음 종성 ㄴ · 끝소리(받침) 모음이 세로라 왼쪽 위에 선다 세로 기둥이 오른쪽 칸을 맡는다 아래 칸 전체를 가로로 받친다 점선: 글자 틀(em). 엷은 칸: 각 자모가 들어가는 자리
그림 1. 한 자를 이루는 세 자리. "한"은 초성 ㅎ, 중성 ㅏ, 종성 ㄴ이 한 틀 안에 모인 글자다. 그림의 글자는 획을 직선과 원으로 단순화한 이 장의 구조 모형이다. 실제 글꼴은 획의 굵기와 끝맺음, 자모 사이 간격을 글자마다 따로 다듬는다. 이 장의 모형 그림은 자모의 자리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모아쓰기 덕분에 한글은 같은 소리를 라틴 글자보다 좁은 폭에 적는다. "방"은 한 칸, "bang"은 네 칸이다. 대신 그 한 칸 안에서 일이 많아진다. 자모는 자기가 들어갈 자리의 크기와 모양에 맞춰 늘어나고 줄어들어야 한다. 받침이 있으면 위 칸이 눌리고, 모음이 가로로 누우면 초성이 위로 올라간다. 글꼴을 만드는 사람에게 한글이 라틴 글자와 전혀 다른 일이 되는 까닭이 여기서 시작된다.

11,172자의 셈

현대 한글 맞춤법이 정한 기본 자모는 24자, 자음 14자와 모음 10자다. 여기에 겹자음(ㄲ, ㄸ, ㅃ, ㅆ, ㅉ)과 겹모음(ㅐ, ㅘ, ㅢ 등), 겹받침(ㄳ, ㄺ, ㅄ 등)이 더해진다. 그래서 각 자리에 올 수 있는 가짓수는 초성 19가지, 중성 21가지, 종성은 받침 27가지에 "받침 없음"을 더해 28가지다. 이 셋을 곱하면 현대 한글로 만들 수 있는 음절 글자의 수가 나온다.

$$19 \times 21 \times 28 = 11{,}172$$
19: 초성(ㄱ부터 ㅎ까지 자음 14 + 겹자음 5), 21: 중성(모음 10 + 겹모음 11), 28: 종성(받침 27 + 받침 없음 1). 국제 문자 표준 유니코드는 이 11,172자를 U+AC00(가)부터 U+D7A3(힣)까지 이 순서대로 늘어놓았다. 그래서 글자 번호를 계산으로 바로 얻는다: 번호 = 0xAC00 + (초성 순번 × 21 + 중성 순번) × 28 + 종성 순번.

11,172자 가운데 실제로 자주 쓰이는 글자는 훨씬 적다. "뷁"이나 "똠"은 만들 수는 있지만 거의 쓰지 않는다. 1987년에 제정된 한국 산업 규격 KS C 5601(지금의 KS X 1001)은 자주 쓰는 2,350자만 골라 번호를 매겼다. 이렇게 완성된 글자를 통째로 등록하는 방식을 완성형(Precomposed)이라 부른다. 2,350자에 들지 못한 글자는 이 규격만 쓰는 컴퓨터에서 아예 쓸 수 없었고, "똠" 같은 글자가 그 예로 자주 거론된다. 1996년 유니코드 2.0이 11,172자 전체를 받아들이면서 이 문제는 대부분 사라졌다.

아래 지도에서 11,172자 전체를 한눈에 본다. 한 줄이 초성 하나(모두 19줄)이고, 한 줄 안에 중성 21가지 × 종성 28가지 = 588자가 차례로 놓인다. 짙은 칸이 완성형 2,350자다. 지도를 끌거나 슬라이더를 움직여 글자를 고르고, 짙은 칸이 어디에 몰려 있는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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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2자의 지도

아래 지도를 끌어 글자를 고른다
유니코드—
11,172자 중 순번—
완성형 2,350자에—
해볼 것: ① 처음 글자 "방"에서 종성 슬라이더를 끝까지 민다. 받침이 ㅎ으로 바뀌는 동안 지도의 손잡이는 오른쪽으로 28칸 안에서만 움직인다. 종성이 가장 안쪽 자리라 번호가 1씩 바뀐다. ② 중성을 ㅢ, ㅞ 쪽으로 옮긴다. 겹모음 구역에는 짙은 칸이 드물다. 실제로 잘 쓰지 않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③ 초성 ㄸ, ㅃ, ㅉ 줄을 끌어 본다. 겹자음 줄은 거의 비어 있다. "똠"(초성 ㄸ, 중성 ㅗ, 종성 ㅁ)을 찾아 완성형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완성형 여부는 KS X 1001 한글 2,350자 목록으로 판정했다. 큰 글자는 Noto Sans KR로 그린다.)

지도의 짙은 칸은 고르게 흩어져 있지 않다. 받침 없는 글자와 흔한 받침(ㄴ, ㄹ, ㅁ, ㅇ, ㄱ)이 붙은 글자에 몰려 있고, 겹모음과 겹받침 구역은 듬성듬성하다. 글꼴을 만드는 처지에서 보면 이것이 첫 번째 고민거리다. 2,350자만 그리면 일상 문장은 대부분 쓸 수 있지만 사람 이름이나 의성어에서 빈칸이 생긴다. 11,172자를 다 그리면 빈칸은 없지만 일이 다섯 배 가까이 늘어난다. 요즘 널리 쓰는 한글 글꼴은 대부분 11,172자를 갖추고 있다.

완성형과 조합형 글자를 컴퓨터에 담는 방법은 크게 둘이다. 완성된 음절 글자마다 번호를 매기는 완성형과, 초성·중성·종성의 번호를 따로 매겨 조합하는 조합형(Johab, Combining)이다. 조합형은 11,172자를 모두 표현할 수 있어 1980~90년대에 한동안 함께 쓰였지만, 국가 규격과 운영체제가 완성형을 따르면서 표준 다툼이 길게 이어졌다. 지금의 유니코드는 둘 다 품는다. 음절 글자 11,172자를 완성형처럼 따로 두면서, 그 번호를 위 공식처럼 조합 순서대로 매겨 언제든 초성·중성·종성으로 되돌릴 수 있게 했다. 옛한글처럼 11,172자 밖의 글자는 자모를 이어 써서 조합한다.

모임꼴: 같은 ㄱ, 여섯 가지 모양

자모가 모이는 모양은 무한하지 않다. 모음이 어느 방향으로 놓이느냐, 받침이 있느냐에 따라 크게 여섯 가지로 나뉜다. 한글 글꼴 디자인에서는 이것을 모임꼴(Syllable structure type)이라 부른다.

셋 각각에 받침이 있고 없음이 곱해져 여섯 가지가 된다. 아래 그림은 초성 ㄱ 하나가 여섯 자리에서 차지하는 칸이다.

세로모임 · 민글자가로모임 · 민글자섞임모임 · 민글자 세로모임 · 받침가로모임 · 받침섞임모임 · 받침 가고과 각곡곽
그림 2. 여섯 가지 모임꼴. 붉은 칸이 초성 ㄱ의 자리다. "가"에서는 세로로 길고, "고"에서는 가로로 납작하고, "곽"에서는 왼쪽 위 작은 구석에 갇힌다. 그래서 잘 만든 글꼴에서는 ㄱ의 꺾이는 각도와 내리긋는 획의 길이가 여섯 자리마다 다르다. 받침이 들어오면(아랫줄) 위 칸 전체가 눌린다. 이 장의 구조 모형으로 그렸다.

이제 칸의 경계를 직접 움직여 본다. 아래 큰 글자 위의 가로 손잡이는 받침 칸의 높이를, 세로 손잡이는 모음 칸이 시작하는 자리를 정한다. 위쪽 띠의 여섯 글자는 같은 경계를 따른다. 받침 칸을 키우면 받침은 시원해지지만 위 칸이 눌린다. 어디까지 밀면 글자가 무너지는지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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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나누기: 받침이 들어오면 위가 눌린다

큰 글자의 두 손잡이를 끈다
초성 칸 높이(틀 대비)—
"가" 대비 초성 칸 넓이—
가장 좁은 획 사이 틈(획 굵기의 몇 배)—
해볼 것: ① 받침 칸 높이를 0.12까지 내린다. 위 칸은 넉넉해지지만 받침 ㄱ이 납작하게 찌그러진다. ② 반대로 0.5 넘게 올린다. "곡"과 "곽"에서 초성과 모음이 서로 겹치기 시작하고, 획 사이 틈이 획 굵기보다 좁아진다. 글자가 무너지는 지점이다. ③ "밟"과 "뷁"을 고른다. 겹받침은 받침 칸을 다시 반으로 나누므로, 같은 경계에서 훨씬 빨리 답답해진다. 실제 글꼴이 겹받침 글자의 칸을 따로 다듬는 이유다. (획을 직선과 원으로 단순화한 이 장의 구조 모형이다. 획 굵기는 글자 틀의 7.5%로 고정했다. 실제 글꼴은 모임꼴마다, 때로는 글자마다 자모의 크기와 위치를 따로 조정한다.)

칸의 경계 하나를 옮기면 여섯 모임꼴 모두가 함께 흔들린다. 받침을 위한 자리를 넉넉히 주면 민글자와 받침글자의 크기 차이가 커지고, 받침을 작게 누르면 받침이 답답해진다. 정답은 없고 글꼴마다 선택이 다르다. 본문용 글꼴은 대개 작은 크기에서도 받침이 뭉개지지 않도록 받침 칸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제목용 글꼴은 위 칸의 인상을 살리려 받침을 과감하게 줄이기도 한다.

여기서 한글 글꼴이 왜 무거운지도 보인다. 라틴 글꼴은 대소문자와 숫자, 문장 부호를 합쳐 몇백 자면 영어를 다 쓸 수 있다. 한글은 자모가 24자뿐이지만, 같은 자모라도 모임꼴과 이웃 자모에 따라 모양이 달라져야 해서 결국 음절 글자 하나하나를 따로 다듬게 된다. 11,172자를 갖춘 글꼴 파일이 라틴 글꼴보다 수십 배 큰 이유이고, 웹에서 한글 글꼴을 내려받을 때 첫 화면이 늦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11장).

한글 글꼴은 대표 글자부터 그린다 한글 글꼴을 만들 때 만 자를 처음부터 하나씩 그리지는 않는다. 흔히 모임꼴과 자모를 고루 담은 대표 글자 몇십~몇백 자로 먼저 꼴을 잡고, 그 안에서 획 굵기, 받침 칸 높이, 초성의 꺾임 같은 규칙을 정한 뒤 나머지 글자로 넓혀 간다. 자모를 조합해 초안을 자동으로 만들고 사람이 한 자씩 다듬는 방식도 널리 쓰인다. 직접 레터링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책방"만 그리더라도 같은 모임꼴의 다른 글자(색, 밭, 생 등)를 몇 자 함께 그려 보면, 한 글자에만 맞춘 우연한 비례인지 규칙으로 설 비례인지 가려진다.

네모틀과 탈네모틀

지금까지 본 글자는 모두 같은 크기의 정사각형 안에 꽉 차게 들어갔다. 받침이 없는 "가"도, 받침이 있는 "각"도 위아래 끝이 같은 선에 닿는다. 이런 글꼴을 네모틀(Square-frame) 글꼴이라 부른다. 우리가 매일 보는 본문 글꼴은 거의 다 네모틀이다. 줄을 지어 놓으면 글자마다 같은 넓이의 네모가 차곡차곡 쌓여 가지런하고, 세로쓰기와 가로쓰기 어느 쪽에도 잘 맞는다.

네모틀에는 대가가 있다. 같은 ㄱ이라도 글자마다 크기가 달라져야 한다. 민글자에서는 길게, 받침글자에서는 눌러서. 그래서 앞 절처럼 자모의 모양이 수천 가지로 불어난다. 이와 달리 자모의 크기를 고정하고 틀에 맞추지 않는 글꼴을 탈네모틀(Out-of-square frame) 글꼴이라 부른다. 초성과 모음은 늘 같은 크기로 쓰고, 받침은 그 아래에 매달듯 붙인다. 그 결과 글자의 윗선은 가지런하지만 아랫선은 받침이 있는 글자만 내려와 들쭉날쭉해진다. 라틴 소문자의 어센더·디센더가 만드는 들쭉날쭉한 윤곽과 비슷하다.

탈네모틀은 기계와 인연이 깊다. 초성·중성·종성을 따로 치는 세벌식 타자기는 자모를 겹쳐 찍는 구조라 글자가 자연스럽게 탈네모 모양이 된다. 디자인 분야에서는 1985년 안상수가 발표한 안상수체가 탈네모틀 글꼴을 널리 알린 예로 꼽힌다. 자모 수십 개만으로 모든 글자를 조합할 수 있어 만들기 쉽다는 실용적 장점과, 한글의 조합 원리를 그대로 드러낸다는 표현적 장점이 함께 이야기된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같은 문장을 네모틀에서 탈네모틀로 조금씩 바꾼다. 슬라이더를 오른쪽으로 밀면 민글자가 틀을 채우려 늘어나기를 멈추고 제 크기로 돌아간다. 빨간 점은 글자마다 획의 무게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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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틀에서 탈네모틀로

글자 아랫선의 높낮이 차(틀 대비)—
무게중심 높이 차—
필요한 초성 모양(이 문장)—
해볼 것: ① 틀 벗어나기를 0에서 1로 민다. 윗선은 그대로이고 받침 없는 글자의 아랫선만 올라가 줄의 아래쪽이 들쭉날쭉해진다. ② 1에서 무게중심(빨간 점)을 본다. 네모틀(0)일 때는 받침 유무에 따라 점이 크게 오르내리는데, 탈네모틀에서는 받침 없는 글자들의 점이 한 높이로 모인다. ③ 받침 칸 높이를 0.45까지 올린 뒤 0과 1을 오간다. 네모틀에서는 받침글자의 위 칸이 눌려 민글자와 크기 차이가 커지고, 탈네모틀에서는 그 차이가 아랫선의 들쭉날쭉함으로 옮겨 간다. (이 장의 구조 모형이다. "필요한 초성 모양"은 모임꼴과 받침 유무로 나눈 초성 칸의 가짓수로, 실제 글꼴이 그리는 변형의 수와는 다르다.)

네모틀에서는 "글자의 크기"가 한 가지이고, 그 대신 자모의 크기가 글자마다 다르다. 탈네모틀에서는 자모의 크기가 한 가지이고, 그 대신 글자의 크기가 두세 가지로 나뉜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탈네모틀은 받침의 유무가 윤곽에 드러나 낱말의 모양이 또렷해지고 자모가 크게 유지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줄의 아랫선이 고르지 않고 우리 눈에 익은 본문의 질감과 달라 긴 글에서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제목, 간판, 포스터처럼 인상이 중요한 곳에서 탈네모틀이 자주 보이는 이유다.

"탈네모틀이 더 잘 읽힌다", "네모틀이 더 잘 읽힌다" 두 주장 모두 들을 수 있지만, 이 책은 어느 한쪽을 일반적인 사실로 쓰지 않는다. 글이 얼마나 잘 읽히는지는 글꼴의 완성도, 글자 크기, 독자가 그 꼴에 얼마나 익숙한지에 크게 좌우된다. 익숙한 꼴이 빨리 읽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낯선 꼴을 한 번 읽혀 보고 내린 결론은 조심해서 받아들인다. 가독성 연구를 읽는 법은 7장에서 다룬다.

받침과 무게중심

네모틀 글꼴로 줄을 짜면 모든 글자의 틀은 정확히 같은 선 위에 놓인다. 그런데 눈은 틀을 보지 않는다. 눈이 보는 것은 잉크, 곧 획이 몰려 있는 곳이다. 받침이 있는 글자는 획의 상당 부분이 아래 칸에 있으므로 무게가 아래로 쏠리고, 민글자는 위로 떠 보인다. 그래서 "가방"처럼 민글자와 받침글자가 번갈아 오면, 틀은 반듯한데 글줄이 미세하게 출렁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무게중심을 한 줄에 맞추면 어떨까. 아래 시뮬레이터는 실제 글꼴(Noto Sans KR, Noto Serif KR)로 그린 글자의 잉크를 화소 단위로 세어 무게중심을 계산한다. 보정 슬라이더를 올리면 글자마다 무게중심이 줄의 평균 높이로 오도록 위아래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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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침이 끌어내리는 무게중심

무게중심 높이 차(틀 대비)—
글자 틀 아랫선 차—
가장 무거운 / 가벼운 글자 잉크 비—
해볼 것: ① 보정 0에서 빨간 점(무게중심)을 본다. 받침글자의 점이 민글자보다 아래에 있다. "가각바방"에서 그 차이가 글자 높이의 몇 %인지 읽는다. ② 보정을 1까지 올린다. 점은 한 줄에 서지만 이번에는 글자 틀(회색 네모)이 위아래로 흩어져, 줄이 오히려 더 출렁여 보인다. ③ 명조로 바꾼다. 명조는 가로획이 가늘고 세로획이 굵어 잉크의 분포가 달라지고, 무게중심 차이도 달라진다. (무게중심은 글자를 120px로 그린 뒤 잉크 화소의 평균 위치로 계산했다. 글꼴이 아직 오지 않았으면 이 기기의 대체 글꼴로 계산된다.)

무게중심을 억지로 맞추면 틀이 흩어진다. 틀을 맞추면 무게중심이 오르내린다. 둘 다 완벽하게 맞출 수는 없다. 그래서 글꼴 디자이너는 글자를 옮기는 대신 글자 안을 고친다. 받침글자의 위 칸을 너무 누르지 않고, 예를 들어 받침의 획을 조금 가늘게 하거나 작게 해서 아래로 쏠리는 무게를 덜어 내고, 민글자는 초성과 모음을 조금 아래로 내려 위로 뜨는 느낌을 줄인다. 이 조정이 잘된 글꼴에서는 보정 0인 상태에서도 줄이 고르게 느껴진다. 둥근 ㅇ, ㅎ이 같은 높이의 각진 글자보다 작아 보이지 않도록 틀을 살짝 넘게 그리는 오버슈트(Overshoot) 같은 시각 보정은 라틴 글자와 같은 원리다(2장).

모눈종이에 "가방"과 "각방" 그리기 5 mm 모눈종이에 한 변 8칸(4 cm)의 네모를 네 개 나란히 그린다. 사인펜으로 "가", "방", "각", "방"을 각각 네모에 꽉 차게 쓴다. 획 굵기는 한 칸(5 mm)으로 고정한다. 다 쓰면 종이를 거꾸로 들거나 한 걸음 물러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네 글자 중 어느 것이 위로 떠 보이고 어느 것이 무거워 보이는지 표시한다. 그다음 같은 네 글자를 이번에는 탈네모틀로, 곧 초성과 모음 크기를 네 글자 모두 같게(위 5칸) 고정하고 받침만 아래 3칸에 붙여 다시 쓴다. 두 줄을 나란히 놓고, 어느 쪽이 더 가지런해 보이는지, 어느 쪽이 낱말의 생김새가 더 또렷한지 적는다.

한글의 기준선 문제

라틴 글자는 기준선(Baseline) 위에 선다. 대부분의 글자 바닥이 기준선에 닿고, g, p 같은 디센더만 그 아래로 내려간다(2장). 한글에는 이런 공통 바닥이 없다. 네모틀 글꼴에서 글자는 기준선이 아니라 가상의 네모(글자 틀) 안에서 자리를 잡고, 줄의 기준은 틀의 위아래 또는 가운데다. 그래서 한글과 라틴 글자를 한 줄에 섞어 짜면 문제가 생긴다. 라틴 글꼴의 기준선과 한글 틀의 아랫선이 어디서 만나야 할지, 라틴 대문자의 높이를 한글 글자의 높이 어디에 맞춰야 할지 정해야 한다.

한 글꼴 안에 한글과 라틴 글자를 함께 담은 글꼴(Noto Sans KR, Noto Serif KR 등)은 디자이너가 이미 이 관계를 정해 두었다. 문제는 한글 글꼴과 라틴 글꼴을 따로 골라 섞을 때다. 같은 크기(예: 16px)로 지정해도 글꼴마다 실제 글자 크기와 기준선 위치가 달라서, 라틴 글자가 작아 보이거나 떠 보인다. 아래에서 한글은 Noto Serif KR로, 라틴 글자는 이 기기의 기본 세리프 글꼴로 짠다. 라틴 글자의 크기와 기준선을 직접 맞춰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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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라틴 글자를 한 줄에

라틴 글자를 위아래로 끈다
라틴 대문자 높이 ÷ 한글 글자 높이—
라틴 x높이 ÷ 한글 글자 높이—
두 글자의 가운데 높이 차—
해볼 것: ① 처음 상태에서 "E"와 "Summer"가 한글 옆에서 작아 보이거나 떠 보이는지 본다. 가운데 높이 차가 0에서 얼마나 먼지 읽는다. ② 크기를 올려 라틴 대문자 높이가 한글 글자 높이의 0.7~0.8쯤 되게 하고, 기준선을 끌어 두 가운데 높이 차가 0에 가깝게 해 본다. ③ 크기를 1.4까지 올린다. 라틴 대문자가 한글보다 커지면서 "E"가 한글을 누르기 시작한다. 정답 비율은 없다. 글꼴의 생김새에 따라 대문자에 맞출지, 소문자 x높이에 맞출지가 달라진다. (한글 글자 높이는 "한"의 잉크 위아래 끝, 라틴 높이는 "H"와 "x"를 canvas measureText로 잰 값이다. 라틴 글꼴은 기기마다 다를 수 있다.)

섞어 짤 때 흔히 쓰는 요령은 두 가지다. 하나는 라틴 대문자의 높이를 한글 글자 높이보다 조금 낮게 두어 대문자가 한글을 누르지 않게 하는 것, 다른 하나는 라틴 소문자의 가운데(x높이의 절반)를 한글의 가운데에 맞춰 글줄의 중심선을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웹에서는 CSS의 size-adjust, ascent-override 같은 글꼴 설명자로 대체 글꼴의 크기와 높이를 이렇게 맞출 수 있다. 다만 가장 손쉬운 해법은 처음부터 한글과 라틴 글자를 함께 설계한 글꼴을 쓰는 것이다.

섞어 짤 때는 숫자부터 본다 한글 문장에 가장 자주 섞이는 라틴 글자는 사실 숫자다. 날짜, 시각, 가격, 쪽 번호. 한글 글꼴과 라틴 글꼴을 따로 고를 때는 "여름 낭독 모임 8월 7일 17:00"처럼 숫자가 낀 문장으로 먼저 시험한다. 숫자가 한글보다 커 보이면 문장 전체가 숫자 쪽으로 기울고, 너무 작으면 정보가 묻힌다. 숫자의 높이를 한글 글자 높이의 70~80% 언저리에 두고 시작해 눈으로 고쳐 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범위는 이 책이 권하는 출발점일 뿐 규칙이 아니며, 글꼴마다 다시 본다.

훈민정음의 원리

한글의 구조가 이렇게 규칙적인 데는 이유가 있다. 한글은 오랜 세월 저절로 생겨난 글자가 아니라, 만든 사람과 때와 원리가 기록으로 남은 글자다. 세종은 1443년에 새 글자를 만들었고, 1446년에 그 글자와 해설을 담은 책 『훈민정음』을 펴냈다. 이 책의 해설 부분을 해례라 하고, 해례가 실린 판본을 해례본이라 부른다. 해례본은 1940년에 발견되었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되었다. 처음 만든 글자는 자음 17자, 모음 11자로 모두 28자였고, 그중 넷(ㆍ, ㆁ, ㆆ, ㅿ)이 쓰이지 않게 되어 오늘날 24자가 남았다. 아래는 해례본이 밝힌 원리를 요약한 것이다.

자음: 상형과 가획. 기본 자음 다섯은 소리를 낼 때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떴다(상형(Pictographic principle)).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ㄴ은 혀끝이 윗잇몸에 닿는 모양, ㅁ은 입의 모양, ㅅ은 이의 모양, ㅇ은 목구멍의 모양이다. 나머지 자음은 소리가 세지는 정도에 따라 기본 자음에 획을 더해 만들었다(가획(Stroke addition)). ㄴ에 획을 더하면 ㄷ, 또 더하면 ㅌ이 된다. ㆁ, ㄹ, ㅿ은 이 규칙에서 벗어나 모양을 달리 만든 글자(이체자)다.

어금닛소리 ㄱ혓소리 ㄴ입술소리 ㅁ잇소리 ㅅ목구멍소리 ㅇ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혀끝이 윗잇몸에 닿는 모양입의 모양이의 모양목구멍의 모양 ››››››››› 기본자(붉은색) → 획을 더할수록 소리가 세다
그림 3. 상형과 가획. 다섯 기본 자음(붉은색)은 발음 기관을 본뜨고, 소리가 세질수록 획을 더했다. 같은 줄의 글자는 소리 나는 자리가 같아 모양도 닮았다. 그래서 한글은 모양만 보고도 소리의 친척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해례본의 설명을 요약했고, 글자 모양은 이 장의 구조 모형으로 그렸다. ㆆ은 지금 쓰지 않는 글자다.

모음: 하늘, 땅, 사람. 기본 모음 셋은 하늘(ㆍ, 둥근 모양), 땅(ㅡ, 평평한 모양), 사람(ㅣ, 서 있는 모양)을 본떴다. 나머지 모음은 이 셋을 합쳐 만든다. 점 하나를 ㅡ 위에 놓으면 ㅗ, 아래에 놓으면 ㅜ, ㅣ의 오른쪽에 놓으면 ㅏ, 왼쪽에 놓으면 ㅓ다. 점을 둘 놓으면 ㅛ, ㅠ, ㅑ, ㅕ가 된다. 해례본은 점이 위나 바깥(오른쪽)에 붙는 ㅗ, ㅏ를 밝은 성질(양성), 아래나 안쪽(왼쪽)에 붙는 ㅜ, ㅓ를 어두운 성질(음성)로 나눴다. 처음에는 둥근 점이었던 이 표시가 붓으로 빨리 쓰이면서 지금의 짧은 획이 되었다.

아래에서 점을 직접 끌어 모음을 만든다. 점을 ㅡ의 위아래, ㅣ의 좌우로 옮기고, 아래 슬라이더로 점이 짧은 획으로 바뀌는 과정을 본다.

SIMULATOR

점 하나로 모음 만들기

점을 끈다
만들어진 모음—
해례본의 성질—
음절 예—
해볼 것: ① 점을 ㅡ 위로 끌어 ㅗ를, 아래로 끌어 ㅜ를 만든다. ② 점을 ㅣ의 오른쪽, 왼쪽으로 옮겨 ㅏ와 ㅓ를 만든다. "점 둘"로 바꿔 ㅛ, ㅠ, ㅑ, ㅕ도 만든다. ③ "점에서 획으로"를 1까지 민다. 둥근 점이 기둥에 붙는 짧은 획이 되면서 오늘의 모음 꼴이 된다. 점을 기둥에서 멀리 떼어 놓으면 어떤 모음도 되지 않는다. 자리가 곧 뜻이다. (해례본 체계를 요약한 모형이다. 실제 글자꼴의 역사적 변화는 판본과 필사본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이 원리는 오늘의 타이포그래피와 바로 이어진다. 받침에 따로 글자를 만들지 않고 초성 자음을 다시 쓰라는 해례본의 규칙(종성부용초성)이 있었기에, 받침은 초성과 같은 모양을 작게 줄여 아래 칸에 넣는 자모가 되었다. 기본 모양에서 획을 더하는 체계였기에 같은 줄의 자음은 폭과 구조가 닮았고, 글꼴 디자이너는 ㄴ, ㄷ, ㅌ의 비례를 한 묶음으로 정할 수 있다. 점과 기둥의 자리로 모음을 나누는 체계였기에 세로모임과 가로모임이라는 모임꼴의 구분이 생겼다.

간판의 한글: 틀과 받침을 함께 정하기

지금까지의 원리를 한 자리에 모은다. 아래는 가상의 책방 간판에 들어갈 "책방" 두 글자다. 두 글자는 모두 세로모임 받침글자이지만 생김새가 꽤 다르다. "책"의 ㅊ은 꼭지가 위로 솟고 ㅐ는 기둥이 둘이며 받침 ㄱ은 열려 있다. "방"의 ㅂ은 네모로 닫혀 있고 받침 ㅇ은 둥글고 꽉 찬다. 같은 칸 나누기를 따라도 두 글자의 무게는 같지 않다.

틀(네모틀·탈네모틀), 받침 칸의 높이, 모음 칸의 자리, 획 굵기, 받침 ㅇ의 크기를 바꿔 가며 두 글자의 무게를 맞춰 본다. 오른쪽 아래의 작은 그림은 같은 간판을 멀리서 본 크기다.

SIMULATOR

간판 "책방" 두 글자 설계

받침 경계 손잡이를 끈다
"방" ÷ "책" 잉크 양—
무게중심 높이 차("방"이 아래)—
초성 칸 높이—
해볼 것: ① 처음 상태(받침 칸 0.40, ㅇ 100%)에서 "방"이 "책"보다 무겁고 낮아 보이는 것을 확인한다. 잉크 비가 1에서 얼마나 먼지 읽는다. ② 받침 칸을 0.30으로 내리고 받침 ㅇ을 85% 근처로 줄인다. 잉크 비가 1에 가까워지고 초성이 커진다. ③ 획 굵기를 0.16까지 올린다. 받침 칸 안의 ㅇ과 ㄱ이 속공간을 잃고 덩어리가 된다. 멀리서 본 작은 그림에서 먼저 무너진다. 탈네모틀로 바꾸면 위 칸이 받침 칸 0.30일 때의 크기로 고정되고 받침이 그 아래에 매달린다. 받침 칸 높이를 바꾸면 초성은 그대로이고 글자 전체 높이가 변한다. (이 장의 구조 모형이다. 잉크 양은 획의 길이 합, 무게중심은 획 길이로 가중한 평균 위치다. 실제 레터링은 획 끝과 이음의 굵기까지 손으로 조정한다.)

모형에서 확인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받침 칸을 키울수록 받침은 커지지만 위 칸이 눌려 초성이 작아진다. 간판처럼 멀리서 읽는 글자에서는 초성과 모음이 글자의 인상을 정하므로 위 칸을 너무 누르지 않는 편이 낫다. 둘째, 둥글고 닫힌 받침 ㅇ은 같은 칸 안에서 다른 받침보다 잉크가 많다. 칸을 꽉 채우면 그 글자만 무거워진다. 셋째, 글자를 위아래로 옮겨 무게중심을 맞추는 것보다 글자 안의 자모 크기를 고치는 편이 틀을 지키면서 무게를 맞춘다. 실제 레터링에서는 이 모든 것을 수치가 아니라 눈으로 최종 판단하고, 수치는 그 판단을 다시 확인하는 데 쓴다.

간판 글자는 거꾸로, 멀리서 본다 레터링을 하는 사람들은 그린 글자를 뒤집어 보거나 거울에 비춰 본다. 읽히는 글자는 뜻이 먼저 들어와 형태의 어색함을 가리지만, 뒤집으면 글자가 그냥 모양이 되어 무게의 쏠림과 간격의 불균형이 드러난다. 간판이라면 실제 크기의 몇 분의 일로 줄여 출력해 방 반대편 벽에 붙여 두고 본다. 둥근 받침이 무거운지, 꼭지가 너무 솟는지는 가까이서보다 멀리서 먼저 보인다.

서윤의 작업 노트

CASE 서윤작업 노트 · 3장

"책"과 "방"이 서로 다른 무게로 서 있다

장마가 시작될 무렵, 서윤은 책방 E 간판의 첫 연필 시안을 책방 벽에 붙였다. 2장에서 라틴 "E"의 비례를 정해 둔 터라 이번에는 한글 "책방"을 그릴 차례였다. 시안의 "방"은 받침 ㅇ을 시원하게 크게 돌린 탓에 "책"보다 한눈에 무겁고, 아래로 처져 보였다. 주인은 "방 자가 좀 주저앉은 것 같네요"라고 했다.

서윤은 시안을 이 장의 구조 모형으로 옮겨 쟀다. 시안은 받침 칸이 글자 높이의 40%, 받침 ㅇ은 칸에 꽉 차게(100%) 그린 상태였다. 이 책의 모델로 계산하면 이때 "방"의 잉크 양은 "책"의 1.13배이고, 무게중심은 "방"이 글자 높이의 9.7%만큼 아래에 있다. 초성 칸 높이는 글자 높이의 36%에 그쳤다. 한도경은 시안을 거꾸로 돌려 벽에 다시 붙이고 말했다. "거꾸로 보면 ㅇ이 제일 먼저 보이지. 글자도 그림처럼 사이를 봐. 동그라미 하나가 칸을 너무 많이 먹었어."

서윤은 탈네모틀도 그려 보았다. 탈네모틀의 장점은 받침의 유무가 글자의 윤곽에 드러나는 데 있는데, "책방"은 두 글자 모두 받침글자라 그 장점이 드러날 자리가 없었다. 오히려 받침을 위 칸과 따로 매다는 만큼 받침 칸을 줄여도 위 칸이 커지지 않았다. 서윤의 선택은 네모틀이었다. 받침 칸을 40%에서 30%로 낮춰 초성 칸을 44.5%로 키우고, 받침 ㅇ은 칸의 85% 크기로 줄였다. 모델로 계산하면 잉크 비는 1.035로 줄고, 무게중심 차는 7.2%로 줄었다. 남은 차이는 글자를 위아래로 옮겨 없애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무게중심 맞추기 시뮬레이터에서 본 것처럼, 옮기면 두 글자의 틀이 어긋나 오히려 출렁이기 때문이다. 대신 도경의 말대로 실제 크기의 5분의 1로 출력해 방 반대편에서 보며 ㅇ의 크기를 눈으로 다시 확인하기로 했다.

간판 바탕 · 책방 초록#2f7d5b 글자 · 크림#ffe2d7 연필 시안 선#22342a
이 장에서 정한 것간판 한글 "책방"은 네모틀로 간다. 받침 칸 높이는 글자 높이의 30%(시안 40%), 초성 칸 높이 약 44.5%, 받침 ㅇ은 받침 칸의 85% 크기(시안 100%). 두 글자는 같은 틀의 위아래 선에 맞추고, 무게중심을 맞추려 글자를 옮기지 않는다. 이 장의 모델로 "방" ÷ "책" 잉크 비 1.035, 무게중심 차 글자 높이의 7.2%. 획 굵기는 2장에서 정한 "E"의 굵기와 맞춘다.
아직 남은 문제두 글자를 나란히 놓으니 "책"과 "방" 사이, "방"과 "E" 사이의 빈 공간이 고르지 않아 보인다. 한글 틀의 아랫선과 "E"의 기준선을 어디서 맞출지도 아직 정하지 않았다.
다음 단계4장: 웹 본문과 안내 책자 본문에 쓸 글꼴을 고른다. 간판 글자 사이의 간격은 5장에서 다룬다.

핵심 정리

  1. 한글은 음소 문자이면서 한 음절의 자모를 네모난 자리에 모아쓴다. 음절 글자는 초성·중성·종성의 세 자리로 이루어지고, 종성에 들어간 자음을 받침이라 부른다.
  2. 현대 한글은 초성 19 × 중성 21 × 종성 28(받침 없음 포함) = 11,172자를 만들 수 있다. 유니코드는 이 순서대로 U+AC00부터 번호를 매겼고, KS X 1001 완성형은 그중 2,350자만 담았다.
  3. 모음의 방향(세로·가로·섞임)과 받침 유무로 여섯 가지 모임꼴이 생긴다. 같은 자모도 모임꼴에 따라 크기와 비례가 달라져야 해서 한글 글꼴은 수천 자를 다듬어야 하고 파일이 무겁다.
  4. 네모틀은 글자 크기를 하나로 맞추는 대신 자모 크기가 글자마다 다르고, 탈네모틀은 자모 크기를 고정하는 대신 글자의 아랫선이 들쭉날쭉하다. 어느 쪽이 더 잘 읽힌다고 일반화할 근거는 약하다.
  5. 받침은 글자의 무게중심을 끌어내린다. 글자를 옮겨 무게중심을 맞추면 틀이 흩어지므로, 디자이너는 자모의 크기와 굵기를 고쳐 무게를 맞춘다.
  6. 한글에는 라틴 글자 같은 공통 기준선이 없다. 라틴 글자와 섞어 짤 때는 대문자·x높이와 한글 글자 높이의 관계, 두 글자의 가운데 높이를 맞춘다.
  7. 해례본에 따르면 기본 자음은 발음 기관을 본뜨고(상형) 획을 더해 나머지를 만들었으며(가획), 모음은 하늘·땅·사람(ㆍ ㅡ ㅣ)을 합쳐 만들었다. 이 체계가 오늘의 모임꼴과 받침 구조로 이어진다.

확인 퀴즈

1. 현대 한글로 만들 수 있는 음절 글자가 11,172자인 까닭으로 옳은 것은?

19 × 21 × 28 = 11,172다. 종성 자리의 28가지에는 받침 27가지와 "받침 없음"이 함께 들어 있다. KS X 1001 완성형은 그중 2,350자만 담은 규격이고, 해례본은 글자 수를 정한 책이 아니라 글자를 만든 원리를 밝힌 책이다.

2. "가"와 "곽"에서 초성 ㄱ이 차지하는 칸을 비교한 설명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가"는 세로모임 민글자라 초성이 왼쪽 칸을 넉넉히 쓴다. "곽"은 ㅗ와 ㅏ가 함께 쓰이는 섞임모임에 받침까지 있어 초성이 왼쪽 위 구석에 갇힌다. 초성의 크기가 글자마다 달라지는 것은 오히려 네모틀의 특징이다. 크기를 고정하는 것은 탈네모틀이다.

3. 탈네모틀 글꼴로 "가방을 들고"를 짰을 때 나타나는 모습으로 옳은 것은?

탈네모틀은 초성과 모음의 크기를 고정하고 받침을 그 아래에 붙인다. 그래서 윗선은 맞고 받침글자만 아래로 길어진다. 모든 글자가 정사각형에 꽉 차는 것, 받침글자의 초성이 눌리는 것은 네모틀의 모습이다.

4. 훈민정음 해례본이 설명한 자음 ㅌ의 만들어진 방식으로 옳은 것은?

ㄴ, ㄷ, ㅌ은 모두 혀끝에서 나는 소리(혓소리)다. 기본자 ㄴ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떴고(상형), 소리가 세질수록 획을 더해 ㄷ, ㅌ을 만들었다(가획). ㆍ, ㅡ, ㅣ의 조합은 모음을 만드는 원리다.

출처와 글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