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찻잔을 한낮의 햇볕 아래에서 찍으면 그림자가 칼로 자른 듯 또렷하고, 흐린 날 창가에서 찍으면 그림자가 안개처럼 번진다. 스탠드를 조금 옮기기만 해도 종이의 결이 살아나거나 사라지고, 액자 유리에는 조명이 하얗게 박힌다. 2장과 3장이 빛을 "얼마나" 받을지 다뤘다면, 이 장은 빛을 "어떻게" 받을지 다룬다. 빛의 크기, 방향, 거리, 색, 네 가지 손잡이를 차례로 돌려 보고, 마지막에는 그림을 사진으로 옮길 때 가장 고른 빛을 만드는 배치를 찾는다.
광원의 크기가 아니라 피사체에서 본 겉보기 크기가 그림자 경계의 부드러움을 정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순광·사광·측광·역광이 형태와 질감을 어떻게 드러내거나 지우는지 시뮬레이터로 비교한다.
역제곱 법칙으로 조명의 거리와 밝기, 화면 안의 밝기 차이를 계산한다.
반사판으로 그림자 쪽을 채우고 명암비를 숫자로 읽는다.
색온도가 다른 빛이 섞일 때와 유리에 조명이 비칠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고 피하는 배치를 찾는다.
빛의 크기: 단단한 빛과 부드러운 빛
사진가들은 빛을 말할 때 밝기보다 먼저 "단단한가, 부드러운가"를 묻는다. 그림자의 경계가 또렷하고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이 급하게 바뀌는 빛을 경질광(Hard light), 경계가 넓게 번지고 명암이 천천히 바뀌는 빛을 연질광(Soft light)이라고 한다. 둘을 가르는 것은 광원의 종류가 아니라 피사체에서 본 광원의 겉보기 크기다.
해는 지름이 지구의 백 배가 넘는 거대한 광원이지만, 너무 멀어서 하늘에서는 지름 약 0.5°의 작은 원으로 보인다. 그래서 맑은 날의 햇빛은 가장 단단한 빛 중 하나다. 반대로 구름이 하늘을 덮으면 하늘 전체가 하나의 광원이 되어 그림자가 거의 사라진다. 창가의 빛이 부드러운 것도 창이 가까이 있는 큰 광원이기 때문이다. 해가 창으로 직접 들어오지 않는 북향 창이나 흐린 날의 창이라면 더 그렇다.
그림 1. 광원의 크기와 그림자의 경계. 광원이 점에 가까우면 공 뒤의 모든 곳이 광원 전체를 한꺼번에 잃어 그림자가 또렷하다(본그림자). 광원이 크면 광원의 일부만 가려지는 띠가 생기고, 그 안에서 밝기가 서서히 바뀐다. 이 띠가 반그림자(Penumbra)다. 드로잉에서 그림자의 가장자리를 다루는 법은 DrawingBook 9장에서 보았다.
반그림자의 폭은 닮은 삼각형으로 어림할 수 있다. 광원의 지름이 클수록, 물체와 그림자 사이가 멀수록 넓어지고, 광원이 멀어질수록 좁아진다.
$$w \approx s \cdot \frac{d_{\text{물체→그림자}}}{d_{\text{광원→물체}}}$$
\(w\): 반그림자의 폭, \(s\): 광원의 지름. 광원이 물체보다 아주 멀 때의 근사다. 같은 광원이라도 두 배 멀리 두면 겉보기 크기가 절반이 되어 반그림자도 절반으로 좁아진다. 그래서 "광원을 가까이 가져오면 빛이 부드러워진다"는 사진가의 말은 광원을 바꾸지 않고도 맞는다.
아래 장면은 탁자 위의 흰 공을 원반 모양 광원 하나로 비춘 것이다. 장면 위를 끌면 광원의 방향이 바뀐다(좌우는 방위, 위아래는 높이). 슬라이더로 광원의 지름과 거리를 바꾸며 그림자의 경계를 본다. 노출은 공 가운데의 밝기가 늘 같도록 자동으로 맞췄으므로, 바뀌는 것은 빛의 성격뿐이다.
SIMULATOR
광원의 겉보기 크기와 그림자 경계
끌어서 빛의 방향을 바꾼다
공에서 본 광원의 크기—
반그림자의 폭(근사)—
빛의 성격—
해볼 것: ① "맑은 날 해"에서 그림자의 가장자리가 칼로 자른 듯하다. 겉보기 크기가 1°도 되지 않는다. ② "흐린 날 창"으로 바꾼다. 지름 1 m짜리 광원이 60 cm 거리에 있으니 겉보기 크기가 80°에 가깝고, 그림자는 공 밑에 고인 옅은 얼룩만 남는다. 공의 밝은 쪽에서 어두운 쪽으로 넘어가는 띠도 넓어진다. ③ 지름은 그대로 두고 거리만 300 cm까지 밀어 본다. 같은 광원인데 그림자가 단단해진다. 반대로 지름 120 cm를 40 cm까지 붙이면 그림자가 거의 사라져 공이 탁자에서 떠 보이기도 한다. 부드러운 빛도 끝까지 밀면 형태를 잃는다. (광선 추적으로 그린 교육용 장면이다. 광원은 빛을 고르게 내는 원반, 공과 탁자와 벽은 모든 방향으로 고르게 반사하는 면으로 두었고, 벽과 탁자 사이에서 튀는 빛은 일정한 밝기의 주변광으로 대신했다. 반그림자 폭은 공 꼭대기에서 탁자까지를 12 cm로 둔 근사다.)
광원을 크게 만드는 방법은 많다. 조명 앞에 기름종이나 흰 천을 대거나(디퓨저(Diffuser)), 조명을 흰 벽이나 천장에 쏘아 그 넓은 면이 광원이 되게 한다. 햇볕이 드는 창에 얇은 흰 커튼을 치는 것도 같은 일이다. 커튼 전체가 하나의 큰 광원이 된다. 어느 쪽이든 원리는 하나다. 피사체에서 볼 때 빛이 나오는 면이 넓어지게 하는 것이다.
스탠드 하나와 종이 한 장
어두운 방에서 책상 스탠드 하나만 켜고, 흰 컵이나 달걀을 종이 위에 놓는다. ① 스탠드를 50 cm쯤 떨어뜨려 그림자의 가장자리를 본다. ② 스탠드 앞 20 cm에 A4 기름종이(또는 얇은 흰 종이)를 들어 빛을 거르게 한다. 그림자 가장자리가 얼마나 넓어지는지 연필로 종이에 표시해 둔다. ③ 기름종이를 컵 쪽으로 점점 옮겨 컵 바로 옆(10 cm)까지 가져간다. 같은 종이인데 컵에서 본 크기가 커져 그림자가 더 부드러워진다. ④ 마지막으로 스탠드를 흰 벽을 향해 돌려 벽에서 튄 빛만으로 비춘다. 휴대폰으로 네 장면을 같은 자리에서 찍어 나란히 놓고, 반그림자의 폭을 비교한다.
빛의 방향: 순광, 사광, 측광, 역광
빛의 두 번째 손잡이는 방향이다. 카메라를 기준으로 빛이 어디서 오는지에 따라 흔히 네 가지로 나눈다. 카메라 뒤에서 피사체 정면으로 오는 순광(Front light), 비스듬히 45° 안팎에서 오는 사광(Three-quarter light), 옆에서 오는 측광(Side light), 피사체 뒤에서 카메라 쪽으로 오는 역광(Back light)이다.
그림 2. 위에서 본 빛의 방향. 순광은 그림자가 피사체 뒤로 숨어 평평하고 고르게 보인다. 사광은 한쪽에 그림자를 만들어 입체를 드러낸다. 측광은 피사체를 밝은 반과 어두운 반으로 나누고 표면의 요철을 가장 강하게 드러낸다. 역광은 피사체를 실루엣으로 만들거나 가장자리에 빛의 테두리를 두른다. 이름의 경계는 엄밀하지 않고, 높이(빛이 위에서 오는 정도)도 함께 따진다.
방향이 바꾸는 것은 입체감만이 아니다. 종이의 결, 붓 자국, 천의 짜임 같은 표면의 질감도 방향에 따라 나타나거나 사라진다. 면에 거의 스치듯 낮게 들어오는 빛은 아주 작은 요철에도 그림자를 만든다. 아래 장면에는 공 옆에 물감 자국이 있는 수채화 종이를 놓았다. 방향 단추로 출발점을 고르고, 장면을 끌거나 높이 슬라이더를 움직여 종이의 결이 언제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지 찾는다.
SIMULATOR
빛의 방향과 종이의 결
끌어서 빛의 방향을 바꾼다
카메라와 빛의 각도—
종이 결의 명암 대비—
탁자 위 그림자 넓이—
해볼 것: ① "순광"에서 공이 평평한 원판처럼 보이고 종이의 결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결의 명암 대비가 가장 낮다. ② "측광"으로 바꾸고 높이를 10° 아래로 내린다. 결의 대비가 몇 배로 뛰고 종이가 울퉁불퉁한 표면이 된다. 수채화 종이의 질감을 일부러 보여 주고 싶을 때 쓰는 빛이다. 반대로 도록에 실을 작품 사진이라면 이 결이 그림을 방해한다. ③ "역광"에서는 공이 어두운 실루엣이 되고 탁자 위에 긴 그림자가 카메라 쪽으로 뻗는다. 높이를 85°로 올려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빛을 만들면 그림자가 발밑으로 줄고 공의 아래쪽 절반이 어둡다. 한낮의 해가 인물 사진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다. (종이 결은 여러 물결을 겹친 교육용 높이 지도다. 결의 명암 대비는 종이 면 위 조도의 표준편차를 평균으로 나눈 값이다.)
어느 방향이 좋은지는 무엇을 보여 주려는지에 달렸다. 형태와 입체를 보여 주려면 사광, 질감을 강조하려면 낮은 측광, 윤곽과 분위기를 보여 주려면 역광, 표면의 색과 무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면 고르게 퍼진 순광에 가까운 빛이 맞다. 작품 사진은 마지막 경우다. 그림 속 명암은 화가가 이미 그려 두었으므로, 사진의 빛은 그 위에 새 그림자를 보태지 않아야 한다. 다만 정면에서 빛을 비추면 다음 절들에서 볼 두 가지 문제, 밝기의 치우침과 유리 반사가 생긴다.
거리: 역제곱 법칙
작은 광원에서 나온 빛은 사방으로 퍼진다. 거리가 두 배가 되면 같은 빛이 네 배 넓은 면적에 퍼지므로 밝기는 4분의 1이 된다. 이것이 역제곱 법칙(Inverse-square law)이다. 빛이 면에 비스듬히 닿으면 그만큼 더 넓게 퍼지므로 입사각의 코사인이 한 번 더 곱해진다.
$$E = \frac{I \cos\theta}{r^2}$$
\(E\): 면이 받는 빛의 양(조도), \(I\): 광원의 세기, \(r\): 광원까지의 거리, \(\theta\): 빛이 면의 수직 방향과 이루는 각. 거리를 두 배로 하면 \(E\)는 4분의 1, 곧 −2스톱이다. 점광원의 근사이므로, 광원 크기에 비해 아주 가까운 곳에서는 이보다 덜 급하게 줄어든다.
사진에서 역제곱 법칙이 중요한 이유는 밝기 그 자체보다 화면 안의 밝기 차이 때문이다. 조명을 작품에 가까이 대면 가까운 쪽 끝과 먼 쪽 끝의 거리 비가 커져 한쪽이 눈에 띄게 어두워진다. 멀리 두면 거리 비가 1에 가까워져 고르게 비친다. 아래는 벽에 건 그림과 조명 하나를 위에서 본 것이다. 조명을 끌어 거리와 위치를 바꾸고, 그래프와 아래의 작품 사진에서 밝기가 어떻게 기우는지 본다.
SIMULATOR
조명의 거리와 그림 위의 밝기 차이
조명을 끈다
조명까지의 거리—
가운데 밝기(정면 1 m 기준)—
왼쪽 끝과 오른쪽 끝의 차이—
해볼 것: ① 조명을 정면 1 m에 두고 가운데 밝기가 0스톱인 것을 확인한 뒤, 정면 2 m로 끈다. −2스톱, 곧 4분의 1이다. ② 처음 자리(오른쪽 45° 방향, 50 cm)에서는 왼쪽 끝과 오른쪽 끝의 차이가 2스톱을 넘어 그림의 한쪽이 눈에 띄게 어둡다. 같은 45° 방향에서 거리만 1.5 m로 늘려도 차이는 0.8스톱 남짓 남는다. 비스듬한 조명 하나로는 그림을 고르게 비추기 어렵다. 작품 촬영에서 조명을 양쪽에 하나씩 두는 이유다(마지막 절). ③ 작품의 가로를 100 cm로 늘린다. 같은 조명 위치에서도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큰 그림일수록 조명을 멀리 둔다. (조명은 모든 방향으로 같은 세기를 내는 점광원으로 두었다. 실제 조명은 빛을 앞쪽으로 모으는 반사갓이 있어 가장자리로 갈수록 더 어두워질 수 있다. 그림은 윈슬로 호머의 수채화 「나소의 담」(1898,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공공 도메인) 사진이다.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마지막 절과 유리 반사 시뮬레이터에서도 같은 그림을 쓴다.)
"노출을 가운데에 맞춤"을 끄면 거리 자체의 효과가 보인다. 조명을 두 배 멀리 하면 셔터 속도를 네 배 길게 하거나 감도를 두 단 올려야 같은 사진이 된다(2장). 거리를 늘리는 대가는 빛의 양이고, 얻는 것은 고른 빛이다. 그리고 앞 절에서 본 것처럼, 조명이 멀어지면 겉보기 크기가 작아져 빛이 단단해진다. 거리 하나가 밝기, 고르기, 부드러움 세 가지를 함께 바꾼다.
창은 점광원이 아니다
역제곱 법칙은 광원이 그 거리에 비해 작을 때 잘 맞는다. 창이나 큰 소프트박스 바로 앞에서는 거리를 두 배로 해도 밝기가 4분의 1까지 떨어지지 않는다. 광원의 넓은 면이 여러 방향에서 빛을 보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창빛이 고른 것은 아니다. 창에서 방 안쪽으로 몇 걸음만 들어가도 빛은 빠르게 줄고, 창 쪽 면과 안쪽 면의 차이는 그대로 남는다. 창가에 세운 그림의 창 쪽 끝이 반대쪽 끝보다 1스톱 넘게 밝은 일은 흔하다.
반사판과 명암비
빛 하나로 찍으면 밝은 쪽과 그림자 쪽의 차이가 크다. 그림자 쪽에 빛을 조금 더해 차이를 줄이는 빛을 채움빛(Fill light), 주가 되는 빛을 주광(Key light)이라고 한다. 채움빛을 만드는 가장 값싼 도구가 반사판(Reflector)이다. 흰 판이나 은박 판을 그림자 쪽에 세워 주광을 되돌려 보낸다. 반대로 검은 판을 세우면 방 안에서 튀어 오던 빛까지 막아 그림자가 더 깊어진다. 이것을 "빼는 채움"(Negative fill)이라고 부른다.
밝은 쪽과 그림자 쪽의 차이는 명암비(Lighting ratio)로 적는다. 밝은 쪽이 받는 빛(주광 + 채움빛)과 그림자 쪽이 받는 빛(채움빛)의 비다. 2:1이면 1스톱, 4:1이면 2스톱, 8:1이면 3스톱 차이다. 아래에서 반사판의 종류와 거리, 크기를 바꿔 본다.
SIMULATOR
반사판으로 그림자 채우기
채움빛(주광 대비)—
명암비—
해볼 것: ① "없음"에서 명암비를 본다. 방 안에서 튀는 빛만 있어 18:1 가까이, 그림자 쪽이 4스톱 넘게 어둡다. ② "흰색", 지름 60 cm 판을 60 cm 거리에 두면 6.6:1(2.7스톱)로 줄고, 공의 그림자 쪽에 둥근 형태가 살아난다. 거리를 30 cm로 당기면 3.8:1(1.9스톱)이다. 반사판은 생각보다 약해서, 효과를 보려면 꽤 가까이 대야 한다. ③ "은색"은 같은 자리에서 흰색보다 채움빛이 강하다. "검정"으로 바꾸면 명암비가 60:1을 넘어 "없음"보다도 훨씬 커진다. ④ 지름 120 cm 흰 판을 20 cm까지 붙이면 2.7:1, 은색이면 2:1 가까이 내려간다. 그림자 쪽이 밝아질수록 공의 둥근 입체가 약해진다. 채움빛도 끝까지 밀면 형태를 지운다. (반사판은 주광의 70%를 받는다고 두고, 흰 판의 반사율 0.85, 은박은 빛을 한쪽으로 모으는 효과를 반사율 1.5로 흉내 냈다. 원반 모양 면광원의 조도 공식 E = ρE입사·R²/(R²+d²)을 썼다. 교육용 근사다.)
명암비에도 정답은 없다. 2:1 안팎은 밝고 부드러운 인상을, 8:1 이상은 극적이고 무거운 인상을 준다. 인물 사진의 관습, 상품 사진의 관습이 따로 있을 뿐이다. 작품 사진에서는 이 질문이 거의 사라진다. 평평한 그림을 앞에서 고르게 비추면 그림 위에 사진의 그림자 쪽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그림의 양쪽 끝이 받는 빛이 같은지, 곧 다음 절들에서 볼 "좌우의 명암비"가 1:1에 가까운지가 중요해진다.
창가 하나와 흰 판 하나
창가의 정물이나 작은 작품은 조명 없이도 꽤 좋게 찍을 수 있다. 창을 옆에 두고(측광 또는 사광), 창 반대쪽에 흰 하드보드지나 흰 우드락을 세운다. 판을 피사체에 가까이 가져갈수록 그림자 쪽이 밝아진다. 창으로 해가 직접 들어오면 얇은 흰 커튼이나 기름종이를 창에 붙여 광원을 키운다. 이때 주의할 것은 시간이다. 창빛은 구름 한 점에도 밝기와 색이 바뀌므로, 여러 장을 같은 조건으로 찍어야 하는 일(도록처럼)에는 몇 장마다 회색 견본을 함께 찍어 두거나, 아예 조명으로 바꾸는 편이 낫다.
빛의 색과 혼합광
빛의 네 번째 손잡이는 색이다. ColorBook 10장에서 본 것처럼, 흐린 낮의 하늘빛은 6500 K 안팎의 푸르스름한 흰빛이고, 집 안의 따뜻한 전구색 조명은 2700 K 안팎의 노르스름한 흰빛이다. 사람의 눈은 한 공간의 빛에 순응해 둘 다 "흰빛"으로 받아들이지만, 카메라는 화이트 밸런스(White balance)로 정한 한 가지 빛만 흰빛으로 기록한다.
빛이 한 종류라면 화이트 밸런스를 그 빛에 맞추면 된다. 문제는 색이 다른 빛이 한 장면에 함께 있을 때, 곧 혼합광(Mixed lighting)이다. 화이트 밸런스를 어느 하나에 맞추면 다른 하나가 비친 곳은 누렇거나 푸르게 남는다. 아래는 창이 있는 방을 위에서 본 것이다. 창에서는 낮빛이, 스탠드에서는 전구색 빛이 나온다. 스탠드와 "작품" 표시를 끌어 옮기고, 화이트 밸런스를 바꿔 본다.
SIMULATOR
창빛과 실내등이 섞이는 방
스탠드와 작품 표시를 끈다
작품 자리의 빛—
그중 창빛의 몫—
회색 카드의 치우침(b*)—
해볼 것: ① 낮빛 화이트 밸런스에서 작품 표시를 창가로 끈다. 회색 카드가 거의 회색이다. 스탠드 쪽으로 옮기면 카드와 흰 종이가 누렇게 물든다. ② 화이트 밸런스를 "실내등 2700 K"로 바꾼다. 이번에는 스탠드 옆은 맞고 창가가 파랗다. 방 안 어디에 두어도 둘 중 하나는 틀린다. ③ "중간 4000 K"는 양쪽을 반쯤 틀리게 한다. 바닥의 색 지도에서 창 쪽은 푸르고 스탠드 쪽은 누런 띠가 동시에 생긴다. ④ 스탠드 밝기를 0으로 내리면 빛이 하나가 되어 낮빛 화이트 밸런스 하나로 방 전체가 맞는다. 혼합광의 가장 확실한 해결은 보정이 아니라 빛을 한 종류로 줄이는 것이다. (빛의 색은 이 책 엔진의 흑체 색, 화이트 밸런스는 선형 sRGB 각 채널을 흰빛의 값으로 나누는 단순한 방식으로 계산했다. 창빛은 창에서 멀어질수록 줄어드는 넓은 광원, 스탠드는 높이 1 m의 점광원으로 두었다. 실제 조명의 스펙트럼은 흑체와 다를 수 있다.)
혼합광은 보정으로도 깔끔하게 고치기 어렵다. 사진 전체에 한 가지 화이트 밸런스를 적용하는 보정은 한쪽을 고치면 다른 쪽을 틀리게 하기 때문이다. 부분마다 다르게 보정할 수는 있지만, 빛이 섞이는 경계에서 색이 서서히 바뀌는 곳은 손으로 고치기 어렵다. 작품 사진처럼 색이 중요한 일에서 현장 사진가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창을 가리고, 천장 조명을 끄고, 같은 종류의 조명만 켠다"인 이유다. 화이트 밸런스를 실제로 맞추는 절차는 9장에서 다룬다.
유리와 광택: 입사각과 반사각
물체는 빛을 두 가지 방식으로 돌려보낸다. 종이나 무광 물감처럼 모든 방향으로 고르게 흩어 보내는 난반사(Diffuse reflection)와, 거울이나 유리처럼 들어온 각도 그대로 반대쪽으로 튕겨 보내는 정반사(Specular reflection)다. 정반사에서는 입사각과 반사각이 같다. 그래서 정반사된 빛이 카메라에 들어오는지는 광원, 반사면, 카메라의 위치만으로 정확히 정해진다.
액자 유리, 유화의 광택 있는 바니시, 코팅된 사진 인화지는 정반사를 한다. 이 면에 조명이 비치면 그 자리는 그림 대신 조명의 모습이 하얗게 박힌다. 사진 조명을 다룬 교과서 『라이트: 사이언스 & 매직』(Fil Hunter, Steven Biver, Paul Fuqua, Light: Science & Magic)은 이렇게 반사가 카메라에 들어오게 만드는 광원 위치의 범위를 "각의 무리"(Family of angles)라고 불렀다. 반사를 피하려면 조명을 이 범위 밖에 두고, 반사를 일부러 보이려면(유리잔의 윤곽처럼) 이 범위 안에 둔다. 아래에서 범위를 직접 본다.
SIMULATOR
유리 액자에 조명이 비치는 자리
두 조명을 끈다
왼쪽 조명—
오른쪽 조명—
카메라 자신—
해볼 것: ① 처음 배치에서 오른쪽 조명은 정면 가까이(15°)에 있어 붉은 범위 안에 들어 있다. 아래 사진의 그림 위에 하얀 점이 박혔다. 오른쪽 조명을 끌어 범위 밖으로 옮긴다. 이 카메라 거리에서는 정면에서 20° 안팎만 벗어나도 반사가 그림 밖으로 나간다. ② 카메라 거리를 0.6 m로 당기거나 작품의 가로를 100 cm로 늘린다. 붉은 범위가 넓어져, 방금까지 괜찮던 조명이 다시 비친다. 큰 작품, 가까운 카메라일수록 조명을 옆으로 더 벌려야 한다. 45°가 관습이 된 이유 중 하나다. ③ 카메라 자신은 언제나 범위 한가운데에 있다. 유리에는 카메라와 찍는 사람이 비친다. 방이 어둡고 카메라가 검으면 잘 보이지 않지만, 밝은 옷이나 뒤쪽의 밝은 창은 그대로 비친다. (조명과 카메라가 작품 가운데와 같은 높이에 있다고 보고, 위에서 본 평면에서 계산했다. 유리는 벽과 평행한 평면이다.)
편광으로 반사를 끄기
유리나 광택 면에서 정반사된 빛은 특정한 방향으로 진동하는 성분이 많아진다(편광). 카메라 렌즈 앞에 편광 필터를 달고 돌리면 이런 반사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반사를 거의 다 지워야 하는 미술관 복제 촬영에서는 조명 앞에도 편광 필름을 붙이고, 렌즈의 편광 필터를 그것과 직각으로 돌려 정반사만 걸러 내는 교차 편광(Cross polarization)을 쓰기도 한다. 반사가 없어지는 대신 빛이 많이 줄고(흔히 몇 스톱), 광택 때문에 보이던 물감의 결도 함께 사라진다. 그 결을 지울지 남길지도 기록의 선택이다.
화가의 빛, 사진가의 빛
사진가들이 창가의 빛을 사랑하는 이유는 화가들이 오래전에 보여 주었다. 페르메이르의 실내화는 대부분 왼쪽 창에서 들어오는 빛 하나로 그려졌다. 아래 그림에서 빛은 크고 가까운 창에서 오므로 그림자가 부드럽고, 벽은 창 쪽에서 안쪽으로 갈수록 서서히 어두워진다. 이 장에서 본 세 가지, 큰 광원의 부드러움, 거리에 따른 밝기의 기울기, 옆에서 오는 빛의 입체감이 한 화면에 다 있다.
그림 3.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물병을 든 젊은 여인」, 1662년경. 빛은 왼쪽 창 하나에서 온다. 흰 두건의 그림자 쪽은 검게 꺼지지 않고 푸르스름한 회색으로 남는데, 방 안의 벽과 바닥에서 되돌아온 빛, 곧 자연의 채움빛 덕분이다. 벽의 밝기가 창에서 멀어질수록 줄어드는 기울기도 눈여겨본다. 사진으로 이 장면을 찍는다면 아름다운 빛이지만, 벽에 건 지도를 "기록"하는 빛으로는 고르지 않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Marquand Collection, Gift of Henry G. Marquand, 1889), 캔버스에 유채.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모든 그림이 빛의 방향을 그리지는 않는다. 조선 후기의 초상화는 얼굴의 굴곡을 가는 붓선과 은은한 색의 농담으로 정성껏 나타내지만, 몸이 바닥에 드리우는 그림자나 한쪽에서 들어오는 빛은 그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림 속 인물은 어느 창 앞에 앉아 있지 않고, 고르게 밝은 공간 속에 있다. 서양 회화의 명암법과는 다른 선택이고, 그 선택 덕분에 얼굴과 관복의 무늬가 그림자에 가려지지 않는다.
그림 4. 작가 미상, 「윤동섬(1710–1795) 초상」, 조선, 1790~1805년경. 얼굴의 눈두덩과 볼에는 옅은 농담이 있지만, 관복과 의자, 바닥 어디에도 한쪽에서 온 빛이 만든 그림자는 없다. 화면 전체가 고르게 밝다. 작품을 사진으로 기록할 때 원하는 빛도 이와 닮았다. 그림이 이미 가진 명암만 남기고, 사진의 빛은 어느 쪽에서 왔는지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Purchase, Harris Brisbane Dick and 2014 Benefit Funds; Friends of Korean Art, Locks Foundation, Hyun Jun M. Kim, and Tchah Sup and Myong Hi Kim Gifts, 2014), 족자, 비단에 먹과 채색. 공공 도메인(The Met Open Access, CC0). 소장처 작품 페이지 · 크레딧
그렇다고 사진에서 단단한 빛이나 한쪽 빛이 실패라는 뜻은 아니다. 한낮의 단단한 햇빛이 만드는 짙은 그림자는 골목과 건물의 형태를 도형처럼 또렷하게 만들고, 낮은 측광은 오래된 나무 탁자의 결을 이야기로 만든다. 작품 사진에서도 질감 자체를 보여 주려는 세부 사진이라면 일부러 낮은 측광을 쓴다. 규칙은 "고른 빛"이 아니라 "보여 주려는 것을 드러내고, 보여 주지 않으려는 것은 보태지 않는 빛"이다.
작품 촬영 조명 설계
이제 이 장의 손잡이를 모두 모은다. 벽에 붙인 가로 40 cm 수채화 한 점을 카메라 정면 1.2 m에서 찍는다. 왼쪽에는 창이 있다. 출발점 네 가지를 차례로 고른 뒤, 조명의 수, 각도, 거리, 창빛, 유리 액자를 바꿔 가며 가장 고르고 정확한 빛을 찾는다. 위의 작은 그림은 위에서 본 배치이고, 아래는 그 빛으로 찍은 사진이다. 위 그림의 오른쪽 조명을 끌어도 각도와 거리가 바뀐다.
SIMULATOR
도록 작품 촬영 조명 설계기
오른쪽 조명을 끈다
밝기 차이(가장 밝은 곳 − 가장 어두운 곳)—
왼쪽 끝 · 오른쪽 끝의 빛 색—
유리 반사—
판정—
해볼 것: ① "창가 자연광"은 부드럽고 보기 좋지만, 창 쪽인 왼쪽이 밝아 그림 안의 밝기 차이가 1.2스톱을 넘는다. 화이트 밸런스를 맞춰도 이 기울기는 남는다. ② "조명 하나 정면"은 고르기는 나쁘지 않지만 유리 액자를 켜면 그림 한가운데 가까이에 조명이 박힌다. ③ "조명 둘 45°"에서 커튼을 닫으면 밝기 차이가 0.1스톱 아래로 내려가고 빛 색도 한 가지다. 각도를 80°까지 벌리면 차이가 다시 커지고 종이 결이 살아난다는 경고가 뜬다. 거리를 0.5 m로 당겨도 차이가 커진다. ④ "조명 둘 + 창빛"은 조명 배치는 같은데, 낮의 창빛이 섞여 밝기 차이가 0.8스톱을 넘고 왼쪽 끝과 오른쪽 끝의 빛 색이 250 K쯤 달라진다. 창빛을 "해 질 녘"으로 바꾸면 줄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작품 가로 40 cm, 세로 28 cm, 카메라 거리 1.2 m. 조명은 색온도 5000 K의 점광원 두 개, 창빛은 6500 K의 넓은 광원으로 두었다. 화이트 밸런스는 조명이 있으면 조명에, 없으면 창빛에 맞췄다. 노출은 그림에서 가장 밝은 곳이 하얗게 날아가지 않게 자동으로 맞췄다. 교육용 모형이다.)
이 모형에서 가장 고른 배치는 사실 45°보다 조금 좁은 30° 안팎이다. 두 조명의 기울기가 서로를 가장 잘 메워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작품 촬영의 관습이 45°인 데는 이유가 있다. 유리와 광택 면의 반사 범위에서 넉넉히 벗어나고(앞 시뮬레이터에서 큰 작품, 가까운 카메라일수록 범위가 넓어졌다), 종이 결을 깨우는 낮은 각도와도 거리가 멀다. 45°에서 조명을 충분히 멀리 두면 고르기도 충분하다. 관습은 여러 위험의 한가운데를 고른 값이다.
작품 복사 촬영의 기본 배치
박물관과 화랑의 작품 촬영, 흔히 "복사 촬영"(Copy work)이라 부르는 일의 기본 배치는 대략 이렇다. 작품을 벽이나 이젤에 수직으로 세우고, 카메라는 작품 한가운데를 정면으로, 센서면이 작품과 평행하게 둔다(기울면 사각형이 사다리꼴이 된다, 6장). 같은 종류의 조명 두 개를 작품 양옆 45° 안팎에, 작품 가운데에서 같은 거리로 둔다. 조명을 켠 뒤 작품의 네 귀퉁이와 가운데에 회색 견본이나 노출계를 대어 밝기가 같은지 확인한다. 방의 다른 빛(창, 천장 조명)은 끈다. 유리 액자라면 가능하면 유리를 빼고, 뺄 수 없으면 카메라 둘레를 검은 천이나 검은 판으로 가리고 찍는 사람도 어두운 옷을 입는다.
서윤의 촬영 노트
CASE 서윤촬영 노트 · 4장
창가의 빛은 아름답고, 조명 두 개는 정확하다
창가 사진을 마친 다음 주, 서윤은 도록에 실을 작품을 찍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책방 E의 창가 벽에 수채화를 붙이고 오후 두 시의 흐린 창빛으로 찍었다. 화면으로 볼 때는 부드럽고 좋았다. 그런데 같은 그림의 사진을 출력해 실물 옆에 놓자 왼쪽 끝이 밝고 오른쪽 끝이 어두웠다. 다음 날 같은 시간에 찍은 다른 그림은 구름이 걷혀 전체가 더 밝고 푸르스름했다. 액자에 넣은 드로잉에는 맞은편 서가가 유리에 희미하게 비쳤다.
이 책의 모델로 계산하면, 가로 40 cm 그림을 왼쪽 창빛만으로 비추면 그림 안에서 가장 밝은 곳(창 쪽)과 가장 어두운 곳의 차이가 약 1.2스톱이다. 같은 그림을 색온도가 같은 조명 두 개로 양옆 45°, 작품 가운데에서 1.5 m 거리에 두고 비추면 가장 밝은 곳과 가장 어두운 곳의 차이가 약 0.07스톱으로 줄어든다. 1.2 m에서도 0.12스톱이다. 카메라를 1.2 m에 둘 때 유리에 조명이 비치기 시작하는 각도는 정면에서 약 19° 안쪽이므로 45°는 넉넉히 바깥이다. 그러나 같은 배치에 낮의 창빛이 섞이면 밝기 차이가 약 0.9스톱으로 벌어지고, 왼쪽 끝은 약 6100 K, 오른쪽 끝은 약 5900 K로 빛 색까지 달라진다. 해 질 녘의 약한 창빛도 0.4스톱의 차이를 남긴다.
한도경은 필름 시절에 쓰던 방식을 떠올렸다. "우리는 해가 진 뒤에 찍었어. 창빛은 매일 다르고, 도록은 서른두 쪽이 다 같은 날 찍은 것처럼 보여야 하니까." 도경은 서윤의 시험 사진에서 수채화 종이의 결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덧붙였다. "결을 보여 주고 싶은 그림이 있으면 그건 따로 한 장 더 찍자. 그때는 조명 하나를 옆으로 낮게."
조명같은 종류 2개배치양옆 45° · 1.5 m시간폐점 후 저녁, 커튼 닫음
이 장에서 정한 것도록 작품은 창빛을 쓰지 않고 색온도가 같은 조명 두 개로 찍는다. 조명은 작품 양옆 45°, 작품 가운데에서 같은 거리 1.5 m(공간이 좁으면 최소 1.2 m)에 둔다. 촬영은 문을 닫은 뒤 저녁, 커튼을 치고 천장 조명을 끈 상태에서 한다. 찍기 전에 네 귀퉁이와 가운데의 밝기 차이가 1/3스톱 안인지 확인한다. 유리 액자는 가능하면 유리를 빼고, 뺄 수 없으면 카메라 둘레를 검은 천으로 가린다. 종이 결을 보여 줄 세부 사진은 조명 하나를 낮은 측광으로 따로 찍는다.
아직 남은 문제방이 좁아 조명을 1.5 m까지 떨어뜨릴 수 없는 벽이 있다. 카메라를 어느 거리에서 어떤 초점거리로 두어야 작품이 화면을 알맞게 채우고 사각형이 반듯하게 남는가. 조명 색에 화이트 밸런스를 어떻게 정확히 맞추는가.